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사랑해요.

우리는 상어 가족: 상어 가족의 시작.

by Janie

춥다.


남편 말을 들을걸 그랬다. 생각보다 춥다. 싱글 침대 두 개와 그 가운데 사람이 걸어 다닐 정도의 통로. 침대 끝엔 티브이 하나와 책상 하나. 그리고 밖이 보이는 창문. 난방을 틀고 기다리니 따뜻해졌다. 이곳이 내가 격리기간 동안 지낼 생활치료센터다.


같은 방에 계셨던 할머니는 몸상태가 좋지 않아 이틀 만에 근처 병원으로 이송되셨다. 나도 처음 겪어보는 고통을 맛보았다. 감기처럼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던데. 아무래도 내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걸려 심하게 아픈가 보다. 하지만 맘 편히 아플 수가 없었다. 만 두 살인 딸과 태어나서 처음으로 떨어져 있으니 눈앞에 딸이 어른거린다.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엄마가 없으면 난리가 나는 아가다. 그런 딸을 돌보며 일해야 하는 남편, 그리고 우리 남편과 함께 손녀를 돌볼 엄마 아빠 걱정에 한시도 맘 편할 수가 없었다. 모두에게 너무 미안해서 하염없이 며칠을 울었다.


난 우리 딸과 매일 아침저녁 영상통화를 했고, 남편은 매일 딸의 모습을 찍은 비디오를 보내줬다. 장인 장모님 체온을 아침저녁 체크한 결과도 알려줬다. 정말 남편에게 고마웠단 다행히 온 가족 모두 끝까지 음성이었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편이 찍은 비디오 속의 딸은 신기하게도 너무나 의젓한 모습이었다. 웃으면서 할아버지 등에 업혀 있는 모습, 할머니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 혼자 그림 그리는 모습 등. 엄마와 남편 말에 의하면 엄마를 찾지 않고 너무나 잘 놀고 잘 먹는단다. 엄마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엄마를 안 찾네? 분명 다행인데 한편으론 조금 섭섭했다. 그래도 감사했다.


하루는 남편이 놀라고 기뻐서 전화를 했다. 우리 공주님이 쉬야랑 응가를 화장실 가서 했다고! 두 돌 좀 지난 아가가 드디어 기저귀 벗을 희망이 보인다고. 이건 다 우리 엄마 덕분이었다. 엄마는 우리가 기저귀 떼는 연습을 하는 걸 아셨다. 그래서 부탁도 안 했는데 매번 시간 맞춰 손녀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신 것이다. 아무리 겨울이라도 기저귀를 계속 차고 있으면 많이 불편할 거라고 하루라도 빨리 떼야한다고 하시더니, 우리 딸 할머니가 여기서 응가하자 했더니 정말 응가한 거다. 기특해, 우리 딸! 고마워요, 엄마!


그리고 난 남편이 보내 준 영상을 보고 또 한 번 놀랐었다. 내가 클 때는 우리 아빠 매일 너무 바빠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해외 출장이 잦았고, 새벽엔 영어 및 일어 학원, 평일엔 야근 그렇게 그 시대 어느 아버지처럼 너무나 바쁘게 사셨다. 내가 유치원 다닐 땐 아빠 얼굴을 못 그려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하신 사태도 발생했었다. 다행히 난 좀 더 자란 후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아빠는 딸을 업어 키운 적도 없고, 기저귀 갈아 본 적도 없으며, 아가와 놀아준 적도 없으셨다. 그런 아빠가 손녀를 업고 다니시고 목마도 태워주며 열심히 함께 놀아 주시는 것이 아닌가. 아마 우리 아빠는 아가랑 놀아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전 처음 아셨을 거다. 아빠가 몸살이 안 난 게 다행이었다. 고마워요, 아빠.


난 온 가족이 노력 중이라는 것을 알기에 입맛이 없고 맛을 거의 못 느껴도 억지로 삼시세끼 다 챙겨 먹었다. 내가 있던 생활치료센터는 하루 세끼 밥이 따뜻하게 나왔고, 약도 구비되어 있었으며, 깨끗했다. 이게 다 무료라니. 우리나라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의료진께 너무나 감사했다. 퇴실할 때 방역복을 삼십 분 정도 입어야 했는데 숨쉬기 정말 힘들었다. 방역복을 벗자 살 것 같았다. 근데 의료진은 그 방역복을 매일 입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렇게 난 집에 돌아왔고 며칠 후 격리가 끝나 딸을 만나러 갈 수 있었다. 너무나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딸을 만나면 뭐라 해야지? 맘 속에 수만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친정집 도어록을 열고 들어가니 가족들이 보였다. 딸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난 신발도 아직 벗지 않은 채 말했다.


“엄마야.”


그런데 딸이 바로 오지 않는 것이다.

이게 뭐지?

내가 신발을 벗으려 하자 갑자기 딸이 오더니 날 꼭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내게서 떨어지지 않고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내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가족들이 말했다. 엄마를 안 찾아서 괜찮은지 알았는데 저렇게 운다고.


딸은 직감했었나 보다. 엄마가 정말 많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자기 곁에 없다는 것을. 남은 가족들이 힘들까 봐 어리광 부리지도 않고, 낮잠도 밤잠도 바로바로 자고, 식사도 다 잘 먹고. 매일 산책 나가야 하는 아가가 나가자고 보채지도 않고. 아무리 부모님 집이 넓어도 답답했을 텐데 말이다. 우리 공주님은 그렇게 최선을 다했었나 보다. 딸아,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그 겨울 우리 가족은 끝까지 다 음성이 나왔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말 잘 듣고 의젓했던 우리 딸, 지금은 온데간데없다. 미운 네 살이라 말도 잘 안 듣지만 거기에 플러스로 울보에 다시 엄마 껌딱지다. 내가 못 산다. 그래도 하는 짓이 귀여워서 봐준다.


요즘따라 쉽게 삐치고 쉽게 우는데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그 모습이 참 귀엽다. 하루는 너무 울길래 그렇게 울고 자면 내일 아침 눈이 부어서 작아진다고. 그럼 앞이 잘 안 보인다 하니 딸이 날 쳐다보며 말한다.

“할아버지처럼?”

그러더니 뚝 그치고 세수를 한다. 나는 딸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할아버지가 눈이 좀 작지. 아니 많이 작지. 엄마도 가끔 결혼 전에 할아버지가 소파에 누워 계시면 티브이를 보시는 건지 주무시는지 여쭤보곤 했단다. 주무시는 게 아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 눈이 작으면 좀 어떠니. 우리 딸이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게 아닌데. 비록 눈이 작아 세상 보이는 시야가 너나 엄마보다 좁아도(아빠 미안),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만큼은 정말 넓고 따뜻하시잖아. 그리고 널 많이 사랑하시지. 그걸 네가 알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뭐 너랑 장난 코드가 아주 잘 맞기도 하지. 앞으로도 쭉 그러겠지만.


할아버지와 엄마를 닮아 장난꾸러기인 우리 딸 드디어 잠들어 내게 글 쓸 시간을 준다. 오늘 하루 밥 잘 먹고 잘 놀아 푹 잠든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어봤던 오늘의 간식 군밤도 잘 먹고 말이다. 할머니가 가져다 주신 알밤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니 먹음직스러운 군밤이 되었다. 우리 공주님, 할머니가 주셨다니 잘 먹었다. 우리 딸은 할머니가 준 음식이라면 뭐든 잘 먹는다. 평상시 안 먹는 음식까지. 근데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었다. 외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은 다 맛있었다. 외할머니 음식은 항상 정성이 느껴졌으며, 먹으면 속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내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 모습을 따뜻하게 쳐다봐 주셨다. 그래서 더 특별하고 좋았었다. 내 딸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외할머니에게 느낀 것을, 내 딸도 우리 엄마에게 느끼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우리 딸이 처음 먹어본 군밤이네.

난 항상 우리 엄마 아빠가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그런데 딸이 태어나니 그 맘이 더 강해진다.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손녀 애교도 많이 보시고, 삶의 소소한 행복도 다 함께 오래도록 느꼈으면 한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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