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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Dec 23. 2022

04. 리그의 노래-둘 : 나그네는 계속 걸었다.

북유럽신화, 리그, 신분, 계급, 카를


#. 나그네는 계속 걸었다.


오늘도 태양의 마차는 다그르의 망토를 이끌며 늑대를 피해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 뒤로 달의 마차가 나드의 기운을 머금고 달려왔다. 그 아래로 미드가르드의 대지에서 작은 새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아이와 에다, 두 노인과 헤어진 리그는 성큼성큼 미드가르드의 안쪽으로 계속 걸었다.


날이 저물어 갈 때 즈음, 리그는 한 농장에 도착했다. 집은 튼튼하게 지어졌고, 석양에 물든 굴뚝 위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단단한 울타리가 집과 창고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참 정겹게 보이는 농장이었다. 이 농장에는 '아피(Afi : 할아버지)'와 '암마(Amma : 할머니)'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리그는 반쯤 열린 농장의 문 앞으로 다가가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멋진 턱수염을 기른 중년 남자가 나와 리그를 맞이하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신가?"


리그는 아피를 쳐다보았다. 수염만큼이나 멋진 은발이 섞인 머리는 잘 빗어넘겼고, 잘 만든 가죽자켓을 입고 있었다. 리그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리그라고 하는 나그네입니다. 날이 저물고 추워서 그런데 잠시 신세를 질 수 있을까요?"

"들어오시게. 나그네는 거절하는 법이 아니니."


아피가 보기에 리그는 매우 예의바른 청년으로 보였다. 나그네를 대접해야 함을 알고 있던 아피는 리그를 집안으로 들였다. 집안은 매우 아늑했다. 돌로 만들어진 벽난로에는 냄비가 끓고 있었고, 그 옆으로 의자가 놓여있었다. 의자 주위로 나무조각과 작은 칼, 그리고 하얀 톱밥이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조금 전까지 아피가 나무를 깎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아내인 암마가 의자에 앉아, 실을 잣고 있었다. 그녀는 느슨한 셔츠를 입고 머리엔 두건을 쓰고 있었다. 두건 사이로 보이는 머리칼이 희끗해 보이지 않았다면, 젊은 여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녀는 직접 짠 듯한 숄을 어깨에 둘렀는데, 반짝이는 단추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암마가 리그를 맞으며 말했다.


"어서오세요. 리그."

"제가 폐를 끼친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 아피와 암마, 그리고 리그, 로렌츠 프로리히(1895, 출처 : http://www.germanicmythology.com/works/FROLICHART4.html)


리그가 암마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피는 의자 하나를 가져와 모닥불 앞에 놓았다.


"여기 앉으시오. 봄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날씨가 차니."

"감사합니다."


리그가 자리를 잡자, 아피와 암마는 리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아피가 말했다.


"이런, 내가 손님을 두고 수다만 떨었군. 여보, 그만 저녁을 차립시다."


그렇지 않아도 모닥불에 올려진 냄비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암마가 주방으로 가며, 소매를 걷어올렸다. 하얀 팔을 들어 찬장에서 호밀빵과 버터를 꺼내 식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냄비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던 송아지 고기 스프가 식탁에 올랐고, 아피는 맥주통에서 향이 좋은 맥주를 꺼내왔다. 리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하하. 우리 아내가 만든 송아지 고기 스프는 정말 일품이라오! 그리고 이건 내가 담근 일품 맥주지!"


아피가 맥주를 따르며 호쾌하게 웃었다. 리그도 아피를 따라 환하게 웃었다. 아피의 자랑만큼 송아지 고기 스프도, 맥주도 뭐 하나 빠지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세사람은 화기애애하게 웃고 떠들며, 맛있고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세사람의 담소는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 시간이 지나갈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다 암마가 졸린 기색을 보이자 아피가 말했다.


"리그, 당신은 정말 재미있는 친구요. 이러다간 정말 날새겠소. 이제 그만 잡시다. 못한 이야기는 내일 또 해도 되니."


그 말을 들은 리그가 물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도 두 분과 함께 자도 될까요?"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아피는 호쾌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뭐, 그럽시다. 우리 침대는 꽤 넓으니까. 하하!"


맥주를 많이 마신 탓인지, 모닥불에 비친 암마의 볼이 빨갛게 보였다. 세 사람은 같이 침대에 누웠다. 리그는 아피와 암마를 양 옆에 두고 한 가운데 누웠는데, 세 사람은 누워서도 한참을 담소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리그는 그렇게 사흘간 아피와 암마 부부의 농장에 머물렀다. 사흘이 지나자, 리그는 다시 길을 나섰다. 아피와 암마 부부가 농장 앞까지 나와 리그를 배웅했다.


"그동안 정말 신세 많이졌습니다."


리그가 작별인사를 건네자, 아피가 리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언제고 이 근처를 지날 때면 꼭 다시 들러주시게. 자네가 보고겪은 세상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네. 내 맥주통을 꽉 채워놓고 기다림세."

"물론이죠. 아피님의 맥주는 정말 최고의 맥주였습니다. 암마님의 송아지 고기 스프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리그를 보는 암마의 눈가가 붉어졌다. 리그는 두 사람을 향해 둘도 없이 환한 미소를 보낸 뒤 다시 길을 나섰다. 아피와 암마는 언덕 넘어로 리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농장으로 들어갔다.




 리그가 떠난 지, 몇 달 후. 아피와 암마에게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다. 암마가 아기를 가진 것이었다. 아피와 암마는 매우 기뻤다. 그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사실상 포기상태였는데, 드디어 아이가 생긴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암마는 잘 생긴 사내아이를 낳았다. 얼굴은 붉은 홍조를 띄었고, 눈에는 총명함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암마는 물을 데워 아이를 씻긴 다음, 부드러운 포대기로 아기를 감쌌다. 아피는 아들에게 '카를(Karl : 사람, 또는 군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카를은 아피와 암마의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총명한 카를은 아피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소를 키우고, 좋은 쟁기를 만들어 밭을 가는 법을 배웠다. 좋은 목재를 고르고, 집을 짓는 법도 배웠다. 농장을 만들어 이끌어나가는 법도 배웠다. 카를은 인근에서 가장 주목받는 청년이 되었다. 카를이 장성하자, 아피와 암마는 이웃 중에서 가장 좋은 처녀를 골라 짝이 되게 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스뇌르(Snør : 끈, 이어짐)' 였다. 결혼식 날이 되자, 그녀는 카를이 새로 만든 농장으로 시집을 왔다. 그녀는 염소가죽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머리엔 베일을 썼다. 사뿐사뿐 걷을 때마다 그녀의 하얀 가슴 위에서 열쇠꾸러미로 만든 목걸이가 짤랑거렸다. 카를과 스뇌르는 서로 힘을 모아 농장을 더욱 훌륭하게 가꾸었고, 많은 아이들을 낳았다.


아들로는 '할(Hal)'과 '드렝(Dreng)', '헬드(Held)'와 '쎄근(Thegn)', '스미스(Smith)'와 '브레이드르(Breidr)', '본디(bondi)'와 '분딘스케그(Bundinskegg)', '부이(Bui)'와 '보디(Boddi)', '브라트스케그(Brattskegg)'와 '세그(Segg)'를 낳았다. 카를이 아피로 부터 배웠듯, 아들들은 카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는 법은 물론 재목을 고르고, 집을 짓는 법과 농장을 만들고 운영하는 법을 배웠다.


딸로는 '스노트(Snot)'와 '브루드(Brud)', '스반니(Svann)'와 '스바르리(Svarri)', '스프라키(Sprakki)'와 '플리오드(Fliod)', '스프룬드(Sprund)'와 '비프(Vif)', '페이마(Feima)'와 '리스틸(Ristil)'을 낳았다. 딸들은 암마와 스뵈느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아마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만드는 일은 물론, 옷을 만들고, 요리를 하는 등 집안일과 함께 여자로서의 모든 일을 배웠다.


그리고 카를과 스뇌르로 부터 [자유민(혹은 농민)] 신분(계급)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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