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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Dec 24. 2022

04. 리그의 노래-셋 : 미드가르드의 깊은 곳으로

북유럽신화, 리그, 신분, 계급, 야를


#. 나그네는 미드가르드의 깊은 곳으로.


태양의 마차는 다그르의 망토를 이끌며 늑대를 피해 하늘을 가로질러갔다. 그 뒤로 달의 마차가 나드의 기운을 머금으며 달려왔다. 아피와 암마 부부와 헤어진 리그는 더욱 더 미드가르드의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어느덧 미드가르드에도 봄기운이 완연했다. 들판은 초록으로 뒤덮이기 시작했고, 하나, 둘 봄꽃도 피어났다. 챙이 넓은 모자는 따가운 봄 햇살을 가려주었고, 리그는 향긋한 봄내음을 맡으며 힘차게 걸었다.


리그가 커다란 저택에 도착한 것은 아직 해가 남아있는 오후였다. 저택은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컸다. 굳게 닫힌 저택의 문은 남쪽을 향해 있었고, 양 옆으로 돌로 만든 기둥이 늘어섰다. 리그는 주저함이 없이 그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문에는 커다란 나무 고리가 걸려있었는데, 리그는 그 고리로 문을 두들긴 뒤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은 안쪽도 매우 크고 넓었다. 양쪽 벽을 따라 켜진 횃불들이 긴 복도를 비추었다. 긴 복도의 안쪽으로 넓은 홀이 보였다. 문에서 부터 복도를 따라 홀에 이르기까지, 바닥은 골풀로 짠 깔개가 덮였다. 리그는 복도를 지나 넓은 홀로 들어갔다. 홀 가장 안쪽 벽 앞으로 몇 개인가 계단 위로 넓은 단이 위치했다.


단 위에 잘 조각된 두 개의 의자에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앉아 서로에게 애정을 속삭이고 있었다. 두 눈은 서로에게 고정되었고, 리그가 홀의 한가운데까지 들어왔는데도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들의 얼굴은 하얗고 고운 빛이었고, 두 사람 모두 좋은 옷감과 비단으로 된 옷을 입었다. 남자는 한 손에 활을 들고 있었는데, 시위는 걸려있지 않았다. 활을 손질하다 말고, 곁에 앉은 여자에게 빠져있는 것 같았다. 남자는 여자의 눈을 보며 한참을 소근거리다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더없이 사랑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던 리그가 모자를 벗고 낮게 헛기침을 했다. 그제서야 이 젊은 남녀는 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놓고, 자세를 고쳐앉았다. 여자도 의자에 등을 기대앉았지만, 방해를 받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들어 리그를 내려보았다. 남자가 들고있던 활을 무릎에 얹은 뒤 말했다.


"말하라. 그대는 누구인가."

"아름다운 두 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저의 이름은 리그입니다. 세상을 여행하며,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알고 있는 자 입니다. 두 분의 저택에 잠시 머물며,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기를 소망합니다."


리그가 자신을 소개하며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리그를 내려다 보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나, '파디르(Fathir : 아버지)'는 그대 리그를 환영한다. 이곳은 나의 저택이며, 그대는 이곳에서 따뜻한 휴식과 굳건한 안전을 얻을 것이다."

"여행자 리그가 저택의 주인, 파두르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리그가 남자를 향해 다시 한번 인사했다. 파두르가 다시 말했다.


"여긴 나의 아름다운 아내, '모디르(Mothir : 어머니)'라네. 그녀 역시 자네를 환영하네."

"여행자 리그가 아름다운 안주인, 모디르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리그는 모디르를 향해 다시 한번 인사했고, 모디르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파디르가 의자를 두드려 하인들을 불렀다.


"손님이 왔으니, 당연히 대접을 해야겠지. 마침 식사시간이니 리그도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겠다. 준비하거라."


잠시후, 하인이 다가와 식사준비가 되었음을 알렸다. 파디르는 모디르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고, 리그는 하인의 안내에 따라 그 뒤를 따랐다. 파디르와 모디르가 주인자리에 나란히 앉고, 리그는 그 옆 손님자리에 앉았다. 식탁은 매우 풍성했다. 은그릇에 돼지고기와 구운 새고기, 양배추를 비롯한 다양한 야채와 과일열매가 담겨 식탁을 가득 채웠다. 세 사람의 식사라고 하기엔 너무도 많았다. 파디르가 리그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자, 한잔 받으시오. 내 집에 온 손님은 내가 술을 따르는게 내 집의 규칙이라오. 음식은 얼마든지 있으니 모자르면 얼마든 말하시오."


리그는 포도주를 받아 향을 맡은 뒤, 단숨에 들이켰다. 파디르가 그 모습을 보며 크게 웃었다.


"하하, 참 호탕한 사람이군! 어디 세상 이야기 좀 해보시오.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들어보고 싶소."


- 연주하는 리그, 칼 라슨 그림(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R%C3%ADgs%C3%BEula)


모디르도 은잔을 들어 가볍게 입술을 적셨다. 식사는 내내 즐겁고 화기애애 했다. 리그는 자신이 여행 중에 보고 들은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주었다. 파디르와 모디르는 어느새 리그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포도주가 몇 병이 비워지고, 달이 밤하늘을 밝힌지도 한참이 되었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모디르가 파디르의 손을 잡았다. 거나하게 술이 오른 파디르가 말했다.


"리그, 당신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군! 하지만 이제는 조금 쉬어야겠어. 내 아내도 슬슬 잠이 오는 것 같군. 남은 이야기는 내일 다시 듣기로 하지."


리그가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물었다.


"괜찮다면 저도 두 분과 함께 잠자리에 들어도 될까요?"


파디르는 리그를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아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모디르가 파디르의 시선에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발그레했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음.. 내 아내도 괜찮은 것 같군. 그러세. 내 침대는 아주 크다네. 하하."


세 사람은 함께 침실로 향했다. 커다란 침대는 화려한 무늬의 침대보가 덮여 있었고, 부드러운 이불과 깃털로 가득한 베개가 따뜻하고 포근해보였다. 리그는 파디르와 모디르를 양쪽에 두고, 침대의 한가운데 누웠다. 세 사람은 함께 밤을 보냈고, 리그는 그렇게 사흘을 머물렀다. 사흘이 지나고, 리그는 파디르와 모디르에게 작별을 고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파디르와 모디르는 홀의 의자에 앉아있었고, 리그는 그 앞에 섰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파디르와 모디르의 표정에는 애정과 아쉬움이 담겨있었다. 파디르가 말했다.


"리그, 지난 사흘간 우리 부부를 즐겁게 해주어 고맙소. 내 저택에서 머문 시간이 부디 따뜻하고, 즐거웠기를 바라오."

"저택의 주인인 파디르여, 당신의 호의 속에서 그 어느 곳보다도 편안하게 보냈습니다. 저택의 안주인인 모디르의 배려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두 분께 신들의 사랑과 호의가 함께 하길 바랍니다."


리그는 그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성큼성큼 걸어 저택을 떠났다. 저택을 나선 리그는 목적지가 정해진 듯, 머뭇거림 없이 걸었다. 그의 귓가에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었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리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리그가 떠난 지, 몇 달 후. 저택은 기대와 환희로 가득했다. 모디르가 아이를 가진 것이다. 파디르와 모디르는 매우 기뻐했고, 저택의 모든 이들이 새로운 후계자의 탄생을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모디르는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황금처럼 빛나는 머리칼과 눈처럼 하얀 피부를 지니고 있었는데, 눈빛은 마치 뱀처럼 매서웠다. 모디르는 따뜻한 욕조에서 아이를 씻기고, 비단으로 아이를 감쌌다. 파디르는 아이에게 '야를(Jarl : 족장, 귀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인근에서 젖이 잘나오는 여자를 찾아 유모로 붙여주었다. 야를은 어려서부터 창과 방패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고, 파디르를 따라 활을 손질하고, 쏘는 법을 배웠다. 말을 타고, 사냥개를 풀어 사냥을 하는 법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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