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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Feb 01. 2023

08.프레이야의 목걸이-아홉 : 브리싱가멘의 행방

북유럽신화, 오딘, 프레이야, 브리싱가멘

#. 브리싱가멘의 행방


세스룸니르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오후 늦게서야 잠에서 깬 프레이야는 거울을 보다 브리싱가멘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분명히 잠이 들기 전에도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고, 느끼고 있었다. 프레이야가 아스가르드로 돌아와 마주친 것은 자신의 고양이들 뿐이다. 고양이가 세스룸니르의 방문을 열고 들어와 그 작은 발로 브리싱가멘을 벗겨냈을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프레이야 자신이 잠결에 브리싱가멘을 벗었을 리도 없다. 브리싱가멘을 얻었다는 것은 아직 폴크방의 시녀들은 물론 아스가르드의 누구도 모를 것이었다. 난쟁이들이 무슨 마법이라도 걸어놓았을까? 프레이야는 마법에 능통했다. 무언가 마법이 걸려있다면,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대체 브리싱가멘이 어디로 사라졌다는 것인가.. 프레이야는 누구에게 도와달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혼자서 온 방안을 뒤졌다. 온 방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찾았지만 브리싱가멘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프레이야는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난장판이 된 방 안을 보던 프레이야의 눈가가 붉어졌다. 프레이야는 무릎을 당겨 얼굴을 파묻었다.


- 프레이야, 존 바우어 그림(1905.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Freyja)


오딘이 폴크방에 도착한 것은 해가 내려앉아 어둑어둑해졌을 즈음이었다. 프레이야에게로 향하는 오딘에게 프레이야의 침실 앞에 서있는 한 무리의 시녀들이 보였다. 시녀들은 침실문 앞에 모여 발만 동동 굴렀다. 분명히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프레이야는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오딘을 발견한 시녀들이 황급히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오딘은 대충 침실 안의 상황이 짐작되었다. 오딘이 시녀들에게 가만히 손짓을 했다. 자신이 들어가 볼 테니 모두 물러가라는 뜻이었다. 이를 눈치챈 시녀들이 자리로 돌아가자, 오딘은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실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옷걸이는 쓰러져 옷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화장대 위도 엉망이 되었고, 화장품과 장신구도 이리저리 흩어져있었다. 가구의 문이며, 서랍은 모두 열리고, 온통 헤집어 놓은 모습이었다. 이불과 침대보도 들춰져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그 옆에 헝클어진 머리의 프레이야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프레이야가 목이 한참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


오딘은 가만히 침실 문을 닫았다.


[나야.]

[당신인 거 알아요. 그러니 나가요. 지금은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


프레이야가 말했다. 오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프레이야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프레이야가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오딘!]


한참을 울었는지 프레이야의 두 눈이 벌겋게 부었고, 양볼에 금빛 눈물자국이 나있었다. 프레이야와 오딘은 서로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프레이야는 혼자 있고 싶었고, 오딘은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다. 이렇게 화를 내고 흐트러진 모습은 뇨르드나 프레이에게도 보인 적이 없었다. 프레이야의 시선에 오딘은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프레이야를 감싸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오딘은 그저 묵묵하게 서 있었다. 오딘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프레이야의 앞에 내밀었다.


[이걸 찾는 건가?]


순간 프레이야의 눈이 커졌다. 브리싱가멘. 자신이 그렇게 찾던 브리싱가멘이 오딘의 손에서 반짝였다.


[이리 줘요!]


프레이야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목걸이를 잡으려 했다. 오딘은 그런 프레이야의 손을 뿌리쳤고, 프레이야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프레이야가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프레이야의 목소리에 분이 서려있었다.


[당신.... 역시 당신 짓이었어! 오딘! 당신이란 남자는 정말!!!]

[왜? 안되나?]


오딘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가웠다. 프레이야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오딘이 목걸이를 보며 말했다.


[나의 애정과 호의는.. 이런 목걸이보다도 못했다는 거군.]


오딘은 쓰러진 프레이야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모를 것이라 생각했나? 그동안 네가 어떤 일을 하고 다니는지,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 모른 척해준 거야. 너를 사랑하니까. 그런데 너는 고작 이런 목걸이 하나에? 너는 네가 신이라는 자각도 없는 건가?]


프레이야는 알 수 없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닥을 노려볼 뿐. 오딘이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너에 대한 내 애정과 사랑은 변하지 않아! 내가 너를 손에서 놓는 일은 없어.]  

[... 당신이.. 당신이 나를 사랑해요? 당신이 나에게 애정이란 게 있기는 해요?.. 나를 당신의 여자로 보기는 하냐구요?!... 난 당신한테 뭔데.... 난 당신 밤시중이나 드는 여자가 아니야... 아니라구..]


프레이야가 엎드린 채 소리쳤다. 그녀의 손등 위에 황금눈물이 맺혔다. 오딘은 두 눈을 감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목걸이를 쥔 오딘의 손이 떨렸다. 프레이야는 오딘의 옷자락을 붙잡고 흐느껴 울었다.


[.. 제발.. 제발.. 돌려줘요. 부탁이에요. 오딘..]


- 오딘, 에밀 도플러 그림(1882. 출처 : https://cy.wikipedia.org/wiki/Odin)


오딘은 여전히 두 눈을 감은채 묵묵히 서 있었다. 차츰 손의 떨림이 잦아들자, 오딘이 천천히 눈을 떴다. 오딘은 가만히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는 프레이야의 양 어깨를 감싸며 그녀의 몸을 일으키게 했다. 프레이야가 눈물 가득한 눈으로 오딘을 바라보았다. 오딘이 프레이야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목걸이는 돌려주겠어. 대신 조건이 있어.]

[.. 조건이.. 뭔데요?]


 브리싱가멘을 돌려주겠다는 말에 프레이야가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오딘이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주 작은. 그저 작은 일 하나만 해주면 돼. 난 당신이 인간의 마음에 증오를 심어주길 바라. 그리고 두 명의 왕이 서로를 증오하고 싸우게 만드는 거야. 끝없이 계속.]


오딘의 말을 들은 프레이야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우느라 붉어졌던 프레이야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변했다. 프레이야는 오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인간은 이미 시기와 질투, 의심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었다. 여기에 증오의 감정마저 알게 된다면, 그것은 곧 격한 대립과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증오는 더욱 커질 것이고, 보다 더 큰 대립과 싸움으로 이어진다. 인간이 증오의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끝없이 서로를 죽이고 죽는 것이 반복되는 지옥이 펼쳐지는 것. 증오가 시작되면, 그 끝은 파멸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딘이 프레이야에게 원하는 것은 그 시작을 여는 일이다. 프레이야가 입술을 떨며 말했다.


[당신.. 당신이 지금...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을 하라는 거예요?.. 당신.. 정말 몰라요?]


오딘이 프레이야의 어깨를 토닥이며 대답했다.


[아니. 잘 알지. 아주, 잘. 나는.. 아니, 우리는 뛰어난 전사들이 필요해. 그것도 아주 많이. 지금처럼 모으는 걸로는 모자라. 언젠가... 이 아스가르드를 뒤덮을 정도로 전사들을 모아도 부족할 거야. 그러니 당신은 이 일을 반드시 해야 해.]


프레이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딘은 다정한 얼굴로 프레이야의 어깨를 감쌌다. 얼마나 지났을까. 프레이야의 얼굴색이 돌아오고, 몸의 떨림도 멈췄다. 체념. 그것이 지금 프레이야의 마음이었다. 프레이야가 깊이 한숨을 쉬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하아...... 알았어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게요.]


오딘이 프레이야의 양 어깨를 가만히 두드렸다. 오딘은 몸을 일으켜 프레이야의 등 뒤로 돌아갔다.


[목걸이를 걸어주지.]


프레이야는 가만히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언제 봐도 하얗고 아름다운 목선이었다. 오딘은  프레이야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준 다음 그녀의 목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 오딘과 프레이야, 에밀 도플러 그림(1904. 출처 : https://cs.wikipedia.org/wiki/%C3%93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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