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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an 09. 2023

06. 파멸의 세 아이-넷 : 늑대 목에 방울 달기

북유럽신화, 펜리르, 티르

#. 늑대 목에 방울 달기


펜리르는 흔한 늑대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숲 속에서 지냈다. 가끔 오딘이나 다른 신들이 펜리르를 보러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감시였다. 손길 한 번 주는 일 없이 멀리서 펜리르를 살펴보다 이내 사라졌다. 로키도 펜리르가 아스가르드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단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로키는 펜리르를 굳이 만나고 싶지도,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어린 펜리르는 신들이 왜 가까이 와주지 않는지, 왜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지 궁금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버지가 누구이고, 어머니가 누구인지 아무리 물어도 대답조차 들을 수 없었다. 가끔 어린 신들이 자신이 머무는 숲 주변에서 노는 모습이 보였다. 펜리르도 그들과 함께 놀고 싶었지만, 그 누구도 자신과 놀아주려 하지 않았다.


 다만 한 어린 신이 가끔 펜리르를 찾아와 먹이를 주고 갔다. 이 어린 신은 말 수가 적었다. 펜리르가 궁금한 것을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다. 먹이를 준 뒤, 그저 호수 건너에서 펜리르가 먹이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 돌아갔다. 펜리르는 그래도 자신을 상대해주는 존재가 생긴 것이 기뻤다. 언젠가 어린 신이 호수를 건너와 펜리르를 쓰다듬으려 한 적이 있었는데, 펜리르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으르렁거렸다. 으르렁 소리에 놀란 어린 신은 그대로 돌아가버렸다. 펜리르는 이 어린 신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오래지나지 않아 어린 신은 다시 먹이를 가지고 펜리르를 찾아왔다. 아스가르드에서 어린 신만이 펜리르를 상대해주었다. 다른 어린 신들은 이따금씩 찾아와 호수 넘어에서 펜리르에게 돌을 던지거나, 놀리고 조롱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놀림과 조롱을 당하며 펜리르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자신이 이곳에서 버림받아 지내는지 알게 되었다. 한때 그들에게 사랑과 애정을 갈구했던 만큼, 펜리르의 분노와 절망, 슬픔은 컸다.


- 어린 신 하나가 펜리르를 찾아왔다.


어느날, 어린 신이 먹이를 가지고 펜리르를 찾아왔다. 먹이를 주었지만, 펜리르는 먹지 않았다. 어린 신은 호숫가에 조용히 앉아 평소처럼 기다렸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어린 신이 일어섰다. 그때, 펜리르가 어린 신에게 말했다.


[넌 티르지? 다시는 여기 오지마. 네 아버지는 내 원수야. 너와 난 적이다.]

[올거야.]


'티르(Tyr : 신. Tiwaz와 제우스 어원이 같은 것으로 여겨 신으로 해석함)'가 대답했다. 이후에도 티르는 여전히 펜리르를 찾아와 먹이를 주었고, 아무런 말없이 있다가 돌아가곤 했다. 펜리르는 한동안 티르가 던져준 먹이는 먹지 않았다. 이미 몸집이 커져 호수정도는 가볍게 건널 수 있었기에, 자신이 사냥한 먹이만 먹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티르가 준 먹이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펜리르가 티르를 친구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펜리르는 힘이 필요했다. 어서 자라고, 힘을 키워 복수를 해야 했다. 티르가 아니라 오딘이 던져준 먹이라해도 펜리르는 먹을 생각이었다.


펜리르는 빠르게 자랐고, 몸집도 커지고, 힘도 세졌다. 더 이상 어린 신들의 장난에 당황하고 쫓겨다니던 펜리르가 아니다. 이제 어린 신정도는 한입거리도 되지 않았다. 어쩌면 다 큰 신들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 성격은 더욱 사납고 포악해졌다. 이제 펜리르에게 장난을 치는 어린 신은 거의 없었다. 어린 신들도 자라고 있었지만, 펜리르가 자라는 속도는 어린 신들이 비할바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어린 신들은 펜리르가 무서워서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펜리르는 로키의 아들답게 나쁜 장난을 즐겼다. 아직 덜 자란 어린 신들이 보이거나 주변에 있으면 종종 놀리고 괴롭혔다. 펜리르에게 당한 어린 신들이 자신의 형제나 하인을 데리고 찾아온 적이 있지만, 그들도 막상 펜리르를 만나면 겁을 먹고 멀리서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여전히 펜리르의 근처에 다가가 그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건 티르뿐이었다.


- 용감한 신, 티르. 카를 프레드릭(1983. 출처 : https://simple.wikipedia.org/wiki/Tyr)


 펜리르가 무섭게 성장하자, 이를 지켜보던 신들은 점점 걱정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신들의 아이들이 다칠 것이다. 어쩌면 신들 중 누군가가 해을 입을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도 죽여야 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오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신들은 차선책으로 펜리르를 단단히 묶어놓기로 의견을 모았다. 오딘도 그것은 허락했다.


 어느 날, 펜리르가 호숫가에서 낮잠을 자려는데 한 무리의 신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단단한 쇠사슬인 '레딩(Loeðingr : 가죽의 포박)'을 가지고 펜리르를 찾아왔다.


[어이 펜리르! 네가 힘이 강하다고 하는데, 이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펜리르는 쇠사슬을 한번 흘깃 보고는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날 묶어라도 두려고? 누굴 개새끼로 아나.. 그까짓 쇠사슬이 뭐라도 되나보지? 좋아. 니들이 날 묶어놓고 싶은 모양인데, 한 번 감아봐.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지!]


펜리르가 날뛰기라도 하면 어떻하나 걱정했던 신들은 쾌재를 불렀다. 신들은 이때다 싶어 재빨리 펜리르의 몸을 쇠사슬로 감았다. 신들이 묶는 것을 끝내자, 펜리르는 흥하는 콧소리와 함께 너무도 쉽게 쇠사슬을 끊어버렸다. 신들은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펜리르의 힘이 대단할 줄 몰랐다. 신들은 펜리르의 힘에 감탄한 척하며, 재빨리 돌아가버렸다. 펜리르는 도망치듯 돌아가는 신들을 보며 비웃었다.


신들은 이전보다 더욱 단단한 쇠사슬인 '드로미(Dromi : 힘줄의 포박)'를 구해 다시 펜리르에게로 향했다. 펜리르는 호숫가에 엎드려 사냥한 먹이를 먹는 중이었다. 신들이 다른 쇠사슬을 가지고 다가오자, 펜리르는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또 뭐야! 먹을 때는 개도 안건드린다는데, 이젠 내가 진짜 개새끼로 보여?!]


입가에 잔뜩 피를 묻힌 펜리르를 본 신들은 멈칫했다. 신들을 노려보던 펜리르가 갑자기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크크큭.. 뭐야. 겁먹은거야? 한심하긴. 마침 내가 사냥이 잘되서 기분이 좋으니 용서해주지. 쇠사슬을 다시 가져온거 보니 또 묶어보실라고?]

[그.. 그래. 시.. 식사 중에 미.. 아니. 아무리 너라도 이번에는 못끊을꺼야. 이건 정말 단단하다고!]


신들이 대답하자, 펜리르는 흥쾌히 응했다.


[그럼 빨리 묶으라고. 난 식사중이니까.]


신들은 서둘러 펜리르를 드로미로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묶었다. 신들은 이번에는 끊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펜리르는 살짝 힘을 주어보았다. 확실히 이전에 묶였던 쇠사슬보다는 단단했다. 그러나 이정도 사슬에 묶여줄 펜리르가 아니었다. 펜리르가 일어서며 힘을 주자, 쇠사슬은 끊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신들은 펜리르의 엄청난 힘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신들은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펜리르는 그런 신들을 보며 크게 웃었다.


[하하! 겨우 이 정도냐? 신들이 준비한다고 한게 겨우? 하아.. 됐고. 어서 꺼져. 난 식사중이라고. 아니면 더 단단한 쇠사슬을 준비해보던가? 하하하하!]


신들은 의기소침해졌다. 신들이 가지고 있던 것 중에서 드로미가 가장 단단한 쇠사슬이었다. 펜리르는 신들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으니 대비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들이 연속으로 실패를 하자, 펜리르가 방심을 하는 듯 보였다는 점이다. 신들은 고민에 빠졌다. 반드시 펜리르가 끊어낼 수 없는 사슬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이번에는 실패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더이상 펜리르를 묶을 기회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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