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오타르, 프레이야, 힌들라
*. 이번 이야기에서는 낯선 이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냥 편안하게 이런 이름들이 있구나 하고 지나가주셔도 됩니다.
[음~ 여전하네. 하여튼 정리라고는 하지를 않는 애니까.]
프레이야의 말에 오타르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은 맑았지만, 개울 옆 바위에는 이끼가 가득했다. 어느 곳을 보아도 사람의 발자국이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물가라면 몰려올만한 동물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또 한가지 이상한 점은 폭포의 서늘함에도 차갑거나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약간의 포근함이 느껴져 오타르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프레이야는 가볍게 손으로 오타르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걱정하지마. 안전한 곳이니까. 내 친구가 여기 있거든.]
프레이야는 오타르를 작은 폭포를 향해 이끌었다. 작은 폭포로 다가서자 폭포의 뒤로 동굴이 보였다. 그 동굴은 한 사람이 창을 들고 지나갈 만큼 충분히 컸는데, 이상한 점은 동굴이 너무도 어두웠다. 일반적으로 동굴의 입구는 밝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두운 것에 반해 이 동굴은 그 입구부터 칠흑같이 어두웠다. 오타르를 동굴 입구로 이끌고 간 프레이야가 동굴 안을 향해 소리쳤다.
[자? 자니? 자냐구~! 일어나 이 잠꾸러기야~ 네 친구 프레이야가 왔으니까!]
그러나 동굴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프레이야가 다시금 동굴 안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까지 말한 프레이야는 잠시 동굴 안을 살피더니 다시 동굴 안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아들들에게 승리를 주었고, 어떤 자에게는 재물을, 다른 위대한 자에게는 빛나는 혀(달변, 웅변의 능력)를, 어떤 이들에게는 지혜를 주었다네. 무역상에게는 순풍을 주었고, '스칼드(skalld : 음유시인)'에게는 시를, 수 많은 전사에게는 용기를 주었다구! 토르는 거인족 여인에게 악의를 품고 있지만, 내가 제물을 바친다면 그가 너에게 좋은 마음을 가질수 있게 할 수 있어! 자, 그러니 이제 우리에서 너의 늑대를 꺼내 룬의 고삐를 달아주려무나!(힌들라는 늑대를 타고 다니는데, 이제 그만 기다리게 하고 나오라는 뜻.)]
프레이야는 숨을 한번 쉬고는 다시 소리쳤다.
[자니? 자냐구? 얘! 힌들라!! 내 친구야!]
[하아... 내가 왜 니 서방한테 기도를 해야하는데?]
목소리를 들은 프레이야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늑대에 올라탄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프레이야가 말했던 전문가, 프레이야가 친구라고 부른 힌들라였다. 그녀는 검고 짙은 쟂빛의 옷을 입었으며, 자다 일어난 듯 하얀 머리는 덥수룩하게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었다. 그녀는 잘 먹지 못했는지 깡말라 있었고, 피부는 너무도 창백해서 푸르스름하게 보였다. 얼마나 피곤한 것인지 가늠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의 두 눈은 퀭했고, 눈가는 푸르고 시커멓게 물이 들어 있었다. 커다란 두 눈에 눈동자는 아주 작았는데, 그래서인지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보였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시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는데, 오타르는 그녀가 죽은 자인지 살아있는 자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을 본 오타르는 두려움 보다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모습으로 보아 저 정도면 지금 당장이라도 재워야 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는 그녀가 타고 나온 늑대도 마찬가지여서 위협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늑대는 졸고 있었고, 정말 한 발을 옮기는 것도 귀찮다는 듯, 느리게 움직였다. 힌들라는 멧돼지에 올라탄 프레이야를 가만히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말했다.
[하암~ 이 길을 가기에는 그 돼지는 너무 느릴텐데..?]
[후훗~ 무슨 말을? 이렇게 고귀한 말(멧돼지, 오타르)에 안장을 얹은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란다.]
프레이야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힌들라가 기도 안찬다는듯 인상을 구기며 대답했다.
[허어? 거짓말도 작작해야지.. 너 내가 감이 떨어졌나 시험하니? 네 눈을 보면 다 알아. 다 안다구. 이건 네 애인, '인스테인(Innstein : 의미불명)'의 아들인 오타르잖아? 얘를 여기에 데려오다니.. 너도 참.. 하아..]
힌들라의 대답을 들은 프레이야가 코끝을 찡긋거리며 퉁명스레 말했다.
[어머? 얘는~ 너 아직 잠이 덜 깼구나? 내가 내 애인을 왜 여기에 데려오겠니? 얘는 '힐디스빈(Hildisvin/Hildisvini : 싸움돼지)'이야. 솜씨좋은 난쟁이 '다인(Dain : 죽음)'과 '나비(Nabbi : 의미불명)'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황금 털을 가진 애완돼지라구~!]
그러자 힌들라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하아.. 야! 이 지지배야! 넌 나한테까지 약을 파니? 내가 힐디스빈을 몰라? 하아..]
프레이야는 대답없이 그저 생글생글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 모습을 본 힌들라가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프레이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웅~ 이렇게 안장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건 오랜만이네. 그건 그렇고 말이지.. 너한테 왕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서 왔어. 영웅들의 후손이, 뭐.. 오타르와 앙간튀르려나? 여튼.. 그 애들이 지금 죽은 자의 금을 두고 싸우는 중이거든.]
[젊은 왕자가 아버지의 유산을 받는 건 의무이긴하지.. 그걸 니가 나설 필요는 없다고 느끼는데?]
힌들라는 여전히 귀찮다는 표정으로 프레이야를 바라보았다. 프레이야도 여전히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애가 나에게 돌로 만든 제단을 세웢줬거든. 그 바위가 유리처럼 되었지만 말이야. 그 애는 늘 제단에 새로운 황소의 피를 뿌려줬기도 하고.(늘 제사를 잘 지내줬다는 말) 오타르는 항상 '아쉬니우르(Asyniur : 아사 여신, 여기서는 프레이야 본인)'를 충실히 섬겼거든. 그러니 그 애의 옛 가문과 고귀한 인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련?]
힌들라는 대답 대신 한손으로 볼을 긁으며 길게 하품을 했다.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동굴로 돌아가 자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