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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r 26. 2024

30. 발드르의 죽음 : 둘 - 중상자와 호드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로키, 호드

#. 중상자와 호드


 오늘도 '글라드스헤임(Gladsheim : 빛나는 집)'의 들판에서는 발드르의 안전함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렸다. 신들은 물론 그들의 하인들까지 한데 모여 즐겁게 먹고 마시며 기뻐했다. 특히 이 날은 프리그도 자리를 함께하여 연회는 더없이 화려하고 흥겨웠다. 이에 발드르도 매우 즐거워했으며, 신들이 주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먹고 마시는 것이 좀 싫증이 나려하면 신들은 어김없이 발드르에게 청하여 그를 연회장의 한 가운데 세워두고 창이나 다른 무기들을 던지는 애정넘치는 놀이(?)를 시작했다. 어차피 세상 그 무엇도 그를 해칠수는 없었기에 결과는 뻔했지만, 신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이제 이것은 신들 간의 결속을 확인하는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허나 모든 신이 연회에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연회장에서 떨어진 발할라의 입구에 앉아서 연회장을 바라보는 젊은 신이 그랬다. 두건이 달린 망토를 두른 그는 한 손에는 지팡이를 붙잡고 있었다. 두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에도 즐거운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앞을 볼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귀를 통해 글라드스헤임의 들판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알수 있었다. 그는 발드르의 쌍둥이 동생,  '호드(Hoðr : 싸움)'였다. 연회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매우 흥겨우면서도 소란스러웠다. 음악 소리에 여러 신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있었지만, 호드는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서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순간 연회장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호드도 쿡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쿡~ 쿡~ 헤르모드 녀석.. 그러게 왜 뒤로 돌아서 던진다고 그래~ 너무 뒤로 날아갔잖아.] 


 호드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하게 띄고 연회장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발드르가 다치지 않을 것은 알지만, 누군가 무기를 들고 나오면 마음을 졸였다. 그러다 다시 안전함이 확인되면 다시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고, 누군가 실수를 하면 지팡이로 땅을 치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듣는다고 해도 연회장에 있는 신들과 같을까.. 호드는 좀체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자신이 연회에 참석하는 것이 마치 무슨 해라도 되는 양, 그저 이렇게 멀리서 지켜볼 따름이었다. 술도, 음식도 없고, 함께 떠들며 즐길 친구도 없었지만 호드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연회를 즐겼다. 그러던 중, 호드는 누군가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발걸음을 느꼈다. 가벼우면서도 긴장한 듯한 발걸음이었는데, 호드는 이 발걸음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그는 호드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 호드~!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순간 호드의 미간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장난끼 많고 어딘지 모르게 약간의 살기마저 서려있는 목소리였다.


 [아, 로키님.]


 로키는 호드의 곁에 앉아 양손을 치켜들며 한껏 기지개를 켰다. 그의 손에는 가죽으로 둘둘 말린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에고~ 날 한번 빡짝지근허게 좋구먼~ 그나저나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걸?]

 [예?]


 호드가 로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로키가 호드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 건. 내. 질. 문. 에. 대. 한. 답. 이. 아. 니. 라. 구!]

[앗, 잠깐만요! 전 앞이 안보이는 것이지, 귀가 안들리는게 아니라구요! 그렇게 귀에다 대고 큰소리로 말하지 않으셔도 되요!]


 호드가 깜짝 놀라 대답하자, 로키가 헤헤거리며 웃었다.


 [아니, 나는 또 이번에는 귀까지 멀었나 해서. 그런데 여기서 뭐하는 거지?]

 [음.. 그냥. 그냥요.]


 로키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거리며 말했다.


 [쯧쯧. 이봐. 그러지 말고 자네도 저 틈에 끼어서 함께 즐기게. 자네도 아스가르드의 신 아닌가? 발드르의 형제 아니냐구.]

 [아, 하하.. 전 그냥 여기 있을래요. 이게 편해요.]


 호드가 멋적은 미소를 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로키는 그 웃음 속에 뭍어나오는 아쉬움을 놓치지 않았다. 로키는 짐짓 화가 난듯 말했다.


 [호드! 넌 그 자학하는 버릇을 버려야해. 넌 네가 자신이 무슨 벌레나 괴물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절대로 그렇지 않아. 사람들이 '발드르~ 발드르~' 해서 그렇지 자네가 발드르보다 어디가 모자르다는 말인가?]

 [..]


 로키는 안타깝다는 듯이 호드의 어깨를 치며 다시 말했다.


 [아하이~! 너도 참 어지간하다. 앞을 못보는 것 말고는 너의 어디가 문제야? 목소리 좋지, 누구보다도 잘 듣지. 또 이렇게 건장하지. 일을 못해~ 싸움을 못해? 내가 내 정치생명을 걸고 말하건데~ 내가 보기에 온 세상 그 어떤 청년도 자네만큼 아름다울 수는 없다구~ 자, 이만 일어나. 호드, 나와 같이 가자!]

 [예? 어.. 어디를?]

 

 호드가 자신의 팔을 붙들고 일어서는 로키에게 물었다.


 [우리도 저기가서 신나게 놀아 보자구!]

 [하.. 하지만 어.. 어머니가 저기 계셔요.]


 호드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로키는 발로 땅을 구르며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아이고~ 이거 오딘에게 완고함까지 물려 받았구만! 언제까지 이럴꺼야? 언제까지 프리그에게서 도망다닐껀가? 그라믄 안돼~ 가족 간에 그러면 안되는기야아~! 이 얼마나 기회가 좋냔 말이지~ 또, 발드르도 널 얼마나 기다리고 있겠니? 프리그 앞에서 형제간에 우애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로키의 말에 호드는가슴이 메어졌다. 어머니와 아들, 더없이 사랑으로 가득해야 할 관계다. 그럼에도 그동안 호드는 프리그의 눈에 띄지 않게 피해다녔다. 프리그에게 사랑받기를 갈구하고, 프리그에게 사랑을 전하기를 갈구하면서도 그의 행동은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호드는 로키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프리그의 앞에서 형제간에 우애있는 모습을 보일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자연스럽게. 그동안 얼마나 간절히 바라던 기회란 말인가?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 기회가 오기는 할 것인가? 한참 동안 로키의 말을 곱씹어보던 호드는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아저씨 말이 맞아. 나도 더이상 도망치기만 할수는 없잖아? 이건 정말 좋은 기회야. 이번을 기회로 어머니에게 인정받는 아들이 되자. 그리고 형과 다른 형제들, 그리고 다른 신들과도 좀 더 친하게 지내보자. 할수 있어!)]


 그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호드는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호드가 로키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네, 아저씨의 말을 따를께요. 그런데..]

[그런데? 뭐?]


 로키가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되묻자, 호드가 말했다. 


[지금 저에게는 형에게 경의를 표할 그 어떤 물건도 없는데요. 이미 다른 신들이 에지간한 것들은 다 던지고 난 뒤라 남은 것이 없구요.]


호드가 로키에게 잡힌 손을 잡아 당기며 말했다.


[아하이~ 걱정도 팔자네. 걱정하지마~ 그런건 이 아저씨가 다 해결했으니까. 나한테 다른 녀석들은 아무도~ 아~~~무도 아직 던지지 않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 내가 노는데 빠지는 신이 아닌데도~ 왜 그동안 저 놀이에 못 낀 줄 알아? 다~ 이거 찾느라 그런거여~]


로키가 신나게 설레발을 치기 시작했다.


[이거 찾는데 고생 좀 했거덩~ 하나 찾아가면 다른 놈이 던지고, 또 다른거 찾아가면 또 다른 놈이 던지고.. 이야~ 말도 마라~ 내가 너네 아버지 만큼이나 머리가 좋아서 망정이지. 나 아니였음 이런 거? 아무도 못찾아~! 이게 말이지~ 아주 기발한 거거든! 아마 이걸 던지면 다들 놀라 자빠질 거라고. 자, 가세. 그리고 자네가 내 다신에 이걸 던지는거야!]

[네? 제가요? 하.. 하지만..]


놀란 호드가 황급히 손을 저었지만, 로키가 다시금 호드에게 찰싹 달라붙으며 살살거렸다.


[괜찮아. 난 네 아저씨 아닌가~ 다~ 너와 발드르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니까. 응? 대신 잘되면 이 아저씨한테 술 한잔 내는거여? 알았지?]

[아.. 네!]


 호드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호드는 어머니와 가까워질수 있다는 기대에 로키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로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를 연회장을 이끌었다. 탁, 타탁, 탁. 평소와는 다르게 호드의 지팡이가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로키도, 호드도 더없이 즐겁고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두 신의 마음 속에는 전혀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말이다. 


- 호드와 로키, 작자미상(출처 : https://en.m.wikipedia.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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