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명령을 받은 스키르니르는 곧바로 스바르트알바헤임으로 향했다.헤임달을 제외한 그 누구도 스키르니르가 아스가르드를 빠져나가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스바르트알바헤임에 도착한 스키르니르는 재빨리 드베르그중에서 솜씨좋고, 입이 무거운 난쟁이만을골라 수배했다. 스바르트알바헤임의 어둡고, 은밀한 곳으로 몇 명의 난쟁이가 모여들었다. 이곳은 대부분의 난쟁이들도 모르는 곳이었다. 아니, 근처도 오지 않는 곳이었다. 이발디의 아들들처럼 겉으로 드러난 난쟁이는 당연히 없었다. 모두가 음지에 숨어서 일하는 난쟁이였고, 비밀스럽고 위험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이들이었다. 그런만큼 실력은 뛰어났고, 입은 무거웠다. 자신이 입을 놀리는 순간 소리 소문없이 사라질 것을 잘 아는 자들이었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스키르니르가 나즈막히 말했다.
[못 본 사이에 혓바닥이 길어진 친구가 있군.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너희를 믿겠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으니까. 내 의뢰인께서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슬이다. 그 누구도 그 사슬을 끊을 수 없어야 한다. 또한, 최대한 신속해야 하지. 늘 그렇듯, 조용하게. 특히 로키는 모르게. 할 수 있겠나?]
로키의 이름을 들은 난쟁이들이 흠칫 놀랐다. 그러나 이내 특유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얻는 건?]
난쟁이 하나가 물었다. 난쟁이로서 당연한 물음이었고, 음지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스키르니르가 음산한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내 의뢰인의 가호.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칠꺼다.]
난쟁이들은 잠시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수근거렸다. 그들은 스키르니르를 알고 있었다. 실제 이름은 몰랐지만, 자신들의 세계에선 널리 알려져 있었다. 모인 난쟁이들 대부분이 그와 함께 일한 적도 여러번이었다. 거기다 로키라는 이름은 효과가 컸다. 여기 모인 난쟁이치고, 로키에게 호감이 있는 난쟁이는 없었다. 난쟁이들은 의뢰인의 정체에 대해서도 대충 짐작이 되었다. 잠시 후, 난쟁이 하나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하겠다. 잠시만 기다려.]
[오래 기다리진 못해. 나는 기다리겠지만, 내 의뢰인은 참지않으시니까.]
난쟁이들은 고개를 끄덕거린 뒤,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스키르니르도 가만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고 난쟁이들을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수 없는 법이지만, 스키르니르는 난쟁이들이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스니르니르의 예상대로 한나절도 되지 않아 난쟁이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스키르니르에게 끈 한다발을 내밀었다. 마치 비단처럼 부드럽고, 명주실처럼 가느다란 끈이었다. 스키르니르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난쟁이 하나가 말했다.
[걱정마. 주문한대로 만들어 온 거니까. 보이는 것과는 아주 다른 녀석이지.]
[우리처럼.]
다른 난쟁이가 끼어들었다. 먼저 말한 난쟁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우리처럼. 이건 마법의 끈이야. '글레이프니르(Gleipnir:삼켜버린 것)'라고 하지. 고양이의 발걸음 소리, 여자의 콧수염, 산의 뿌리, 곰의 힘줄, 물고기의 숨,새의 침으로 만들었지. 모두가 비밀스럽거나 얻기 힘든 귀한 것들이지. 이건 토르가 와도 못 끊어.]
살짝 미소를 지은 스키르니르가 난쟁이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난쟁이들도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처음 만날 때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