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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Oct 18. 2023

26. 힌들라의 시 - 일곱 : 이제 그만 가라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오타르, 프레이야, 힌들라

#.이제 그만 가라.


 이제 들려줄 것은 다 들려주었다는 듯 힌들라는 몸을 돌리며 고삐를 흔들었다. 힌들라를 태운 늑대가 느린 발걸음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프레이야가 황급히 힌들라를 불러세웠다.


[얘! 힌들라~ 그냥 가면 어떻하니? 내 손님에게 '기억의 술'을 내어주렴.(결국 멧돼지가 오타르라는 걸 인정하네요.) 그래서 죽은 자의 일족들이 오타르와 앙간티르를 평가하게 될 세 번째 되는 날 아침 회의에서 그가 이 모든 것을 이야기 할수 있도록~~]


 그러자 늑대가 느린 발걸음을 멈추었다. 힌들라가 가만히 고개를 돌리고는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프레이야를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왜? 그만 가라. 난 좀 자야겠어. 넌 나에게서 이 이상 놀라운 이야기나 힘은 얻지 못할테니까. 숫염소 사이를 암염소가 지나가듯이~~ 너, 나의 아주 뜨거운 친구야. 밤을 달려가려무나.(프레이야가 발정난 암염소 같다는 뜻)]


 힌들라는 다시 고개를 돌려 고삐를 흔들었고, 그녀를 태운 늑대는 다시 동굴의 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힌들라와 늑대가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힌들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가라~ 넌 그리움에 미쳐서 너의 허리띠 아래를 훔친 많은 이들에게 여러 번이나 달려가야 하지 않니? 숫염소 사이를 암염소가 지나가듯~~이~~~~~ 너, 나의 아주 뜨거운 친구야. 밤을 달려가려무나~~]


- 프레이야, 존 바우어(1905.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Freyja)


 주위는 다시금 조용해졌고, 시원한 물소리만이 은은하게 주위를 채웠다. 그러나 오타르는 프레이야의 떨림을, 그녀의 분노를 등과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프레이야가 힌들라의 말뜻을 못알아 들을 리 없었고, 그녀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그대로 당하고 물러날 프레이야가 아니었다. 프레이야는 앙연하게 웃으며 동굴을 향해 소리쳤다. 


[숲에 사는 이(힌들라)여! 나 여기에 불을 질러버릴테야! 네가 여기서 영원히 나가지 못하도록!!]

[.. 그러시던가. 나 잔다.]


 프레이야의 싸늘한 목소리와 달리 졸음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무덤덤하게 동굴 안에서 흘러나왔다. 어차피 이 숲이 불에 타건 말건 힌들라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동굴 안의 어둠과 잠의 세계(죽음의 세계)이지, 동굴 밖에 존재하는 장식과 같은 숲(죽음으로 향하는 길)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러지 뭐. 근데 여기가 불에 타면, 밝아서 어디 잠이 잘 오려나 몰라? 내가 무슨 불을 지르는지는 너도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자 프레이야가 조소를 보내며 대답했다. 힌들라는 대답이 없었고, 다시 주위는 조용해졌다. 잠시 기다리던 프레이야가 가만히 손을 움직이려는 찰나, 동굴의 검은 어둠 속에서 깡마르고 창백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술이 가득 담긴 나무 잔이 들려 있었다. 힌들라의 목소리가 동굴의 짙은 어둠 속에서 흘러나왔다.


[하아.. 그럼 난 타오르는 불과 이글거리는 땅을 보게 되겠지.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들테지. 그렇게 되면 자긴 다 틀려버릴테고.(죽는 자들의 외침과 죽은 자들의 행렬이 이어질 것이기에 힌들라가 자는 것이 방해받을 것이라는 뜻) 알았어! 알았다고! 야, 오타르의 손에 이 잔을 건네렴. 불행히도 독과 섞인 벌꿀술을 말이지!]


 프레이야는 기쁘게 힌들라가 독설과 함께 내민 술잔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힌들라의 손은 다시 동굴 속의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힌들라의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술잔을 받아든 프레이야는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러더니 술잔을 잡은 반대쪽 손을 술잔의 위로 가져가 하얗고 가는 손가락을 몇 차례 움직였다. 그러자 술잔의 위로 검은 보라빛의 안개 같은 것이 빠져나와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얘도 참.. 줄꺼면 좀 곱게 주지는.. 그런데 어쩌니? 너의 저주는 소용이 없을꺼야, 요툰의 처녀여!(힌들라는 거인족 출신이었군요.) 너는 불행을 담아주었지만, 오타르는 달콤한 술을 마실텐데 어쩌나? 내가 오타르가 모든 신들의 총애를 받게 할 꺼거든~]


 프레이야는 활짝 웃으며 잔을 오타르의 입으로 가져갔고, 오타르는 맛있게 그 술을 받아 마셨다. 그로서 오타르는 힌들라로 부터 들은 자신의 혈족과 관계된 이야기를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유산다툼에서 승리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프레이야가 그를 지켜주는데, 감히 누가 그를 상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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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01

 이번 이야기에는 '오타르(Óttar/Ottir : 공포스러운 군대)'라는 프레이야의 애인(중 한명)이 등장합니다. 오타르라는 이름은 북유럽 신화나 관련 이야기에서 종종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오타르는 2명입니다. 이번 이야기에 나온 '오타르'가 그 중 한 명이고, 다른 한명은 '안드바리(Andvari : 조심하는 자, 조심스러운 것)의 반지'이야기에 등장하는 '오타르'입니다. 흔히 '오타르의 황금''오타르의 배상'이라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는데, '니벨룽겐 일족의 사가(Das Nibelungenlied)'와 연계되어 '바그너(Richard Wagner)'에 의해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라는 작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번 이야기에 나온 오타르와 니벨룽겐 일족의 사가에 등장하는 오타르는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이번 이야기에 나온 오타르는 인간이며, 잘생긴 청년으로 프레이야의 애인입니다. 반면, 안드바리의 반지에 등장하는 오타르는 거인이고, 본 모습이 어떤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수달로 변신한 상태에서 등장하는데,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거든요. 이 두 명의 오타르 이외에도 베오울프에 등장하는 스웨덴의 왕이나 다른 여러 사가에 등장하는 바이킹 전사나 귀족의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현대에도 북유럽 지역에는 오타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PS-02

 그런데 왜 이렇게 동명이인이 많은 것일까? 앞서 말한 '오타르'이외에도 이번 이야기에 등장하는 '앙간티르(Angantyr : 달콤한 향기를 가진 신)'도 동명이인이죠. 앙간티르라는 이름도 북유럽 신화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이름입니다. 그 이유는 북유럽 지역에서 이름을 짓는 방식 때문입니다.


 대체로 옛날에는 '성(姓, 이름 성, 성씨, Family name)'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동서양 모두 해당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발전하고 계급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이름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바로 '성(姓)'이 생긴 것이죠. 아무래도 재산이나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과 다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자신의 조상이나 자신이 살던 지역을 '성'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보다는 이름만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다보니 영 불편했습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대장간 집 프로키', '농부네 둘째 욘'과 같이 부르거나, '인스테인의 아들내미 오타르'나 '기우키의 딸내미 구드런'처럼 부르게 되었죠.


 이는 북유럽 지역도 비슷합니다. 다만 이 지역은 꽤 오랫동안 왕이건, 귀족이건, 백성이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름을 짓곤 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제 이야기를 보아주셨다면 아실만한, 스노리의 가족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 스튤라의 아들, 스노리. 크리스티안 크로그(1890년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Snorri_Sturluson)


 '스노리(Snorri)'는 이름만 부른 것이고, '스노리 스트룰루손(Snorri Sturluson)'이 원래의 이름입니다. 흔히 '스트를루손(Sturluson)'을 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성이 아닙니다. '스트를루손(Sturluson)'은 '스튤라의 아들(Sturla's son/son of Sturla)'이라는 뜻입니다. 북유럽 지역에서 남자의 이름에 '~~손'이라는 이름이 많이 들어가는데, 이것은 성이 아니라 '~~~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스노리의 두 형인 시그바투르와 토르두르의 경우도 역시 우리가 '성'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의 이름은 '스트를루손(Sturluson)'이 됩니다.


 그럼 스노리의 아버지인 '스튤라'는 어떨까요? 그의 이름은 '스튤라 토르다르손(Sturla Þórðarson)'입니다. 네, '토르두르(Þorður)'의 아들 '스튤라' 인거죠. 이렇다보니 그 내막을 모르는 우리는 '어? 왜 아버지와 아들이 성이 다르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여자의 경우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아이슬란드와 주변 지역의 경우는 '~~도티르(dottir)'와 같은 형태가 됩니다. 스노리의 조카딸이자 여성 스칼드였던 '스테인뵤르(Steinvor)'는 '스테인뵤르 시그바츠도티르(Steinvor Sighvatsdottir)'라고 불리죠. 네, '시그바투르'의 딸, '스테인뵤르'라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랬던 관습도 변화가 이루어져서 지금처럼 '성'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손'이라는 이름이 '성'으로 자리 잡으면서 세대가 달라져도 같은 형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아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영화배우인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이 이런 경우죠.


- 스칼렛 요한슨 (출처 : http://m.cine21.com )


 다만,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선조의 이름을 자손이 그대로 이어받거나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흔히 우리가 '헨리4세''프리드리히 2세' 처럼 '~~세'라고 부르거나 '시니어(Senior)', '주니어(Junior)'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북유럽에서도 선조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자손의 이름으로 사용했습니다. 스노리의 조카들 중 두 명이 사용하는 이름인 '스튤라(Sturla)'는 스노리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손자들의 이름이 된 거죠. 비슷한 형태로 스노리의 큰 형인 '토르두르(Þorður)'도 할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처럼요.


 여기에 주변에서 유명해진 이의 이름이라던가, 본받거나 닮기를 원하는 경우. 또는 다른 이에게 이름을 물려받는 경우 등의 일이 생기면서 동명이인이 상당히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 흔적은 지금처럼 신화나 이야기 속에 남아있고, 현대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PS-03

 '힌들라(Hyndla : 개)'는 '발라(Wala/vala/Volva)'입니다. 즉, 이미 죽은 자인 거죠. 프레이야가 오타르를 타고 한 여정은 사실 죽은 자의 길로 향하는 여정입니다. 힌들라가 프레이야에게 '왜 오타르를 여기에 데리고 왔냐'고 한 것은 죽은 자의 길에 아직 살아 있는 자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야가 마법으로 한 일이라고는 해도 일반적으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야는 오타르를 위해서 죽은 자의 길을 여행해서 힌들라를 불러냅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오타르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죠. 


#.PS-04

 이번 이야기에서도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조정을 한 부분이 있습니다.


-01. 오타르가 앙간티르와의 내기에 들어가게 된 이유에 대해 원전에서는 '죽은 자'의 재물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오타르와 앙간티르는 재물을 두고 다툼이 일어났고, 그러다가 누가 더 고귀한 혈통인지에 대해 내기를 벌여 승자가 재물을 독차지 하기로 합니다. 다만, 여기서 죽은 자가 누구인지. 두 사람과 무슨 관계인지, 그가 어쩌다 죽게 되었는지 등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저 두 사람이 죽은 자의 재물을 두고 다툼이 생겼다고 전해질 뿐이죠. 어쩌면 유산의 문제일수도 있고, 전리품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전 이것을 '유산의 문제'인 쪽으로 선택했습니다. 혈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에는 전리품보다 유산인 쪽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02. 힌들라와 프레이야가 나누는 마지막 장면은 살짝 대화의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원전에서는 프레이야가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을 하자, 힌들라가 곧바로 기억의 술을 내어줍니다. 힌들라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곧바로 내어주는 것은 뭔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대화의 부분을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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