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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Sep 06. 2023

24. 거인 왕의 초대-여덟 : Who's Next?

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이야기, 토르, 로키, 게이르뢰드

#. Who's Next?


 토르는 게이르뢰드의 하인을 따라 저택의 홀로 향했다. 저택의 홀은 아주 크고 넓었고, 홀 안은 매우 더웠다. 

아니, 덥다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할 만큼 뜨거웠다. 이는 홀을 둘러싸고 커다란 화로들이 놓여 있었는데, 모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홀의 한가운데에는 크고 넓은 식탁이 펼쳐져 있었다. 그 식탁의 끝에는 강철로 만든 멋스러운 기둥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게이르뢰드로 여겨지는 거인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게이르뢰드의 곁에도 커다란 화로가 놓여있었는데, 그 화로가 이 홀에서 가장 컸고 불길도 가장 크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게이르뢰드는 화로 앞에서 부지깽이를 잡고 무언가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무언가를 굽는 듯이 보였다. 게이르뢰드가 손짓을 하자, 토르를 안내한 하인은 물러갔다. 뜨겁고 커다란 홀의 한가운데. 커다란 식탁의 양 끝에서 토르와 게이르뢰드가 마주했다. 게이르뢰드는 여전히 무언가를 구우며, 슬쩍 고개만 돌려 토르를 보았다. 


[천둥신이 이처럼 누추한 거인의 집에 다 왕림해 주시다니 아주 영광이군.]


 말과는 달리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뻣뻣한 게이르뢰드와는 달리 토르는 시원하게 웃었다.  


[하하! 이거, 초대를 해줘서 고맙군. 그런데 이 집은 초대를 해놓고 손님대접은 엉망이군. '전채(前菜)요리(영어로 에피타이저라고도 함. 식전에 먹는 가벼운 음식)'가 두 번이나 나왔지만,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네.]


 토르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식탁을 둘러보았다. 식탁 위는 텅 비어 있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대접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토르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도 마찬가지군. 식탁이 텅 비었어. 게이르뢰드는 거인의 왕이라던데.. 이리 인색해서야.]


 토르가 비아냥거리자 게이르뢰드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사실 게이르뢰드도 토르 못지않은 분노를 애써 감추고 있었다. 게이르뢰드는 토르가 멀쩡하게 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두 딸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곧 두 딸의 죽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두 딸을 잃은 아비의 분노는 결코 토르의 그것보다 작지 않았다. 두 딸의 얼굴이 떠오르자 게이르뢰드는 갑자기 크게 웃었다. 애써 본심을 감추기 위한 웃음이었다.  딸을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이성을 잃고 토르에게 덤빈다면, 복수는 아예 물 건너가 버리게 된다.


[하하하~! 그렇군. 토르, 식탁에 앉으시게. 내 이 녀석을 맛있게 구워서 자네에게 주겠네.]

[그러시게.]


 토르는 대답을 하고는 바로 앞에 있는 식탁의 끝자리에 앉았다. 게이르뢰드는 자신이 굽던 무언가를 부지깽이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게이르뢰드는 슬몃 눈길을 돌려 토르를 옅보았다. 


[흠.. 불이 약한가..?]


 홀 안은 매우 더웠고, 토르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토르는 왼손을 들어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바로 그 순간! 게이르뢰드는 부지깽이로 화로 속에서 한참 동안 달궈둔 커다란 쇳덩어리(쇠구슬이었다고 전해짐)를 꺼내 토르를 향해 던졌다. 쇳덩어리는 아주 오랫동안 달궈진 터라 불까지 붙어서 마치 작은 태양처럼 보였다. 거인 일족은 물론 자신의 두 딸에 대한 분노와 복수까지 실린 쇳덩어리는 굉음을 내며 무서운 기세로 토르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이런 게이르뢰드의 분노가 무색하게도.. 토르는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며 장갑을 낀 오른손으로 게이르뢰드가 던진 쇳덩어리를 가볍게 받아내었다. 그 광경에 게이르뢰드는 넋이 나간 듯 부지깽이를 든 채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야~ 이거 아주 뜨끈 뜨근한 걸?]


 토르의 말투는 가벼웠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홀은 물론 게이르뢰드의 저택이 흔들릴 정도로 컸다. 마치 하늘에서 천둥과 폭풍이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토르가 게이르뢰드를 보며 앙연하게 웃었다.


[근데 간이 안 맞네?]


 토르의 두 눈은 쇳덩어리에 붙은 불길보다도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게이르뢰드는 두 딸에 대한 분노도 잊고 자신도 모르게 강철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물론 토르가 그런 게이르뢰드를 그냥 보내줄 리 만무했다.


[게이르뢰드!!]


 토르는 게이르뢰드를 향해 붉게 달아오른 쇳덩어리를 집어던졌다. 묠니르를 자신의 무기로 사용하게 되면서, 토르는 이미 무언가를 던지는 것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여기에 토르의 분노까지 실리게 되자, 쇳덩어리는 게이르뢰드가 던질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불이 붙은 쇳덩어리는 토르의 손을 떠나 마치 한줄기 유성처럼 공기를 가르며 게이르뢰드를 향해 날았다. 아주 커다란 굉음과 함께 쇳덩어리는 그대로 게이르뢰드가 숨어있는 강철 기둥을 뚫었다. 그리고 게이르뢰드의 심장까지 뚫어버린 다음, 쇳덩어리는 홀의 벽까지 뚫어버리고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버렸다. 그렇게 게이르뢰드는 천둥신을 속인 대가를 자신과 두 딸의 목숨으로 톡톡히 치러야 했다. 


- 게이르뢰드를 죽이는 토르, 작자미상(1891. https://throwbackthorsday.wordpress.com ) 


[후우! 덥네.]


 토르는 몸을 돌려 홀 밖으로 나왔다. 저택에는 게이르뢰드의 하인들을 비롯한 많은 거인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토르의 앞을 막지 못했다. 이미 게이르뢰드가 죽은 마당에 자신들이 나선다고 해서 그의 복수는커녕, 제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토르도 그런 거인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토르에게 그런 거인들은 그저 길가에 흩어져있는 돌멩이와 다르지 않았다. 


 토르는 저택을 나와 아스가르드로 돌아가는 길을 잡았다. 로키가 보이지 않았지만, 토르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토르는 게이르뢰드를 죽여서 자신을 속인 자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했지만, 로키에게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토르는 굳이 세세한 것까지 들먹이며 로키와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로 인해 토르와 로키의 관계는 서먹해져 버렸다. 


 로키도 토르가 무사히 나오는 것을 보았지만, 평소와 달리 멀찍이 토르가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무 위에서 일이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면서 로키도 나름대로는 약간의 마음고생은 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어쨌건, 토르를 게이르뢰드에게 안내한 것은 로키다. 친구를 팔아넘기고, 사지로 몰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로키는 토르에게 굳이 변명을 하지 않았다. 당분간 서먹함이야 생기겠지만 조만간 술 한잔 하면서 풀릴지도 모르니까. 그럼에도 로키의 마음 한편에서는 왠지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에에잇! 될 대로 되라지!]


 한참을 머뭇거리던 로키는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토르와 로키. 이 정다웠던 두 친구는 서로에 대해 말 못 할 마음을 품은 채, 각자 아스가르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은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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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01

이번 이야기에서도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조정하거나 덧붙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01. 원전에서는 로키가 매의 날개옷을 얻은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또한, 매의 날개옷의 주인도 프리그와 프레이야가 혼동되어 사용됩니다. 프리그와 프레이야가 하나의 성격을 지닌 여신이었다는 점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죠.(일부 참고 자료에서는 매의 날개옷은 나오지 않고, '로키가 매로 변했다'라고 나오기도 합니다.) 로키와 프리그, 로키와 프레이야의 관계를 보았을 때, 매의 날개옷의 주인이 누구였 건 로키에게 쉽게 이 옷을 빌려주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전 로키가 프레이야를 감언이설로 속여 매의 날개옷을 얻은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02. 이번 이야기에 등장하는 거인왕 '게이르뢰드(Geirrod, Geirroðr : 창의 평화)' '그림니르의 시'에 등장하는 '게이로드'(13화 '그림니르가 말하기를'을 참조)'와 동명이인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두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서 거인왕은' 게이르뢰드'로 표현했습니다.(사실 읽는 방법에 따라 게이르뢰드, 게이르로드, 게이로드 모두 가능하긴 합니다.)


-03. 원전에서는 '아스가르드로 돌아온 로키가 토르를 꼬여내어 게이르뢰드에게로 데려갔다.'라고 나옵니다. 저는 이 과정에 저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더해보았습니다.


-04. 원전에서 거인왕 게이르로드의 초대를 받은 토르를 따라가는 것은 '로키'입니다. 다만 스칼드인 '에일리프(Eilif)'가 쓴 '토르의 영웅시(Thorsdrapa)'와 같은 참고자료에서는 '티알피'가 등장합니다. 예전 '드림바드'에 연재했던 '북유럽 신화 이야기 1.0'에서는 티알피로 묘사했었지만, 이 부분을 다시 원전에 맞게 로키로 수정했습니다.


-05. 전승에 따라 '걀프(Gjalp : 소리 지르는 것, 짖어대는 것)'가 쏟아낸 것을 '월경혈(月經血)', 또는 '소변'으로 보기도 합니다. 일부에서는 이 부분을 성(性)적인 묘사인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 걀프에게 바위를 던지는 토르, 로렌츠 프로리히 그림(1906.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Gj%C3%A1lp_and_Greip )


-06. 헤임달의 어머니로 일컬어지는 이들 중에 '걀프(Gialp : 소리 지르는 것, 포효하는 것)''그레이프(Greip : 손에 잡아 쥐는 것)'라는 이름이 있는데, 게이르뢰드의 두 딸과는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들을 동명이인으로 보았습니다.


-07. 원전에서는 토르를 게이르뢰드에게 안내한 로키가 어떻게 되었는지, 무엇을 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일설에는 몸에 묻은 걀프의 월경혈과 진흙, 땀 등을 씻으러 자리를 비웠다고 나오기도 합니다. 로키와 그레이프의 대화와 로키가 매로 변해 이후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저의 상상력을 더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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