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드 단테 Sep 04. 2023

24. 거인 왕의 초대-여섯 : 붉은 피의 강

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 이야기, 토르, 로키, 걀프

#. 붉은 피의 강을 건너는 토르


 토르는 로키를 앞세우고 다시 게이르뢰드의 저택으로 향했다. 로키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렸지만, 지난밤 토르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 계속 고개를 들었다. 그럼에도 토르는 꾹꾹 마음속의 의문을 눌러 담았다. 어느 쪽이건 로키의 대답은 오히려 의문을 키울 것이고, 그동안 지내온 로키와의 관계는 엉망이 될 것이다. 로키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토르에게 로키는 여전히 친구였다. 아직까지는.


 한참을 걸어 로키와 토르는 물이 세차게 흐르는 강에 도착했다. 게이르뢰드의 저택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강을 반드시 건너야 했다. 로키는 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찾았지만, 어디를 보아도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건널 수 있을만한 곳을 찾아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릴 것이다.


[아, 여길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네. 어쩌지?]


로키가 난감한 듯 토르를 보았다. 토르가 강물을 살펴보았다. 물이 빠르게 흐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깊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건너가 보자. 이 정도면 건널만할 것 같으니까.]


토르는 다시 한번 그리드 부인에게서 받은 철로 만든 장갑을 당기고, 역시 그리드 부인에게서 받은 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토르는 강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로키는 잠시 주저하다가 그런 토르를 따라갔다.

토르는 강바닥을 짚으면서 한 걸음씩 차분하게 걸어 나갔다. 토르의 예상대로 강물은 깊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강의 가장 깊은 곳도 토르의 허리께를 넘지 않을 것이다. 로키가 갑자기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니까~ 아무리 크고 거센 강물이라고 해도, 우리 토르에게는 한낱 개울일 뿐이지요~!]


 토르는 아무런 대답 없이 여전히 차분하게 걸었다. 토르는 그리드 부인의 경고를 결코 잊지 않았다. 그렇게 강의 한가운데를 향해 걸어가던 토르의 발걸음이 멈칫거렸다. 토르가 강물을 보니 강의 물빛이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맑았던 강물은 어느새 붉게 변했고, 마치 피냄새 같은 이상한 냄새까지 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건?!]


 로키도 강물의 변화를 알아채고는 당황해서 소리쳤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는 찰나, 강물은 더욱 붉어져 금세 핏빛으로 물들었고, 아주 순식간에 무서울 정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토르의 허리께를 넘지 않을 것 같았던 강물은 이제 토르의 키를 넘길 만큼 불어났고, 세찬 급류가 되어 토르와 로키를 휘감았다. 놀란 로키는 양손으로 토르의 허리띠를 꽉 붙잡고는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토르도 황급히 지팡이를 들어 강바닥을 찍었지만 어찌나 물살이 거센지 버텨내기가 여간 힘이 든 게 아니었다. 거센 물살 속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던 토르는 강 상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토르는 강물의 색이 변하고 물이 불어난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의 상류에 거대한 여자 거인이 쭈그리고 앉아있었는데,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붉은 핏물이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토르와 로키를 집어삼킬 듯 휘감은 강물은 그녀의 '월경혈(月經血, 여성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마법에 걸렸을 때 나오는 혈액)'이었다. 토르는 여자 거인을 향해 소리쳤다.


- 피의 강을 건너는 토르와 로키, 요하네스 게흐르트 그림(1885. 출처 : https://throwbackthorsday.wordpress.com )


[외간 남자에게 다리를 벌리고도 부끄럽지도 않은가!!]


 토르의 외침에도 여자 거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천둥신의 외침도 이 여자 거인은 오히려 더 많은 핏물을 쏟아냈다. 핏빛으로 변한 강물은 더욱 거세게 휘몰아쳤고, 로키까지 등에 단 토르는 거센 강물에 휘청거렸다. 강물이 거세지자 로키는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토르에게 찰싹 달라붙어 소리쳤다.


[빌어먹을! 하다 하다 이젠 계집 가랑이 때문에 죽게 생겼네! 그만하라고! 나까지 죽일 셈이야!!!]


 로키의 외침을 듣기라도 한 건지, 여자 거인은 토르와 로키의 모습을 보며 깔깔대며 웃었다. 그녀의 정체는 게이르뢰드의 맏딸인 '걀프(Gjalp : 소리 지르는 것, 짖어대는 것)'였다. 걀프는 허우적대는 토르와 로키를 보며 깔깔대며 소리쳤다.


[아하하~ 천둥신이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라지~! 아하하~! 사기꾼은 입만 살았네? 그래가지고 어디 남자구실이나 제대로 하겠어~?!]


 그러나 토르는 걀프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신이었다. 걀프의 비아냥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토르는 왼손으로 지팡이를 잡아 강바닥에 단단히 꽂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강바닥을 더듬기 시작했다. 강바닥에서 무언가를 붙잡은 토르가 걀프를 향해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자고로 물줄기라는 건, 그 근원을 막으면 되는 거지! 웃쌰!!]


 토르가 오른손을 강물 위로 꺼내자 그의 손에는 아주 크고 단단한 바위가 들려있었다. 토르는 토르는 걀프의 다리 사이를 향해 큰소리 기합과 함께 이 거대한 바위덩이를 날려 보냈다. 깔깔대던 걀프도 커다란 바위덩이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황급히 움직일 수 있는 자세도, 상황도 아니었기에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었다. 토르가 던진 바위는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핏물을 쏟아내는 걀프의 음부를 그대로 강타했다. 걀프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어떠냐?! 토르의 단단한 바위덩이 맛이!!]


 걀프가 쓰러지는 모습을 본 로키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이것으로 무사히 강을 건너게 된 것이 아니었다. 걀프가 뒤로 쓰러지면서 순간적으로 엄청난 양의 핏물이 쏟아져 나왔고 이는 곧 토르와 로키를 덮쳤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토르를 지탱해 주던 지팡이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강바닥에서 쑥 뽑혀 버렸다. 토르와 로키는 그대로 붉은 강의 급류를 따라 맹렬한 속도로 떠내려 가기 시작했다. 토르는 정신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에게 매달린 로키를 챙겼다.


[로키! 꽉 잡아! 물귀신이 되기 싫으면!]


 로키는 양손으로 토르의 목을 붙잡고 안간힘을 다해 매달렸다. 떠내려 가는 동안에도 토르는 지팡이를 연실 아래로 내리쳤지만, 지팡이는 강바닥에 닿지 않았다. 토르와 로키의 모습이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위대한 천둥신이 고작 여자 거인의 월경혈에 사라지는 것일까..  순간 붉은 강물 위로 토르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토르는 정신없이 손을 휘둘러 잡을 것을 찾았다. 그때 토르의 손에 무언가 잡혔다. 토르는 혼신을 다해 그것을 붙잡고 물 위로 올라갔다. 토르가 붙잡은 것을 강가에 자라난 거대한 '마가목(장미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의 줄기였다. 토르는 이 마가목 덕분에 무사히 피의 강물을 빠져나왔다. 이후 마가목은 토르를 구한 나무가 되어 그의 성목(聖木)이 되었다.


 간신히 강가로 올라온 토르는 로키를 내려놓고는 그대로 드러누워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토르와 로키 모두 무사했지만, 긴 시간 피의 강을 헤맨 두 신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로키는 가만히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약속을 지키고 있음에도, 죽이려고 하다니.. 이제 로키의 불만과 분노는 아스가르드의 신들과 토르에게서 게이르뢰드와 그의 두 딸들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토르가 몸을 일으키고는 앙연하게 웃었다. 천둥신의 분노는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가자, 로키. 그 게이르뢰드인지, 뭣 같은 뢰드인지.. 그놈의 집으로 가자고. 당장!!]

[응! 가야지!]


로키도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이를 갈았다.



#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이야기, #북유럽, #오딘, #토르, #단테, #norsemyth, #dante, #로키, #걀프, #그리드, #피의강, #월경, #월경혈, #소변

매거진의 이전글 24. 거인 왕의 초대-다섯 : 그리드 부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