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드 단테 Feb 05. 2024

28. 발드르의 안전 : 하나 - 스노리의 서가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발드르, 운명, 스노리

#. 스노리의 서가


 이런 모의를 하기에는 모든 것이 어울리지 않았다. 창으로는 한낮의 햇살이 따뜻하게 들어왔고, 그들이 둘러앉아 있는 곳은 식탁이었다. 이미 식어버린 그들의 단출한 식사는 식탁의 구석으로 밀려났다. 식탁의 가운데에 양피지 두루마리가 펼쳐졌다.


 모두 말이 없었다. 기수르는 다른 세 사람의 얼굴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콜베인은 가만히 술잔을 만지작거렸는데, 콜베인은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기수르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조카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크래잉의 표정이 놀람에서 결심으로 변했다. 반면, 오름의 표정은 점점 더 하얗게 질려버렸다. 크래잉이 먼저 침묵을 깼다.


크래잉 : 전 외삼촌을 따르겠습니다.


오름이 놀란 눈으로 자신의 형을 보았다. 이내 기수르의 시선이 느낀 오름이 몸을 떨며 말했다.


오름 : 전 못합니다! 전 저의 정당한 권리를 원하는 것이지, 아버지를 죽이려는 게 아니에요!

크래잉 : 그 권리를 위해서야! 어머니의 유산을 그 놈팽이와 나누자고?!


크래잉이 동생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오름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오름 : 아버집니다! 피가 섞이지는 않았어도, 우리를 키워준 아버지라구요!


오름은 형에게서 외삼촌인 기수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오름 : 전 빠지겠습니다! 제가 외삼촌께 도움을 부탁드린 것은 이런 게 아닙니다! 이런 협잡질에 전 동의할 수 없어요!


 오름은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 곧바로 그곳을 떠났다. 크래잉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화를 냈지만, 기수르는 오름의 행동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세 사람이 남은 식탁은 다시 조용해졌다. 콜베인이 술잔을 들어 남은 술을 들이켰다. 술잔 속 '미드(벌꿀주)'가 너무 미지근해져서 콜베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콜베인이 식탁 위로 술잔을 내려놓은 뒤, 몸을 일으켰다.


콜베인 : 그러니까.. 이건 결국 집안일이란 거지? 그럼, 굳이 내가 여기 있을 필요는 없지.

기수르 : 콜베인, 자네도 빠질 텐가?


기수르가 콜베인을 노려보았다. 콜베인은 기수르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콜베인 : 뭐, 우리 사이니만큼 모른 척은 해줄게.

기수르 : 왕의 명령이다.


기수르가 더욱 매섭게 콜베인을 노려보았지만, 콜베인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콜베인 : 왕이라.. 글쎄? 난 내 위로 누군가를 모신 기억은 없어서 말이야. 내가 그 왕이란 자의 명령을 왜 따라줘야 하나?


콜베인은 기수르를 보며 피식거린 뒤, 자리를 떠났다. 기수르가 양손을 움켜쥐었고 팔이 떨렸다.


기수르 : 저 뱀 같은 놈!

크래잉 : 외삼촌, 이제 어떻게 하죠?


크래잉이 겁먹은 표정이 되어 기수르에게 물었다. 그럴 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한 것은 보통의 모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노리 암살 모의'였다. 시작은 스노리의 후처인 '할베라'의 죽음이었다. 그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녀의 유산을 두고, 그녀의 아들인 크래잉과 오름은 양아버지인 스노리를 상대로 상속다툼을 벌였다. 그들은 자신들만으로는 이 상속다툼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상속다툼의 조력자가 필요했고, 외가 쪽 친척인 기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기수르는 조카들을 돕기로 했지만, 상대는 막강한 정치력을 지닌 스노리였다. 방법을 고민하던 기수르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난관을 돌파할 기회를 얻었다. 때마침 왕의 밀서가 기수르에게 전해졌다. 밀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스노리를 죽여라.]


 왕은 스노리의 죽음을 원했다. 그것을 기수르에게 명했다. 기수르의 마음도 이미 왕궁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기수르는 권력을 잡기 위해 자신도 왕의 힘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예전 스노리가 그랬던 것처럼. 왕의 밀서는 기수르에게 명분이 되었다. 그것을 통해 기수르는 실리도 함께 얻을 것이다. 왕의 인정을 받아 섬의 지배자가 될 것이고, 조카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게 될 것이다. 기수르는 콜베인과의 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그를 끌어들이려 했다. 스노리가 복귀한 이후, 콜베인과 기수르는 스노리의 정치력에 고전했다. 손에 들어왔다고 생각한 권력은 다시 스노리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콜베인은 뱀처럼 잔인하고, 교활하다. 비록 이번 모의에 직접 참가하지 않는다고 해도, 콜베인은 이번 일을 묵인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콜베인은 스노리를 제거하고, 기수르를 경계할 수 있으니까. 분명 스노리가 제거된 다음에는 기수르와 콜베인의 대립이 시작될 테지만, 적어도 지금은 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수르는 오름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오름의 유약한 성격상, 어차피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또한 오름은 이 일을 발설하지도 못할 것이다. 기수르가 아는 오름은 겁쟁이다. 아마도 지금 즈음 돌아가는 말 위에서 오줌이나 지리지 않았으면 다행일 것이다. 기수르에게는 크래잉이 함께하고 있으니, 할베라의 유산과 관련한 명분도 확보되었다. 기수르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이어나갔다. 자신의 부하들 중에서 심복을 골라내고, 시기와 장소를 선별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이 위대한 과업을 달성해야 한다.


- 모의는 은밀하게(사진 출처 : https://www.history.com/shows/vikings/pictures)



#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이야기, #북유럽, #오딘, #토르, #단테, #norsemyth, #dante, #스노리, #기수르, #젊은콜베인, #클래잉, #오름, #유산다툼, #상속다툼

매거진의 이전글 27. 발드르의 꿈 : 다섯 - 운명의 그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