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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an 02. 2023

05. 사고뭉치, 로키-다섯 : 작업 방해 작전

북유럽신화, 로키, 브로크, 에이트리, 세가지보물

#. 작업 방해 작전


 난쟁이 형제가 대장간으로 내려가 작업을 시작하는 동안, 로키는 의자에 걸터앉아 그 맛없다던 술을 홀짝거렸다. 로키는 난쟁이 형제가 자신의 꾀에 걸려들었다고 믿었다. 그만큼 이발디의 아들들의 솜씨는 훌륭했고, 보물을 보는 안목에도 자신이 있었다. 웃음이 났다. 감히 쬐끄맣고, 더러운 난쟁이 주제에, 신과 맞먹으려 들다니. 정말로 가소로웠다. 이기는 건 당연하고, 난쟁이 형제들을 어떻게 괴롭힐까 생각하니 더 웃음이 났다.  


[이것들은 안주도 없이 술을 먹나? 어디 안주가 어디 없으려나~~~]


로키는 콧노래를 부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안주를 찾기 위해 주방을 뒤지다 문득, 난쟁이 형제들이 어떻게하고 있나 궁금해졌다. 로키는 살금살금 대장간 문틈으로 다가가 대장간 안을 엿보기 시작했다. 브로크와 에이트리는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대장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이발디의 아들들의 작업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고, 난쟁이 형제의 열기는 그보다도 더 뜨거웠다. 난쟁이 형제의 모습은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더니, 로키는 아차싶었다. 본능적으로 일이 잘 못 되어가는걸 깨달았다.


[(잘 못 하면 내기에 질지도 모른다.)]


로키는 그대로 계단에 주저앉아버렸다. 순간 '계약'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계약은 계약. 아무리 신이라도 이미 계약에, 맹세까지 해버렸으니 이대로라면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로키는 다급해졌다. 보물 쇼핑이고, 나발이고, 이러다가는 정말 저 난쟁이들에게 머리가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계단에 주저앉아 난감해하던 차에 에이트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온도, 좀만 더!]

[알았어! 올린다!]


 로키는 다시 대장간 안을 엿보았다. 에이트리가 용광로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모루 위에 얹어 망치질을 시작했다. 브로크는 거대한 풀무를 이용해 용광로에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브로크는 땀 닦을 시간도 없는지 얼굴과 온 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브로크를 보던 로키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드는 걸 방해하지 말라는 건 계약 내용에 없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방해할 수는 없었지만. 로키는 작은 '벌(전승에 따라 파리, 뱀이라고 하기도 함)'로 변해 대장간으로 숨어들었다. 대장간 벽틈에서 기회를 노리는데, 에이트리가 하던 작업을 멈추더니 브로크를 향해 외쳤다.


[나 가죽 좀 가져올테니, 풀무질을 멈추면 안돼.]

[알았어! 다녀와!]


브로크가 대답했다. 에이트리는 창고로 가고, 브로크가 혼자 남아 풀무질을 했다. 로키는 벽틈에서 나와 커다란 풀무와 연결된 줄을 잡고 있는 브로크의 손을 향해 벌침을 쎄게 쏘았다. 브로크는 풀무를 잡은 손에 따끔한 아픔이 전해졌지만, 풀무질을 멈추지 않았다. 로키가 다시 침을 쏘려는데, 에이트리가 돌아왔다. 로키는 황급히 벽틈으로 숨었다. 그리고 잠시 뒤, 에이트리는 번쩍이는 커다란 보물 하나를 만들어 자루에 넣었다.


- 보물을 만드는 브로크와 에이트리, 아서 래컴 그림(1907,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Eitri)


에이트리는 황금덩어리를 녹여 작업대에 올려 두번째 보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무언가 굉장히 섬세한 작업인 듯, 에이트리는 인상을 있는대로 구긴 채 집중했다. 로키는 조심히 벽틈에서 나와 이번에는 브로크의 목을 향해 더욱 쎄게 벌침을 쏘았다.


[앗, 따가워!]


브로크가 작은 비명을 내며, 잠시 움찔했지만 풀무질은 멈추지 않았다.


[(대체 저 놈은 살가죽이 얼마나 두꺼운거야! 아.. 이러다 두번째도 다 만들겠네. 아!!! 정말!!!)]


다시 벽틈으로 숨은 로키는 애가 탔다. 어느새 두번째 보물이 완성되었고, 에이트리는 두번째 보물을 작은 함에 담았다. 커다란 황금덩어리를 용광로에 넣으며 에이트리가 물었다.


[아깐,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잠깐 불똥이 튀었나봐.]


브로크가 웃으며 대답했다.


[놀랐잖아. 풀무질을 멈추면 안돼! 이번 꺼가 가장 중요하니까.]

[알았어~ 걱정마!]


브로크는 더욱 힘차게 풀무질을 했고, 에이트리는 무언가를 가지러 다시 창고로 향했다. 로키에겐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이젠 로키에게도 이판사판이었다. 들킬지도 모르지만 더는 기회가 없었다. 로키는 풀무질을 하고 있는 브로크의 눈 앞으로 날아갔다. 로키는 혼신의 힘을 다해 벌침으로 브로크의 눈꺼풀을 아주 세게 쏘았다.


[아!]


어찌나 세게 쏘았는지, 브로크의 눈꺼풀이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아주 잠시 풀무질이 멈췄다. 아픈건 참을 수 있었지만, 피가 눈으로 들어가 앞이 보이지 않았다. 브로크는 황급히 손으로 피를 훔친 뒤, 다시 풀무질을 시작했다. 브로크의 외침에 화들짝 놀란 에이트리가 창고에서 달려나왔다.


[무슨일이야!?]

[뭔가에 쏘였어. 괜찮아.]


브로크가 대답했다. 에이트리가 신경질을 내며 소리쳤다.


[불 온도는?!]

[아차, 금방 올릴께!]


피가 브로크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걸 다시 닦을 틈은 없었다. 브로크는 피가 나는 쪽 눈을 감은 채 오직 풀무질에만 몰두했다. 에이트리가 용광로에서 무언가를 꺼집어내어 작업에 들어갔다. 로키는 다시 벽틈에 숨어 그 광경을 가슴졸이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에이트리가 갑자기 작업을 멈추더니, 작업망치를 든 채 모루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아... 손잡이가.. 큰일이야..]


로키에겐 이 중얼거림이 그 어떤 외침보다도 크게 들렸다. 로키의 방해 공작은 성공했다. 깜짝 놀란 브로크가 에이트리에게 달려갔고, 로키는 조용히 대장간을 빠져나왔다. 다시 탁자로 돌아온 로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술을 따라마셨다.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쾌재를 불렀지만. 난쟁이 형제들이 대장간을 나온건 좀 더 뒤였다. 각자 커다란 자루를 하나씩 어깨에 메고 있었다.


[너무 오래 걸렸잖아! 기다리느라 지루해 죽는줄 알았네!]


로키가 술잔을 흔들며 말했다. 얼굴 한쪽을 붕대로 감은 브로크가 로키를 노려보았다. 작업 중 자신을 공격한 것의 정체는 이미 짐작하고도 남았다. 에이트리가 브로크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갑시다. 이제 결과를 봐야지.]

[흥! 볼 필요 없을 테지만.]


로키는 술잔을 비운 뒤, 자신이 가져온 이발디의 아들들이 만든 보물을 챙겨, 앞장서서 걸었다. 브로크와 에이트리는 조용히 로키의 뒤를 따랐다. 로키가 다그치듯 말했다.


[(이겼다. 어디 감히 신한테 대들어. 이 참에 아주 제대로 부려먹어주마.) 거 좀 빨리 걸으라고. 다리가 짧으면, 좀 더 빠릿빠릿해야 할거아냐~]


로키는 분명하게 보고 들었다. 에이트리의 축 쳐진 어깨와 그가 중얼거린 말을. 보물에 문제가 있는건 분명했다. 난쟁이 형제가 예상보다 조금 늦게 나오긴 했지만, 무언가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라고 보기에는 시간이 짧았다. 로키는 자신이 있었다. 이길 것이라는 자신. 어차피 판결은 자신과 같은 편인 신들이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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