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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Aug 08. 2023

23. 토르와 뱃사공-넷 :내가 제일 잘 나가~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토르, 하르바르드, 말싸움

#. 내가 제일 잘 나가~!


 '아르바크르(Arvakr : 빨리 일어남)''알스비드(Alsviðr : 다 타버리는 것)'는 보다 더 하늘 높이 달려갔고, 강에 자욱하게 끼어있던 물안개도 사라졌다. 토르와 하르바르드는 더욱 서로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하르바르드는 이름처럼 잿빛으로 빛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까짓 힘자랑이 뭐가 대수라고? 힘도 쓸 때 써야 자랑거리인게야. 쯧쯧.. 난 말이지, 아주 매력적인 것으로 '밤의 기수들(밤을 타는 자들, 여자 거인들 또는 마녀들)'을 그들의 남편으로부터 유혹해 냈다네. 난 '흘레바르드(Hlebarðr : 표범)'라는 강한 거인에게 마술 지팡이를 받았거든. 뭐, 난 지혜를 잃지 않게 그에게 마법을 걸어 대접했지만.]

[저런! 남의 호의를 사악한 마음으로 갚은 게 자랑이라고?!]


 토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르바르드가 막돼먹은 자라는 건 이미 알았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걸 자랑하는 파렴치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르바르드는 오히려 토르의 아둔함을 탓했다.


[쯧쯧.. 원래 나무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법이야. 우린 각자 스스로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으로 행동한 것뿐이지. 이런 간단한 것도 이해를 못 하다니, 한심하군. 그러는 네 놈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데?]


토르가 턱을 높게 들고 대답했다.


[난 그런 파렴치한 행동은 안 해! 멀리 동쪽에 있는 거인족 신부들이 산을 타고 있을 때, 난 그 사악하고 교활한 것들을 모두 때려죽였어. 그것들이 모두 살아있었다면, 요툰헤임은 저 더럽고 흉악한 거인들로 가득해졌겠지. 그랬다면, 지금 이 미드가르드에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을 거라구!]


 토르는 거인 사냥꾼이자, 미드가르드에 사는 인간들의 수호자로서의 면모를 자랑했다. 이번에는 토르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한 자랑거리지 않아? 내가 이렇게 세상을 구할 때, 당신은 뭘 했는데?]


하르바르드가 뱃전으로 한쪽 다리를 올리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나? 난 전쟁을 일으켰지. 저 '발란드(Valland : 켈트와 게르만이 살던 곳으로 현재의 노르망디로 여겨지기도 함)'에서 군주들을 도발하고, 이간질시켰어. 그들은 결코 화해하지 않았지. 덕분에 오딘은 그 전쟁으로 많은 전사들을 얻었지. 근데 말이야.. 오딘은 모든 위대한 전사들과 족장들의 섬김을 받지만, 너는 노예의 애원 밖에는 받는 게 없다면서?]

[이간질로 전쟁을 일으키는 게 자랑이라고? 만일 당신이 우리 아버지와 같은 힘을 지닌다면, 신들과 온 세상 사람들을 불공평하게 만들고 말 꺼야.]


토르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하르바르드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한심하군. 넌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라. 내가 아는 토르는 힘만 쎄지, 용기는 없는 녀석이야. 아주 소심한 놈이지. 오죽했으면 거인이 무서워서 장갑 속에 숨어서 벌벌 떨었겠어? 뭐, 네 놈은 그런 토르가 아니겠지만. 네 놈은 '피얄라르(Fjalar : 숨기는 자)'가 들을까 봐 무서워서 재채기도 못할 겁쟁이거든.]


토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천둥신 토르가 아홉 세상에서 가장 겁쟁이라고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르바르드! 너 이 치사한 놈! 이 강이 가로막고 있다고 아주 못하는 소리가 없네! 내 팔이 강을 가로질렀다면 당신을 당장 쳐 죽였을꺼야?!]

[에? 내가 뭘했다고? 내가 네 놈을 때리기를 했어? 뭘 했어? 그런데 팔을 뻗어 날 때리겠다고? 이거 말로 안되니 주먹으로 해결하겠다고? 한심하군! 넌 주먹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나 봐? 그게 아니면 뭘 했는지, 또 자랑을 해보던가?]


 토르는 다시금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르바르드의 말이 이해되기도 했다.


[(아우! 저걸 진짜!! 하아.. 그래, 말로는 날 이길 수 있다는 거지? 오냐, 내 기필코 말로 널 눌러주마!)]


 토르는 화를 삭이며, 콧김을 내뿜었다.


[후우! 내가 뭘 했냐고? 난 동쪽에서 '스바랑(Svarang : 의미 불명)'의 아들들(요툰헤임의 거인들로 여겨짐)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지. 그들이 돌을 던져 나를 공격했지만, 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강을 지켰지. 녀석들은 결코 강을 건너지 못했고, 승리를 하지도 못했지. 결국 녀석들은 나에게 화친해 달라고 매달렸어. 그렇게 난 여러 생명을 구했지. 내가 생명을 구할 때, 대체 당신은 뭘 했다는 거야?]

[그래서? 그때 난 생명을 만들고 있었지. 그 동쪽에서 난 한 아가씨를 만났다네. 아주 아름다운 처녀였지. 난 아주 긴 시간 동안 그 미녀를 탐했어. 그 긴 시간 동안 이 금발의 아름다운 처녀는 나로 인해 매우 기뻐했고, 행복했지. 응. 아, 그립네.]


하르바르드는 태연하게 토르의 공격을 받아넘겼다. 토르는 기가 찼다.


[흥! 그녀가 그 일을 그리워 할런지 모르겠군. 당신 따위를 친절하게 대할 아가씨는 없을텐데?]

[으응~ 그렇지 않다구. 그녀는 아주 아름다웠어. 마치 백합 같았지. 네 놈도 같이 있었다면, 내가 도와달라는 핑계로 네 놈을 끼워줬을지도?]


- 말싸움을 하는 하르바르드, W.G.콜린우드 그림(1908. 출처 : https://sv.wikipedia.org/wiki/Harbarðr )


하르바르드가 또다시 은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토르는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쳇, 그래.. 그랬겠지. 내가 도와달라는 걸 마다할 사람은 아니라서.]

[글쎄다? 네 놈이 믿을만한 놈은 아니라서.]


하르바르드가 다시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하자, 토르가 다시 발끈하며 대꾸했다.


[난 봄에 신은 오래된 가죽 구두처럼 발꿈치에 상처나 내는 놈이 아니라고!(겉으로는 친근하게 굴면서 뒤통수나 치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

[그런가? 흠.. 근데 네 녀석의 자랑을 듣고 있자니, 네 녀석은 여자를 잘 모르나 봐? 여자를 다루지 못하는 건 사내라고 할 수 없지.]


하르바르드가 이번에는 여자이야기로 토르의 속을 긁었다. 토르가 다시 말했다.


[여자를 후리는 게 자랑질이야? 난 말이지, 저 멀리 '레소(Læsso/Læsø : 유틀란드 반도 북동쪽에 있는 섬)'에서 베르세르크처럼 구는 여자들을 곤봉으로 때려죽였지. 잘못된 행동을 하는 건 혼나야 하거든!]

[저런! 어떻게 그런 짓을?! 비열하군! 사내가 돼서 여자를 곤봉을 때려죽이다니!!]


하르바르드가 탄식했다. 그러자 토르가 검지손가락을 까딱이며 대답했다.


[그것들은 도저히 여자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었어. 암컷 늑대들이었지. 그들은 모든 이들을 유혹해 위해를 가하는 것들이었어. 내가 그 섬에 도착했을 때, 그것들은 내 아름다운 배를 부쉈다고! 내 시종인 티알피를 쫓아냈고, 감히 나에게까지 철로 만든 곤봉을 휘둘렀다고. 이건 정당방위야. 당신은 여자나 후리지 이런 일은 하지도 못했을껄?]


 하르바르드는 잠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토르를 바라보았다. 토르는 하르바르드가 더 이상 자랑할 꺼리가 떨어졌다고 생각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토르가 은근한 목소리로 하르바르드에게 물었다.


[하하! 자랑꺼리가 떨어진 겐가? 말해보시게, 당신이 대체 뭘 했는지?]


하르바르드가 머리를 긁적이는가 싶더니 가만히 토르를 노려보며 말했다. 두건 아래에서 하르바르드의 한쪽 눈이 마치 별처럼 빛났다.


[뭐, 별건 아니야. 난 전쟁 깃발을 높게 든 군대에 일원이라서. 여기서 창을 붉게 물들였지.]

[뭐라고! 지금 아스가르드에서 전쟁을 벌였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지금 감히 신들을 상대로 싸우겠다는 거야?!]


 하르바르드의 말을 이해한 토르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감히 아스가르드를, 신들을 향해 전쟁을 일으키겠다니! 그때 토르가 경악한 모습을 본 하르바르드가 갑자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 꼭 놀란 토끼 같군! 뭘 그렇게 놀라? 예전 이야기라고, 예전이야기. 이거 저렇게 간이 작아서 어디에 쓸꼬? 하하!]


하르바르드의 웃음소리에 토르는 더욱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하르바르드가 손을 앞으로 내저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이거 제대로 화가 났나 보군. 이번껀 내가 실수했네.]


하르바르드는 사과를 했고, 토르는 잠시 하르바르드를 노려보다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토르가 화를 삭이고 있는데, 하르바르드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내가 화해의 의미로 선물을 하나 줘야겠군. 자, 내가 반지를 줄 테니 받아.]

[반지?]


 토르가 되묻자, 하르바르드가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더니 양손으로 맞대어 반지 모양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쉽게 말해서.. 욕이다. 반지를 준다면서 손으로 여자의 성기 모양, 또는 성행위를 상징하는 표식을 만들어 보이며 토르에게 욕을 한 것) 토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발로 바닥을 쿵쿵 내리쳤다. 토르는 당장이라도 하르바르드를 짓이겨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토르와 하르바르드의 사이에 있는 강은 너무도 깊고 넓었다. 아무리 토르라고 해도 헤엄쳐 건너기는 쉽지 않았고, 설령 헤엄쳐 건넌다고 해도 그동안 하르바르드가 그 자리에서 멍청하게 기다리고 있을 리도 없다.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토르로서는 지금 당장 이 강을 건너 하르바르드를 혼내줄 방법이 없다. 토르는 분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애꿎은 땅만 발로 짓이길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하르바르드는 크게 웃었다. 하르바르드의 웃음소리에 강물이 흔들리더니 토르를 향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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