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어 가족: 상어 가족의 시작.
아빠, 우리 또 뭐 봤지?
지금 우리 딸은 이 질문을 한 20번 한 것 같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공주님이 며칠 전 만 36개월 세 돌이자 미운 네 살 생일을 맞이했다. 우리 딸은 남들 다 하는 돌잔치를 하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이다. 기껏 열심히 준비했건만 날로 심각해지는 코로나로 페널티까지 지불하며 캔슬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생일엔 딸이 아팠다. 항상 생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것이 맘에 걸렸고, 이번 생일 선물은 특별히 준비하고 싶었다. 난 남편에게 말했다. 화장대를 사줘야겠다고. 무슨 네 살이 화장대냐고? 허니, 이건 내 로망이라고요. 내 장담컨대 우리 딸도 좋아할 거라고요. 화이트 모던하고 이쁜 그런 화장대가 있다고요.
얼마 전 딸아이는 머리 말리던 내게로 와 말했다.
“엄마, 나 화장이 하고 싶어요.”
난 속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딸 성격을 파악해 흔쾌히 오케이 했다. 그리곤 최소한의 화장을 해줬다. 눈에 원하는 색상의 아이섀도로 선만 하나씩 그려줬다. 마음에 드냐 물으니 거울을 보며 정말 이뻐졌다며 만족해했다. 딸아, 그거 그냥 선이거든? 난 우리 공주님에게 말했다. 딸아, 오늘은 샤워할 때 특별히 클렌징에 신경 쓰자. 난 화장솜에 아이 클렌징을 묻혀 눈 화장을 지워줬다. 그것도 일부러 두 번.
우리 딸은 궁금하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그걸 알기에 군말 없이 화장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만 해주고 클렌징으로 귀찮게 했다.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우리 딸은 말했다. “엄마, 엄마 말대로 화장은 커서 할게요.” 그래 딸아, 넌 내 상대가 안돼. 더 커서 오렴. 그때 문득 느꼈다. 아 우리 딸도 여자구나. 아무리 장난꾸러기라도 공주옷 좋아하는 여자고, 화장대에 앉아 엄마 화장 따라 하고픈 천상 여자.
그래서 준비했다. 서프라이즈 파티에 플러스 알파로. 우리 집 인테리어에도 어울리는 화이트 모던으로. 짜잔!
공주님, 너무 좋아했다. 네 거라는 말에 놀라고 삼면거울에 더 놀랬다. 한쪽엔 공주님 헤어핀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줬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우리 딸, 화장대 앞에 앉더니 헤어드라이어는 자기 손에 컸던지 한 손엔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엔 빗을 들고 스타일링을 시작했다. 그만하자 해도 그녀는 듣지 못했다. 무아지경이다. 이제 네 거라고 내일도 모레도 네 거라 말해도 소용없다. 스타일링은 계속됐다. 그 이후로 한 30분가량 쭉 계속되었다. 중간중간 자기 이쁘냐라는 말과 수면등을 조명 삼아 자기 얼굴이 가장 이뻐 보이는 밝기도 찾았다.
자기 얼굴에 로션도 꼼꼼히 발라본다.
와 이건 진짜 깜놀 그 자체였다. 남편도 너무나 신기하게 봤다. 허니, 이것 봐요. 이건 나만의 로망이 아니었어요. 우리 딸의 로망이었다고요. 아무리 장난꾸러기라도 이뻐 보이고 싶은 네 살이라고요!
그날 우리는 그녀가 가고 싶다던 동물원도 갔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주차장에 거의 다 가서 차는 막혔고, 난 딸과 남편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나올 때를 생각하면 지금 고생돼도 제일 가까운 곳에 주차하는 게 맞다 생각했다. 난 20-30분을 기다렸고 주차에 성공했다.
우리 남편은 딸과 함께 킥보드를 가져갔는데, 아뿔싸 킥보드는 금지였다. 하긴 나중에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아이들이 드넓은 동물원 안에 들어오면 환장해서 킥보드를 타고 다닐 것이다. 그럼 부모들은 쫓아다니느라 바쁘고 잘못하면 이이들끼리 부딪혀 다칠 것 같다. 동물원 관계자 분들이 옳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남편 팔은 부서질 뻔했다. 하니, 미안해요. 아가가 이제 아이가 됐다고 생각해서 푸쉬카도 휴대용 유모차도 안 챙겼어요. 내가 너무 남편 팔만 믿었나 봐요.
역시 내 우려, 아니 남편 우려대로 내가 주차하고 올 때까지 우리 남편 끊임없이 아이를 안아줬다 내렸다 반복했다고 한다. 틈새 운동으로 자기 팔은 튼튼하다며 괜찮다 하지만 허니 왜 카디건은 벗었고 이마에 땀은 뭔가요, 딸은 아빠 품에서 피그미 하마, 사막여우, 프레리독, 미어캣, 타조, 얼룩말을 봤단다. 옆에서 딸이 얼룩말 아니고 그랜트 얼룩말이란다. 우리 귀요미 기억력이 좋다. 우리 딸은 동물들이 너무 귀엽다고 한다. 딸아, 난 네가 더 귀엽거든?
그 귀여운 입으로 말한다. “곤충이 보고 싶어요.” 오마이. 딸아, 엄마는 곤충이 정말 정말 정말로 무섭단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아빠 뒤에 숨어서라도 같이 갈게. 딸은 아빠와 함께 신나게 들어갔다. 어쩜 저리 겁이 없을까? 그날 둘은 곤충관도 야행동물관도 원 없이 다 보고 나왔다. 박쥐도 하늘소도 뱀목 거북도 물방개도. 난 뱀목 거북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어. 무슨 거북이 목이 저렇게 늘어나냐고. 난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이름이 뱀목 거북이구나. 난 곤충관 관람만으로도 벅차 야행동물관 관림은 사양했다.
잠시 후 둘은 밖으로 나왔고 딸은 말했다.
“엄마, 엄마는 무서웠어요? 난 용감해요.” 응 딸아, 나도 용감하단다. 태어나 처음으로 널 낳으려고 수술도 해봤고, 귀엽지만 용감무쌍하며 요즘따라 말 안 듣는 그 미운 네 살을 키우고 있잖니. 이 정도면 충분히 용감한 것 같아.
주차장에 가는 길에 우리 딸과 남편은 자기들이 본 동물과 곤충의 모습을 따라 했다.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이고 귀여워 영상으로 남겼다. 그랬지. 이 순간엔 우리 남편도 행복했었지.
문제는 저녁이었다. 오늘따라 우리 공주님, 아빠 곁을 떠나지 않는다. 물론 평상시에도 우리 딸은 아빠를 많이 좋아한다. 가끔 어린이집에 아빠랑 함께 데려다주면, 공주님은 항상 아빠에게 사랑한다며 회사 잘 다녀오라며 손 뽀뽀를 날린다. 아빠가 퇴근하면 버선발로 뛰어가 마중한다. 근데 오늘 저녁은 유난하다.
딸은 아빠와 침대에 누워 질문한다.
“아빠 오늘 우리 또 뭐 봤지?” 아빠가 답해주면 무한반복이다. 오늘 본 동물과 곤충이 다 나왔어도 묻고 또 묻는다. 심지어 아빠 다리를 꼭 끌어안으며 아빠 너무 좋다고 한다. 아니 딸아, 밤에 재워줄 때에는 항상 엄마 보고 옆에 오라더니 이게 무슨 일이니?
우리 남편, 중간에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가 없다. 난 이 모습이 재미있다. 그래 남편, 오늘은 허니가 재워줘요. 저 좀 쉴게요. 근데 궁금하네.
“공주님, 아빠가 그렇게 좋아?”
“응 좋아요. 아빠가 화장대도 사주고 동물원에도 데려가 줬잖아요.”
우리 딸 심플하다. 근데 딸, 그 화장대 내 아이디어거든? 하긴 생각해보니 딸에게 아빠가 사줬다 말한 것 같다. 동물원은 나도 데려가 줬거든? 하긴 이것도 딸 입장에서는 엄마가 주차하느라 늦게 온 것을 모를 테니 그럴 수 있다.
좀 억울하긴 하지만 우리 남편은 딸의 사랑을 한 껏 받을 자격이 있다. 딸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딸한텐 스위트 한 아빠였기 때문이다. 참 잘 놀아주고 다칠까 봐 때론 과보호도 하지만 정말 딸한테 잘한다. 가끔 화내지만 나도 딸도 안다. 다 딸을 걱정해서라는 것을.
가끔 우리 남편이 웃으며 말한다. 내가 한 명도 아니고 똑 닮은 두 여자를 데리고 사느라 힘들다. 나도 동의한다. 허니, 고생이 많아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