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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Sep 05. 2023

24. 거인 왕의 초대-일곱 : 위험은 아직

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이야기, 토르, 로키, 걀프, 그레이프

#. 위험은 아직


 토르와 로키는 다시 힘을 내어 게이르뢰드의 저택을 향했다. 토르와 로키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게이르뢰드의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의 대문 앞에 선 토르가 온 요툰헤임이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게이르뢰드! 나다! 천둥신이 여기에 왔다!!]


 그런데 웬일인지 저택의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토르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고, 로키는 당황했다. 로키가 황급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어이~ 게이르뢰드! 내가 토르를 데려왔다고~ 어서 문을 열어~!]


 역시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는데, 한참 후에야 누군가 대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게이르뢰드의 하인이었는데, 예전 로키를 붙잡아 땅에 메다꽂은 바로 그 하인이었다. 게이르뢰드의 하인은 토르와 로키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얼굴을 한껏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핏물의 강을 헤쳐 나온 두 신의 행색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뭐냐?]

[게이르뢰드를 만나러 왔다.]


 토르가 여전히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에? 그런 꼴로 누굴 만난다고? 여긴 니들 같은 거렁뱅이들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썩! 돌아가!]


 게이르뢰드의 하인은 토르와 로키를 거렁뱅이 취급을 하며 문을 닫으려 했다. 토르의 차가운 미소가 온도를 바꾸려고 하자 로키가 황급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아하이~ 이봐~ 이건 오다가 사고를 당해서 그래. 난 로키야. 네 놈의 주인인 게이르뢰드와는 각별한 사이지. 너도 알잖아? 네 놈의 주인에게 초대를 받아 내가 토르를 데리고 왔다고. 가서 전해! 그러면 기꺼이 맞이해 줄 거야!]


 로키의 말을 들은 게이르뢰드의 하인은 토르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그제야 토르를 알아본 게이르뢰드의 하인은 자세를 바꾸며 말했다.


[아, 그럼 당신이 토르입니까? 주인님은 지금 출타 중이십니다만, 토르가 오면 미리 쉴 곳을 준비해 두라고 하셨습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게이르뢰드의 하인은 토르와 로키를 대문 안으로 들였다. 그런데 그가 준비해 둔 대기실이라며 안내한 곳은 게이르뢰드의 저택에서도 조금 떨어진 건물이었다. 건물은 초라했고, 건물 안도 마찬가지였다. 건물 안에는 의자 하나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이봐! 이게 무슨 짓거리야! 네가 감히 신들을 이런 곳에서 기다리게 할 참이야!]

[글쎄요.. 저도 명령받은 대로 하는 거라서.]


 로키가 화를 냈지만 게이르뢰드의 하인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휘적휘적 저택 쪽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 이게 자네가 받았다는 손님대접인 거군. 꽤나 거창하지 않은가? 허허.]


 토르는 기도 안 찬다는 듯이 허허거렸다. 물론 토르도 화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드 부인의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그의 마음속은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오는 길에 당한 수모까지 더해 토르의 마음속은 분노로 가득 차고도 남았다. 그럼에도 토르는 그런 분노를 애써 감추었다. 토르의 분노를 받아야 할 상대는 게이르뢰드이지, 저런 하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로키는 달랐다.


[아놔! 이건 분명히 뭔가 착오가 있는 거야! 내 가서 따지고 오지!]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토르가 로키를 말려보았지만, 로키는 더욱 성을 냈다.


[아냐! 이런 건 따져야지! 대체 손님 대접을 뭘로 아는 거야! 내 이것들에게 한수 가르쳐주고 오겠어! 토르, 일단 좀 쉬고 있어 봐. 내 이것들을~~~]


 로키는 더욱 요란하게 성질을 부리더니 대기실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게이르뢰드의 하인이 사라진 저택을 향해 쿵쿵거리는 발소리까지 내며 요란하게 걸어갔다. 사실 이것은 로키가 빠르게 잔머리를 굴린 것이었다. 분명 토르는 대기실에서 공격을 받을 것이고, 로키는 거기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더 요란하게 성질을 내며 몸을 빼낸 것이다. 


 토르도 그런 로키를 굳이 더는 말리지 않았다. 토르는 로키의 의도를 모르지 않았지만, 굳이 그를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문제가 생긴다면, 로키가 없는 쪽이 토르가 움직이기가 더 편했다. 그런 토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키는 일단 무사히 몸을 빼낸 것에 안도하며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의 정원으로 들어서던 로키는 게이르뢰드 대신 게이르뢰드의 둘째 딸인 '그레이프(Greip : 손에 잡아 쥐는 것)'를 만났다.


[어머? 당신이 왜 여기에 있죠?]

[하?! 지금 장난해? 니 애비는 어디 간 거야? 대체 뭔 계획을 이런 식으로 짜?]


 로키는 게이르뢰드가 보이지 않자, 그녀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그레이프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호호~ 그게 무슨 소리이시려나?]

[오는 도중 토르를 습격한 것도 모자라서, 나까지 죽이려고 했잖아! 이건 우리 계약에는 없던 일이라고! 그리고 이런 식으로는 토르의 의심만 키우는 거야!]


 로키가 화를 내자, 그레이프는 가만히 로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레이프의 시선에 로키가 주춤거리며 물었다.


[왜.. 왜 그렇게 보는 건데?]

[흠.. 대체 어디 사는 뻔뻔쟁이인가 싶어서. 당신 그래도 명색이 신 아닌가? 하긴.. 그 동네 사는 것들은 원래 이런 것들이지만. 우리 계획이 어떻건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래서 당신이 죽었어? 아니잖아? 그런데 뭘 따져?]


 로키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레이프가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


[알았으면 꺼져. 아버지와의 계약이 아니었으면 여기서 찢어 죽였을 거야. 고마운 줄 알아야지? 안 그래?]


 로키는 기가 찼다. 로키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애꿎은 정원의 흙을 거칠게 걷어찼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돌려 매의 날개옷의 두건을 뒤집어쓰더니 매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레이프는 그런 로키를 보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로키는 일단 게이르뢰드의 저택에서 몸을 빼내 근처의 커다란 나무 위로 올라갔다. 로키는 분했지만, 지금 당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만 이것으로 로키가 게이르뢰드와 맺은 계약은 완료되었다. 토르는 묠니르도, 메긴교르드도 없이 게이르뢰드의 저택에 홀로 있다. 지금부터는 로키가 무엇을 해도 계약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토르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거나, 그를 도울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신들이나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로키의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 로키는 게이르뢰드와 그의 두 딸들에게 당한 수모에 분노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게이르뢰드에게 붙잡혀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을 때,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도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 로키는 게이르뢰드와 아스가르드의 신들 양쪽 모두에게 분노했고, 양쪽 모두가 못마땅했다. 그 사이에서 로키가 내린 결정이 이것이었다.


[이제 난 모르겠고, 지들끼리 알아서 해보라고 해! 내가 알게 뭐람? 뭐,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인거지만.]


 로키는 나무에 앉아서 게이르뢰드의 저택을 노려보았다. 이후 돌아가는 꼴을 지켜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로키는 다시 피곤이 몰려왔고, 나무에 기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전날 그리드 부인의 저택에서 쉬었다고는 해도 하룻밤 단잠으로 해소될 피로가 아니었던 데다가, 오는 길에 당한 사건까지 겹쳐 로키의 피로는 극에 달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토르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로키를 보낸 토르는 방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전날밤 잠을 이루지 못한 데다가, 앞서 당한 사건으로 인해 토르는 피곤을 느꼈다. 토르는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잡고, 머리는 그 지팡이에 기댔다. 로키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토르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로키가 있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이렇게 되었으니 잠깐만 눈을 좀 붙일까? 녀석들을 혼내주려면 좀 쉬어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니까.]


 토르는 분명히 무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휴식이 필요했다. 토르는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토르의 방심이라기보다는 자신감이었다. 아마도 습격이 있을 테지만, 고작 습격 따위에 벌벌 떨 토르가 아니다.  수십 수백 명의 거인들이 몰려온다 해도, 심지어 졸던 중이라고 해도 토르는 그들을 모두 해치울 자신이 있었다. 그런 자신감으로 토르는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잠을 잘 수 있었다. 토르의 이런 자신감은 이내 빛을 발했다.


 의자에 앉아 잠을 자던 토르는 마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간 토르가 눈을 떴다. 그러자 토르의 눈앞으로 천장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일반적인 사람이나 신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꿈인지 생신지 헷갈렸을 것이다. 그러나 토르는 달랐다. 토르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천장의 대들보를 향해 힘껏 뻗었다. 


[꺄아악!!]


 순간 마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같은 단발의 비명이 방안 가득 울려 퍼졌다. 그 비명소리는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예상대로 토르는 의자에 앉아 잠이 든 사이에 습격을 받았다. 그를 습격한 것은 게이르뢰드의 두 딸, 걀프와 그레이프였다. 


- 걀프와 그레이프를 죽이는 토르, 에른스트 한센 그림(1941. 출처 : https://throwbackthorsday.wordpress.com )


 걀프와 그레이프는 토르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는 각자 토르의 양쪽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토르가 앉아있는 의자의 다리를 잡더니 그대로 들어 올렸다. 이 건물은 작고 허름해 보였지만 사실은 아주 튼튼했다. 특히 천정의 대들보는 아주 단단한 돌로 만들어 올린 것이라 제 아무리 토르라 하더라도 그 대들보에 머리를 부딪힌다면 머리가 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이르뢰드의 딸들답게, 토르를 들어 올린 자매의 힘은 보통의 거인을 한참 상회했다. 그녀들은 온 힘을 다해 토르를 들어 대들보에 짓이기려고 했다. 


 그러나 역시 토르는 토르였다. 토르의 자신감처럼, 위기의 순간 토르는 깨어났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대들보를 향해 그리드 부인에게서 받은 지팡이를 뻗었다. 순간적으로 두 힘이 맞붙었고, 그 충격은 역으로 온 힘을 다해 토르를 들어 올리던 거인 자매에게로 향했다. 게이르뢰드의 두 딸은 그 자리에서 척추가 부러지고 터지며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토르가 앉은 의자는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지만 죽은 거인 자매의 몸이 의자를 푹신하게 받쳐주었다. 덕분에 거인 자매는 갈비뼈가 부러지며 확인사살을 당했지만. 


 무사히 내려온 토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의자 밑에는 거인 자매가 등이 터진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건물 밖에서 게이르뢰드의 하인 목소리가 들렸다.


[토르는 나오시오! 주인님이 찾으시니!]


 토르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스쳐갔다. 이제 다음 차례는 거인 자매의 아버지인 게이르뢰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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