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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Oct 11. 2023

26. 힌들라의 시 - 둘 : 오타르의 고민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오타르, 프레이야

#. 오타르의 고민


 미드가르드의 어느 깊은 숲 속. 그 곳에는 아주 비밀스러운 샘(泉)이 있다. 샘은 깊은 숲 속에 있는 그저 평범한 샘이었다. 숲을 오가는 나뭇꾼이나 사냥꾼도 잘 찾지 않는 말 그대로 깊은 산 속의 옹달샘이었다. 숲 깊은 곳에서 살고 있는 토끼가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는 극히 평범한 옹달샘.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한 연인의 밀회의 장소가 되면서 이곳은 다분히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그들이 샘에 출현한 이후부터 이 곳은 주변에 짙은 안개가 서려 다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숲의 동물들도 길을 잃고 찾기 어려운 샘이 되었다. 이 깊은 숲 속의 샘가에서 '오타르(Óttar/Ottir : 공포스러운 군대)'는 눈을 떴다. 샘 주변으로 짙은 안개가 가득했지만, 지금이 아침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수 있었다. 하늘로 향한 안개 사이로 한줄기 빛이 샘으로 내려와 주변을 밝혔다. 그러나 이 반라의 준수한 청년은 아직 잠이 덜 깬 것인지, 멍한 표정으로 안개로 가려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곁에 있는 누군가가 아름답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청년에게 말했다.


[잠꾸러기. 이제 일어난거야?]


 그녀도 오타르처럼 반라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한참 전부터 오타르의 머리맡에 엎드린 채, 손으로 턱을 괴고는 청년이 자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타르의 찰랑거리는 갈색 머리카락 한올 한올, 우유빛의 하얀 피부에 이르기까지 그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녀는 신들의 공주님, '프레이야(Freya : 여주인)'였다. 프레이야는 사랑의 여신이지만, 언제나 사랑에 목이 마르고, 사랑을 갈구했다. 그녀의 남편은 집을 떠난지 오래였고, 비공식적인 연인인 오딘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프레이야의 갈증을 달래주지 못했다. 그래서 프레이야는 신, 인간, 요정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정부(情夫)와 애인을 두었다. 오타르는 그런 애인 중 하나였고, 지금 프레이야가 가장 빠져있는 애인이었다. 오타르는 미드가르드의 젊은 인간 청년이다. 그는 건장한 체격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으며, 다른 바이킹이나 전사들과는 달리 부드럽고 자상한 성격을 지닌 청년이었다. 워낙에 미청년인지라 마을의 처녀들로 부터 인기도 높았다. 그러던 중 새로운 애인을 찾던 프레이야의 눈에 띄었고, 프레이야는 이런 오타르를 가만히 보고만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오타르는 프레이야의 애인 중 하나가 되었다. 오타르는 가만히 고개만 돌려 프레이야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프레이야 님.]


 반면, 프레이야는 햇살보다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프레이야는 하얗고 가느다란 손으로 머리카락에서 부터 볼로 이어지며 오타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오타르는 프레이야가 하는 양을 그대로 지켜보았다. 손으로 오타르의 입술과 코를 만지작거리며 프레이야가 물었다.


[흐음~ 오타르. 혹시 무슨 일이 있어?]

[응?]


 프레이야의 질문에 오타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프레이야가 포근한 미소로 오타르를 안심시키며 다시 물었다.


[아니, 잠을 잘 못자는 것 같아서.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끙끙대더라? 솔직히 어젠 평소와도 좀 달랐고.]

[아.. 미안해요.]


 오타르는 다시 안개가 가득한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분명 오타르에게 무슨 일이나 걱정거리가 있음이 분명했다. 프레이야는 몸을 일으켰다. 프레이야는 오타르의 머리를 들어 자신의 부드럽고 탄력있는 허벅지 위에 얹었다. 프레이야가 오타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나한테 이야기 해봐.]

[.. 실은..]


 잠시 뜸을 들이던 오타르가 입을 열었다. 오타르는 며칠 전부터 걱정에 휩싸여 있었는데, 그 내막은 이랬다. 오타르의 먼 일가가 후사없이 죽었는데, 그 유산을 두고 '앙간티르(Angantyr : 달콤한 향기를 가진 신)'라는 자와 분쟁을 겪게 되었다. 오타르는 그와 일가임을 내세워 정당한 상속자임을 주장했지만, 앙간티르 역시 그와 혈연적으로 연관이 있었다. 문제는 두 사람 모두 직접적인 혈연관계는 아니었고, 두 사람 모두 유산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결투를 통해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타르는 선뜻 응할수 없었다. 오타르는 건장하고 잘생긴 청년이었지만, 그의 성품은 전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에 비해 앙간티르는 세상을 겪을만큼 겪은 자였고, 거친 전사였다. 결투는 당연히 오타르에게 불리했다. 그래서 오타르는 혈연을 더욱 강조했고, 결국 앙간티르도 이를 받아들였다.


 둘은 혈연적으로 가까운 쪽이 정당한 상속자가 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오타르가 '자신의 가계(家系 : 혈연적 유대나 집안 계통의 체계)'에 대해서 그렇게 세밀하게 알고 있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주변 어른들에게 들은 정도로 대략적인 혈연을 주장했을 뿐, 그 상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만큼 오타르는 어렸다. 그렇다고 오타르의 주변에서 그를 도와줄 만큼 가계에 대해 해박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에 비해 앙간티르는 오타르보다 훨씬 나이도 많았기에, 오타르는 점점 자신을 잃어갔다. 여기에 오타르의 걱정꺼리는 하나 더 있었다. 비록 합의점을 찾긴 했지만, 유산을 두고 앙간티르와 다툼을 벌이면서 오타르는 젊은 혈기에 앙간티르와 감정적으로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만일 오타르가 분쟁에서 패하게 된다면, 그간 벌인 감정적인 대립에 대한 배상까지 물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오타르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모든 것은 오타르에게 불리하게 진행될 것이다. 오타르에게서 모든 내막을 들은 프레이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던 거네? 흠.. 알았어! 내가 도와줄께.]

[정말요?]


 프레이야의 대답을 들을 오타르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프레이야의 대답은 궁지에 몰린 오타르에게 하늘에서 동앗줄이 내려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프레이야는 오타르를 보며 배시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연하지! 내가 아니면 누가 널 돕겠어? 내가 이쪽에 아주 전문가를 잘 알고 있거든. 그녀에게 부탁한다면, 잘 해결될꺼야.]


지난 밤 넋을 놓고 있던 것과는 달리, 오타르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오타르는 기쁜 마음에 프레이야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잠시 후, 프레이야가 오타르의 품에서 벗어나 몸을 일으켰다.


[잠깐만~ 우선은 그녀를 먼저 만나러가자. 일단 이것부터 해결해야 너도, 나도 마음이 더 편해질테니까.]


 오타르는 프레이야를 향해 더없이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냈다. 안개사이로 내려앉은 햇살이 프레이야를 향했다. 햇살을 받은 반라의 프레이야는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게 빛났다. 이런 프레이야를 세상 그 어떤 남자가 사랑스럽게 보지 않을수 있겠는가?프레이야가 그런 오타르를 보면서 다시 말했다.


[그런데 말이지~ 그 애가 좀 낯을 가리거든. 그래서 네 모습을 좀 바꿔야 할 것 같아. 그러니 놀라지 마. 알았지?]


- 멧돼지를 탄 프레이야, 루드비히 피에츠(1865. 출처 : https://da.wikipedia.org/wiki/Gyldenb%C3%B8rste)


프레이야의 말을 들은 오타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야는 먼저 자신에게 마법을 걸어 반라의 몸을 갑옷을 입은 차림으로 바꾸었다. 그런 다음 오타르에게도 마법을 걸었는데, 오타르는 전혀 의외의 것으로 변신시켰다. 바로 두개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송곳니와 햇살처럼 부서지는 황금빛 갈기를 가진 황금멧돼지였다. 오타르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그런 오타르를 보는 프레이야는 더없이 즐거워 했다. 프레이야는 멧돼지로 변한 오타르를 품에 안았다.


[아우~ 넌 어떻게 이렇게 변신을 시켜도 귀여운거니? 아~ 너무 귀여워~]


 오타르의 황금빛 갈기가 붉은 황금빛으로 변했다. 잠시 오타르를 끌어안고 있던 프레이야는 곧 오타르에게 올라탔다.


[그럼 가볼까?]


 오타르는 프레이야가 이끄는 대로 달려나갔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오타르 자신도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게다가 산도, 바다도 거침없이 달려나갈수 있었다. 지금 향하는 곳이 인간의 땅인지, 거인의 땅인지.. 그도 아니면 신들의 땅인지는 알수없었지만, 오타르는 프레이야의 인도에 따라 신나게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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