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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an 07. 2023

06. 파멸의 세 아이-둘 : 우르드의 샘

북유럽신화, 로키, 펜리르, 요르문간드, 헬

#. 우르드의 샘


 오딘의 시종들을 따라 로키가 도착한 곳은 이그드라실의 옆에 있는 '우르드(Urðr : 운명)의 샘'이었다. 오딘이 많은 신들과 함께 로키와 세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키는 고개가 갸우뚱했다. 오딘이 여러 신들을 대동하고 있는 것도 이상했고, 발할라나 글라드스헤임이 아닌 우르드의 샘으로 데리고 온 이유도 알 수가 없었다. 우르드의 샘은 언제나처럼 평온하게 보였다. 운명의 여신들은 샘 반대편에서 조용히 실을 잣는 중이었고, 샘 위에서 백조들은 한가롭게 노닐었다. 무언가 있긴 할테지만, 로키 자신에게는 해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로키는 세 아이를 안고 신들 앞에 섰다.  


오딘을 비롯해 이곳에 모인 신들은 운명의 여신들이 처음 나타난 날,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었다. 그날 그녀들로 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운명에 따라, 거인의 피를 이어받은 세 아이들이 나타나 신들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이야기를. 당시에 오딘은 그저 거인족 무녀들의 헛된 예언이라고 생각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라지만세상은 이제 막 시작했고 끝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였다. 오딘은 생각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자신이 가만히 두고보지 않을 것이다. 그때부터 오딘은 세상을 돌아보는 틈틈이 파멸로 이끌 세 아이들이 정말로 나타나는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지금오딘의 눈 앞에 그 세 아이들이 나타났다. 로키가 사고뭉치인 것은 처음 만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큰 사고를 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딘은 로키를 알게 된 이후, 처음으로 후회했다. 그렇지만 그를 의형제로 삼고, 아스가르드로 데려 온 것은 오딘 자신이었다. 착찹한 표정의 오딘이 로키를 보았다. 로키는 살짝 고개를 돌려 오딘의 시선을 외면했다. 오딘이 자신이 보낸 시종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로키를 맞이하러 갔던 시종이 로키에게 다가섰다.


[아이들을 주시지요.]


 이번에는 로키가 매섭게 오딘의 시종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마지못하겠다는 듯, 아이들을 내어주었다. 오딘의 시종은 오딘의 발 앞에 세 아이를 차례대로 내려놓았다. 짙은 색의 털을 가진 늑대, 커다란 뱀, 몸의 절반이 썩어들어간 여자아이. 오딘은 가만히 세 아이들을 내려보았다. 그때 로키가 말했다.


[(그래, 이 타이밍이지.) 오딘! 대체 이 아이들을 어쩔 셈인거요?]


로키의 물음에도 오딘은 그저 아이들만 내려다 볼 뿐이었다. 로키는 짐짓 더 목소리를 높였다.


[오딘! 이건 내 아이들이야! 내 아이들의 손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겠어!!]  

 

 로키가 마치 오딘에게 달려들기라도 할 것처럼 앞으로 나서며 소리를 질렀다. 오딘의 시종들이 로키를 가로막았다. 오딘은 시선을 세 아이들에게 맞춘 채, 가만히 지팡이로 바닥을 쳤다. 그러자 오딘의 시종들이 로키를 양쪽에서 붙잡았다. 로키는 잠시 힘을 쓰며 버티다 오딘의 시종에게 팔다리를 붙잡힌 채, 끌려나갔다. 밖으로 끌려나가며 로키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오딘! 대체 날 어쩌려는거야!?! 애들은 살려줘! 보내주라고!! 여긴 아스가르드야! 성역이라고!!!!!]


- 로키와 파멸을 부르는 아이들, 칼 에밀 도플러(출처 : https://owlcation.com/humanities/Norse-Mythology-The-Fenris-Wolf)


 모여있던 신들이 그런 로키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딘은 로키를 향해 고개는 커녕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 연기는.. 이제 사고 좀 작작치라고.)]


 로키가 자신들을 파멸로 이끌 세 아이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처음 알았을 때, 오딘은 이 아이들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것이 가장 확실하고,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은 생각으로 오딘은 멈칫하고 말았다. 만일 이 아이들이 거인족의 무녀들이 말한 파멸로 이끌 세 아이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들의 왕이 신의 아이를 죽인 것이 된다. 아사 신족의 피를 이어 받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건 로키는 아사 신족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후에 다시 파멸로 이끌 세 아이가 나타난다면? 물론 그때도 죽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자신은 그것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진짜로 문제가 생긴다. 이는 오딘, 자신의 권위를 크게 흔들리게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을 무작정 살려둘 수도 없다. 만일 이 아이들이 정말 파멸로 이끌 세 아이라면, 자신은 심각한 위험을 알면서도 방기한 것이 된다. 아이들을 죽였을 때보다도 더 크게 자신의 권위가 추락할 것이다.


 자신은 신들의 왕이자, 신들의 아버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오딘의 판단은 아사 신족의 판단이다. 파멸로 이끌 세 아이들은 아사 신족의 미래에 아주 위험하고도 중요한 문제다. 그것을 자신의 판단 착오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신들은 오딘을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오딘에게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의심은 필연적으로 분열로 이어진다. 아사 신족의 분열은 곧 파멸로 이어진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딘은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다. 오딘은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지식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났을 때를. 자신의 판단에 따라 신들의 미래가 결정된다. 잠시 고민을 하던 오딘은 결국 그 사이에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감시'와 '유배'였다.


[.. 결국은 지켜보는 것 뿐이란 말인가. 하.. 신이 운명 따위에게 놀아나는건가.]


오딘은 허탈했다. 자신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라는 것이 겨우 이것이라니. 신들의 왕이 그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어 가장 오래걸리고,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방법을 택한 사실이 우스웠다. 그러나 더 길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결정은 내려졌고, 최대한 빠르고 확실하게 실행해야 했다. 오딘은 시종들 중에서 심복을 골라 강철숲으로 보냈다. 그리고 거인족의 무녀들이 왔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신들을 '우르드의 샘'으로 소집했다. 로키에게서 신들을 파멸로 이끌지도 모르는 세 아이가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신들은 경악했다. 몇몇 신들은 겁먹은 눈으로 노른을 쳐다보았다. 노른은 신들과는 시선을 맞추지 않았고 늘 그렇듯 침묵했다. 오딘은 자신의 결정을 모인 신들에게 말했다. 모두 깜짝 놀랐지만 이미 결정은 내려졌다. 상황을 지켜보며 확실해졌을 때, 신속하게 처리한다. 모인 신들은 오딘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한 편, 오딘의 시종들에게 끌려나간 로키는 우르드의 샘 밖으로 나오자 조용해졌다. 이제 우르드의 샘에서 좀 멀어졌나 싶은 곳에 이르자 로키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려놔.]

[댁까지 모시라는 분부십니다.]


 선두에 선 시종이 대답했다. 로키가 크게 한번 용을 쓰자, 이내 로키를 붙들고 있던 오딘의 시종들이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로키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끄응차~~! 그러니까 말로 할 때, 들어야지. 어디 신이 말을 하는데, 쯧. 꼭 힘을 쓰게 해.]


어찌나 세게 나뒹굴었는지, 쓰러진 시종들은 잠시 일어나지 못했다. 선두에 선 시종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로키가 시종을 보며 다시 말했다.


[너희가 챙겨주지 않아도 난 내 집으로 갈꺼야. 피곤해서 한 숨 자야겠어. 육아라는 건.. 힘이 드는거구먼. 그럼, 수고!]


로키는 쓰러진 오딘의 시종들을 뒤로하고 휘적휘적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로키는 몸도, 마음도 홀가분했다. 그렇지 않아도 난감하던 차에 뒷처리와 그 책임을 모두 오딘이 스스로 떠안아주었다. 부탁을 하기도 전에 들어준 셈이니 오딘에게 굳이 고마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자신은 그에 맞춰서 명연기를 해주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로키는 끌려나가는 자신을 안타깝게 쳐다보던 다른 신들의 표정이 떠오르자, 크게 웃었다.


[하하! 멍청한 것들. 표정들하고는.. 그 정도 밖에 안되니까, 니들이 늘 나한테 당하는거야. 읏차!]


로키는 양팔 이리저리 저으며, 뻐끈한 몸을 풀었다. 앙그르보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이는 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딘이 아이들을 죽일리 없었다. 그럴꺼면 아스가르드로 부르지도 않았을테니까. 오딘이 잘 알아서 처리할테고, 자신은 당장의 짐을 벗었으니 뒷 일 역시,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로키는 이 세 아이들에게 애정 따윈 없었다. 이 아이들은 로키에겐 뜻 밖의 마주한 골칫거리였을 뿐. 이제 그 골칫거리는 로키의 손을 떠났다. 로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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