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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Feb 09. 2024

28. 발드르의 안전 : 다섯 - 아들의 발걸음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발드르, 호드, 프리그

#. 아들의 발걸음


 탁, 탁. 막대가 길 위를 두드렸다. 호드는 소리를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그렇게 다짐하던 것이 몇 번째인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호드는 마음속으로 늘 같은 단어를 되뇌었다. 하지만 호드는 이번에도 '이번에는' 대신 '다음에는'을 선택하고 말았다. 호드는 늘 어머니의 사랑이 고팠다. 형인 발드르만큼은 아니어도 좋으니 프리그의 따스함을 느끼고 싶었다. 프리그에게 외면을 받아도, 호드는 어머니를 사랑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늘 뒤에서 꾸준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그 형식이 대부분 오늘과 같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호드는 자신의 뺨을 타고 맴도는 바람에 이곳이 너른 들판이라는 것을 알았다. 걸어온 길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배다른 형인 토르의 집이 있는 '스루드헤임(Þruðheimr : 힘의 평야)' 근처인 것 같았다. 호드는 주변을 살폈다. 이 근처에 분명히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을 것이다. 호드는 익숙하게 커다란 버드나무를 찾아내 가만히 기대어 앉았다. 호드는 이 나무를 좋아했다. 이 나무 아래에서 느끼는 바람의 싱그러움을 좋아했다. 이 나무는 호드에게는 남다른 추억이 있는 곳이었다. 어린 시절, 큰 형인 토르가 종종 발드르와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와서 함께 놀아주던 곳이었다. 비록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호드는 그때의 모든 것을 보이는 것보다도 더 세밀하게 느끼고 기억하고 있다.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풀의 싱그러움과 찬란하게 부서져내리는 포근한 햇살. 눈꺼풀 너머로 느껴지는 형인 발드르에게서 뻗어져 나오는 밝은 빛과 그 천진난만한 웃음소리. 목마를 태워주던 토르의 크고 넓은 어깨와 손끝에서 느껴지던 토르의 까실거리던 수염. 근처에 앉아 꽃목걸이를 만들던 난나의 수줍은 웃음소리까지.


 그리고 언제던가.. 호드는 그 자리에 프리그도 함께 있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길이었는지, 함께 소풍을 나왔던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분명 프리그도 그곳에 있었다. 형들과 뛰어노는 가운데에서도 호드는 분명히 프리그의 시선과 그녀의 향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의 시선과 향기는 더없이 부드러웠고, 사랑스러움을 담고 있었다. 그날 이후부터 호드는 그 향기를 잊지 못했고, 세상을 돌아다닐 때마다 비슷한 느낌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곤 했다. 오늘 발드르를 통해 프리그에게 전한 꽃다발은 그때 호드가 느꼈던 향기와 가장 가까운 느낌을 가진 꽃을 모아 만든 것이었다. 


[어머니, 어서 건강해지세요... 다음번에는.. 꼭..]


호드의 뺨을 타고 바람이 맴돌았다.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사그락 거리며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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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01

 '호드(Hoðr : 싸움)' '회두르(Hoður :  전사)'라고도 불립니다. 그는 북유럽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들 중에서도 조금은 특이한 신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강력한 전사이지만, 정작 그는 앞을 볼 수 없습니다. 북유럽 신화가 지니는 특유의 아이러니 중 하나죠. 그는 오딘과 프리그의 아들이고, 발드르와는 쌍둥이 형제로 등장합니다. 북유럽 신화 내내 발드르는 '빛의 신', '광명의 신'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흔히 '발드르=빛', '호드=어둠'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발드르와 호드는 빛과 어둠이라는 이분법으로 양분할 수 있는 성격의 신들은 아니거든요.


 호드의 경우는 어둠이라기보다는 빛으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로서의 느낌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도 짙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그림자가 어둠이나 악은 아닙니다. 빛이 있기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그림자랄까요? 서로 대립하거나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 존재라는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호드는 빛과 공존하기에 조금은 애처로운 느낌이 듭니다. 또한 이렇게 강력한 신이 북유럽신화의 후반부에 가서야 등장하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발드르와 호드의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은 다른 형태로 전해지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삭소 그리마티쿠스'가 쓴 [데인 인의 사적(Gesta Danorum, https://brunch.co.kr/@e0a94227680644b/227)]에서는 발드르와 호드가 아름다운 여인을 두고 대립하는 라이벌로 등장합니다.(데인 인의 사적은 역사적인 모습으로서의 신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강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발드르는 '발데우스(Balderus : 용기로 여겨짐)'라는 반인반신의 영웅으로 등장하고, 호드는 '회테루스(Høtherus)'라는 인간이자, 덴마크의 영웅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아름다운 '난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결투를 벌입니다. 그리고 치열한 결투 끝에 회테루스가 발데우스를 죽이고 난나를 차지하게 됩니다. 

- 호드와 나무처녀, 로렌스 프로리히 그림(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H%C3%B6%C3%B0r)



#.PS02  

 이번 이야기에서도 이야기의 흐름상 조정이 된 부분이 있습니다. 


-01. 원전에서는 세상 모든 만물에게 발드르의 안전을 보장받자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신들의 회의 중에 나온 의견으로 보기도 하고, 프리그가 직접 제시한 의견으로 보기도 합니다. 전 이것을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로키'의 의견에서 시작한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당연히 토르와 헤임달 등과 나눈 대화도 원전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02. 원전에서는 프리그가 세상 모든 만물을 만나 그들로부터 발드르의 안전을 보장받았다고만 전해집니다. 그 과정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전 이 과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여 저 나름의 상상을 더해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라, 발드르의 안전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프리그 홀로 떠나는 것으로 전해지기도 하며, 풀라가 프리그의 여정에 동행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 풀라가 함께 동행한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북유럽 신화에 따르면, 난나가 풀라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03. 프리그가 '나무 위에서 발견한 새집' '겨우살이나무'입니다. 겨우살이나무는 다른 커다란 나무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기생관목(寄生灌木)'입니다. 주로 높은 나뭇가지 등에 얽혀서 살아가는데, 얼핏 보면 정말 새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라, 프리그가 '새집'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고, 겨우살이나무가 너무도 보잘것이 없어서 무시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 중에서 새집으로 오해하는 경우를 선택했습니다. 


- 겨우살이 나무, 멀리서 보면 새집처럼 보일 때도 있다.(출처 : https://www.nytimes.com/)


-04. 헤임달과 토르를 비롯한 여러 신들이 여정을 끝내고 온 프리그를 맞이하는 부분과 호드가 버드나무 아래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는 부분은 제가 상상하여 적은 부분입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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