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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Oct 10. 2023

26. 힌들라의 시 - 하나 : 스노리의 서가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힌들라, 스노리, 올라프, 스튤라

#. 스노리의 서가


 그 날은. 항구는 여느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어부와 상인 그리고 부두의 일꾼들이 저마다의 일상으로 바빴다. 항구의 모든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때, 이들과 달리 두 젊은 청년은 나무 통에 걸터앉아 항구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올라프와 스튤라 형제였다. 스노리와 토르두르를 떠나보내고 형제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배가 사라지는 모습을 한참이나 보고 난 뒤에도 항구를 떠나지 못했다. 올라프도, 스튤라도 한참동안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았다. 머릿 속도, 마음 속도 안개가 잔뜩 끼인 것 처럼 뿌연 느낌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올라프였다.


[스튤라, 네 이름의 의미를 아니?]


 올라프는 스튤라에게 뜬금없이 이름의 의미를 아는지 물었다. 스튤라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스튤라가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척 했다. 사실 올라프도 스튤라에게 별다른 대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올라프는 시선을 항구의 사람들에게 향한 채 말을 이었다.


['스튤라(Sturla)'라는 이름은 할아버지의 이름이었지.(스튤라 토르다르손, Sturla Þorðarson) 둘째 숙부님네 스튤라와 너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은 거야. 우리가 '스트를룽 일족(Sturlungar)'이라고 불리는 것도 할아버지의 이름에서 온 거지. 우리 일족이 지금과 같은 힘을 지닌 것은 할아버지로 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니까.]


 스튤라는 차분하게 형의 말을 들었다.


[우리는 오랜 옛날, '에기르(Egill Skallagrimsson, 904~995 : 바이킹 시인이자 족장, 에기르의 사가의 주인공)'할아버지로 부터 시작되었어. 너와 나의 재능(시, 詩)은 그 분으로 부터 물려받은 거겠지. 우리는 처음에는 섬 서쪽의 작은 일족에서 출발했어. 그러다 서부의 얼음골(Fjord : 피요르드)과 섬의 서부를 아우르게 되었지. 우리는 섬의 북동쪽에 이르기까지 세력을 키웠고. 실제로 그 기틀을 만든게 바로 너와 이름이 같은 '스튤라' 할아버지셨어.


 나도 어른들께 들어서 아는 거지만, 할아버지는 야망이 큰 분이셨어. 할아버지가 증조 할아버지께 일족의 수장(고다르, goðorð)자리를 물려 받으신 다음부터 우리 스트를룽 일족의 이름이 온 섬에 퍼져나가게 되었지. 할아버지는 주변의 많은 일족들을 포섭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면서 우리 일족의 힘을 키우셨어. 때로는 암살과 살해 위협을 견디어 내시기도 했지. 그럼에도 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꿈을, 자신의 야망을 포기하지 않으셨어. 할아버지의 꿈은 우리 일족이 섬에서 가장 강력한 일족이 되는 것이었고, 우리가 그 정점에 서길 바라셨지. 그리고 그 꿈은 우리 아버지 대에서 이루어진거야.]


 스튤라는 가만히 시선을 멀리 수평선으로 향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아버지. 막내 아들인 자신을 무릎에 앉히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했던 아버지. '시그바투르(Sighvatr Sturluson)' '스노리(Snorri Sturluson)', 두 숙부에 비해 온화한 성격을 지녔던 아버지.


 올라프와 스튤라의 아버지인 '토르두르 스트를루손(Þorður Sturluson)'은 스튤라의 장남으로 일족의 본거지인 섬의 서부를 물려받았다. 그는 두 동생들 만큼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인 스튤라의 꿈을 가장 잘 이해한 아들이었고, 그를 위해서는 일족의 단결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토르두르는 전면에 나서는 대신 뒤에서 움직였다. 물과 불처럼 대립하던 두 동생 사이를 조율하고, 일족을 하나로 묶는 중심에는 언제나 토르두르가 있었다. 토르두르는 그 자신도 상당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일족의 수장 자리를 셋째인 스노리에게 물려주었다. 이는 전면에 나서서 일족을 이끌어가는 능력은 스노리가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비록 그것이 둘째인 시그바투르의 불만을 초래하긴 했지만, 토르두르는 그런 시그바투르를 달래 스노리와 화합하도록 힘썼다. 모든 것은 아버지인 스튤라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토르두르가 살아있을 때는 시그바투르와 스노리의 대립은 수면 아래에 있었다. 시그바투르와 스노리의 대립이 수면 위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격화된 것은 토르두르가 병을 얻어 힘을 발휘하지 못한 시기였다. 결국 그의 죽음은 가문의 내분으로 이어져 스노리는 실각하게 되었다.


- 스트를룽 시대의 세력지도 (출처 : https://quizlet.com)

- 서부와 북부 중부의 연한 갈색과 중부의 보라빛 지역이 스트를룽 일족의 세력권

  푸른 부분들은 대립하거나 협력과 반목을 지속하던 일족들.


[어쩌면.. 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매번 불만을 쏟아내시긴 했지만, 시그바투르 숙부님도 아버지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 '카갈리'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은거니까.(토르두르 카갈리 시그바트손,
Þorður kakali Sighvatsson : 시그바투르의 아들, 스튤라 시그바트손의 동생)


 스튤라 할아버지께서는 스트를룽 일족이라는 커다란 밭을 갈아 그 씨앗을 심어주셨지. 우리 아버지와 시그바투르, 스노리 숙부님이 그 씨앗을 잘 키워주셨고. 그렇게 우리는 섬의 정점에 선 일족이 되었어. 너와 나, 카갈리.. 우리가 그 열매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말을 마친 올라프는 그제서야 동생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는, 우리 스트를룽은 그런 일족이야. 서부 얼음골의 매서운 추위도, 다른 일족의 날카로운 칼날도 우리 일족을 쓰러트리지 못했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섬의 정점에 선 거야. 우리 스트를룽 일족은 결코 약하지 않아.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낙담해 있으면 안되겠지?]


 올라프의 말을 들은 스튤라는 짐짓 활짝 웃어보였다. 이것은 동생에게라기 보다는 올라프가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낙담해 있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노리가 다시 기운을 내서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자신들은 이곳에서 자신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스트를룽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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