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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Aug 09. 2023

23. 토르와 뱃사공-다섯 : 설마, 당신은?!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토르, 하르바르드, 말싸움

#. 설마? 당신은?!


 어느덧 시간이 흘러, '솔(Sol : 태양)'의 방패가 하늘의 한가운데에 걸렸다. 그때까지도 토르는 분함을 참지 못해 발을 굴렀다. 하르바르드는 뱃전에 앉아 토르가 날뛰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야 토르는 분노를 삭일수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분노를 가라앉힌 토르가 하르바르드를 향해 이를 갈았다.


[하르바르드! 당신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짜증 나는 사람이야! 당신은 어디서 그렇게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짜증 나는 말을 배웠다는 말인가?!]

[하암~ 이거? 옛사람들에게 배웠지. 그들은 숲에 살고 있다구.]


 하르바르드가 하품을 하고는 대답했는데, 그 대답을 들은 토르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숲이라? 당신은 무덤에도 아주 좋은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군!]

[내가 표현력이 좀 좋지?! 하하!]


하르바르드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토르가 다시 이를 갈며 말했다.


[내가 이 강을 건너기만 하면 그 교활한 혓바닥은 당신의 악운이 될꺼야. 나의 망치가 닿는 순간, 당신은 그 어떤 늑대보다도 더 크게 울부짖게 될 테니!]

[흠.. 글쎄? 근데 말이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구. 네 놈이 여기서 이러는 동안 네 놈 집에서는 아주 곡소리가 나고 있는 중이거든.]


 하르바르드는 토르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토르를 놀려댔다. 화가 난 가운데에서도 토르는 집 이야기가 나오자 궁금해졌다.


[..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저런~ 못 알아들은 거야? 지금 네 놈 집에서는 시프가 자기 '정부(情夫 : 바람을 피우는 상대)'랑 놀아나고 있는 중이라고! 아주 그냥 집 천장이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는데 그 소리가 안 들리는 거야? 넌 안달이 나서 그 정부 놈을 찾으려고 하겠지만, 그건 쉽지 않을꺼야. 뭐. 그렇게 똥줄 타게 절절 메는 게 네 놈에게 딱 어울리지! 하하!!]


 하르바르드가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토르는 다시 놀림을 당하자 화를 참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분한 마음을 토해냈다. 잠시 소리를 지르며 화를 삭인 토르가 하르바르드를 향해 소리쳤다.


[아주 비열해! 당신은 아주 비열한 자야!!! 내가 화를 낼만한 말만 골라서 하는군! 그딴 거짓말에 내가 속아 넘어갈 것 같아?!]

[아님 말고. 근데 난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거든. 근데 여기서 이렇게 시간만 질질 끌어서 어쩌누? 네 놈이 여기서 이러기보다 다른 길을 찾았다면 지금은 집에 도착해서 그 연놈들을 아작내고 있을 텐데?]


 하르바르드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토르는 다시 발로 땅을 구르며 외쳤다.


[옘병! 하르바르드, 이 못된 영감탱이! 지금 나를 지체하게 만드는 건 당신이야!!]

[내가? 왜? 난 그냥 늙은 뱃사공이야. 어떻게 뱃사공이 아사 토르를 지체시키겠어? 난 여기서 내 일을 하는 거라고.]


 하르바르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토르는 한숨을 내쉰 뒤, 하르바르드를 향해 손짓을 하며 말했다.


[하아.. 내가 마지막으로 충고를 하지. 말싸움은 이만하고, 어서 배를 가지고 이리 오라고. 당신의 수염 한 올도 안건드릴테니. 나, 마그니의 아빠로서 맹세하겠네. 그러니 어서 배를 가지고 와.]

[싫은데? 내가 왜? 훠이~ 훠이~ 네 놈은 여기서는 못 건너. 하하!]


 하르바르드는 크게 웃었는데, 어찌나 웃어대는지 눈물까지 흘려가며 웃었다. 토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강건너에서 웃고 있는 하르바르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토르의 얼굴과 온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토르의 마음속에서 가라앉힌 화가 다시 꿈틀댔지만, 지금 토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혼자 분을 삭이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분을 참으며 하르바르드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토르가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토르는 선채로 한참 동안 하르바르드가 웃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났다. 하르바르드가 웃음을 멈추었을 때는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던 토르도 평상시의 온화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웃음을 멈춘 하르바르 드는 토르를 보고는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토르가 더 이상 화도 내지 않고,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르바르드는 웃느라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그때 토르가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됐고. 날 태워주지 않을꺼면, 이 강을 건너갈 길이나 알려주쇼.]


 하르바르드는 가만히 토르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흠.. 그렇게 정중한 목소리로 부탁하면, 나도 거절하기 어렵지. 조금 멀리 돌아가야 할게야. 이 길을 따라 숲을 지나고, 돌길을 지나가게. 그런 다음 '베르란드(Verland : 의미불명, 북유럽신화에 등장하는 지명)'에 도착할 때까지 왼쪽 길로 가. 그곳에서 '표르긴(Fjorgyn : 대지, 대지의 여신)'을 만날 수 있을꺼야.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아주 반가워할테지. 그녀가 오딘의 땅으로 가는 길을 알려줄꺼야.]


 하르바르드의 대답을 들은 토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토르는 몸을 돌려 강둑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둑에 오른 토르는 고개를 돌려 하르바르드에게 물었다.


- 아버지와 아들 (영화 '토르 : 다크월드' 중에서. 출처 : https://movie.daum.net/ )


[오늘 안에 갈 수 있을까요?]


 하르바르드가 두건을 살짝 들어 올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살펴보던 하르바르드가 토르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흠.. 뭐, 서두른다면 말이지. 평소 같으면 해가 떠있는 동안에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지. 그런데 이번엔 어렵겠군. 보라고. 지금 해가 많이 저물었어.]


 토르는 살짝 어깨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토르는 흘러내린 배낭을 다시 고쳐맸다. 그러더니 다시 하르바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비웃기만 하시니, 이제 말싸움은 그만할래요. 태워주기 싫다는데, 떼를 쓰는 것도 이젠 지쳤구요. 아, 혹시 다음에 만나게 되면, 그땐 보상을 해드리죠.]


 토르의 말을 들은 하르바르드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토르는 하르바르드가 알려준 대로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솔의 마차가 서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하르바르드가 토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잘 가~ 모든 사악한 권세들이 너를 맞이해줄꺼야~ 하하하!!]


 토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토르는 하르바르드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묵묵하게 길을 따라 걸었다. 하늘은 점점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동쪽에서는 '마니(Mani : 달)'가 형의 뒤를 따라 달리기 위해 자신의 마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참 길을 걸어가던 토르는 문득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더니 양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세게 문지르며 짜증을 냈다.


[아~! 진짜~! 대체 아버지는 왜 저러시는 거지? 설마? 고작 말 한 마리 때문에?! 아놔! 진짜~~~ 아부지!! ]


 토르의 짜증 섞인 외침 위로 하늘이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차에 속도를 높이던 마니가 갑작스러운 토르의 외침에 깜짝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토르는 그런 마니를 향해 미안하다는 듯 손을 저어 보였다. 잠시 후, 다시 마니의 마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토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점점 어두워지는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었다. 토르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 오늘은 엄마네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져야겠네. 집엔 내일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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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01

 이번 이야기의 원전은 '하르바르드의 시(Harbarðsljoð)'라고 알려진 '고(古) 에다'에 실려있는 이야기입니다. '북유럽신화이야기 OT-스칼드'편에서 언급했던 스칼드가 짓는 시의 형식 중에서 전형적인 '에딕(Eddic)'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주된 내용이 신화와 관련되어 있고, 대화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또한 신화를 기반으로 한 '케닝'도 많이 담겨 있습니다. 하르바르드와 토르는 서로에 대한 상징을 기반으로 말장난과 말싸움이 진행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은근히 야한 부분-당시 기준으로-도 있긴 한데.. 그건 스스로 찾아보시길.)


 그리고 중간중간 약간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기도 합니다. 토르가 샤치를 죽였다던가, 그의 눈을 별로 만들었다던가 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현재의 형태로 북유럽 신화가 정리되기 이전의 이야기가 담겨있거나, 이 시(원전은 시, 사가의 형태입니다.)를 지은 스칼드의 착각이나 오류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PS02

 하르바르드가 다섯 겨울 동안 함께 지냈다는 '푤바르(Fjolvar/Fiolvari : 군대 또는 매우 위험한)'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대체로 요툰헤임의 거인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오딘과 함께 '알그론(Algron/Al-Green : 의미 불명)'이라고 불리는 신비한 섬으로 가서 그곳을 침략하고, 빼앗고..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또는 강간과 같은 성범죄)을 뿌리고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푤바르의 이름은 스웨덴 예르브쇠(Jarvso)지역에 있는 오래된 돌비석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 돌비석에 따르면, 그는 '레돌브(Redulv : 늑대둥지)''하라우(Harlau : 의미불명)'의 아들이라고 전해집니다.


#PS03

 이번 이야기에도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조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01.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지역은 원전의 번역본에 따라 '아스가르드 동쪽에 있는 커다란 강' 또는 '아스가르드 동쪽에 있는 커다란 해협'으로 묘사됩니다. 저는 전자의 설정을 따랐습니다. (일설에는 이 지역이 현재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의 해협 중 하나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


-02.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토르의 복귀를 축하는 연회가 끝나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로 시간적인 설정을 했습니다. 원전에서는 그런 시간의 흐름이나 설정과 상관없는 별도의 이야기입니다.


-03. 토르가 언급한 '메일리(Meili)'는 아사 신족의 일원으로 신이며, 오딘의 아들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 그가 등장하는 북유럽 신화 이야기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04. 원전에서는 토르가 하르바르드의 정체를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토르가 하르바르드에게 말싸움에서 지고, 순순히 물러나면서 마무리됩니다. 저는 토르가 하르바르드의 정체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전을 보다 보면.. 토르와 하르바르드의 말싸움이 이어지면서 정말 주먹다짐 직전까지 흘러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 토르의 대응이 소극적으로 변합니다. 저는 이것이 토르가 하르바르드의 정체. 즉, 그가 아버지인 '오딘'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르바르드의 외모가 너무 대놓고 '나, 오딘이다'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온통 회색으로 도배된 옷차림에, 늙은 노인의 모습.. 거기다 이름까지 '잿빛수염'입니다. 여기에 하르바르드의 행동과 말투, 자랑꺼리로 등장한 에피소드 등이 토르에게 매우 익숙한 것들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저는 하르바르드가 아버지라는 것을 안 토르가 순순히 물러선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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