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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Apr 12. 2024

31. 발드르의 장례식 : 여섯 - 호드의 죽음

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 이야기, 호드, 발리, 호름강, 복수

#. 호드의 죽음


 발드르가 죽고 호드는 자신의 집에 연금되었다. 연금이라고는 해도 그 누구도 호드의 집을 감시하거나 보초를 서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발드르에게 겨우살이 나무로 만든 창을 던진 것은 호드였지만, 진정으로 벌을 받아야할 것은 로키라는 것을 모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미 호드는 자신의 죗값을 치르는 중이었다. 자택에 연금이 되고 처음에는 섦디섧게 울었다. 그러다 다음에는 로키를 향해 분노했다. 울고, 분노하기를 수십, 수백차례나 거듭하고 나서야 호드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호드는 문기둥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그의 몸은 형제를 잃은 슬픔과 고통으로 이미 초췌해져 만신창이가 되었다. 호드의 눈에서 흐르던 피눈물은 조금씩 줄었지만, 오히려 눈물을 흘릴 때보다 그의 마음은 더욱 아프고 슬펐다. 난나의 심장처럼 호드의 마음도 이미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져버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로키에게 속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의 더운 피를 자신의 손에 묻히고 말았다. 


[.. 속았다고? ..]


 호드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 로키에게 속았지. 허나 그렇다 한들.. 바뀌는 것은 없어. 왜 로키의 계획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로키는 결코 좋은 자가 아니야. 그가 무슨 일을 하건.. 다 속셈이 있어. 난 왜 그를 믿었을까? 왜? 발할라의 계단에서 나의 귀에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에서 살기를 느꼈음에도.. 난 왜 그를 따랐던 것인가?]


 이제와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로키를 향하던 호드의 분노는 스스로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주의했더라면. 그랬다면 자신의 손으로 발드르를 죽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호드의 눈에서 다시 피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호드는 얼굴을 감싸쥐고 한참을 울었다. 


[.. 어머니.. 전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어머니..]


 호드는 연실 어머니를 그리며 울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 속에 가득하게 차오른 자신의 울음소리 뿐이었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사이 발드르의 유해는 수습되어 발할라의 홀로 옮겨졌다. 헤르모드가 니플헤임으로 떠났지만 아직 연락도, 돌아오지도 않고 있었다. 신들은 오딘의 명령에 따라 발드르의 장례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렇기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누구도 호드를 찾지 않았다. 호드의 아픔과 슬픔은 그 어떤 이의 그것보다 심각했지만, 놀라울만큼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호드는 수없이 자신을 질책하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것은 더욱 큰 아픔이 되어, 그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재로 만들어버리기 충분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해도 저물어, 주변이 어두워진지도 한참이었다. 호드는 여전히 문기둥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발드르처럼 환한 빛이 감돌던 그의 몸에는 이제 타고남은 잿빛만이 감돌았다. 호드의 귀에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호드는 처음에는 그것이 누구의 발자국 소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아직 소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 호드에게로 다가왔다. 그에게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무거운 연민의 마음이 걸음마다 느껴졌다. 그런데 그의 걸음사이로 날카로운 쇠붙이의 느낌도 함께 느껴졌다. 호드의 느낌대로 그는 등에는 방패를 들춰매고 있었고, 양손에는 각각 한자루씩 검을 검집 채로 들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앞까지 다가왔음을 느낀 호드가 물었다. 


[.. 누구냐.]

[호드 형, 저 '발리(Vali/Ali : 강한)'입니다.]


- 복수의 신, 발리. 에밀 도플러 그림(1882. https://en.wikipedia.org/wiki/V%C3%A1li )


 그는 바로 호드의 배다른 형제인 '발리'였다. 그는 오딘과 '린드(Rindr : 굴뚝새)'라는 여자거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아주 빠르게 성장했는데, 고작 하루 만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외모와 달리 실제 나이는 매우 어렸는데, 호드와 비슷한 점이 참 많은 동생이었다. 그도 호드만큼 말수가 적었고, 매우 용감한 신이었다. 언젠가 오딘은 섬뜩한 예언을 들었다. 자신의 아들 중 하나가 자신의 형제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그 예언에 따르면, 오딘이 린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그 복수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오딘은 요툰의 땅으로 숨어들었고, 온갖 술수를 동원하여 린드와 관계를 가졌다. 그렇게 태어난 신이 바로 발리였다. 


[운명의 인도에 따라.. 형님께 결투를 요청합니다.]

[.. 발리.. 형제 간에 피를 보는 것은 너무나 큰 비극이란다. 그 아픔을 나느.. 쿡!] 


 호드는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슬픔이 극에 달한 탓인지 호드는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호드가 연실 피를 토해내는 동안 발리는 묵묵히 그 모습을 보며 서있었다. 호드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죽음을 두려워 해본적이 없다. 그러나 더이상 형제의 피를 보기는 싫었다. 로키에게 속았다고 해도, 호드가 발드르를 죽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처벌이 호드의 목숨이라면 호드는 얼마든지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이 형제 간에 또다시 피를 봐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하아.. 하아.. 쿨럭..]


 호드는 다시 입안 가득한 피를 토해냈다. 손으로 피를 닦으며 호드가 물었다.


[하아.. 아버지.. 아버지의 결정이니?]

[운명. 운명의 결정입니다.]


 발리가 짧게 대답했다. 발리의 대답을 들은 호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 기침이 멈추지 않기도 했지만, 발리의 답변을 들은 호드는 무언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하아.. 역시.. 제 아무리 신도 운명은 어쩔수 없는 것. 이것이 운명이 정한 나의 역할이었구나. 운명.. 당신은 참 매정하군요. 당신이 가혹하게 구는건 나 하나로 충분하지 않았나요? 어떻게 이렇게 어린 동생에게 까지.. 그리 무거운 짐을 지우려하는 건가요?)]


호드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손을 더듬어 곁에 있던 지팡이를 찾아 들었다. 그는 힘겹게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알겠다. 그것이 너와 나의 운명이라면. 아버지께서 너를 얻기 위해 그 노력을 하신 이유를 알것 같구나. 이것이 우리 형제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마. 다만, 이곳 아스가르드는 신성한 대지. 이곳에 나의 피를 흘리는 것은 너무도 커다란 죄란다. 결투장소를 옮기자꾸나. 괜찮다면 너의 어깨를 빌릴수 있겠니? 왠지 지팡이를 짚은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구나.]


 호드의 얼굴에는 그 의미를 알수 없는 묘한 미소가 맴돌았다. 발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발리가 기꺼이 자신의 한쪽 어깨를 호드에게 내주었다. 호드는 천천히 손을 들어 발리의 어깨를 잡았다. 서로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호드는 순간 감정이 받쳐오르며 울컥했다. 형제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져서이기도했지만, 어린 시절 종종 발드르도 이렇게 호드에게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곤 했었기 때문이다. 


 [고맙다. 자, 그럼 네가 앞장 서주렴.]


호드와 발리는 함께 호드의 저택을 나와 천천히 아스가르드의 밖을 향해 걸었다. 어두운 시간이었고, 이미 모든 이들은 발드르의 장례준비로 바빠 그 누구도 마주치지 않았다. 호드와 발리는 새벽녘이 되어 아스가르드를 벗어났다. 두 신은 커다란 강물이 둘로 갈라지며 넓은 대지를 가로지르는 곳으로 갔다. 강물이 둘로 갈라지는 사이에 크고 넓은 모래밭이 있는 섬이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응.]


 발리가 배를 구하러 간 사이, 호드는 가만히 지팡이를 짚고 서서 들과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새벽녘의 바람은 아직 태양에 달궈지지 않아, 서늘하고 시원했다. 강물이 유유하게 흐르는 느낌이 지팡이와 호드의 발끝으로 전해졌다. 저멀리 일찍 깨어난 새들의 작은 지저귐 소리가 너무도 평온하게 들렸다. 마치, 어린 동생과 강으로 밤낚시를 나와 새볔을 맞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그렇다면 좋았을텐데.]


 호드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호드는 그렇게 발리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새볔의 느낌 받아들였다. 잠시 후, 발리가 배를 구해 호드에게로 왔다. 발리는 호드를 배에 태워 노를 저어 강의 한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향했다. 섬에 도착하자, 발리는 다시 자신의 어깨를 호드에게 내어주었다. 호드와 발리는 조용히 걸어 섬의 모래밭 한 가운데까지 걸어갔다. 호드가 발리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이 정도 즈음이면 충분하겠어. 이제 그만 우리의 운명을 맞이하자꾸나.]


 발리도 걸음을 멈추었다. 발리는 호드에게 자신이 들고있던 검 중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몇 걸음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발리는 등에 맨 방패를 풀러 왼손에 들었다. 그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 오른손에 들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사이 호드도 차분하게 준비를 마쳤다. 그는 왼손에는 자신의 지팡이를 짚었고, 오른손으로는 발리가 건네준 검을 잡았다. 호드가 발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준비는 되었니?]

[네.]


 발리가 검으로 방패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호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들어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발리가 모래밭을 박차고 호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호드는 순순히 발리의 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호드는 더이상 삶의 미련이 남아있지도 않았고, 죽음이 두렵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쉽게 끝날 생각도 없었다. 그것은 이미 세상을 떠난 발드르에 대한, 지금 자신과 결투에 임하고 있는 발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호드는 싸움의 신이고, 전사의 신이다. 호드는 그런 자신의 본분도 잊지 않았다. 분명 이 결투의 승자는 발리일 것이다. 운명이 이미 그렇게 정했으니까. 허나,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운명에 끌려가고 싶지도 않았다. 호드는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결투에 임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고, 또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호드는 그것도 자신이 받아야 하는 죗값이라 여겼다. 발리도 이런 호드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도 온 힘을 다해 호드를 공격해 들어갔다. 형제의 결투는 그렇게 점점 더 치열해졌고, 해가 떠오를 때까지도 형제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 덧 해가 그들의 머리 위를 비출 즈음. 호드와 발리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들의 몸은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은 곳도 여러 곳이었고, 호드의 지팡이도, 발리의 방패도 이미 산산조각이 난지 오래였다. 둘은 검을 들 기력이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다시 한번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발리의 검이 호드의 가슴을 뚫었다. 


[하아.. 잘했다. 발리.. 역시 내 동생은 강하구나.. 고맙다. 하아..]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호드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내렸고, 호드는 그대로 모래밭으로 쓰러졌다. 발리는 모래밭에 주저앉아 그런 호드의 몸을 자신의 무릎에 뉘어주었다. 호드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리자, 발리가 그 손을 잡아주었다. 


[어머니.. 마지막으로 어머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내.. 내가 들은.. 하아.. 어머.. 님의 마지막 목소리는 비탄에 자.. 잠긴 울음소리.. 뿐이구나... 하아...]


 호드는 마지막 숨을 토해내더니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발리는 호드의 손을 잡고 한참을 흐느껴울었다. 사실 발리에게도 이것은 너무도 가혹한 운명이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운명은 형제를 죽인 다른 형제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태어난 것이 발리였다. 이 순간 발리에게는 삶의 의미도, 그 이유도 더이상 남지 않았다. 한참을 울던 발리는 호드의 가슴에서 검을 빼내어 모래밭에 집어 던졌다. 그는 호드를 안아올려 함께 타고 온 배로 향했다. 발리는 호드를 배 위에 눕혔다. 발리는 조각난 호드의 지팡이를 챙겨와 그의 곁에 함께 놓아주었다. 그리고 발리는 어디선가 꽃한송이를 가져와 호드의 가슴에 올려주었다. 호드가 프리그에게 선물했던 바로 그 꽃이었다. 발리는 배에 불을 붙이고 강물 위로 띄워보냈다. 호드가 떠나는 그 순간은 다른 이들 없이 오직 발리만이 그의 곁에 있었다. 


- 작은 복수자 발리.(직접 그림)


 그때 어디선가 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황금빛 갈기의 준마를 탄 헤임달이 하늘을 달려왔다. 발드르의 장례식이 끝나고 아스가르드로 돌아온 헤임달은 호드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동생인 발리 역시 사라졌음을 알았다. 헤임달도 발리의 운명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기에, 황급히 말을 달려 그들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강한 힘이 맞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서둘러 그곳으로 말을 달렸는데, 이제서야 도착한 것이었다. 헤임달은 말이 모래밭에 내려앉기도 전에 말에서 뛰어내려 발리에게로 달려갔다. 피로 범벅이 된 발리를 보며,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발리는 헤임달에게는 아랑곳 하지 않고 멀어져가는 배를 응시했다. 헤임달이 어안이 벙벙해져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형은 떠났습니다.]


 발리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의 설명은 듣지 않아도 헤임달은 이 모든 것을 알수 있었다. 그는 모래밭으로 무릎을 꿇으며 무너져 내렸다.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금 형제를 잃은 아픔과 슬픔이 자신에게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호드 형은.. 어머님.. 프리그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셨습니다. 사랑스럽게 자신을 불러주는 그 목소리를.]

[.. 호.. 호드.. 넌..!]


 헤임달은 더이상 쏟아져내리는 슬픔을 견뎌낼수 없었다. 헤임달은 양손으로 모래밭을 두들기며 한참동안 울부짖었다. 그제서야 발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연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않고 서있던 발리는 하늘을 향해 크게 울부짖었다. 그것은 형제에 대한 애정과 연민, 그리고 그들과 자신에 운명에 대한 한이 담긴 외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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