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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Feb 06. 2024

28. 발드르의 안전 : 둘 - 신들이 내놓은 해법은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발드르, 운명, 로키, 프리그

#. 신들이 내놓은 해법은


 오딘이 저승으로 달려가는 사이, 휴식을 마친 신들은 다시 발할라에 모였다. 오딘의 부재는 신들을 잠시 당황하게 했지만 신들은 회의를 계속했다. 이런 급박한 시기에 오딘이 자리를 비웠다는 것은 그 나름의 확실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신들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오딘마저 없으니 회의는 더더욱 '지지부진(遲遲不進 : 매우 더뎌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긴 회의가 이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신들은 한 가지 의견에 모두 동의했다. '발드르의 악몽과 공포의 원인이나 그 근원을 알 수 없으니 근본적인 대책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신들은 비통했지만 이것은 지금의 자신들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당연히 프리그와 난나 그리고 발드르의 실망감은 컸다.


 하지만 이것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신들의 의견에 방향성이 잡히기 시작했다. 자고로 원인을 파악하거나 제거하기 힘들다면, 그에 대한 대응법을 만드는 것이 최선인 법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 해도 대응할 방법이 있다면, 넋 놓고 당할일도, 두려워할 이유도 되지 않는다. 신들은 발드르의 안전을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방향성이 정해지니 전보다도 더 많은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프리그와 난나 그리고 발드르는 다시 기운을 얻었다.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남편이 그리고 자신이 다른 신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발할라에 모인 모든 이들이 발드르를 위해 자신의 모든 지혜를 모으고 있던 그때. 이 모든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단 한 명이 그 자리에 있었다. 바로 거짓과 기만의 신이자, 사기와 질투의 신인 '로키(Loki : 의미불명)'였다. 갑작스러운 회의에 소집되어 한 자리를 차지한 로키도 겉으로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척했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이거 이거.. 완전히 도떼기시장이구만. 아주 지랄들이 나셨어.)]


로키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았고, 전혀 쓸데없는 짓이라고 여겨졌다.


[(하아.. 잘 자는 사람 깨워다 놓고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고작 애새끼가 무서운 꿈을 좀 꿨다고 이게 무슨 이 난리람? 잠을 못 자면 수면제를 멕이던가.. 마누라가 잘 챙겨주면 되지 뭘.. 저 나이엔 악몽도 꾸고 그런 거 아닌가? 그래야 크는 거잖아? 아.. 발드르는 다 컸나? 아니지..? 애새끼가 맞지. 무서운 꿈을 꿨다고 마누라에, 애미, 애비에게 쪼로로 달려가는 걸 보면 아직 애새끼 맞네.)]


 로키는 신들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는 척하며 발드르를 바라보았다. 발드르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신들을 바라보았는데, 신들의 사랑을 느껴서인지 발드르의 표정은 조금 밝아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로키는 다시금 속이 뒤틀렸다.


[(빛의 신은 무슨.. 허우대만 멀쩡하고 빛나면 뭐 해? 속은 저렇게나 허약해 자빠졌는걸? 저딴 게 후계자라니.. 하~ 나이! 기도 안 차는구먼.)]


 그때 로키와 눈이 마주친 발드르가 빙긋이 미소를 보냈다. 발드르의 미소에 깜짝 놀란 로키가 깊은 고민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발드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금 생각에 잠긴 척 고개를 돌렸다.


[(휴, 어린놈이 눈치는 빨라서.. 쳇.. 아.. 근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그만 집에 가서 눕고 싶다..)]


 로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는데 토르가 로키를 보며 물었다.


[로키, 뭔가 좋은 생각 없어? 막상 일이 닥치니 이거 평소보다도 머리가 더 안 돌아가네.]

[뭐.. 나라고 별수 있나?]


로키가 당황함을 숨기고 대답했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토르의 눈빛이 너무도 절실해 로키는 더욱 당황했다. 로키는 얼결에 아무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입을 열었다.


[음.. 음.. 정 그렇다면 발드르를 해치지 말라고 통사정이라도 해볼까? 칼이라던가, 도끼라던가.. 뭐 그런? 아니면 뭐.. 돌멩이라던가..]

[아니..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하아..]


로키의 대답을 들을 토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곁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헤임달이 무언가 생각을 곱씹더니 손바닥을 치며 소리쳤다.


[해치지 말아 달라.. 칼.. 도끼... 돌멩이.. 아! 그렇지!]


- 신들의 회의, 버질 솔리스의 판화(출처 : : https://en.wikipedia.org/wiki/Divine_Council)


토르가 놀라 헤임달을 보며 물었다.


[뭐야? 헤임달, 뭔가 생각이 난 거야?]

[네, 형님! 로키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해줬어요!]


 헤임달의 말에 토르와 로키 모두 깜짝 놀랐다. 로키는 그 특유의 장난 섞인 표정으로 헤임달을 바라보았고, 토르는 그 표정에 질겁을 하며 헤임달에게 되물었다.


[그게 뭔 소리야? 로키의 헛소리가 무슨..]

[아니에요. 형님, 생각해 보세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발드르가 저러는 건 죽음에 대한 공포인 것 같아요. 우리가 그 공포 자체를 없애는 건 몰라도.. 죽음을 막을 수는 있지 않을까요? 물건이나 재해, 병.. 이런 건 우리 선에서 처리가 가능할 것 같은데요?]


 헤임달의 말을 들은 토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전혀 가망성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는 전혀 가망성이 없는 이야기지만, 그들은 신이었다. 인간이 아닌 신이라면,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신들이라면 의례 그들의 가호를 받는 것들이 있다. 그야말로 작은 돌멩이에서 칼과 도끼 같은 물건은 물론 온갖 재해와 병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귀한 것이건, 하찮은 것이건.. 어지간한 것들은 신들과 관련성을 지니기 마련이었다.


[.. 그럼 세상 모든 것들에게 발드르의 안전을 보장하게 만들자? 그거지?]

[그렇죠! 그겁니다. 세상 만물에게 발드르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서약을 받아내는 거죠!]


 토르와 헤임달의 눈이 빛났다. 두 신은 서둘러 다른 신들에게 자신들의 방법을 알렸다. 잠시 회의장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저마다 이 의견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 것인가? 그렇다면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그 긴 침묵을 깬 것은 프리그였다.


 [좋아요. 내가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나의 아들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말겠어요!!]


 발드르와 난나 그리고 모든 신들이 놀라움과 경애로움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프리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굳건하고 강한 의지가 느껴졌고, 더없이 아름다운 빛이 그녀를 휘감고 있는 것 같았다. 여성으로서는 더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프리그, 그녀에게 아들에 대한 사랑이 더해지며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이 빛났다. 프리그의 결의에 찬 모습은 곧 다른 신들의 마음에도 불을 지폈다. 회의장은 다시 시끄럽게 변했다.


[자네, 자네가 가호를 내리는 것들이 얼마나 되지?]

[잠깐만! 잠깐만! 생각 좀 해보고.. 하나.. 둘.. 아.. 그리고.. 그 녀석도 있고.. 아...]

[아, 잠깐! 기다려봐. 이봐! 거기 발키리! 가서 뭐 적을 것 좀 가져와!]


 회의장 여기저기서 신들의 목소리와 외치는 소리가 가득했다. 신들은 곧바로 자신들이 아는 세상 모든 만물에 대한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만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이 얼마나 되며, 그들이 어떤 모습이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 오딘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다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니, 오딘이라 하더라도 그들 모두에 대한 정보를 다 열거하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오딘도 부재중.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오딘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들은 자신들이 아는 한 모든 만물의 목록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신들의 뜨거운 애정에 프리그와 난나, 그리고 발드르는 눈물을 흘렸다. 프리그는 당장에라도 발할라를 뛰쳐나갈 기세였는데, 시녀인 '풀라(Fulla/Volla : 충만한, 풍요로운)'가 그런 프리그를 말렸다.


[프리그님! 잠시만요! 잠시 저를 보아주세요.  언제나 침착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건 프리그 님이시잖아요. 그러니 잠시만 진정해 주세요. 우선은 떠날 차비를 먼저 하시죠. 다른 신들이 목록을 만드실 시간은 드려야 하니까요.]


풀라의 이야기를 들은 프리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회의장을 둘러보았다. 신들이 여기저기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목록이 만들어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풀라.. 시간이. 시간이 너무 없을지도 몰라.]

[먼저 첫 번째 목록을 받아서 출발하고, 나머지 목록은 여행을 하면서 받으면 됩니다. 그렇지? '그나(Gna : 의미불명)', '린(또는 흘린, Lin/Hlin : 지키는, 보호하는)'?]


풀라가 고개를 돌려 곁에 있는 여신들을 보았고, 그나와 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보좌하는 세 여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프리그도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런 프리그를 보며 풀라가 다시 말했다.


[우선 저택으로 가셔서 여행 준비를 하시지요. 그사이 준비를 마치시는 대로 출발하실 수 있도록 제가 준비해 두겠습니다.]


 프리그는 발드르와 난나를 한 번 바라본 뒤,  '펜살리르(Fensalir : 늪지의 저택)'로 향했다. 이때부터 풀라는 최대한 발 빠르게 움직였다. 프리그를 펜살리르로 데려가 여행준비를 시키는 한편, 프리그를 보좌하는 다른 여신들과 시녀들에게도 각자의 맡을 역할을 정해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어수선하게 모여있던 신들에게도 나름의 질서와 체계를 갖추도록 요청했다.


[다른 시녀들은 여신님의 복장은 최대한 편하고, 가볍게 준비해 주세요. 과분한 짐은 필요 없어요.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조달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그나! 너는 여신님의 경호를 담당해야 해. 첫 번째 목록이 나오는 대로 동선을 짤테니, 너는 그 동선에 맞춰서 위험요소를 배제해 줘. 린! 너는 연락책이야. 우리가 여행을 하는 동안 추가된 목록과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는 건 너의 역할이야! 알았지? 자, 모두들 앞서 말해준 대로 움직여요! 시간이 없어요!


 여러 신들께서는 우선 아스가르드에서 가까운 쪽에 있는 것들부터 목록을 만들어 주세요. 아스가르드를 나가는 동시에 시작할 수 있도록이요! 토르 님! '서장자(庶長子: 서자들 중 맏이. 오딘의 적장자는 발드르지만, 제일 큰 아들은 토르다.)'시니 신들의 조율을 맡아주세요. 헤임달 님! 헤임달 님께서는 '히민뵤르그(Himinbjorg : 천상의 성, 아스가르드 성문 옆에 있는 헤임달의 저택)'로 가셔서 첫 번째 목록이 나오는 대로 동선을 정리해 주세요. 그리고 이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신들 중에는 풀라보다 지위가 높은 신들도 많았지만,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풀라의 지시에 따랐다. 그만큼 상황은 급했고, 풀라의 지시는 정확했다. 토르는 곧바로 신들을 각각의 '신성(神性 : 신의 성품 또는 신의 성격)'에 맞게 나누어 목록을 작성하게 했다. 헤임달은 부관을 회의장에 남겨 목록이 완성되는 대로 가져오게 하고, 자신은 히민뵤르그로 달려가 주변을 살펴 효과적인 동선을 고민했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풀라는 발드르와 난나를 잊지 않았다. 그녀는 발드르와 난나에게 다가가 둘의 손을 잡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제가 곁에서 모실 겁니다. 반드시 여신님을 도와서 이번 일을 성공시키겠습니다.]

[풀라..]

[부탁드려요. 풀라 님!]


 발드르와 난나는 풀라의 손을 두 손으로 더욱 강하게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풀라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가까스로 나오려는 눈물을 멈추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풀라는 발드르와 난나와 인사를 마친 뒤, 곧바로 펜살리르를 향해 달려갔다. 풀라는 달리는 걸음 하나하나에 결의를 다졌다. 세상 만물에게 발드르의 안전을 보장받는다. 단순해 보이는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풀라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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