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리싱가멘
네 명의 난쟁이는 태어나서 이렇게 예쁜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 난쟁이들이 여자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심하게 요동치는 건 처음이었다. 욕정(慾情). 이것이 순식간에 네 명의 난쟁이를 집어삼켰다. 어느덧 난쟁이들은 숨소리마저 거칠게 흔들렸다. 그때 프레이야가 무릎을 숙이고 앉아, 네 명의 난쟁이와 시선을 맞추었다. 프레이야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자, 네 명의 난쟁이들은 황급히 시뻘개진 얼굴을 돌렸다. 프레이야가 애원하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제발 브리싱가멘을 저에게 주세요. 원하시는 건 뭐든 드릴께요.]
순간 네 명의 난쟁이의 눈빛이 돌변했다. 무엇이든이라니.. 무엇이든 주겠다니.. 네 명의 난쟁이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말은 필요없었다. 네 명의 난쟁이들은 이미 눈빛 만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 모든 것이 아쌀하게 정리되었다. 난쟁이들의 음흉한 시선이 프레이야에게 꽂혔다.
[브리싱가멘은 우리 모두의 것! 나의 것이면서 나머지 세 예술가의 것이지!]
[그럼! 저걸 가지려면 우리 네 예술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여야 하지! 암!]
[브리싱가멘은 세상 최고의 예술작품! 당연히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만이 가질수 있지!]
[물론이지! 그래도 아가씨 당신은 그 눈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구먼!]
브리싱가멘을 팔 것 같은 대답에 프레이야는 기뻤다. 브리싱가멘에 홀린 프레이야에게 난쟁이들의 저 음흉한 시선은 들어오지 않았다. 프레이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 저에게 파실건가요?]
[아가씨가 이렇게 애원하니 팔도록 하지요. 그 대신! 그 댓가로 당신을 우리에게 주시오!]
그러자 네 명의 난쟁이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쟁이들의 대답을 들은 프레이야는 그만 뒤로 주저앉고 말았다. 브리싱가멘의 댓가로 자신을 달라니... 프레이야는 온 몸이 하얗게 질려 난쟁이들을 보았다. 그제서야 여덟 개의 눈동자가 음욕으로 가득차 빛나는 것이 보였다. 난쟁이들이 더욱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아가씨, 당신이야! 당신이 우리 네 예술가와 각각 하룻밤씩 보내준다면, 브리싱가멘을 아가씨에게 넘겨주지!]
프레이야는 자신을 바라보는 난쟁이들의 시선을 느끼며 몸서리쳤다.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황금과 은, 보석과 보물로 어떻게든 브리싱가멘을 가질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브리싱가멘을 가지려면 자신을 저 흉측한 난쟁이들에게 내어줘야 한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넷에게. 난쟁이라면 평소에도 너무 흉측해서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다. 난쟁이라는 것들이 괴팍하고 야비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프레이야였다. 바나헤임과 아스가르드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지낸 프레이야였다. 프레이야는 양팔로 몸을 감싸며 덜덜 떨었다. 저 흉측한 것들과 몸을 섞는 것이 댓가라니.. 그것이 브리싱가멘을 가질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니.. 프레이야의 시선이 다시 브리싱가멘으로 향했다. 전시대에 걸린 브리싱가멘이 찬란하게 빛났다. 프레이야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어차피.. 내가 여기에 온 건 아무도 몰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돌아갈수는 없잖아.. 그래, 프레이야. 나흘이야. 나흘이면 된다구! 나흘만 눈 딱감으면, 저 목걸이가 내것이 되는 거야!!)]
프레이야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좋아요.. 당신들의 뜻에 따르겠어요... 대신.. 여기서 있었던 일은 영원히 비밀인 거예요!]
[물론이지!!!]
네 명의 난쟁이가 다시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계약은 성립되었다. 프레이야는 여전히 양팔로 몸을 감싼 채, 떨었지만 시선은 브리싱가멘을 향했다. 네 명의 난쟁이들은 프레이야를 둘러싸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이들에게 브리싱가멘은 당장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본 가장 최고의 작품. 그 작품이 지금 자신들의 것이 되었다. '그녀를 가진다!' 비록 하룻밤일지언정, 욕정이 임계치를 넘어 폭발 직전인 이 네 명의 난쟁이에겐 오직 그것이 중요했다.
이 날 밤부터 프레이야는 네 명의 난쟁이와 돌아가며 밤을 보냈다. 네 명의 난쟁이들은 생긴 것만큼 취향도 괴팍하고 고약했다. 네 명의 난쟁이들은 자신의 취향대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가며 프레이야를 탐했다. 프레이야는 나흘 밤의 그 모든 순간이 수치스러웠고, 더러웠고, 불쾌했다. 프레이야로서는 그저 버티고 버틸 뿐이었다. 오직 브리싱가멘. 프레이야는 브리싱가멘만을 생각했다. 브리싱가멘이 자신의 목에 걸리는 순간을, 브리싱가멘이 자신의 가슴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부디 시간이 빨리 흘러가주기를. 어서 빨리 흘러가기를.
- 프레이야와 브리싱가멘, 제임스 펜로스 그림(1890. 출처 : https://norse-mythology.org/)
그렇게 서로 다르게 기억될 나흘이 지났다. 프레이야는 약속을 지켰다. 이제 네 명의 자칭 예술가가 예술적으로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처음과 달리, 난쟁이들은 프레이야를 보내는 것이 아쉬웠고, 브리싱가멘을 넘기는 것이 아까웠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 계약은 계약이다. 네 명의 난쟁이들은 여러모로 못내 아쉬운 손으로 프레이야에게 브리싱가멘을 건넸다. 드디어 브리싱가멘이 프레이야의 손에 들어왔다. 초췌한 모습이던 프레이야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순간 네 명의 예술가들은 마치 돌처럼 몸이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나흘간 시달린 탓인지, 아니면 브리싱가멘을 손에 넣어 긴장이 풀렸는지 프레이야의 변신이 풀렸다. 프레이야의 본 모습을 본 네 명의 난쟁이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프레이야는 변신이 풀린 줄도 모르고 브리싱가멘을 목에 걸었다. 드디어 손에 넣었다는 기쁨이 프레이야의 조심성을 잊게했다. 프레이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난쟁이들의 작업장을 떠났다. 난쟁이들은 넋을 놓은 채 프레이야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프레이야는 브리싱가멘을 얻었고, 네 명의 난쟁이는 죽어서도 잊지못할 하룻밤의 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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