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어 가족: 상어 가족의 시작.
어머 우리 공주님 왜 갑자기 울어? 잠자려던 딸이 펑펑 울면서 말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그래 딸아, 내일 할머니 집에 놀러 가자. 근데 너 오늘 할머니, 할아버지 봤거든. 뭐, 금방 와서 속상했다고? 알겠어 어서 자자.
우리 공주님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너무 친하다. 그리고 그분들을 너무나 좋아한다. 옆 동에 사셔서 자주 보는 편인데도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은가 보다. 너무나 특별한 존재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우리 딸은 태어나서 한 200일 까지는 너무나도 예민한 아가였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자다 깨서 울었고, 엄마 품을 잠시만 떠나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으며,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가면 너무 울어 결국 일어나 집에 가야 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누가 잘 때 업어가도 모르며, 낯선 곳에 가서도 잘 놀고, 엄마 없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랑 너무 잘 논다.
한 번은 여행을 갔는데 하루 만에 집에 가잔다. 너 원래 여행 좋아하잖니. 물어보니 그날 낮에 워터파크를 갔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 힘들었단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꼭 집에 가야 한단다. 그래 딸아, 엄마가 너를 재우고 이틀에 걸쳐 짐을 쌌건만 네가 힘들면 가야지. 혹시나 음식이 잘 안 맞을까 봐 미리 끓여 소분해 냉동해 온 국과 네가 매일 챙겨 먹는 간식들도 다 가지고 집에 가자꾸나. 남편은 내일 아침 다시 한번 물어보자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물어보니 역시 집에 가고 싶단다. 그래 가자. 근데 아가야, 할머니 할아버지 지금 속초로 여행 가셨는데 혹시 거긴 어때? 그냥 물어봤는데 당장 가겠단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 그래 가자꾸나. 그렇게 우리 식구는 그날 아침 홍천에서 속초로 달려갔다. 우리 딸은 언제 집에 가고 싶었냐는 듯 할머니 할아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저녁 남편이 씻는 동안 나와 딸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장난이 이어지자 딸이 말했다. 뽀뽀 공격! 뽀뽀 공격은 심플하다. 인정사정없이 상대방 이곳저곳에 뽀뽀를 하는 것이다. 우리 아빠는 손녀의 뽀뽀 공격에 속수무책이셨지만 너무나 즐거워하셨다. 할아버지가 항복하자 우리 딸이 말한다. 할아버지는 장난꾸러기고 할머니는 자상하세요. 그러더니 할머니 품 속으로 쏙 들어가 안긴다.
그렇다. 우리 아빠는 장난꾸러기다. 내가 어릴 땐 아빠가 날 주워 왔다 놀리셔서 맨날 울었다. 난 자라면서 세상 모든 장난은 다 겪은 것 같다. 그리하여 난 그 누가 장난으로 놀려도 절대 굴하지 않고 여유 있게 웃는 여성으로 잘 성장했다. 커서도 주워 왔다 놀리면 난 주워 온 게 사실이래도 절대 집을 나가지 않는다 했다. 집 나가면 고생인 게 뻔한데 뭐하러 나가겠는가. 다행히 난 지금까지도 생모가 찾아오지 않아 우리 엄마를 생모로 알고 잘 지낸다. 우리 아빠 손녀도 예외 아니다. 다행히 우리 공주님 할아버지가 장난치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까르르 웃으면서 같이 장난친다. 누가 엄마 딸 아니랄까 봐.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자상하다. 날 키우시면서 득도하신 분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분노하시지 않고 손녀딸을 잘 달래신다. 말도 얼마나 이쁘게 하시는지. 그래서인지 우리 딸 할머니 말이라면 정말 잘 따른다. 딸아, 엄마도 너한테 잘해주거든? 신기하게도 우리 공주님은 할머니 집에만 가면 너무 잘 먹는다. 엄마 집이 넓어 잘 뛰어놀아서인지 아님 할머니 음식이 맛있어서인지. 아무래도 둘 다 인 것 같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우리 딸 아기 상어 노래 부를 땐 할아버진 장난꾸러기라면서 할머니보곤 자상한 할머니 상어란다.
우리 공주님이 태어나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해진 계기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계기는 작년 12월 초였다. 2021년 12월이 되자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하루 7천여 명이 되었다. 집에 두 돌 조금 지난 아가가 있으니 난 친구들과의 만남도 외식도 하지 않고 맘 졸이며 지냈다. 외출이라곤 미뤘던 건강검진뿐이었다. 아기 낳고 얼마 안돼 코로나가 발생해 건강검진을 계속 미뤘는데 언제까지 미룰 순 없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병원에 갔었는데, 역시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얼마 안돼 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다음날 아침 7시에 문자를 받았다. 남 이야기인 줄 알았건만 내가 코로나에 걸린 것이다. 첨엔 믿을 수 없었고 다음엔 억울했다. 난 병원 말고 간 곳이 없다고. 다행히 부모님 포함 온 가족은 음성이 나왔다. 난 무교지만 하늘에 계신 모든 신께 감사했다.
우리에게 옵션은 두 가지였다. 내가 집에 남고 남편과 딸이 옆 동 친정으로 가거나, 내가 생활치료센터 가고 남편과 딸이 친정으로 가거나. 결정은 후자였다. 우리 딸과 영상통화하다 내가 집에 있는 것을 딸이 알게 되면 집에 오겠다고 난리 칠 테니. 또 내가 생활치료센터 가더라도 딸과 남편이 혹시라도 우리 집에 남아있을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가족이 힘을 합칠 시기가 온 거라며 괜찮다 하셨고 아빠는 아가랑 잘 놀아줄 테니 니 몸부터 챙기라 하셨다. 두 분 다 그저 내가 가서 편히 쉬고 몸조리하길 바라셨다. 남편은 회사에 알려 격리기간 동안 재택 하며 장인 장모님과 함께 딸을 돌보기로 했다. 부모님께 너무 죄스러웠고 남편에게는 미안했다. 아가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니 말이다. 딸에게도 너무 미안했고, 어린이집에 알릴 때엔 정말 대역죄인 같았다.
몇 시간 후 집 앞에 날 데려갈 앰뷸런스가 왔다. 난 가족들에게 내가 가는 모습을 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아빠랑 남편은 거실에서 내가 앰뷸런스를 타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잘 다녀오라 했고, 마음 약한 난 그 모습을 보고 무너져 울었다. 하지만 소리 내 울진 못했다. 이미 엠뷸런스 안에는 나 말고도 다른 한 분이 더 계셨고 아픈 분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문자를 받은 당일 점심에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생활치료센터로 보내졌고, 딸과 남편은 옆 동 친정으로 가 격리기간을 보내게 되었다.
난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딸을 먼저 친정에 보낼 때 딸의 눈빛을. 혼란스러워 보였다. 엄마는 왜 같이 안 가냐고 묻는 것 같았고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그때 딸은 두 돌이 좀 지나 아직 말을 잘 못했고 기저귀도 떼지 못했었다. 그런 아가가 당황했지만 울지 않고 아빠 손을 꼭 잡고 나갈 때 난 잊지 않고 사랑해라고 말했다. 그리곤 현관문이 닫혔다.
이제 난 오롯이 혼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