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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Oct 24. 2023

27. 발드르의 꿈 : 둘 - 발드르의 악몽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발드르, 꿈, 악몽

#. 발드르의 악몽


 오딘의 적장자, '발드르(Baldr : 영광, 용기, 군주)'는 신과 인간은 물론 신들에게 적대적인 거인에 이르기까지 세상 만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름다운 신이다. 그의 얼굴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못해 찬란하게 빛이 났고, 그의 머릿결은 가을의 황금 들판처럼 아름답고 탐스러웠다. 그는 이런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모든 신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를 '광명(光明, 빛)'의 신이라 불렀고, '선(善)'의 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한, 발드르는 현명했고, 말솜씨도 유창했다. 단순한 말장난이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이 아닌, 모든 이가 스스로 수긍하여 그의 말에 따를 정도로 세상 제일가는 웅변가였다. 발드르는 아버지인 '오딘(Odinn : 분노, 광란)'과 어머니인 '프리그(Frigg : 사랑하는)'의 장점만을 물려받은 신중의 신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이렇게 세상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기 시작했다. 


- 광명의 신, 발드르. 요하네스 게르트 그림(1888.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aldr)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깨끗하게 빛나는 저택이 밤하늘의 별빛에 감싸여 있었던 어느 날 밤. 이곳 '블레이다블리크(Breiðablik : 넓어지는 빛)'은 아홉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정결한 곳으로 거짓되거나 불순한 자는 결코 발을 디딜 수도 없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곳은 발드르와 '난나(Nanna : 대담한, 용감한)', 아들인 '포르세티(Forseti : 주재자, 법의 신)'를 비롯한 가족들과 선하디 선한 시종들이 사는 곳이고, 언제나 평온한 곳이었다. 그러나 저택의 주인인 발드르는 오늘도 편안한 밤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잠이 든 그는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연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표정에서는 이제껏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발드르에게서 밤의 평화를 빼앗아 간 것은 벌써 며칠째 쉼 없이 이어지는 악몽이었다. 


 잠이 드는 동안 발드르는 자신도 알 수 없는 깊고 무거운 어둠 속을 헤맸다. 이 어둠 속에는 하늘도, 대지도.. 단 한 줌의 빛조차 없었다. 아는 이 하나도 없는 어둠 속을 발드르는 홀로 계속 걸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걸어야 한다는 느낌에 이끌려 발드르는 그저 계속 걸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이 깊고 무거운 어둠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벗어날 수도 없었다.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짧게.. 길게.. 그 사이사이로 어떤 박자도 없이 비명소리가 발드르의 주위를 맴돌았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소리와 추위에 발드르는 온몸을 떨었다. 그 모든 것이 그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공포(恐怖). 그것은 공포였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중얼거림으로 변했고, 발드르의 걸음은 어느덧 두려움에 떠밀려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달려도 이 중얼거림과 어둠은 벗어날 수 없었고, 그것은 발드르의 곁을 맴돌며 서서히 몰려왔다. 발드르는 더 이상은 달릴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쓰러졌고, 순간 중얼거림이 멈추었다. 발드르가 고개를 드는 순간, 살을 찢는 듯한 고통과 굉음이 그를 집어삼켰다. 발드르는 비명을 질렀다. 얼마나 질렀는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비명을 질러댔다. 어느새 모든 소리가 멈추고, 발드르에게는 오직 자신의 비명소리만 가득했다. 발드르는 겁에 질린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이 고요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눈을 감았다가 떴다. 발드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침실이었다. 발드르는 양손으로 몸을 감싸 안으며 벌벌 떨었다. 난생처음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 이는 신으로서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부류의 것이었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더욱 생생하게 떠오를 뿐. 발드르는 부드러운 손길이 자신의 어깨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내인 난나가 애처로운 눈으로 발드르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 나.. 나.. 또.. 꾸었어. 그.. 꿈을..]


 발드르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난나는 그저 남편을 끌어안고 그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이것이 지금 난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벌써 며칠째일까. 발드르는 한동안 잠다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엇이 남편을 이리도 괴롭게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남편의 두려움을 없애줄 수 있을까? 난나로서는 그 어느 하나 알 수 없었다. 그저 두려움에 떠는 남편의 어깨를 감싸주는 것 이외에는.


[.. 너무도.. 어두웠어.. 나는 걷고 있었지.. 아.. 아무도 없었어.. 마치 긴눙가가프처럼.. 끝도 시작도 보이지 않았어.. 추워.. 추웠어.. 너무도.. 그때.. 그때!... 소리가 들렸어.. 마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은 비명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나에게 다가왔어.. 무서웠어.. 정말.. 정말 무서웠어..!]


발드르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 발드르의 악몽


[난 뛰었어.. 무서워서..! 너무도 무서워서..!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쳤어.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도 없었어.. 아무리 당신을 불러도.. 아버지를 불러도.. 토르 형을 찾아도.. 아무도 없었어.. 너무도 지쳐서.. 나.. 난... 난...!]


마치 지금도 꿈속에 있기라도 한 듯이 발드르는 더욱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그의 얼굴이 마치 동사자의 그것처럼 푸른색으로 질려갔다. 발드르는 난나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살려줘! 난나! 무서워! 너무 무서워! 난나! 아흐흑..!]


 발드르는 공포에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평소의 고귀함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두려움과 공포에 찌든 가련한 모습만이 남았다. 난생처음으로 발드르가 울부짖었다. 발드르는 난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정말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공포로 인해.. 발드르는 하늘을 우러러 단 한 점의 부끄러움도 단 한 점의 잘못도 그 어떤 비난받을 일은 결코 한 적이 없다. 그런 그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난나는 처음으로 두려워하는 남편을 보았고, 처음으로 남편의 눈물을 보았다. 난나는 떨리는 손으로 발드르를 더욱 감싸 안았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품듯 최선을 다해 따뜻한 손길로 발드르를 감싸 안았다.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는 남편을 도울 그 어떤 힘도 없었다. 그녀는 남편을 도와주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그리고 너무도 사랑하는 남편이 당하는 고통으로 그녀 역시 비탄과 슬픔에 젖었다. 자신의 품에서 나마 평안함을 찾기를 바라며 그녀는 남편을 감싸 안았다. 이 가련한 부부는 그렇게 아침의 태양이 뜰 때까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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