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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Feb 13. 2023

10.이둔납치사건-하나 : 세 친구의 여행

북유럽 신화, 오딘, 로키, 헤니르, 샤치, 이둔

#. 스노리의 서가


스노리는 편안하게 앉아 스튤라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스노리가 들려준 이야기에 대해 스튤라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하면, 스노리가 대답을 해주거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주기도 했다. 모처럼 숙질간에 다정한 시간이었다. 애초에 스튤라가 스노리를 찾아오는 것도 스노리에게 여러 가지를 배우기 위해서였고, 스노리도 바쁜 일을 끝내 한가했기에 가능한 시간이었다.


스튤라 : 역시.. 사건 사고가 있는 곳엔 언제나 로키가 있군요.

스노리 : 대체로 그렇지. 다만, 로키가 계획하지 않은 사건도 있단다. 그 모든 사건을 로키의 탓으로 보긴 힘들지. 운이 나쁘다랄까..


스노리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스튤라가 물었다.


스튤라 :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스노리 로키도 원하지 않는 사건을 발생시키게 되는 경우도 있단다. 예를 들어 이둔 납치사건 같은 경우?


스튤라가 다시 물었다.


스튤라 : 이둔? 이둔이 누구죠?

스노리 : 흠, 이둔은 말이야...


스노리는 수염을 쓸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세 친구의 여행


 '로키(Loki : 의미불명)'는 종종 세상을 여행했다. 대체로 로키가 유희거리(건수)를 찾기 위한 여행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여행은 로키의 시야를 넓혀주고, 지식을 쌓게 했다. 때때로 로키는 오딘이나 토르처럼 친한 신들과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신들이 로키의 경망스러움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재주나 능력은 항상 인정했다. 로키도 런 신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않아서, 함께 여행할 때는 언제나 든든한 길잡이이자, 말동무 노릇을 자청했다.


어느 날,  '오딘(Odinn : 분노, 광란)'은 요툰헤임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실제로는 거인들의 상황을 정탐하기 위해서였다. 오딘은 요툰헤임에 익숙한 로키를 길잡이로 삼고, 모처럼 '헤니르(Hoenir : 강한, 조력자)'도 함께 데려갔다. 이들은 요툰헤임에서도 그동안 돌아보지 않은 지역을 탐색하기로 하고 여행을 떠났다. 아무리 세상을 만든 오딘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많은 것들이 변하기 나름이었다. 오딘의 여행은 그동안 변한 것들과 새로운 것에 대한 지식을 얻는 일종의 수련이었다.


 오딘 일행은 아스가르드를 떠나 요툰헤임으로 향했다. 빙하가 흐르는 계곡을 지나고, 미지의 숲과 들판을 건넜다. 며칠이 지난 후. 오딘 일행은 여러 가지 새로운 정보를 얻었지만 동시에 많이 피곤했다. 휴식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배를 채워야 했다. 그동안 주변에 민가도 없어서 별다른 음식거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던 오딘 일행은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떼를 발견했다. 보아하니 누군가 키우는 소들은 아닌 것 같았다. 너무 배가 고팠던 오딘 일행은 그중에서 가장 살찐 숫소 한 마리를 잡아 구워 먹기로 했다.


로키가 주변의 나무로 몽둥이를 만들어 소를 잡아오는 동안, 오딘과 헤니르는 장작으로 쓸 나무를 모으고 요리 준비를 했다. 로키가 숫소를 잡아오자 이들은 즉석에서 숫소를 굽기 시작했다. 고기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오딘 일행은 저마다 침을 삼키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점점 고기가 익어가며 맛있는 냄새를 풍겼고, 오딘 일행은 저마다 고기를 베어 물었다. 고기에서는 아직 핏물이 흘러나왔다. 로키가 고기를 다시 불 위로 던지며 말했다.


[에비 에비~! 에이, 입맛만 버렸네.]

[이런, 우리가 배가 많이 고팠나 보군. 아직 덜 익은 걸 먹겠다고 설치다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


오딘도 멋쩍게 웃으며 다시 고기를 불 위에 얹었다. 최고신이라 불리는 자신이 배고픔에 그만 체면을 구긴 것 같아 오딘은 피식하며 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해는 저물고 날은 어두워졌다. 밤으로 접어들자 찬바람이 불어왔다. 신들은 조금 더 불가로 다가와 앉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고기가 익기를 다렸다. 누가 봐도 고기가 다 익었다고 생각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신들은 서로 웃음을 지으며, 고기를 불 위에서 내렸다. 이번에는 헤니르가 칼을 들어 고기를 베어냈다. 그런데 웬일인지 고기는 전혀 익혀지지 않았다! 고기에서는 여전히 핏물이 흘러내렸다. 헤니르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오딘이 외눈을 찌푸렸다. 그때 로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벌떡 일어서 주변을 살폈다.


- 배고픈 신들과 독수리, 18세기 아이슬란드 삽화(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3%9Ejazi)


[큭큭큭..]


바로 그때, 로키의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딘 일행이 흠칫 놀라 올려다보니 머리 위로 솟은 나무 꼭대기에 한 마리의 거대한 독수리가 앉아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보통 독수리와는 크기나 생김이나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다. 로키가 불쏘시게로 쓰던 나무 막대기를 들고 소리쳤다.


[네 놈이지! 네 놈이 이 고기에 마술을 건 거지!]


그러자 나무 위의 독수리가 대답했다.


[하하! 눈치 한 번 차암~ 빠르군 그래. 이제야 알아채다니. 내가 원하는 만큼의 고기를 나에게 준다고 약속하면, 그 고기가 잘 익도록 해주지. 어때? 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들판의 여행자들이여?]

[우씨! 이건 내가 잡아온 거라고?!]


로키는 얼굴을 붉히며 독수리를 노려보았다. 오딘도 생각 같아서는 독수리를 혼내주고 싶었다. 그러나 여긴 거인들의 땅이었고, 자신들도 신분을 숨긴 상태라 무난히 넘어가는 쪽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딘이 로키를 달래며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우리가 다 먹기엔 양이 많아. 거기 독수리! 자네도 이리 오게. 우리 같이 식사를 하세나.]


로키도 독수리를 보며 소리쳤다.


[우리 형님은 사람이 너무 좋다니까. 좋아! 네 놈에게도 고기를 나누어주지. 대신 거짓말이면 가만두지 않을 테야~!]

[하하~! 자네는 속고만 살았나? 내 약속은 반드시 지킬 테니 너희야말로 계약사항을 위반하지 말라고.]


오딘 일행은 다시 고기가 익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고기가 다 익었고, 모두가 입맛을 다셨다. 그때, 독수리가 한 번 빼액하는 울음소리를 내더니 나무 아래로 날아와 고기를 낚아채 덥석 물어뜯었다. 그런데 독수리는 맛있는 부위는 다 뜯어가고, 거의 뼈만 앙상하게 남은 고깃덩이를 던져놓는 것이 아닌가!


[너 이씨!!!]


- 로키를 붙잡아 날아가는 독수리, 18세기 아이슬란드 삽화(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3%9Ejazi)


 로키는 그만 화가 치밀어올라 들고 있던 나무 막대기로 독수리를 후려쳤다. 그러자 독수리는 재빨리 그 나무막대기를 낚아챈 뒤, 하늘로 날아올랐다. 로키가 황급히 나무 막대기를 놓으려 했지만, 막대기를 잡은 손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로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오딘과 헤니르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빠르게 지나가는 울창한 숲만 보일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독수리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하강했다. 로키는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독수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몽고족이 사냥감을 말에 묶고 끌고 달리는 것처럼 독수리는 엄청난 속도로 들판 위를 날았고, 로키는 땅바닥에 질질 끌렸다. 로키의 몸 여기저기가 긁히고 찢겨 피가 흘러나왔다. 그 상태로 얼마나 끌려다녔을까.. 독수리는 다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로키는 '이번에도 또 땅바닥에 처박히는구나..' 하고 겁에 질렸다. 하지만 독수리는 그 상태로 천천히 하늘을 유영하더니 이윽고 로키에게 말을 걸었다.


[아픈가?]

[젠장할~! 죽일 셈이면 빨리 죽이지 이게 무슨 망할 놈의 짓거리야~!]


독수리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거 본심 하고는 영 다른 소리를 하는군. 하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로키에게도 자존심은 있겠지.]

[뭐야?!]


로키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독수리가 거인이 변신한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자신의 정체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죽이지 않고 괴롭히는 것을 보면, 분명 거인은 로키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미 대지는 까맣게 멀어졌고, 로키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로키가 독수리의 모습을 한 거인에게 소리쳤다.


[알았어! 그래,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줘~!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것? 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군. 그럼 좀 더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독수리는 더욱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고, 로키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하늘 높이 한참을 더 올라가 구름의 평원에 가서야 거인은 속도를 줄였다. 로키는 하얗게 질렸다. 거인이 차분하게 말했다.


[자, 내 조건을 말해주지. 네 놈들이 사는 아스가르드에 '이둔(Iðunn : 굉장히 사랑받는 자, 계속 사랑받는 자 또는 영원히 젊은)'이란 계집이 있지?]

[이둔은 왜?]


로키가 물었다. 이둔은 오딘의 아들 중 하나인 '브라기(Bragi : 시)'의 아내였다. 이둔은 '이왈트(Iwalt : 의미불명, 이발디로 여겨지기도 함)'의 딸이자, 알프 출신으로 얼굴만큼이나 아름답고 하얀 팔을 가진 여신이다. 이둔은 젊음과 청춘의 여신인데그녀는 먹으면 결코 늙지 않는 사과를 가지고 있어서 신들에게 영생을 공급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둔의 이름을 들은 로키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 하프를 연주하는 브라기와 곁에 선 이둔, 닐스 브롬머 그림(1846.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I%C3%B0unn)


거인이 다시 말했다.


[그 계집을 내게 데려다주면 널 살려주겠어. 어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텐데?]

[그... 그건...]


로키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물쩡거리자 거인은 자세를 바꿔 그대로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포감에 질려버린 로키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알았다고~ 알았어! 내가 이둔을 넘겨줄게~! 약속한다고! 그러니까 제발 살려줘~! 아니 살려주세요~!]


독수리는 한 참을 내려와서야 속도를 늦추었고, 대지에 가까워지자 로키를 그대로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로키는 그대로 내동댕이 쳐졌고, 온몸을 타고 퍼지는 고통에 신음했다. 거인은 여전히 독수리의 모습으로 로키의 반대편 바위 위에 내려앉았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내가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어! 정확히 일주일 뒤에 그 계집을 아까 그 숲으로 데려와! 알았나? 천방지축 날뛰는 바보 같은 신이여?]


로키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로키가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 아.. 알았다고... 많이 묵었으니 그만하라고..]


거인이 빼액하고 비웃음 같은 소리를 지른 뒤 날갯짓을 했다. 땅바닥에 쓰러진 채, 로키가 물었다.


[그... 그런데 네.. 네놈이 누군지 알아야 이둔을 넘기든 말든 할게 아니야..]

['샤치(Þjazi/Thiazi : 의미불명, 티아지라고도 불림)'다. 거인왕 샤치를 부르면 될 것이다.]


이름을 말한 샤치는 멀리 하늘로 사라졌다. 샤치가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지고 나서야 로키는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오딘과 헤니르를 찾아 나서야 했지만 몸이 영 말을 듣지 않았다. 겨우 자신이 끌려온 방향으로 걸어가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한참이 지난 후, 로키는 자신을 찾아 나선 오딘과 헤니르를 만날 수 있었다. 오딘과 헤니르는 망신창이가 된 로키를 데리고 서둘러 아스가르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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