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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Oct 25. 2023

27. 발드르의 꿈 : 셋 - 난나와 프리그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발드르, 난나, 프리그

#. 난나와 프리그


 다음날. 난나는 황급히 시어머니인 '프리그(Frigg : 사랑하는)'를 찾아갔다. 난나로서는 더 이상 발드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발드르의 악몽은 살면서 한 두 번쯤 꿀 수도 있는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인 발드르가 악몽을 꾼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혹시나 이것이 발드르에게 일어날 나쁜 일을 예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난나의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했다. 난가 프리그의 방에 도착했을 때, 프리그는 이미 일어나 아침 몸단장 중이었다. 프리그는 신들의 어머니로서 여신 가운데 프레이야와 함께 최고의 미녀였으며, 순백의 하얀 망토를 두른 가정과 출산의 여신이었다. 프리그는 이른 아침부터 방문한 난나를 매우 반갑게 맞이했다.


 [아니, 우리 아가가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일까? 어서 오렴. 난나.]

 [어머니.. 어머니.. 흑흑.]


  난나는 프리그를 보자마자 그녀의 앞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깜짝 놀란 프리그가 시녀들과 함께 서둘러 난나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아니, 아가. 왜 이러니?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어머니.. 그것이.. 그것이 제 남편에게서 잠을 빼앗아 갔답니다. 흑흑..]


  난나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프리그를 한동안 쳐다본 뒤에야 간신히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프리그에게 지난 며칠간 벌어진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나의 이야기를 들은 프리그는 몸단장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슬픔에 빠져 눈물을 흘렸다. 프리그는 신들의 어머니로서 어렴풋하게 자신의 아이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발드르를 낳아 처음 얼굴을 보았을 때, 프리그는 이미 그의 운명을 느꼈다. 정확한 것을 알 수는 없지만, 그에게 무언가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느꼈었다. 첫 아이를 품에 안은 순간 느낀 기쁨만큼이나 당혹감을 느꼈던 프리그였다. 그래서였는지 자신의 적장자를 향한 프리그의 사랑은 각별하다 못해 애절했다. 다행히도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자라는 발드르를 보면서 프리그는 안도했다. 발드르는 너무도 아름답고 완벽한 신이었기에 오랜 시간이 흐르며 프리그는 그런 비극의 운명을 까맣게 잊게 만들었다. 


- 난나. 헤르만 빌헬름 비센 작(1857.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Nanna_%28Norse_deity%29)


 프리그는 몸단장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난나와 함께 남편인 오딘에게로 향했다. 프리그와 난나는 오딘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나뿐인 적장자, 하나뿐인 남편을 비극의 운명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프리그와 난나의 이야기를 들은 오딘은 너무도 놀라 자신도 모르게 '흘리드스캴프(Hliðskjalf : 높이 열린 곳, 오딘의 옥좌)'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딘이 느끼는 놀라움과 당혹감은 사실 프리그나 난나보다도 더욱 크고 깊었다. 악몽을 꾸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완벽하다고 불리는 발드르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딘의 날카로운 육감은 악몽의 뒤에 서있는 거대한 적의를 느낄 수 있었다. 운명. 신조차도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무리 신이어도 결코 이길 수 없는 것. 오딘은 오래전 예언을 떠올렸다. 그것은 오딘과 신들만이 아닌, 이 세상 모든 것과 관련된 예언이었다. 그러나 지금 오딘은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아니, 낼 수 없었다. 그것은 너무도 크고 무서운 일이었으며, 오딘에게 그것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 오딘은 그것을 인정할 수도 없었고, 인정할 생각도 없었다. 오딘은 우선 현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오딘은 황급히 아스가르드에 있는 모든 신들을 '발할라(Valhalla : 죽은 전사들의 전당 또는 오딘의 전당)'로 소집했다. 오랜 평화에 젖어있던 신들도 갑작스러운 소집에 놀라 서둘러 발할라로 모여들었다. 신들은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웅성거렸다. 그때 침울한 표정의 오딘이 입을 열었다. 


[들으라. 나의 형제들이여. 나의 아이들이여. 갑작스러운 소집에 놀랐을 것이오. 허나, 그만큼 일이 급하여 어쩔 수가 없었소. 나, 오딘이 그대들의 지혜를 필요로 하오. 그것은 나의 아들이자, 여러분의 형제인 발드르의 일 때문이오.]


 오딘이 심각한 표정으로 발드르에게 관련된 일이라 말하자, 소란했던 신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때 오딘이 가만히 손을 들었다. 그러자 난나에게 부축을 받으며 발드르가 홀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는 신들은 곧바로 경악에 휩싸였다. 그곳에는 언제나 광채에 감싸여 있던 발드르가 아닌 아름다움도, 빛도 잃은 초췌한 모습의 발드르가 마치 시체처럼 걸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나는 남편을 홀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오딘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나, 여러 신들에게 그동안 발드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말해다오.]


 난나는 천천히 신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손과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에도 난나는 천천히 그동안 발드르가 어떤 악몽에 시달렸고, 그가 얼마나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설명을 마친 난나는 천천히 신들을 돌아보았는데, 그녀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지금 그이는 너무도 괴로워하고 있어요. 제발.. 여러분의 지혜를 모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제발... 흑흑..]


 오딘의 곁에 앉은 프리그도 입을 가린 채 슬픔에 젖어있었다. 모여있는 신들은 저마다 침울함과 비통함에 잠겨 마음 아파했다. 여신들은 눈물을 흘렸고, 일부 여신들은 난나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부둥켜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신들에게 발드르는 그저 오딘의 적장자라던가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신이란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가장 완벽한 존재로 세상 모든 것의 위에 군림하고 있다. 신들에게 발드르는 신들의 영광, 신들의 광영의 시대를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다. 신들의 중에서도 가장 완벽에 가까운 신, 발드르. 


 그런 그가 두려움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죽음의 공포에 빠졌다는 것은 신들에게는 자신들의 영광이, 자신들의 빛나는 시대가 죽음과 마주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토르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이 죽음의 공포에 괴로움에 빠졌다는 말에 발을 구르며 탄식했다. 헤임달은 침통한 가운데에서도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에 잠겼다. 그만큼 발드르는 모든 신들은 물론 인간과 요정들, 심지어 거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존재였다. 그는 생명 그 자체가 지니는 빛나는 것 그 자체였기에 발드르만큼 모든 존재에게 완벽할 만큼의 사랑을 받는 존재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침통한 가운데 아주 길고 긴 회의가 이어졌다. 신들은 발드르를 구하기 위해 많은 의견을 쏟아냈지만, 아쉽게도 그 어느 것도 발드르를 구원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오랜 시간 회의가 진행되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나오지 않자 오딘은 도저히 가슴이 답답해 그대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오딘은 잠시 회의를 중단하고 쉬는 시간을 갖게 했다. 오딘은 회의장으로 빠져나와 곧바로 슬레이프니르를 찾았다. 슬레이프니르에 오른 오딘은 어딘가를 향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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