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깜박 깜박 빨간 불.

우리는 상어 가족: 상어 가족의 시작.

by Janie

내가 아팠던 이후 시간은 흘러 봄이 되었다. 아가를 벗어나는 36개월 세 돌까지 반년 정도 남았다. 그렇게 잔잔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가를 키우다 보면 늘 평온할 수만은 없다.


몸이 다시 불덩이가 되었다. 방금 전 병원에서 돌아왔는데. 얼른 체온계로 온도를 재니 빨간 불빛이다. 좋지 않다. 39도가 넘는다. 분명 아침에 병원 약을 먹었는데. 물수건도 소용없다. 온도가 또 올라갔다. 오전 11시인데 또 39도가 넘는다. 아가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가 스스로 병원에 가고 싶다 한다. 아가가 늘어진다.


남편 안 되겠어요. 얼른 응급실로 가요. 더 이상은 그냥 약만 먹으면 안 되겠어요. 얼른요! 날 믿어 줘요!


난 내 가방 안에 아가 내의와 속옷, 양말, 수건, 물, 물티슈 등을 챙겨 넣었다. 그리곤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반팔에 편한 바지에 카디건. 신발은 무조건 편한 운동화. 핸드폰 충전기도 잊으면 안 된다. 이 모든 준비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리곤 아이를 끌어안았다.


“가자 아가야,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난 아가를 끌어안았고 남편은 서둘러 운전했다. 다행히 병원이 가까워 금방 도착했고 난 아가를 안고 먼저 응급실 앞에 내렸다.


“아가가 열이 내리지 않아요. 얼른 봐주세요!!!”


약 이 주전.


봄이다. 날이 따뜻해서인가 아님 연휴인걸 알아서일까. 우리 공주님이 일찍 일어났다. 암막 커튼을 걷으니 방안 가득 햇살이 들어온다. 딸이 일어나 옆에 붙여 놓은 엄마 아빠 침대로 온다. 그리곤 방금 막 일어난 아빠랑 침대 헤드에 기대 둘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오늘은 다 같이 바람 쐬러 가자. 그래 네가 좋아하는 거기. 언니, 오빠, 친구들 많고, 킥보드 탈 수 있고, 맛있는 것 먹을 수 있고. 우리 공주님은 이곳을 시원한 놀이터라 부른다. 어른 언어로는 의왕에 있는 아웃렛.


그렇게 연휴는 시작됐다. 아웃렛에 있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킥보드를 탔으며, 우리 딸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먹었다. 햄버거를 시작으로 우리 공주님 연휴 기간 동안 다양한 음식을 섭렵했다. 날이 좋아 갔던 동네 놀이터에서는 평상시 안 먹던 딸기우유를 선택했다. 그렇지, 딸기 바람막이를 입은 날에는 딸기 우유지. 바람이 좋아 푸쉬카를 탄 날은 아기 상어 노래를 들으며 망고맛 막대 사탕. 그래 공주님, 너를 밀어주느라 정신이 없지만 너만 즐겁다면 괜찮아. 그리고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갈 순 없지. 할머니 집에 가서는 짭조름한 믹스 넛츠. 그래 우리 조카도 한 때 믹스 넛츠만 먹었었지. 집에서는 네가 좋아하는 엄마표 붕어빵. 근데 딸아, 먹고픈 거 다 먹고 즐겁게 놀았는데 왜 피곤해 보이니?


할머니 상어, 할아버지 상어, 아빠 상어, 말 안 듣는 아기 상어 모두 좋아하는 엄마표 붕어빵.


모든 일엔 전조 증상이 있다. 난 딸이 단순히 피곤한 줄 알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 더 이상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항상 화장실을 가서 볼일을 보던 아가가 거실에서 실수를 했다. 몸에서 열이 나니 불편해 화장실을 안 가고 참다가 뒤늦게 가려니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열이 나기 시작했고 난 딸이 감기 몸살이라 생각해 소아과에 갔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고 오히려 열이 심해졌다. 오후 늦게부터 새벽까지 39도가 넘어 나도 딸도 밤새 편히 자지 못했다. 결국 큰 병원에 갔다.


가능하다면 예약시간을 오전 중 가장 빠른 시간으로 잡고, 예약시간보다 좀 더 일찍 도착하면 좋다는 것을 예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또한, 남편이 주차를 하는 동안 내가 먼저 아가랑 대기실로 가는 게 현명하다는 것도 이미 몸소 배워 알고 있었다.


이른 오전부터 많은 아가와 아이들이 예약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늘 놀란다. 아픈 사람이 아니 아픈 아가와 아이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그래서 늘 우리 공주님이 건강하게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역시 건강이 최고다.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원인을 알고자 다양한 검사를 했다. 정말 다양했다.


딸아, 여기 누워봐. 어머, 천장에 뽀로로가 보이네. 루피도 있어. 그지?라고 아이의 주위를 딴 곳으로 돌리며 채혈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이는 당했다. 우리 딸, 용감한데! 멋지다 라며 우쭈쭈.


자 엄마 말 들어봐. 여기는 우리 공주님 몸을 찰칵하는 곳. 우리 딸, 엄마 핸드폰으로 사진 찍기 좋아하지. 오늘은 더 큰 사진기로 사진 찍는 거야. 자 한번 해보자~. 찰칵, 찰칵! 이야, 대단한데. 우쭈쭈. 그렇게 엑스레이.


엄마, 뭐 하는 거예요? 응 그래 딸아, 엄마만 믿어 괜찮아. 아니에요 엄마 그 컵 치워 주세요. 노노, 괜찮다니까. 우리 아가, 쉬~ 해보자. 쉬~. 아이, 참 잘했다. 멋지다. 우쭈쭈. 그렇게 소변 검사.


복병은 따로 있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병원에 바로 와야 했다. 그래 걱정 말자. 요구르트만 있으면 해결될 거야. 뭐라고? 네가 먹은 그 제품이 아니라 맛없다고? 그렇다. 우리 딸은 매일 아침 특정 브랜드 요구르트만 먹는다. 그래서 늘 쾌변이다. 그런데 병원 편의점에서는 그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이거닷! 바나나맛 우유. 난 딸에게 평상시는 잘 주지도 않는 그 달콤한 우유를 건넸다. 다행히 신호가 왔다. 엄마, 응가! 급해요! 오마이. 난 딸을 안고 뛰면서 화장실로 향했고, 평생 처음 화장실 안에서 난해한 일을 해냈다! 대변검사 성공!


아가가 하는 말은 대개 진실이라 늘 간과해서는 안된다. 검사 결과 우리 딸이 표현한 것이 정확했다.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는 것. 엑스레이를 보니 장에 가스가 많이 차 있어 아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외 열이 왜 심한지 특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약을 지어 집에 돌아왔건만 고열이 다시 시작되고 낮에도 고열은 찾아왔다. 며칠간 약을 먹어도 소용없었다. 이상했다. 난 밤마다 잠을 못 자 정신없고 몸도 천근만근이었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저번에도 내 느낌이 맞지 않았던가.


우리 딸이 처음 응급실에 간 것은 돌이 좀 지나 밥과 반찬을 먹기 시작했을 때였다. 생선을 너무나 좋아하길래 늘 조심히 살을 발라 아가에게 줬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조심했건만 갑자기 아가가 울면서 목을 가리켰다. 물을 먹여도 밥을 넘겨도 일정 주기로 목이 아프다 울었다. 난 경영 전공이고 의학지식이라곤 하나도 없지만 목에 가시가 걸린 것을 직감했다. 나와 남편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했건만 아가는 너무 아파했고 난 당장 이 밤에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우겼다. 병원은 가까웠지만 가는 동안 아가는 여러 번 울었다. 난 그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고, 너무 미안해 나 자신을 자책했다.


그땐 코로나 발병 전이라 응급실로 빨리 들어갈 수 있었고 난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흐느끼며 말했다. 아가 목에 가시가 걸렸다고. 그런데 그날 당직인 의사가 내게 말했다. 한 번 보더니 아무것도 없다고. 그러니 집에 가서 지켜보라고. 그때 난 분노 게이지가 급상승함을 느꼈다. 난 집에 갈 수 없다고 분명 아가 목에 가시가 걸렸다고 주장했다. 그 와중에 아가는 또 목을 가리키며 울었다. 아직 말을 못 하는 시기였기에 그렇게 내 딸은 울면서 가리키기만 했다.


“무슨 근거로 목에 가시가 있다는 것이죠?”

차가운 목소리였다.

난 그때 그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 내 자식이 목이 아파 저리 우는데 집에 가라고? 난 최대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다른 의사를 모시고 오라 했다. 이대로 갈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다른 의사가 왔고 한 번 보더니 다른 의사들 보고 우리 딸을 포대기로 잘 감싸 눕히라고 했다. 딸은 겁먹어 더 울었고 난 괜찮다며 아가 손을 잡았다. 결국 우리 딸 목에서 큰 가시 하나가 나왔다. 난 딸에게 미안하다며 꼭 끌어안아 달래며 안정시켰다. 미안하다 말하고 또 말하며 흐느꼈었다. 내 잘못이었다.


그때 난 다짐했다. 딸에 관해서만큼은 양보란 없다고.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때 집에 가라며 무슨 근거로 가시가 있냐고 내게 말한 그분. 지금은 그런 분이 아니시길 바란다. 대다수 의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살면서 만났던 좋은 의사 분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딸이 다니는 소아과 의사 선생님도, 내 제왕절개를 담당하셨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도, 내가 어릴 때 우리 아빠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 선생님도 다 너무나도 실력 있고 환자에게도 따뜻하신 분들이었다.


우리 딸이 열흘간 고열에 시달리다 더는 안 되겠다며 응급실에 달려갔을 때 그날 응급실 소아과 담당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많이 놀라셨죠? 아가가 이렇게 열흘 가까이 열이 나면 오시는 게 맞습니다.”


난 그 의사 선생님의 말에 울뻔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고, 아픈 딸이 더 이상 고생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그분은 우리가 응급실 밖 컨테이너에서 오래 기다릴까 봐 직접 코로나 검사도 해주시고 결과도 빨리 나오게 해 주셨다. 코로나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분 덕에 우리 딸은 생각보다 빨리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너무 감사했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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