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두 번째 걸음

타자와 그 관계의 조율

by 최희재

1~3층에선 Personality의 고유성, 상대성, 변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4층과 5층은 타자, 그리고 관계에서의 조화의 이야기이다.

4층 타자의 윤리
타자란 무엇인가. 타자는 대상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이다. 나의 중심인 세계 바깥에서 온 존재, 고유하며 이해불가하며 알 수 없고 무한하게 나를 넘어서 있는 존재이다. 내 안에서 타자를 해석하려는 순간, 그것은 타자에 대한 폭력이 된다.

사실 이러한 개념은 굉장히 낯설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사회가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거기에 동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아'에 갇혀있는 상태에서는 사랑에서조차 변질되고 훼손되기 쉬운 상태가 된다. 타자를 사유할 때, 이 사유는 '나'를 위한 것인지, '타자'를 위한 것인지 구별이 어려워진다. 타자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보지 못한다면, 타자는 내 안에서 해석되고 분석되는 '대상'이 되어버리고 나의 모든 행동이나 말은 '나'를 중심으로 말하게 된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나'는 항상 중심으로 서있어야 한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보다도, 사랑이란 관계에 있어서 타자를 온전히 존재로서만 감응할 수 있어야 건강하고 깊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 관계가 깊을수록 타자는 다양한 측면을 보여줄 것이고 거기엔 '왜'라는 물음표보다는 '그렇구나'라는 말이 더 필요하다.


타자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책임 또한 느껴야 한다. 타자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든, 덜 사랑한다고 느끼더라도, 그것이 '나 자신'이 타자를 사랑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그것이 슬프고 힘들고 더 나아가 고독과 허망에 빠지게 만든다 하더라도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책임. 사랑하는 타자 앞에 선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자를 이해하기보다는, 감각과 감정으로 느끼고 그 존재자체에 감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전히 자신의 생각을 비우고 타자에게 다가서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언어의 결, 호흡, 목소리의 떨림, 손짓 하나, 눈동자의 움직임 등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생각하지 말고 느끼고 공감해야 한다.

타자는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존재이고, 무한하게 나를 넘어서 있다. 그 거리는 영원히 닿지 않을지라도 좁히려는 노력을 멈추어선 안될 것이다.



5층 사랑이란 관계 속의 나와 타자의 조화
1~4층에서 타자와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재정립하였다면 5층은 타자와 자신과의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이상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현실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랑한다는 마음, 그것은 굉장히 솔직한 자신의 욕망을 타자에게 내비치는 행위로, 그 마음이 커질수록 욕망 또한 비례해서 커진다. 이것은 곧 타자 앞에서 '내'가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으로 자신의 욕망과 타자에 대한 존중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여기에 각자의 상황 같은 현실적인 문제까지 겹치게 되면 관계의 조율이라는 건 어찌 보면 타협과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한들, 그것 또한 사랑이며 나도 그런 사랑을 해봤었고 그때의 감정, 마음과 진심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이란 자신과 타자, 그리고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와 성찰 속에서 성장해 나아가는 실천임을 안다.

현실적인 문제는 제쳐놓고, 관계의 조율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대화이다. 정확하게는 언어로서의 감정표현과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 서로 다른 세계의 두 사람이 오해의 여지없이 연결될 수 있게 하는 도구 중 하나는 언어이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언어로서 표현한다. 여기서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를 못한다. 때로는 왜곡하고, 감추려 하고,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는 채로 표현한다.


"나는 네가 먼저 가서 화가 났어"


여기서 화가 난 것은 2차적인 왜곡된 감정이다. 내 안에서 타자의 행동이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살펴보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생각하면 본질적인 감정은 서운함 또는 불쾌감 일수 있다. 당장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솔직한 것이 아니라 감정의 근원을 되짚어 보고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솔직한 감정 표현이다.
그렇다면 듣는 입장에서는 그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타자의 말을 듣고 해석이나 분석하려고 하지 말고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 감정이 왜곡된 감정이라 할지라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고 공감하고 그 뒤에 같이 내면을 탐구해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감정의 교류 끝에는 언제나, 같은 상황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 관계가 더 나아지기 위한 대화로 이어져 나아가야 한다. 그 감정 안에 있는 내면의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욕구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대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특히나, 나의 욕망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사랑이란 관계에서는 '나' 자신이 훨씬 방어적으로 나올 수도 있고, 합리화될 수 있으며, 왜곡된 감정표현이 나오기가 쉽다. 혹은, 표현 자체를 잘 못할 수도 있다.

그다음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자신의 욕망과 타자의 윤리, 존중 사이의 균형이다. 사랑이 깊어지고 그 마음이 커질수록 자신의 욕망도 커져간다. 더 가까이 연결되고 싶고, 더 자주 연결되고 싶고, 더 사랑받고 싶어지는, 그런 욕망에 솔직해지되 그것이 타자의 리듬과 존중을 해쳐서는 안 된다. 에리히프롬은 사랑의 실천으로 '인내'를 이야기를 하고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해 '무한하게 자신을 넘어선 존재'라 정의한다. 그 말은 자신이 얼마나 타자를 사랑하든 그 깊이가 얼마나 깊고 그것이 얼마나 절실하고 간절하든 간에 그것은 타자와 상관없다는 뜻이며 강요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온전히 자신이 '인내' 해야 하는 자신의 몫인 것이다. 거기에 타자를 끌어들인다면 사랑은 퇴색되고 관계는 점점 소진되어진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지키기 위해 타자에 대한 모든 것을 훨씬 세심하게, 섬세하게 감각적으로 느끼고 반응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해야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의 '부재'이다. 어떤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조율가능하다고 믿지 않을 때 우리는 보통 이별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한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것이 감당하기 버겁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을 사람이라 단정 짓고 깊은 대화를 시도조차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전글에서 이야기했듯, Personality는 변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말이다.

사랑의 5층이 힘든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감정이나 행동의 조율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를 조금씩 바꾸어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타자를 위해 스스로를 잃는 희생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 안에서 자기 존재를 다시 설계하려는 실천이자 성장이다.
그리고 그 실천이 가능하려면 고유성, 반응성, 변화성, 윤리적 감응이라는 깊은 자기 사유의 기반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랑을 견디며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부터가 이미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와 타자의 영적 성장을 위한 의지이자 실천이다.-벨훅스
사랑은 본질적으로 의지의 행위, 곧 나의 생명을 다른 한 사람의 생명에 완전히 위임하는 결단의 행위여야 한다.-에리히프롬

벨훅스와 에리히프롬은 사랑을 의지와 실천, 위임, 결단의 행위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은 사랑이 가장 흔들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 의미가 짙어진다.

당신은 그런 한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는 양자택일의 문제에 봉착하였을 때 맞지 않는다며 관계든 자신이든 타자든 포기할 사람인가 아니면 서로의 가능성과 성장을 믿고 진정 그 사람과 함께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인가

'처럼 보인다'라는 말은 서로의 가능성에 대해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서로의 가능성만 믿어준다면, 그리고 그 변화할 의지만 있다면 서로의 거리는 무한히 좁혀진다. 사랑은 결국, 감정을 말하고, 듣고, 기다리는 과정이다. 그것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인내로 이어지며, 끝내는 타자와의 조율을 넘어 타자와 함께하는 나의 재구성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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