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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Oct 23. 2023

27. 발드르의 꿈 : 하나 - 스노리의 서가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발드르, 꿈, 스노리

#. 스노리의 서가


 스노리는 은밀하고 긴밀하게 움직였다. 스노리는 정적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 자신의 심복들과 가신들을 모았다. 스노리는 이를 기반으로 동맹과 우호적인 일족들, 그리고 의회의 의원들과 접촉했다. 비록 스노리가 실각하긴 했지만, 섬에는 여전히 스노리에게 우호적인 이들이 많았다. 더욱이 시그바투르와 스튤라 시그바트손, 그들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젊은 콜베인과 기수르까지도 섬의 귀족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특히 그중 젊은 콜베인은 노골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려고 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침없이 움직여 섬의 많은 이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스노리의 귀환은 이런 귀족들에게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대하게 했다. 


 스트를룽 일족은 물론이고, 예전 동맹들이 하나씩 다시 스노리와 협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즈음 스노리의 정적들에게도 스노리가 귀환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스노리의 정적들은 이 사실에 매우 놀랐다. 자신들이 대응을 하기도 전에 이미 상당한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악에 가까웠다. 그런 정적들 중에는 스노리의 사위들이었던 젊은 콜베인과 기수르도 있었다. 이들은 '스노리의 실각'을 명분으로 권력을 빼앗았기에 더욱 기분이 착잡했다. 노골적으로 스노리의 재기를 방해하고 나서기도 힘들었고, 그렇다고 스노리의 재기를 도울 수도 없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손에 넣은 권력을 고스란히 스노리에게 가져다 바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젊은 콜베인 : 이 영감탱이가! 뒷방에나 들어앉아 있을 것이지!!


 젊은 콜베인은 대놓고 스노리를 비난했다. 그는 권력으로 자신의 예전 장인에게 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스노리의 딸과 이미 이혼을 하고, 새로운 아내를 맞이했다.) 기수르도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일단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다. 그보다 기수르는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기수르는 왕궁에서의 대응을 기대했다. 기수르는 왕궁으로부터 스노리의 귀환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들은 것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스노리의 귀환은 왕의 의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분명 왕궁에서 무언가 후속적인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건 그동안 스노리가 쌓아 올린 권력의 명분 중 하나는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궁에서는 그 어떤 소식도, 대응도 없었고, 기수르는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해져 갔다.



- 하콘 4세와 섭정 스쿠리, 14세기 삽화 중(출처 : https://snl.no/Skule_B%C3%A5rdsson)


 왕궁에서 스노리의 귀환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사실 왕은 지금 스노리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전혀 없었다. 왕의 장인이자 섭정인 '스쿠리 바드손(Skule Bardsson)'이 왕위를 노리고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스쿠리의 반란은 사실 예정되어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왕을 지금의 자리에 올린 것은 스쿠리였으나, 왕은 성장하면서 스쿠리의 그늘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심화되었고, 왕과 섭정의 거리는 긴눙가가프가 들어갈 만큼 크고 깊어졌다. 왕은 왕대로, 섭정은 섭정대로 귀족들을 포섭하고, 각자의 세를 불리는데 혈안이 되었다. 지금의 왕이 왕좌에 오르기까지, 왕국은 수대에 걸쳐 왕권다툼과 내전이 이어졌다. 지금의 왕이 왕좌에 오르며 잠시 쉬어나가 싶었던 내전에 다시 불이 붙었다. 섭정인 스쿠리의 세력은 매우 강했고, 왕은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하며 섭정에 맞섰다. 당연히 섬의 권력구도나 스노리는 왕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지금 당장 자신의 권력과 목숨이 니블헤임으로 주소지를 옮기느냐, 마느냐의 상황에서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노리의 귀환이 마냥 성공적이진 않았다. 정신을 차린 스노리의 정적들도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스노리가 왕의 허락 없이 귀환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명분이 되어주었다. 그들은 스노리에게 반역자라 낙인을 찍으려 했다. 그런 정적들의 전면에 나선 것은 예전 사위였던 젊은 콜베인이었다. 젊은 콜베인은 노골적으로 스노리에게 불쾌감을 드러냈고, 그를 무시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멋대로 모든 일을 처리했다. 여기저기에서 땅과 재산을 두고 다툼을 벌였다. 젊은 콜베인과 다툼으로 벌인 상당수는 스트를룽 일족이나 그 협력자들, 그리고 교회였다. 왕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을 알게 된 기수르도 결국 젊은 콜베인에 합세했다. 기수르 역시 콜베인의 적대자들과 많은 곳에서 다툼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스노리가 '시그바투르'와 '스튤라 시그바트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 하자, 이들 사이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국 젊은 콜베인과 기수르는 병사를 일으켜 스노리를 공격하려고 했다. 의회가 열리는 동안 그를 공격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사전에 탄로가 났고, 스노리는 의원들과 함께 주교의 교회로 피신했다. 젊은 콜베인과 기수르는 멀리서 교회를 포위만 할 뿐, 공격할 수는 없었다. 젊은 콜베인이 교회와 갈등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영지에 있는 작은 교회였을 뿐. 주교가 있는 교회는 공격할 수 없었다. 이 교회에 병사들을 진입시킨다는 것은 곧 온 유럽의 교회를 적으로 돌린다는 의미다. 젊은 콜베인에게 신앙심 따윈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스노리만으로도 벅찬 상대인데 굳이 적을 더 만들 필요는 없었다. 결국 양측은 협상을 벌였다. 젊은 콜베인과 기수르는 병사를 해산시켰고, 스노리와 의원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해결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이들 사이에서 본격적인 정치적 쟁탈이 시작되었다. 섬은 섬의 권력을 둔 '이전투구(泥田鬪狗 : 진흙탕 속 개싸움, 명분 없이 꼴사납게 싸우는 모습)'의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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