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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r 15. 2023

12.겨울을 사랑한 봄-여덟 : 겨울을 사랑한 봄

북유럽 신화, 프레이, 게르드, 스키르니르, 겨울, 봄

#. 겨울을 사랑한 봄


 뇨르드와 스카디의 결합이 생명과 죽음의 결합이었다면, 프레이와 게르드의 결합은 봄과 겨울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이''빛''풍요'를 상징하는 신이다. '게르드'라는 이름은 '대지', '들'이라는 뜻이다. 프레이와 게르드가 만난 숲인 '바리' '곡식', '곡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게르드라는 겨울동안 얼어붙었던 대지가 프레이라는 봄의 따뜻한 햇살을 받아 품고 있던 새로운 생명의 싹을 틔우는 것을 상징한다.


 겨울의 대지가 봄의 햇살을 만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시달리기도 하고, 무거운 눈에 파묻히기도 한다. 이것은 대지가 원했던 바는 아니다. 마치 스키르니르가 게르드에게 강압적으로 대했던 장면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견디어 낸 겨울의 대지는 마침내 봄의 햇살과 만나 생명을 잉태한다. 그리고 이 생명이 자라 세상을 풍요롭게 다.


#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이야기, #오딘, #토르, #단테, #프레이, #게르드, #아스가르드, #스키르니르, #결혼, #바리, #겨울, #봄날의햇살






#.PS 01

이번 이야기는 프레이를 주신으로 믿던 지역의 이야기가 기본 틀을 이루고 있다. 흘리드스캴프는 신들의 왕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인데, 그곳에 프레이가 앉아있다. 물론 오딘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북유럽 지역의 다양한 신화가 오딘이 주신이 되는 형태로 정리되면서 프레이를 주신으로 믿던 지역의 신화의 내용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PS 02

게르드의 아버지인  '기미르(Gymir : 바다 또는 대지, 보호자)'종종 '에기르(Ægir : 바다)'혼동되기도 한다. '에기르'를 지칭하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 중에 '기미르'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강한 힘을 지닌 거인에,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지닌 부자라는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에기르은 바다의 신이고, 바다와 인접한 곳에 산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란(Ran : 강탈자)'이라고 전해진다.


 반면, 게르드는 아버지 '기미르'와 어머니 '아우르보다(Aurboða : 자갈을 까는 자, 또는 물의 메세지)'의 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에기르와 기미르는 비슷한 성격이 없지는 않지만, 동일인일 가능성은 낮다고 보인다.


#.PS 03

 이번 이야기에는 스키르니르가 프레이를 대신하여 게르드를 만나러 가는 부분이 등장한다. 이 부분은 전승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대체로 게르드는 불꽃으로 보호되고 있는 집안에 갇혀(?) 있는데, 그 앞을 그녀의 오빠가 지키고 있다. 스키르니르는 그녀의 오빠와 대립하다 그를 죽이게 된다. 그런 다음 불꽃을 넘어 게르드에게 프레이의 사랑을 전한다.


- 시구르드와 브륀힐트, 해리 조지 데커 그림(1920. 출처 : http://www.germanicmythology.com/)


 그런데 북유럽 신화나 전설을 아는 사람이라면 왠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다. 그렇다. 바로 '시구르드가 군나르를 대신해서 브륀힐트에게 구애하러 가던 그 모습'과 판박이다.


 '스키르니르'가 '시구르드'가 되고, '게르드'는 '브륀힐트'로, '프레이'가 '군나르'로 인물만 바뀐 모습이다. 물론 그 결과는 정반대지만, 과정만큼은 똑같은 형태로 진행된다. 이런 모습은 북유럽 신화와 관련된 수많은 설화에서 차용하고 있는데, 대체로 구애와 관련된 이야기다. '프레이의 구애'를 모티브로, 시구르드의 전설을 거쳐, 숲 속에 잠자는 미녀로 이어지고, 현대의 수많은 로맨스 물에 영향을 끼쳤다.


#.PS 04

 스키르니르가 게르드에게 퍼붓는 저주에 대해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한창 필(?) 받은 스키르니르의 말을 끊기가 좀 그랬다.(말을 끊었다고 저주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먼저 '흐림쓰르사르(Hrimthursar)' '태초의 서리거인'이라는 뜻이다. 요툰헤임의 모든 거인은 서리거인의 후예이니, 거인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이번 이야기에서는 '더 무자비하고 잔혹한 서리거인'이라는 뜻이 더해져 있다. 태초의 서리거인들처럼 무지막지한 거인에게 노예처럼 끌려다니고, 이리저리 굴림을 당할 것이라는 의미다.


 다음으로 '쑤르(Thurs)' '거인'이라는 뜻이다. 이 저주에서는 그냥 거인도 아닌 머리가 셋이나 괴물을 말한다. 머리 셋 달린 괴물이나 품어주겠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사랑도, 안식도, 만족도 느끼지 못해 괴로울 것이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세 개의 문자' '룬(Rune) 문자'다. 각각 '에르기(Ergi : 그리움)''외디(Oedi : 광기)', '오쏠라(Othola : 욕정)'이다. 이는 앞서 쏟아낸 저주를 '단순한 말이 아닌, 확실하게 게르드에게 새겨 넣는다'는 의미다. 즉, 말로만 하는 협박이 아니라 정말로 저주를 새겨 넣어 빼도 박도 못하게 할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단서를 달았다. 스키르니르만이 이 저주를 풀 수 있다는 것. 이 부분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스키르니르.. 당신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상대가 신이건, 거인이건 기죽는 법도 없고, 자기 주군의 아내가 될 이에게도 서슴없이 저주를 박아 넣는다.


#.PS 05

 북유럽 신화에서 이 이야기 외에 게르드가 등장하는 부분은 많지 않다. 프레이의 결혼 이야기 자체는 다양한 형태를 지녔지만 말이다. 그중 한 설화에 따르면, 프레이와 게르드는 '표르니르(Fjolnir : 다양한, 많은 또는 들판이라는 뜻으로도 여겨짐)'라는 아들을 낳는데, 이 아들에게서 '고대 스웨덴 왕실(잉글링-Ynglings- 왕가)'의 계보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PS 06

이번 이야기에서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조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01. 프레이가 흘리드스캴프에 앉게 되는 과정을 넣었습니다. 원전에는 '프레이가 흘리드스캴프에 앉아 세상을 보던 중..'이라고 나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프레이가 주신이던 지역의 전승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형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연재 중인 북유럽 신화 이야기는 오딘을 주신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프레이가 자리를 비운 오딘을 대신해서 보좌역을 하는 것으로 내용을 넣었습니다.


-02. 프레이와 스키르니르가 서가에서 나누는 대화는 원전을 기반으로 저의 상상을 더했습니다. 원전에서는 서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스키르니르가 프레이에게 힘들어하는 이유를 묻고, 프레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유를 말해줍니다. 스키르니르가 프레이 대신 구애를 하러 가고, 프레이는 기뻐하며 자신의 말과 스스로 거인을 베는 검을 내어주죠. 전승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대체로 스키르니르가 직접 프레이에게 '어둠과 불을 넘는 말과 스스로 거인을 베는 검을 달라.'라고 합니다. 스키르니르가 이 검이 라그나로크와 관련이 있는 것을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 검이 라그나로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프레이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프레이가 나서서 준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03. 스키르니르가 게르드를 만나는 과정도 전승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스키르니르가 별다른 방해가 없이 게르드를 만나는 버전도 있고, 기미르의 저택 문을 지키는 파수꾼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을 타고 담을 뛰어넘어 게르드를 만나는 버전도 있습니다. 그중에는 목동을 만나 저택의 사정을 알고 잠입한 버전도 있구요. 그녀의 오빠와 벌이는 싸움은 전승에 따라 다릅니다. 불의 담장을 넘기 전에 싸우기도, 넘어서 싸우기도 합니다. 아예 게르드와 상관없이 게르드의 오빠를 다른 이유로 죽인 것으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스키르니르가 아니라 프레이가 죽인 것으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이 많은 버전 중에서 '목동을 만나 저택의 사정을 알아보고, 불의 담장을 넘어 게르드의 오빠와 싸우다가 그를 죽이게 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스키르니르가 게르드의 오빠를 맞아 어떻게 싸웠는지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거인을 베는 검이 알아서 죽였다고만 전해집니다. 싸우는 방식은 저의 상상이며, 스키르니르가 두 자루의 검을 사용하는 것도 저의 설정입니다. 바이킹을 비롯해 고대에는 '검이나 무기는 오른손에, 왼손에는 방패를 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일종의 관습처럼 여겨지는 지역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왼손에 무기를 든다는 것은 비열하거나 관습을 깨는 것으로 보았는데, 이런 부분을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왼손에 검을 드는 것에 대한 생각은 중세를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중세를 지나면서 성채가 늘어나기 시작하죠. 중세 이후, 유럽의 성의 성탑을 보면 둥근형태가 많고, 대부분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곡선의 계단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이건 성탑 아래에서 공격해 오는 적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성탑 아래에서 공격하는 경우, 오른손에 검을 들면 제대로 사용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때 빛을 발하는 존재가 바로 왼손잡이나 양손잡이처럼 왼손에 검을 들고 능숙하게 싸울 수 있는 존재였죠. 그래서 '왼손잡이 검사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는 말이 생겼습니다. 흔히 야구에서 이야기하는 '좌완투수(이왕이면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라는 말의 기원이죠. 야구에서도 좌타자를 상대하기에도, 견제를 하기에도 좋은 투수가 좌완투수이기 때문입니다.


- 올해는 좀.. 잘 좀하자.. 하아..(출처 : https://m.khan.co.kr/?tab=home)


-04. 원전에서는 대체로 두 가지의 형태로 마무리됩니다. 먼저 스키르니르에게 게르드의 대답을 들은 프레이가 아홉날은 너무 길다며, 탄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음은 여기에 게르드가 바리의 숲에서 프레이를 만나 그를 받아들였다고 끝나기도 합니다. 네, 전 여기에 좀 긴 뒷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솔직히 의도한 것은 아니고 적다 보니 그만.. 그리고 부가적인 이야기도 많다 보니 후일담도 좀 길어진 것 같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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