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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Sep 01. 2023

24. 거인 왕의 초대-다섯 : 그리드 부인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토르, 로키, 그리드, 비다르

#. 그리드 부인의 저택


 아스가르드를 떠난 토르와 로키는 게이르뢰드의 저택으로 향했다. 로키가 나름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그날 안으로 게이르뢰드의 저택에 도착하기는 무리였다. 로키가 그랬던 것처럼 하늘을 날아갈 수도 없었고, 설상가상 토르의 마차도 두고 왔기 때문이다. 또, 늦게 출발한 탓도 있어서 요툰헤임에 들어서자, 어느덧 해가 서산에 걸리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토르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벌써 해가 지는군. 어딘가에서 하룻밤 쉬어가야 하려나..]

[그러네. 어디 쉴만한 곳을 찾아야겠어.]


 로키도 토르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로키의 마음은 급했지만 로키의 몸은 간절하게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토르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땅히 여행준비를 하고 나온 길이 아니라서 길에서 노숙을 하기는 힘들었다. 그렇다면 어딘가 머물 곳이 필요했다.


[아, 이 근처라면.. 딱 좋은 곳이 한 군데 있었지! 요툰헤임에서도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이. 가자, 로키!]


마침내 토르가 빙긋 웃음을 지었다.


[에? 어디로? 거기가 어딘데?]

[우리 작은 어머니네.]


 토르가 성큼성큼 걸으면서 대답했다. 로키는 피로로 찌든 몸을 이끌고 종종걸음으로 토르의 뒤를 따랐다. 토르의 발걸음은 길에서 벗어나 한동안 숲길을 헤쳐나갔다. 한참을 걸어 어둑어둑해질 즈음. 토르는 작은 계곡에 도착했다. 그곳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포근하고 안전해 보이는 곳이었다. 주변에는 나무와 꽃이 가득했고, 그 안쪽에 작은 저택이 보였다. 일반적인 거인들의 집과는 그 모습도 분위기도 많이 달라 보였다. 로키는 늘 요툰헤임은 자신의 손바닥 보듯이 훤하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은 로키도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토르가 로키를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어때? 꽤 분위기가 좋지? 여기라면 안전하지.]

[여기가 누구네 집인데?]


 로키가 묻자 토르가 다시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우리 작은 어머니의 집라니까?  '그리드(Griðr : 편안함)' 부인의 저택이지.]

[아!]


 이름을 듣고 나서야 로키는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쳤다. 그리드는 요툰헤임의 거인이었지만, 그녀는 아사 신들에게 아주 친절한 거인이었다. 그녀는 오딘의 '정부(情婦)'들 중 하나였고, 오딘의 아들인 '비다르(Viðarr : 넓히는 자)'의 어머니였다. 토르는 저택의 앞으로 다가가 가만히 문을 두드렸다.


- Ai로 그린 그리드 부인(.. 이긴한데.. 원하는대로 나오진 않았네요. - -;)


[계십니까? 작은 어머니, 저 토르입니다.]


 안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중년의 정숙하고 아름다운 그리드 부인이 밝은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그녀는 토르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었다.


[어머? 토르?! 이게 얼마만인가요? 어서 와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작은 어머니.]


 토르도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리드 부인에게 인사를 했다.


[지난번에 다쳤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괜찮아진 건가요?]

[네, 덕분에 무사합니다. 실은.. 이 근처를 지나던 중이었는데.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서요. 괜찮으시다면, 저와 이 친구를 하룻밤 재워주실 수 있을까요?]


 토르가 예의를 갖춰 그리드 부인에게 부탁했다. 그리드 부인은 그제서야 토르의 뒤에 서있는 로키를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눈썹을 살짝 찡그리긴 했지만, 그리드 부인은 이내 웃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물론이죠. 토르, 당신은 내 아들과도 같답니다. 언제든 환영이죠. 그리고 로키도 어서 와요. 많이 피곤해 보이네요.]


 그리드 부인은 토르와 로키를 기꺼이 집안으로 들어오게 해 주었다. 그녀는 이내 두 신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손수 잠자리까지 보아주었다. 긴장이 조금 풀린 탓인지, 로키는 쌓여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로키는 먼저 침실로 들어가더니 그대로 뻗어버렸다. 토르로서는 아주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때까지도 토르는 로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로키가 잠자리에 들고, 토르는 그리드 부인과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가벼운 차림으로 요툰헤임에 오다니.. 당신답지 않군요. 지난번 흐룽그니르가 죽은 다음부터 거인들이 얌전해 진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거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예요. 기가 죽은 거인들만큼이나 당신에 대한 분노를 키우는 거인들도 많답니다.]

[그런가요? 로키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더군요. 로키가 말하길.. 자신을 대접하던 거인이 저에게도 잘 보이고 싶어 한다고 해서 그 거인의 집으로 초대를 받아 가던 길이었습니다. ]


 토르가 그리드 부인의 말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토르는 로키가 자신에게 한 이야기를 모두 그리드 부인에게 털어놓았다. 토르의 말을 듣던 그리드 부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토르에게 물었다.


[그 거인이 누구라고 하던가요?]

[게이르뢰드라는 이름의 거인이라고 하더군요.]


 게이르뢰드라는 이름을 들은 그리드 부인이 탄식을 하며 말했다.


[아! 로키의 거짓말에 속은 것 같군요.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게이르뢰드는 그 어떤 거인보다도 신들을 증오합니다. 이 요툰헤임에서도 신들에게 가장 적대적인 거인들 중 하나가 바로 게이르뢰드랍니다. 그는 거대한 땅과 사나운 거인들을 거느린 거인의 왕들 중 한 명이기도 하죠. 요 근래에 들리는 소문에는 신들에게 적대적인 거인들이 몰래 회합을 가졌는데, 거기에 참석한 거인들 중에 게이르뢰드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답니다.]


 그리드 부인의 말에 토르의 눈이 커졌다. 그리드 부인은 결코 자신에게 허튼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고, 그녀의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놀란 토르를 보며 그리드 부인이 말을 이었다.


[토르, 조심해요! 이건 분명 게이르뢰드의 함정입니다. 그는 결코 아사 신들에게, 특히 당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초대를 받고 응하기로 한 이상 이대로 발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않는다면 저 스스로 저의 이름을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 비록 무기가 없더라도 전 함정이 무서워 도망가는 그런 겁쟁이는 될 수 없으니까요.]


토르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하자, 그리드 부인이 다시 한번 토르를 말렸다.


[괜한 고집을 피울 때가 아니예요. 토르, 내 말을 들어요. 게이르뢰드의 집으로 가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는 아주 간교하고 위험한 자입니다. 특히 그의 두 딸은 게이르뢰드만큼이나 간사하고, 위험하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전 가겠습니다. 절 초대한 이유를 알았으니 더욱 가야죠. 이 천둥신을 속인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줄 겁니다.]


토르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본 그리드 부인은 잠시 한 숨을 내 쉬더니 다시 토르에게 말했다.


[하아.. 알겠어요.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봐요.]


그리드 부인은 잠시 거실을 나갔다. 토르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토르의 머리와 마음속은 아주 복잡해졌다. 로키 때문이었다. 로키가 게이르뢰드와 짜고 자신을 속인 것인가? 아니면 로키도 게이르뢰드에게 속은 것인가? 후자라면 다행이지만, 만일 전자라면? 그렇다면 로키는 친구인 자신을 적에게 팔아먹은 것이 된다. 가장 절친한 친구의 배신이 사실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토르는 지금 당장이라도 로키를 깨워 따져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로키의 입에서 바른말이 나올 것 같지 않았고, 로키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건 의심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드 부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토르는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토르는 로키에게 아무 말을 듣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로키와의 관계를 그나마 덜 훼손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토르는 가만히 탁자 위의 술잔을 들었다. 이미 식어 미근해진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갔지만, 다행히도 이 한 모금이 토르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잠시 후, 그리드 부인이 무언가를 가지고 거실로 돌아왔다. 그것은 여성용 허리띠와 쇠로 만든 장갑, 그리고 단단해 보이는 지팡이였다. 그리드 부인이 토르에게 말했다.


[토르, 이걸 빌려주겠어요. 내가 여행을 할 때 쓰던 것들이랍니다. 생긴 것은 약해 보여도 이것은 모두가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답니다. 당신의 허리띠보다는 못할지 몰라도 이 허리띠 역시 힘을 늘려주는 마법의 허리띠랍니다. 이 장갑도 난쟁이들이 만든 물건이죠. 충분히 당신의 장갑을 대신해 줄 거예요. 그리고 이 지팡이도 마법의 지팡이랍니다. 이렇게 보여도 아주 튼튼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러진 적이 없지요. 이것들을 가져가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드 부인이 내어 놓은 마법의 물건들을 보며 토르는 잠깐 머뭇거렸다. 왠지 약속을 어기는 것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너무 답답하고 꽉 막힌 것 같아 보이지만, 이런 점이야 말로 가장 토르다운 모습이었다. 그것이 어떤 것이건 간에 한 번 약속한 이상 반드시 지키는 것은 토르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게 한 원동력이자 그의 삶의 기준이었다. 그런 토르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그리드 부인이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토르, 이건 묠니르도, 메긴교르드도 아니에요. 그저 여행물품이지요. 그러니 약속을 어기는 것은 아니랍니다.]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물건들을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은 어머니.]


 토르는 그리드 부인이 건넨 여행물품을 가지고 침실로 돌아갔다. 그러나 토르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토르의 마음은 어수선했다. 아무래도 토르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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