우트가르드 로키의 성대한 연회가 끝났다. 토르와 토르 일행은 푹 쉬면서 여행과 대결로 쌓인 피로를 회복했다. 피로는 회복되었지만 토르의 자존심은 회복되지 않았다. 여전히 토르는 그 커다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기운이 없었다. 토르는 거인들을 혼내주겠다는 목적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토르가 이 모양이니, 로키와 티알피 남매도 마찬가지로 의기소침해져서 토르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휴식을 마친 토르와 일행들이 우트가르드를 떠나게 되자, 우트가르드 로키는 직접 성 밖까지 나와 배웅해 주었다. 작별의 인사를 주고받던 중 우트가르드 로키가 토르에게 물었다.
[오쿠 토르여, 이번 여행은 당신에게 무엇이었소?]
[하아.. 솔직히..]
토르가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내가 이렇게 당신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줄은 몰랐어. 내가 그동안 거인들을 아주 우습게 보았지. 내가 너무 자만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건 반성해. 하지만 너무도 치욕스럽군. 내가 우트가르드 로키, 당신에게 당한 이 수모는 두고두고 아홉 세상의 비웃음 거리가 될 테니까.]
우트가르드 로키는 토르의 표정을 보며 그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또한 매우 치욕스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토르에게서 승리한 우트가르드르 로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토르와 일행들이 몸을 돌려 떠나려는데, 우트가르드 로키가 토르를 불러 세웠다.
[당신이 진심을 이야기하니, 나도 내 진심을 말해주겠소.]
토르는 다시 몸을 돌려 우트가르드 로키의 말을 들었다.
[난 솔직히 당신이 이처럼 힘이 쎄고, 당신 일행들이 그렇게 뛰어난 능력을 가졌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이런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당신들을 내 집에 들이지 않았을 거요. 오히려 우리는 당신의 놀라운 힘에 놀라고 또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다오. 지금 우리는 우트가르드가 전멸하는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으니 말이오.]
우트가르드 로키의 말에 토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들은 무참하게 패배했는데, 이건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말 뜻을 몰라 어안이 벙벙해진 토르를 보며 우트가르드 로키가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된 거.. 모든 진실을 말해주지. 실은 난 지금껏 당신들을 마법으로 속이고 있었다오.]
우트가르드 로키의 말에 티알피와 로스크바는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했고, 토르와 로키는 깜짝 놀랐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손으로 전에 스크리미르를 만난 숲을 가리켰다.
[제일 처음 당신들을 마법으로 속인 것은 저 숲 속에서였지. 저 숲이 크긴 하지만 그렇게 며칠씩이나 헤맬 만큼 크진 않다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스크리미르는 내가 변신한 거였어. 토르, 당신이 내 배낭을 열지 못했던 것은 내가 마법의 철사줄로 내 배낭을 묶어 놓았기 때문이었지. 그러자 화가 난 당신은 세 번이나 나를 묠니르로 내리쳤지. 물론 그중 단 하나라도 맞았다면, 난 이미 니블헤임을 떠돌고 있을 거야.
첫 번째로 나를 내리쳤을 때, 난 황급히 몸을 돌려 피했다오. 물론 나머지 두 번도 그런 식으로 피했던 것이지. 돌아가다 보면 거대한 산(또는 산맥)이 나올 텐데, 각각 깊이가 다른 세 개의 골짜기가 보일 거요. 당신이 나라고 생각하고 내리친 것은 바로 그 산이었지. 그중 세 번째의 골짜기가 제일 깊지. 더 크게 내리쳤다면, 요툰헤임이 두 동강 날지도 몰랐던 순간이었다오.]
우트가르드 로키가 숨을 한 번 쉬고는 말을 이었다.
[이제는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당신들의 대결 상대 역시, 내가 마법으로 불러온 것들이었소.
로키를 상대했던 '로기(Logi : 불꽃)'는 순수한 '불'이었다오. 세상에 아무리 빨리 먹는 자라도 불보다 빨리 먹어치울 수는 없지. 불이니 접시에 담긴 음식만이 아니라 접시까지 먹어치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그리고 당신의 하인인 티알피가 상대한 '후기(Hugi : 생각)'는 바로 '내 생각'이었소. 솔직히 난 너무도 놀랐다오. 생각만큼 빠른 발을 가진 자가 있다니.. 분명 저 아이는 당신의 충직한 부하로 더없이 좋은 재목이라오. 그러니 잘 키워야 할 거요.
그리고 당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난 가장 어려운 문제로 당신을 괴롭히려 했지. 앞선 대결에서 난 많이 놀랐거든. 그래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당신을 굴복시켜야 했어. 그러나 그 결과는 나에 무참한 패배였다오. 먼저 당신이 마신 술이 담긴 뿔잔은 바다와 연결이 되어 있었소. 그러니 당신이 아무리 마셔도 뿔잔의 술이 줄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 사실 나는 당신이 술을 들이켤 때마다 이러다 바다가 말라버리면 어쩌나 두려움에 떨었어. 돌아가면서 바다에 갈 일이 있다면 한 번 보시오. 바닷물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한눈에 보일 거요.(바다에 썰물과 밀물이 생긴 이유)
그리고 당신이 내 회색 고양이를 들어 올렸을 때는 내 부하들 중에서도 도망간 녀석이 정말 많았소. 그 고양이의 몸통을 들어 올리는 것도 모자라, 한쪽 발이 들린다는 건 우리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거든. 왜냐하면, 그 회색고양이는 다름이 아닌 '요르문간드(Yormungandr : 대지의 지팡이)'였으니까. 내가 마법으로 고양이의 모습으로 보이게 한 것뿐이지. 이젠 너무나도 거대해져서 자신의 꼬리를 입으로 물고 있지 않으면 안 되게 된 녀석을 그렇게 들어 올리다니..]
토르는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토르가 착잡한 심정으로 물었다.
[그.. 그렇다면 나와 힘겨루기를 한 그 노파는 뭐였지?]
[아, 내 양어머니라고 한 '앨리(Elli : 노령)'는 '노령', '늙은 나이의 화신'이었지. 그 어떤 존재도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게 아니겠소? 그 누구도 그녀를 이겨낼 수는 없지. 그러나 오직 하나. 토르 만이 그녀와 동등하게 대적했지.]
여기까지 듣자, 토르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속은 것도 분한 데다가, 그동안 당한 수모와 치욕은 물론 지금 와서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 우트가르드 로키를 향한 분노가 끓어오르다 못해 차고 넘쳤다. 토르는 우트가르드 로키를 내리치기 위해 묠니르를 꺼내 들었다. 그럼에도 우트가르드 로키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다시는 이곳을 찾아오지 말기를 바라오. 당신이 다시 찾아온다면, 우리는 어떤 힘으로도 당신을 막을 수 없을 테지. 그렇다면 부득이 지금처럼 마법을 써서 당신을 걸려들게 할 수밖에 없을 거요. 뭐, 그때 당신이 이번처럼 내 마법에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라도 당신을 막아내려 할 거요.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아무런 명성도 얻지 못하고 지금처럼 헛수고만 하고 돌아가겠지.]
우트가르드 로키의 말이 끝나자 토르는 더 이상 자신의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토르는 알 수 없는 고함을 지르며 묠니르를 들어 우트가르드 로키를 내리쳤다. 그러나 묠니르는 허공을 가를 뿐. 이미 우트가르드 로키는 물론이고, 우트가르드의 성마저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에는 오직 토르와 일행들만이 거대하고 황량한 벌판에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 토르가 화를 안낼수가 없는 상황이었을 듯..(출처 : https://www.pintere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