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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Feb 08. 2024

28. 발드르의 안전 : 넷 - 형과 동생, 그리고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발드르, 호드, 프리그

#. 형과 동생,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


 아들을 향한 프리그의 정성과 사랑이 효과를 보인 것인지, 발드르는 그날부터 더 이상은 악몽을 꾸지 않았다. 악몽의 밤이 사라지자, 발드르는 다시 예전처럼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발드르의 회복은 신들의 희망이자 상징이 되었다. 신들은 미소를 되찾았고, 이제 프리그가 건강해지는 것을 바람과 동시에 어서 오딘에게도 이 좋은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신들의 대부분은 오딘이 이미 돌아왔다는 것도, 그가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헤임달만이 오딘의 행방을 알고 있었지만, 그저 묵묵히 아버지 오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오딘이 그곳으로 향했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기에. 


 한편, 오늘도 발드르는 아내인 난나와 함께 펜살리르를 향했다. 발드르는 지친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는 가장 좋은 약은 건강해진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발드르와 난나는 매일 더욱 아름답게 몸을 치장하고, 제일 좋은 옷을 입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프리그에게 보이고 싶었다. 펜살리르에는 저택의 담을 넘어 길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들이 다녀간 흔적들로 가득했다. 온갖 꽃과 보석, 귀한 것들과 '산해진미(山海珍味 : 산과 바다에서 나는 맛있고, 진귀한 음식)'로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모두가 프리그의 쾌유를 비는 아름다운 마음들이었다. 발드르와 난나는 더욱 흐뭇한 마음이었다. 이처럼 신들에게 사랑을 받으니 더없이 행복했다. 그렇게 선물로 가득한 길을 따라 저택의 대문으로 향하던 발드르는 저택의 대문 앞에서 어색하게 서있는 한 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한 손에는 길고 가느다란 지팡이를 짚었고, 다른 한 손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한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그는 맹인의 신이자, 발드르의 쌍둥이 동생 '호드(Hoðr : 싸움)'였다. 


[호드!]


그를 발견한 발드르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달려갔다. 발드르의 목소리를 들은 호드도 만면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발드르가 다가오는 쪽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발드르는 자신도 모르게 호드를 끌어안았다.(아무리 반가워도 원래는 시각장애인을 이렇게 갑자기 끌어안으면 안 됨) 호드는 놀라지도 않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 형인줄 알았어. 멀리서 형이랑 형수님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거든.]

[호드! 이렇게 보는 게 얼마만이니? 대체 그동안 얼굴도 잘 안보여주고, 뭐가 그리 바빴던 거야?]


 발드르가 동생의 어깨를 붙잡고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말했다. 호드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 하.. 미안. 내가 좀.. 하하..]


두 형제가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사이, 난나도 호드의 곁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호드 도련님, 오랜만에 뵙네요.]

[아, 형수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난나의 목소리에 호드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발드르가 호드의 어깨를 치며 장난스레 말했다. 


[이 녀석은 당신 목소리만 들리면 이렇게 얼굴이 빨갛게 되더라? 너도 난나에게 반했구나? 후후!]

[아, 혀.. 형은 무슨 말을...]


호드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발드르가 더욱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크게 웃었다. 


[하하! 농담이야! 농담! 언제나 순진하다니까!]

[형은 이제 건강해진 거야?]


호드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발드르가 양팔을 들어 보이며 특유의 햇살 같은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어머니께 문안드리러 온 거지?]

[으.. 응.]


순간 호드가 가만히 고개를 내렸다.


[자, 같이 들어가자.]


 발드르가 호드의 어깨를 끌었지만 호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호드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난.. 그냥 여기 있을게. 아무래도 어머니를 뵙는 건.. 조금 더 나아지시면.. 그때가 좋을 것 같아.]


 순간 밝았던 발드르와 난나의 표정도 안타까움으로 굳어져버렸다. 그것은 발드르와 호드, 그리고 프리그.. 이들 모자간의 미묘한 관계 때문이다. 발드르와 호드는 오딘과 프리그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발드르는 오딘과 프리그의 모든 장점을 물려받으며 태어났다. 태양만큼 밝고 환한 빛이 그를 감쌌고,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과 외모도 물려받았다. 그와 달리 호드는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볼 수 없었다. 호드도 발드르에 뒤지지 않을 만큼 능력과 외모를 물려받았으나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매우 큰 불행을 가지고 태어난 것과 같았다. 아름답고 자존심이 강한 신들의 여왕, 프리그에게 앞을 보지 못하는 아들은 달갑지 않았다. 프리그는 자신이 다른 그 어떤 여신보다도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프리그에게 앞을 보지 못하는 호드라는 존재는 이른바 옥에 티와 같았다. 게다가 프리그는 자신이 낳은 첫 아이가 쌍둥이 아들이라는 점도 못마땅했다. 프리그가 낳은 첫아들은 오딘의 후계자가 된다. 그런 아들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면.. 후계자를 두고 다툼이 일어날 여지가 너무나도 컸다. 여기에 형으로 태어난 발드르가 너무도 아름답고 그 어떤 신보다도 완벽하다 보니 자연스레 프리그의 관심과 애정은 호드보다 발드르에게로 집중되었다. 


 비록 어머니인 프리그의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호드는 결코 모자란 신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어떤 신에게도 뒤지지 않는 힘과 용기를 지녔다. 비록 앞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어떤 싸움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외모에서도 능력에서도 오딘의 그 어떤 아들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호드는 신과 인간 모두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인정하는 훌륭한 신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지닌 호드였지만,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과 그로 인해 프리그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호드에게는 커다란 족쇄였다. 호드는 자신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탓이라 생각했고, 이로 인해 어머니인 프리그의 걱정거리가 된다고 믿었다. 그러다 보니 호드는 다른 이들의 앞에서는 좀처럼 입을 여는 경우가 없었고, 고개를 숙이고 움츠린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발드르와 난나도 이런 호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안타까움이 컸다. 발드르는 표정을 다시 밝게 바꾸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둘이 같이 온 것을 보시면 어머니도 더 기뻐하실 거야!]


하지만 호드는 가만히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미안해, 형. 아무래도 오늘은 안될 것 같아. 게다가 지금 어머니는 휴식과 회복이 필요하시잖아. 다음에.. 다음에, 어머니가 다 나으시면 그때 다시 들를게. 형, 형이 나 대신에 어머니께 전해드려. 부탁해.]


 호드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발드르는 잠시 호드를 바라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호드의 손에서 꽃다발을 넘겨받았다. 


 [알았어. 대신 이번만이다? 어머니가 다 나으시면 그때는 꼭 같이 어머니를 만나자. 알았지?]


 호드는 대답 대신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발드르는 호드의 어깨를 한번 쓰다듬은 뒤, 호드가 전한 마음을 가지고 난나와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저택 안으로 향하는 발드르와 난나의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호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호드(예전에 삽화로 사용했던 그림입니다. 직접그렸습니다.)



 발드르와 난나가 프리그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 프리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창밖에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느끼고 있었다. 다행히 프리그의 원기는 회복되었지만, 아직 일어나 거동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햇살을 느끼던 프리그는 발드르와 난나가 들어오자 두 팔을 벌리고 웃어 보였다.


[어서 오렴, 잘생긴 우리 아들! 어디 보자, 오늘은 어제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구나.]

[어머니도 어제보다 더 아름다워지셨네요.]


 발드르가 달려가 프리그의 품에 안기며 대답했다. 프리그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품을 파고든 발드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 어머님 너무하세요. 저도 같이 왔는데, 아들만 보이시죠?]


 난나가 장난 섞인 애교를 부리며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자 프리그도 환하게 웃으면서 난나를 불렀다.


 [이런 미안하구나. 우리 아가가 얼마나 예쁘던지 창 밖의 햇살과 착각을 했구나. 난나, 이리 오렴.]


 난나도 곧 프리그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프리그는 발드르와 난나에게 병문안을 다녀간 신들의 이야기를 해주었고, 발드르와 난나도 아스가르드는 물론 세상에서 벌이지는 재미나는 일들을 프리그에게 들려주었다. 더없이 다정한 시간, 세상에 이보다 더 따뜻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은 더없을 듯 모두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한창 이야기 꽃을 피우던 중 발드르가 시녀를 불러 자신이 가져온 꽃다발을 창가로 가져오게 했다.


 [어머니, 이 꽃 어떠세요? 참 예쁘죠?]


 시녀가 꽃병에 담아 온 꽃을 본 프리그의 눈이 잠시 떨렸다. 가만히 꽃을 쳐다보던 프리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호드가 다녀갔구나.]

 [네.]


발드르가 대답했다. 프리그는 눈이 침침하다는 듯 눈을 깜빡거린 뒤 등받이에 기댔다.


 [그 아이는.. 아직 이 어미가 보기 싫은가 보구나.]

 [아니에요. 아무래도 바쁜 일이 있나 봐요. 요즘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셔서 호드도 할 일이 많아졌거든요. 일이 끝나는 대로 다시 어머니를 찾아뵙겠다고 했어요.]


 발드르가 에둘러 이야기했지만, 프리그는 말없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프리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졸리는구나. 미안하지만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


 발드르는 프리그가 잠을 청하도록 그녀를 침대에 뉘었다. 그리고는 프리그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드르가 나가고 프리그는 침대에 누워 꽃병에 꽂힌 꽃다발을 바라보았다. 


 [호드.. 가련한 나의 아들. 너와 너의 슬픈 운명을 알면서도 이 못난 어미는 너를 안아주지를 못했구나. 미안하구나.. 내 아들.]


 발드르와 마찬가지로 호드의 운명에 대해서도 프리그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그 자세한 내용까지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가 슬픈 운명을 지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호드를 외면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록 그런 운명을 타고난 아들을 한 번이라도 더 따스하게 안아주었어야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강하게 밀려왔다. 그러나 지금 와서 호드를 품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호드라는 이름은 프리그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 아픈 손가락을 이대로 계속 외면하는 것도, 다시 품는 것도 프리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프리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프리그는 다시 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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