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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un 07. 2023

20. 강태공 토르-셋 : 이리오너라~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토르, 히미르, 히미르의 아내

#. 이리오너라~


 바다와 인접한 요툰헤임의 한 바닷가 마을. 만(灣 : 바다가 육지로 쑥 들어간 곳)에 인접한 작은 바닷가 마을에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마을의 뒷 편인 작은 언덕 위에는 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고,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이 소들은 거인들의 땅에 살아서 그런지 상당히 덩치가 컸다. 만의 한쪽에는 깎아지는 듯한 높은 벼랑이 서있었는데, 벼랑이 노을에 붉게 물들며 마치 붉은 돛을 단 배가 바다를 향해 항해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푸르던 바다도 잔잔한 파도가 노을을 받아들여 엷은 붉은빛을 머금은 채 천천히 흔들렸다. 마찬가지로 마을의 지붕도 노을빛을 받아 검붉게 물이 들면서 풍경은 더욱 운치를 더했다.


 낯선 사내가 마을의 뒤편의 언덕에 나타난 것은 이 즈음이었다.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주변을 둘러보다가 성큼성큼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사내의 발걸음이 자연스러운 것을 보아 그는 이곳이 익숙한 것 같았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그는 변장한 토르였다.(물론 토르 나름대로는 꽤 훌륭한 변장이라고 생각했다.) 우트가르드와 달리 이곳은 토르에게는 아주 익숙한 곳이다. 토르는 예전 요툰헤임을 여행하면서 여러 번 지나갔고, 그중 몇 번인가는 근처에서 잠시 쉰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토르와 아주 작은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토르는 자연스럽게 마을 어귀를 지나 마을의 깊은 곳에 홀로 있는 커다란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해변가에는 손질을 마친 그물과 어구들을 널어놓은 건조대가 줄지어 늘어섰다. 그 반대쪽에는 개인 선착장이 있었고, 커다란 배 한 척이 묶여 파도에 찬찬히 흔들거렸다. 이 집은 '히미르(Hymir : 의미불명이나 '절름발이'나 '어둠'이라고 여겨지기도 함)'라는 거인이 사는 집이다. 마을은 이름조차 없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히미르'라는 이름은 요툰헤임을 넘어 아홉 세상에 까지 알려졌다. 거인 히미르는 '세상에서 가장 솜씨가 좋은 낚시꾼'이었기 때문이다. 히미르의 물고기를 낚는 솜씨는 최고였지만, 사람을 낚는 솜씨는 최저였다. 히미르는 성격이 어찌나 괴팍한 지, 주변 누구와도 잘 지내는 법이 없었다. 늘 제멋대로에 자신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쌍소리를 늘어놓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먹질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명성을 듣고 낚시와 물고기잡이를 배우러 온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하루를 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렇다 보니 히미르의 집은 컸지만 하인 한 명 보이지 않았고, 오직 히미르와 그의 아내가 단 둘이 살고 있을 따름이었다.


- 히미르와 토르, 고스포스 십자가에 새겨진 문양(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Hymir )


토르는 히미르의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대문 너머로 히미르가 사는 커다란 집이 보였고, 그 뒤로

배와 어구를 넣어두는 커다란 헛간과 또 다른 커다란 창고도 보였다. 토르는 대문 안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주인장~! 여보시오~ 주인장~! 주인장 있으쇼~?! 이봐요, 주인장~!]


그러자 집안에서 '히미르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 거인이 황급히 달려 나와 대문을 열었다. 히미르의 아내는 거인치고는 키나 덩치가 크지 않았고,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웠다. 히미르와 달리, 그녀는 착하고 다정한 성품을 지닌 여자였다.


[아이고~ 뭔 목청이 그렇게 크다요~ 그러다 지붕이 내려앉겄소~!]

[하하! 죄송합니다. 여기가 세상에서 제일간다는 낚시꾼, 히미르의 집이 맞나요?]


 토르가 태연하게 웃으며 물었다. 히미르의 아내가 낯선 사내를 살펴보더니 가만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집 양반이 히미르긴 헌디.. 댁은 뉘신게라? 어서 본 것 같기도 허고..]

[아.. 저는 히미르에게 한 수 배우려고 온 나그네입니다. 하.. 하..]


 토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뒤로 뺐다. 그렇게 토르가 히미르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집 현관 쪽에서 놋그릇이 깨지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히미르였다.


[대체 어떤 씹어먹을 놈이 떠들고 지랄이야!]


 히미르는 어지간한 거인보다도 머리 하나가 더 컸고, 덩치도 좋았다. 입언저리를 덮은 회색 수염과 커다란 눈은 거무튀튀한 피부와 울퉁불퉁한 근육과 강한 대비를 이루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가 바다에서 잔뼈가 굵을 대로 굵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의 괴팍한 성격도 한눈에 알 수 있었지만. 토르의 외침에 짜증이 난 히미르는 대문 앞에서 자신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낯선 사내를 발견했다. 히미르가 현관 밖으로 나오자, 토르는 히미르의 아내를 지나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히미르가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계단 아래 서있는 토르를 노려보았다.


[뭐야? 넌 뭐 하는 새끼야!?]

[하하. 댁이 집주인이쇼? 이 녀석 잠자리 좀 내어주쇼!]


 토르는 이가 드러날 정도로 웃었고, 히미르는 인상을 구겼다.


[니미럴, 뭐? 잠자리? 아주 지랄이 염병을 떠는구먼.]

[지랄이 염병을 어쨌건, 그건 내 알바가 아니요. 그렇지만 손님은 대접해야 하는 법이라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그러니 당신은 나에게 잠자리를 내어줘야 하오. 난 이 동네에서 날고 긴다는 낚시꾼을 만나러 왔고, 여기가 그 작자의 집이란 걸 알고 있지. 그리고 당신이 그 작자일 테고.]


토르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히미르는 기가 찼다.


[손님은 대접해야 하는 법이고, 내가 그 작자인 것도 맞지.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난 네깟 놈을 부른 적도 없고, 네 놈이 밖에서 얼어 뒤지건, 물고기 밥이 되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난 당신의 그 빌어먹을 낚시질을 한 수 배우러 왔단 말이요. 그러니 당연히 먹여주고, 재워줘야 할 것 아니요?! 세상에 배우겠다고 온 사람을 이렇게 냉대하는 법도 있답니까?]


[이게 뭔 귀신 씻나락 까먹은 소리야? 누가 가르쳐 준다데? 썩, 안 꺼져?!]


토르의 말대꾸에 히미르는 화를 냈다. 그러자 히미르의 아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영감, 날도 저물었으니 오늘 밤은 재워줍시다. 지금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자리를 구하것소. 오늘은 재워주고, 낼 아침에 내보냅시다.]


마음이 따뜻한 히미르의 아내는 낯선 사내가 안쓰러웠다. 아내의 말을 들은 히미르는 가만히 토르를 노려보았는데, 그의 인상은 조금 풀어져 있었다. 괴팍하기로 이름난 히미르도 아내의 부탁은 곧잘 들어주었다. 히미르가 토르를 보며 혀를 찼다.


[쳇!]

[우리 집 양반이 허락했네요. 오늘 밤은 여서 쉬었다 가요.]


히미르의 아내가 토르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히미르는 여전히 불편한 얼굴로 토르를 쳐다보았고, 토르는 헤헤거리며 웃었다.


[잠은 저기 헛간에서 자더라고. 밥은 네 놈이 구해서 먹던지 말던지 알아서 허고.]


말을 마친 히미르는 몸을 돌려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히미르의 아내도 토르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남편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고맙소~!]


토르는 웃으면서 현관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왠지 집의 지붕이 다시 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토르는 그대로 배와 어구를 넣어두는 헛간으로 향했다. 토르는 헛간 안쪽에 쌓여있는 밀짚과 어망을 모아 대충 잠잘 곳을 만들었다. 토르는 자신의 봇짐을 베고 누워 이내 코까지 골며 잠이 들었다. 한동안 밤잠을 설쳤던 데다 자신이 계획한대로 일이 풀려가니 이제 더 이상 걱정할 꺼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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