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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Feb 26. 2024

29. 중상자와 오딘 : 넷 - 여신과 나이많은 시녀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프리그, 노파, 시녀

#. 여신과 나이 많은 시녀


 아스가르드의 모든 이들의 보살핌으로 프리그의 건강은 나날이 좋아졌다. 그날은 프리그가 모처럼 펜살리르의 정원으로 나와 짦은 산책까지 마쳤다. 프리그는 시녀들을 물리고는 홀로 정원의 의자에 앉아 쉬면서 따뜻한 햇살을 느꼈다. 그동안 침대에 누워지낸 날이 많아서인지 오늘처럼 따뜻한 햇살은 프리그에게 더없이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풍경이야 그동안 무슨 변화가 있었겠냐마는 프리그의 마음은 새로운 신세계를 느끼는 것 같았다. 마침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그녀의 망토를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춤을 추게 했다. 프리그는 마치 어린 소녀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프리그는 가만히 양손을 들어 바람의 흐름을 느꼈다. 그 흐름에 맞춰 프리그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춤을 췄다. 맑은 햇살과 산들바람, 그 아래에서 손가락으로 춤을 추는 프리그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산들바람의 연주가 끝나자, 프리그의 손가락도 가만히 춤을 멈추었다. 부드러운 망토가 아름다운 그녀의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프리그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망토를 쓸어올렸다. 프리그가 다시 햇살을 느끼려는데, 어디선가 느린 발걸음 소리가 났다. 중간중간 지팡이 소리가 섞여있는 느린 발걸음이었다. 프리그가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원의 꽃들 사이로 한 명의 노파가 천천히 프리그를 향해 걸어왔다. 노파를 발견한 프리그가 애처로움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했더니. 자네였군.]

[네, 여신님. 제가 이제서야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너무 늦게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노파는 굽은 허리를 더욱 굽히며 프리그에게 안부를 전했다. 지팡이를 짚은 그녀의 손은 주름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프리그를 모시는 인간 시녀들 가운데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시녀였다. 노파는 소녀일 때부터 프리그를 모셨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져서 일선에서 물러나 은거중이었다. 


[아닐세. 자네까지 이렇게 찾아주니 고마워서 그러네. 요즘 몸은 좀 어떤가?]

[여신님의 보살피심으로 이렇게 명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녀들에게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그래도 이리 프리그님께서 건강하신 모습을 뵈오니 이 늙은 시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흑흑..]


 늙은 시녀의 깊게 패인 주름사이로 눈물이 타고 흘렀다. 그 모습을 보며 프리그 역시 고마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맙네. 지금까지도 이렇게 나를 걱정해주다니. 자네에게 내가 너무 큰 사랑을 받는 것 같아, 너무 고맙네.]

[아닙니다. 제가 힘이 없어 여신님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울 뿐입니다.]


 늙은 시녀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프리그를 보았고, 프리그는 늙은 시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런데 늙은 시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프리그는 그녀가 어딘가 아파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물었다.


[괜찮은가? 이리 오게. 옆에 같이 앉게나.]

[아..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여신님과 함께 앉겠습니까. 다만.. 이 늙은이가 한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늙은 시녀가 프리그의 얼굴빛을 살피며 대답했다. 의아해진 프리그가 물었다.


[그게 무엇인가?]


그러자 늙은 시녀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프리그님께서는 지금 아스가르드 들판에서 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계시는지 아시는지요.]

 [우리 발드르가 안전해 진 것을 축하하며, 매일같이 즐겁게 연회를 벌이고 있다고 들었네.]


 프리그는 시녀들로 부터 이미 발할라의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회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시녀들은 물론 온 아스가르드가 이 일로 떠들썩 했으니 프리그가 모르고 있을 리는 없었다. 물론 연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발드르와 신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크게 놀랐지만, 이내 세상 만물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안도했다. 


 [바로 그 연회에서 벌어지는 놀이를 아시나요? 너무 불경스러운 일이라 저는 너무도 놀랐답니다. 돌과 지팡이도 모자라..  지팡이에, 심지어 검과 창같은 무기들까지.. 어찌 신들이라는 분들이 발드르님을 향해 그것들을 던진답니까! 아무리 발드르님을 향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고 해도.. 이는 정말 아니될 일이옵니다. 만일 발드르님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저는 그것이 걱정입니다. 흑흑..]


 늙은 시녀는 다시금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는 말을 이었다.


 [흑흑.. 프리그님! 이 늙은 시녀는 이것을 보고만 있을수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도 한스럽습니다. 저에게는 그 분들을 말릴 어떤 힘도 없습니다. 발드르님은 프리그님의 큰 아드님이시며, 신들의 영광을 상징하는 분이십니다. 프리그님의 노력으로 세상 만물의 사랑을 받아 가까스로 안전해지셨는데, 어떻게 신들께서 이럴수 있답니까?! 이는 프리그님의 사랑과 노력을 무시하는 처사라 생각되어 이 늙은 시녀는 눈물을 멈출수 없습니다. 흑흑..]


 늙은 시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실 눈물을 훔쳤다. 프리그는 그녀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매우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늙은 시녀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뻤고, 늙은 시녀의 마음씀이 매우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프리그는 늙은 시녀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워주며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이미 내가 온 세상의 만물에게 결코 변심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았기 때문이야. 세상의 그 어떤 무기나 어떤 존재도 우리 발두르에게 해를 입힐수가 없으니 안심하시게.]


 프리그는 따스한 목소리로 늙은 시녀를 위로했다. 늙은 시녀가 아직 눈물이 그득한 눈으로 프리그에게 말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프리그님께서 빼놓으신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나 그것으로 인해 발드르님이 다치기라도 하신다면 저는 정말 슬픔에 심장이 터져버릴 겁니다.]

 [나이를 먹으면 잠이 적어질 정도로 근심만 늘어난다고 하더니만 자네가 딱 그렇듯하네. 걱정말게. 나를 믿고 안심해도 된다네.]

 

 연이은 프리그의 다독임에도 늙은 시녀가 다시금 물었다.


 [그래도 만일 거인들이나 신들에게 위협을 가하려는 그 어떤 존재가 그것을 알아낸다면 큰일이 아닐까요? 혹시 빼놓으신 것은 없으신가요?]


 거듭되는 노파의 질문에 짜증이 날만도 하건만 프리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채 노파를 위로했다. 그때 프리그에게 언뜻 생각이 나는 것이 있었다.


 [음.. 사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긴 하네. 내가 아스가르드로 돌아와 여정을 마무리 할 때였지. 마중을 나온 신들의 손에 이끌려 마차에 누웠을 때였어. 나무 위에서 새집같은 것을 보았지. 이미 새집은 발드르의 안전을 보장해주기로 해서 넘어갔다네. 그런데.. 왠지 그게 새집이 맞는지 확실하지는 않는 것 같아. 새집이라기에는.. 나뭇잎이 너무 푸르렀거든. 허나 걱정하지 말게. 그게 새집이 아니라해도 너무 작고 여렸다네. 그 무엇도 해하지 못할 정도로.]


 프리그의 이야기를 들은 늙은 시녀는 손으로 바닥을 치며 탄식했다.


[아이고~ 아이고~ 큰일이네요! 제가 아이들(어린 시녀들)을 데리고 가서 그 새집을 살펴보겠나이다. 부디 이를 허락해 주세요.]

[이런..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프리그의 다독임에도 늙은 시녀는 더욱 섧게 울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여신님을 위해 이 늙은 것이 생에 마지막 일을 하게 해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이 늙은 것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흑흑...]

[알았네, 알았어. 자네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니 어쩔수 없네 그려. 그렇다면 자네가 다른 시녀들을 데리고 가서 그 새집을 확인해주게나. 그리고 미처 이야기를 전하지 못했던 새로운 무언가라면 자네가 잘 이야기해주시게나.]


 프리그의 허락을 받자 늙은 시녀는 다시금 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크게 감사함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여신님, 감사합니다! 이 늙은 것의 소원을 들어주시다니.. 흑흑..]


 프리그는 다정하게 늙은 시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이제 안심이 되겠는가? 대신 꼭! 다른 시녀들을 함께 데리고 가게. 이젠 자네의 몸도 생각해야지.]

[네.. 네.. 그리 하겠습니다.]


 늙은 시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프리그에게 인사를 하더니 천천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프리그는 이제는 뒷방으로 물러나 잊혀진 시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새롭게 쓰여진 것이 저리도 기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늙은 시녀의 뒷모습을 보며 기특하고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저리 나이 많은 시녀까지도 여전히 자신을 걱정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뻤다. 프리그는 흡족한 마음으로 다시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햇살이 프리그의 눈꺼풀을 데워주었고, 산들바람은 다시 프리그의 머리카락을 춤추게 했다. 지금 프리그의 마음은 자신과 발드르에  대한 세상의 사랑을 다시 확인해 기쁜 마음으로 가득했다. 


- 프리그와 노파, H.G.씨커 그림(1920. 출처 : https://vikingr.org )


 한편, 늙은 시녀는 펜살리르를 나와 프리그가 말한 장소로 향했다. 그녀는 아스가르드를 가로질러 프리그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커다란 하얀 나무 앞에 도착했다. 나무 앞에 선 늙은 시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피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시선을 하얀 나무 위에 있는 나뭇가지로 향했다. 그리고 두 눈을 빠르게 움직이며 새집처럼 보이는 것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프리그가 말한 새집을 찾아냈다. 새집을 발견한 늙은 시녀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풉..! 이런 멍청한 계집같으니. 저게 어떻게 새집이라는 말인가?! 역시 계집은 계집이야. 물레나 돌릴 줄 알지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저건 새집이 아니라 겨우살이 나무라고! 겨우살이! 풉.. 푸하하하!! 멍청한 계집! 아하하하하하!!]


 늙은 시녀, 아니 로키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로키는 더이상 자신의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한참 웃던 로키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겨우살이 나무를 보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자신의 장난이 제대로 통했을 때만 지어보이는 로키 특유의 만족감으로 가득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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