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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Apr 10. 2024

31. 발드르의 장례식 : 넷 - 발드르의 장례식

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이야기, 발드르, 장례식

#. 발드르의 장례식


 '발드르(Baldr : 영광, 용기, 군주)'의 장례날. 에기르의 들판에는 흐링그호른을 중심으로 크고 넓은 장례식장이 준비되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볔이었지만, 벌써부터 조문객들이 에기르의 들판으로 찾아들었다. 아직 상주가 도착하지 않았지만, 장례식장을 마지막으로 준비하던 하인들이 정성을 다해 그들을 맞이했다. 곧 발드르의 관을 앞세우고, 신들의 긴 행렬이 에기르의 들판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일 앞에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관에 누워있는 발드르가 그의 마차에 실려 천천히 장례식장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상주의 마차가 들어왔다.  '오딘(Odinn : 분노, 광란)'이 직접 고삐를 잡은 마차에는 그의 아내인 '프리그(Frigg : 사랑하는)'와 발드르의 아내인 '난나(Nanna : 대담한, 용감한)', 그리고 발드르의 아들인 '포르세티(Forseti : 주재자라는 뜻, 법의 신)'가 함께 타고 있었다. 오딘은 상복 위로 검고 진한색 망토를 걸쳤으며, 그의 어깨에는 두 마리의 갈까마귀가 앉아있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수다스럽던 갈까마귀였지만, 이날은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했다. 프리그는 상복 위로 검은빛 망토를 둘렀는데, 그녀는 너무도 수척해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하얗고 투명한 피부가 이제는 초췌해져 쟂빛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프리그는 왼편에는 난나를, 오른편에는 포르세티를 끌어안고 있었다. 자신의 슬픔도 그 끝을 몰랐으나, 며느리와 손자의 슬픔도 자신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난나는 프리그에 품에 안겨있었는데, 그녀의 얼굴도 프리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거의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난나의 반대편에는 발드르의 아들이자, 법의 신이 포르세티가 프리그의 품에 안겨있었다. 그 역시 얼굴이 쟂빛에 가까울 정도로 초췌해져있었다. 이제 갓 10대에 들어섰을까? 아직 어린 아이로 보이는 포르세티의 모습을 본 조문객들은 안쓰러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포르세티는 혈통에 맞게 매우 아름답고 현명한 신이었다. 그렇기에 어린 나이에도 벌써 자신의 역할을 맡아 신들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얻어내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어른스럽던 포르세티도 그 슬픔을 쉬이 이겨내지 못했다. 오딘의 마차를 따라 그의 시녀이자, 딸들인 발키리들이 역시 상복을 입은 채 마차를 호위했다. 


 다음으로 '토르(Thor : 천둥, 굉음)'가 자신의 가족과 함께 두 마리의 산양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들어왔다. 토르도 상복을 입은 채, 오른손에는 강철장갑을 차고 있었고, 허리에는 묠니르를 걸었다. 그의 아내인 '시프(Sif : 인척)'와  '야른삭사(Jarnsaxa : 철로 만든 단검)' '스루드(Þruðr : 힘)'와 '마그니(Magni : 힘, 강함)' 남매도 모두 상복을 입었고, 모두가 더없이 슬픈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토르의 뒤로 헤임달이 역시 상복을 입은 채, 자신의 애마 '굴톱프(Gulltoppr:황금의 정수리)'에 타고왔다. 그는 양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장례식장의 경비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는 슬픈 와중에도 부관을 불러 장례식장과 조문객들의 안전을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지시를 내리며 챙겼다. 헤임달의 뒤로 오딘의 다른 아들들이 뒤를 따랐는데, 그들도 모두 상복을 입은 채, 말없이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검은 쟂빛과 같은 모습의 발드르의 가족과 형제들이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그들의 뒤를 따라 다른 신들도 천천히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제일 앞에는 발드르의 친구이자, 아름다운 신으로 불리던 '프레이(Freyr:주인, 신들의 귀공자)'와 신들의 공주님, '프레이야(Freyja : 여주인)'남매와 그들의 아버지인 바다와 뱃사람의 신, '뇨르드(Njorðr : 힘)'가 신들의 행렬을 이끌었다. 프레이는 거대한 황금털을 가진 산돼지인 '굴린부르스티(Gullinbursti:황금의 강한 털)'가 끄는 마차를 타고 있었는데, 그 역시 친구를 잃은 슬픔에 늘 빛나던 그의 찬란한 빛도 이날만큼은 빛을 내지 않았다. 프레이야는 프레이의 곁에서 고양이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왔다. 그녀도 친한 벗을 잃은 슬픔에 황금빛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상복을 입었음에도 그녀의 슬픔은 그녀의 아름다움으르 가리지 못했다. 뇨르드는 남매의 뒤에서 두 사람을 보다듬듯 천천히 마차를 몰고 있었다. 다른 신들도 모두 상복을 입었는데, 누구 하나 목소리를 내거나 이를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신들이 장례식장으로 들어와 각자의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즈음. 태양이 가만히 물 위로 솟아오르며 에기르의 들판을 비추었다. 햇살이 해변에 이르자 바닷가도 서서히 어둠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넓은 에기르의 들판은 수많은 조문객들로 발딛을 틈이 없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물론이고, 아스가르드에 사는 거의 모든 이들이 자리했다. 그들의 뒤로 난쟁이들과 요정들은 물론, 요툰헤임의 거인들에 이르기까지 발드르를 사랑했던 많은 이들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들 모두가 자신들이 사랑했던 발드르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먼 곳에서부터 이곳까지의 긴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 오세베르그 고분에서 발견된 장례선의 복원품(노르웨이 바이킹 박물관 소장.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Oseberg_Ship)


 신들은 장례선에 가장 가까운 쪽에 자리를 잡았다. 신들은 입술을 깨물며 터져나오는 슬픔을 견뎠다. 여신들은 베일 넘어로 연실 눈물을 닦아내며 슬픔과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스가르드에 사는 다른 이들이 신들의 뒷편에 자리 잡았다. 장례식장의 안전을 맡은 전사들은 더없이 엄숙함을 유지하며 자신들의 임무에 임했다. 신들의 시종들과 하인들은 슬픔을 견디며 장례식장을 찾아준 조문객을 맞이하고, 그들이 장례식에 참여할수 있도록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그들의 뒤로 요정들과 난쟁이들이 자리를 잡았다. 요정들은 평소 자신들이 즐겨 입던 밝은 색 옷대신 상복을 입은 채, 입을 가리고 낮게 울먹였다. 난쟁이들도 평소와 달리 얌전했고, 그들 답지 않게 두껍고 거친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기 바빴다. 


 그들의 뒤로는 거인들이 자리했다. 그들도 이전의 호전적인 모습과 달리 숙연한 모습으로 묵묵히 슬픔을 견디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마치 토끼의 눈처럼 붉게 상기되어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많았는데, 그들 중에는 간간히 '끅, 끅' 거리는 소리를 내며 힘들게 슬픔을 삼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거인들에게도 발드르의 죽음은 매우 슬픈 일이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가장 뒤에 자리잡았다. 인간들에게도 발드르는 빛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발드르를 믿고 따르는 이들도 많았기에 이들의 슬픔도 다른 존재의 슬픔에 못지 않게 깊고, 아팠다.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신들의 제사장, '헤니르'가 흐링그호른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는 숙연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장례식을 시작했다. 헤니르의 시종들은 발드르의 관에서 부터 흐링그호른에 마련된 제단의 양쪽에 자리를 잡았다. 헤니르는 발드르의 관앞으로 다가가 그의 평안함을 기원했다. 마침내 발드르의 관이 여러 명의 전사들에 의해 들려져 흐링그호른으로 천천히 향했다. 발드르는 어머니인 프리그가 만든 수의를 입은 채, 예의 미소 띈 얼굴로 누워있었다. 발드르의 관이 움직이자, 조문객들 사이에서 더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애써 슬픔을 삼키던 신들도 터져나오는 울음소리를 참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상주석에서 소란이 일었다. 모두가 놀라서 바라보니 난나가 프리그의 품에 안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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