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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Feb 27. 2024

29. 중상자와 오딘 : 다섯 - 오딘의 동굴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오딘, 남자, 동굴

#. 오딘의 동굴


 '발할라(Valhalla : 죽은 전사들의 전당 또는 오딘의 전당)'의 깊은 곳에는 오딘 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 그가 세상을 만들고, 아스가르드를 만들면서 아무도 모르게 만든 자신 만의 동굴과도 같은 곳이었다. 세상의 창조자, 신들의 왕인 오딘이었지만 아스가르드도, 발할라도 온전히 오딘만의 것은 아니었다. 오딘은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자신이 온전하게 자신으로 있을수 있는 그런 공간이. 당연히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는 공간이다. 이곳은 오딘의 기쁨과 슬픔, 외로움처럼 온전히 자신의 속살을 내어보일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인 프리그나 애인인 프레이야는 물론 아스가르드의 그 누구도 이 곳의 존재를 몰랐다. 그나마 헤임달 정도만이 아버지인 오딘이 가끔 발할라 내의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타나곤 한다는 정도를 어렴풋이 눈치챘을 정도였다. 이 공간으로 통하는 문 역시, 마법이 걸려있어서 오딘에게만 보였고, 오딘 만이 열수 있었다.


- 남자에게는 자신 만의 동굴이 필요하다.(출처 : https://unsplash.com/ko/@sirtook)


 저승의 무녀를 만나고 온 오딘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비밀의 문을 열었다. 안쪽으로 엷게 빛나는 긴 계단이 보였다. 오딘은 천천히 계단을 하나씩 내려갔다. 이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지금처럼 힘들고 괴로운 날은 없었다. 그럼에도 오딘은 천천히 계단을 하나씩 내려갔다. 그의 모습은 세상의 창조자, 신들의 왕이라기보다는 세파에 시달린 나이 먹은 수행자의 모습처럼 보였다. 오딘은 한참을 걸어 계단의 끝, 작은 돌문 앞에 도착했다. 그가 손을 들자 작은 돌문이 열리며 오딘 만의 동굴이 나타났다. 정사각형의 그리 크지 않은 방. 8곳의 귀퉁이와 방의 한 가운데에 작은 공만한 크기의 빛덩이가 푸르고 엷은 빛을 내고 있었다. 이 9개의 빛은 오딘이 세상을 만들면서 무스펠스헤임에서 잡아온 불덩이들의 조각들이었다. 이 불덩이들은 뜨겁지 않았고, 방은 약간 서늘하게 느껴졌다. 방 안에는 이 9개의 빛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다못하 골풀로 짠 담요같은 것 조차도 없었다. 신들의 왕이 머무는 비밀스런 공간이라기에는 너무도 초라했다. 그러나 오딘에게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욕망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오딘이었지만, 정작 온전히 그 자신 만을 위한 공간에는 그 공간을 제외한 그 어느 것도 필요치 않았다. 


 오딘은 지친 발을 끌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 한가운데로 걸어간 오딘은 털썩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사방이 고요했다. 그것도 잠시. 이윽고 오딘의 어깨가 천천히 들썩였다. 고요한 공간에 낮은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오딘이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오딘은 양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엎드렸다. 세상의 창조자가, 신들의 왕이 마치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었다. 아니, 울부짖었다. 오딘은 양손으로 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공간은 오딘이 바닥을 치는 소리와 통곡소리가 가득했지만, 그 진동과 소리는 방 밖으로는 전혀 흘러나가지 않았다. 


 오딘은 입고 있던 옷을 갈갈이 찢어버리고는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온 방안을 굴러다니며 울부짖었다. 바닥과 벽을 쳤고, 소리를 질렀다. 울음소리는 점차 변하더니 이내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오딘은 알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역시 알 수 없는 소리로 크게 소리치며 웃기 시작했다. 오딘은 운명을, 자신을, 알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향해 저주와 조롱과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다가 앞서 자신이 저주와 조롱을 퍼붓던 대상을 향해 갑자기 무릎까지 꿇어가며 울부짖고 애원했다. 


 '광기(狂氣, madness)', 그의 이름처럼 공간은 그가 내뿜는 광기로 가득했다. 공간 안에서는 마치 세상이 갈라지고, 해와 달이 정신을 잃고 날아다니다가 서로 부딪히는 것 같았다. 이미르가 죽는 순간에도 느낄수 없을 것 같은 소란함과 광기가 공간을, 오딘을 휘감았다. 오딘의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수 없는 이 자신 만의 공간에서 오딘은 자신의 깊은 속살까지 내어보이며 날뛰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공간은 다시 고요해졌다. 오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방 구석에 기대어 있었다. 초점을 잃은 오딘의 눈에 마치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아주 흐렸는데, 오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오딘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흐렸는데, 역시 오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오딘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인지 기억해냈다.


['바프스루드니르(Vafþruðnir : 강한 것을 감춘 자, 강하게 얽힌 것)'..]


- 오딘의 문양이 새겨진 투구장식(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Odin)


 보이고 들리는 것은 아주 오래 전 오딘의 기억이었다. 세상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딘은 홀로 세상을 여행했다. 오딘은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 세상의 그 모든 것을 알고 싶고, 그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했다. 아내인 프리그는 물론이고 주변의 모든 신들이 말렸지만, 오딘의 욕망은 그들이 말릴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결국 오딘은 그 모든 만류를 뿌리치고, 왕좌를 비워둔 채 홀로 지식을 탐하는 여행을 나섰다. 그러다 어느 곳에서 오딘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바프스루드니르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부하는 거인이었다. 그의 지식과 지혜가 얼마나 뛰어나고 방대한지, 그는 그때까지의 모든 지식과 앞으로 일에 대해서까지 알고 있다고 전해질 정도였다. 오딘은 그의 지식과 지혜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고, 자신이 그보다 뛰어날 것이라고 여겼다. 오딘은 바프스루드니르를 찾아갔다. 오딘은 자신을 '강그라드르(Gangraðr : 길을 아는 자)'라고 소개하며 서로의 머리를 건 지혜대결을 요청했다. 바프스루드니르는 그가 오딘이라는 것을 이미 알았지만, 강그라드르로 대접하며 기꺼이 지혜대결에 응했다. 오딘과 바프스루드니르는 어떤 주제도 정하지 않고 지혜대결에 들어갔다. 지혜대결은 오딘이 질문을 하면 바프스루드니르가 그에 대해 대답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언뜻 보면 오딘이 유리한 것 같으나,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옳은지 알고 있지 않다면 대결 자체가 성립할수 없기 때문이다. 오딘이 질문을 이어가지 못하거나, 바프스루드니르가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머리가 달아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지식과 지혜는 우위를 겨룰수 없을 정도였고, 둘 중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연히 둘의 대결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길게 이어졌다. 대결이 길어지자, 바프스루드니르는 그만 이 대결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답을 하면서 점차 오딘이 질문하기 어려울 주제로 대결을 이끌어갔다. 바로 세상의 종말과 오딘의 죽음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이제 막 세상을 만들고, 그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오딘에게 세상의 종말과 죽음에 대한 질문은 생각하기도 싫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딘은 바프스루드니르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너무도 태연하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세상의 권세가 사라질 때, 무엇이 오딘의 생명을 끝내겠소?]

 [늑대가 인간의 아버지를 삼킬 것이고, 그의 아들이 복수를 할 것이오. 그가 늑대와의 싸움에서, 늑대의 그 차가운 턱을 찢어버릴테지.]


 오딘의 질문에 바프스루드니르는 인상을 구기며 대답했다. 자신의 의도와 달리 이렇게 선뜻 응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딘도 그만 이 대결을 끝내고 싶었고, 앞서 마음 속으로만 만지작거리고만 있던 한수를 꺼내들었다. 


[오딘이 장작더미에 누워있는(이미 죽어 장례식을 치르는 중이라는 뜻) 자신의 아들의 귀에 무어라고 말했을까?]


 오딘의 질문을 들은 바프스루드니르는 순간 얼어붙어버렸다. 그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질문이었고, 세상에 그 누구도 대답할수 없는 질문이었다. 바프스루드니르는 오딘의 아들이 죽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그 누가 오딘이 죽은 아들의 귀에 뭐라고 이야기 했는지까지 알수 있다는 말인가? 질문에 대답할수 있는 존재는 말을 한 오딘과 그것을 들은 죽은 아들 뿐. 그러나 죽은 자는 말할 수 없으니, 이것을 아는 자는 오직 오딘 뿐이다. 바프스루드니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러나 이제와서 무를 수는 없었다. 자존심은 둘째치고. 앞에 앉아있는 강그라드르가, 저 오딘이 자신을 살려둘 리가 없었다.


[(아! 내가 기꺼이 내 죽을 곳으로 발을 들이밀었구나!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니!!)]


 바프스루드니르가 길게 탄식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는 모르오. 이 늙어가는 입으로 그대, 오딘과 지혜대결을 했으니 여한은 없소.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자는 바로 당신이오. 오딘.]


그렇게 바프스루드니르는 오딘에게 자신의 머리를 내놓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와서 왜 이때의 일이 떠오른다는 말인가. 왜.. 그때의 일이. 오딘은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 지혜대결의 승자는 자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는 것이 무슨 소용인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가 되면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모든 것이 운명이 정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정작 그렇게 모은 지식과 지혜가 지금에 와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닌가? 바프스루드니르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오딘은 세상의 종말에 대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게 지금와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안다고 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그것이 모르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나쁘다. 그것이 더욱 무기력한 것이다. 


[하하하! 졌다! 바프스루드니르! 나도 졌어! 이 빌어먹을 운명이란 놈에게!! 우리 둘다 져버렸어!! 하하하하하!!]


오딘은 세상에서 가장 허탈하고 슬픈 얼굴을 하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홀가분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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