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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 앵커리지 공항으로 비상 착륙하다

[한 겨울 앵커리지 공항으로 비상 착륙하다]


 


그 해 겨울도 어느 해 못지않게 춥고 매서운 계절의 기세가 등등했다. 3박 4일간의 뉴욕 비행이었다. 뉴욕 참 아름다운 도시 지만, 승무원에게 있어 그곳까지 가는 길이란 멀고도 험난할 뿐이다.


 


승무원의 비행업무는 매달 21일 오픈되는 다음 달 스케줄 표에 따라 한 달씩 이루어지는데, 이 21일이 되면, 무슨 고시 결과라도 기다리는 사람처럼 스케줄이 고시되는 한국시간 오후 6시 이후를 전 세계에 있는 승무원들이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처음엔 다음엔 또 어디 새로운 데로 비행을 가려나?로 시작해서, 아 힘든 비행 노선은 안 가야 할 텐 데, 아 나랑 안 맞지 않는 사람들과 비행하지 않으면 좋겠다, 다음 달 며칠 날은 해야 할 일이 있어 꼭 쉬어야 하는데 그날이 day off 일려나 등 여러 생각으로 컴퓨터를 클릭하고 또 클릭하게 된다. 그중 기피하는 비행 중 하나가 일단 비행시간이 많은 노선이고 또 한국인 승객 탑승 비율이 높은 곳이다. 그 이유 중에는 불만을 제기하는 승객들이 많이 탑승하기 노선들 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거기에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등이 있다. 이 두 노선은 일단 항공수요가 많아 승객의 탑승률 이 항상 높아 업무강도가 높아 체력적으로 힘들고, 비행시간도 긴 편이며, 나름 힘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타서 이래저래 승무원들에게 불만을 자주 제기하는 노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뉴욕 비행을 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매섭게 추운 이 겨울에 말이다. 우선 한국도 겨울엔 눈으로 지연 사태가 자주 발생해서 심히 걱정이 되고, 뉴욕 공항에 시스템이 엉망이라 만약 에뉴 욕에서 출도착 시 눈이 온다던지 해서 기상이 안 좋다면 항공기 지연은 당연한 일이라 비행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 이 또한 힘들기 때문이다. 또 비행시간에 있어서, 여타의 지역에 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그 비행시간이 두려운 것은 승무원에게는 약 두세 시간의 휴식 시간 외에는 서서, 걸어서 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업무량에 있어서도 기타 노선에 곱절로 힘든 곳이기도 한 것이다..


 


항공기가 눈에 취약한 것은 우선 항공기 동체에 눈이 쌓이게 되면, 미세하게 맞물려서 움직이게 되는 항공기 날개가 쌓인 눈으로 얼게 되어 제대로 작동되지 않게 되면 비행 이륙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고, 활주로 등에 눈이 쌓이는 것 또한 이착륙에 큰 방해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눈이 오게 되면, 항공기는 활주로로 이동하기 전 각 공항에 설비되어 있는 제빙 작업 기 – 탑 차 같은 모양인데 그 위에 눈을 녹이고 더 이상 얼지 않게 만드는 액을 분사하는 기계가 달려 있고, 사람에 의해 물청소를 하던 그 액을 뿌려 제거하는 차량 – 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제거 작업을 마치고, 이륙을 위해 다시 활주로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나 다행히 도 한국에서 출발과 뉴욕의 도착까지는 아무런 기상이변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힘들게 뉴욕에 도착해서 이틀 정도의 휴식을 가진다. 보통은 도착 후 밤샘 비행에 지쳐 호텔에 짐을 풀기 무섭게 잠을 잔다. 약 6시간 정도의 숙면 후 몰아치는 배고픔에 잠이 깨면, 보통 35번가에 있는 코리안 타운으로 같이 비 행온 승무원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간다. 뉴욕 시간 밤 11시 즈음이다. 그나마, 뉴욕의 밤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브로드 웨이의 화려한 네온 간판이나, 뉴욕의 밤거리를 수놓은 마천루들이 뿜어내는 로맨틱한 불빛이 아니라, 승무원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근면한 한국인들이 오픈하고 있는 24시간 식당들 때문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 타운이 없는 기타 미주 및 유럽에서는 끼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건인 가도 승무원들에겐 큰 고민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인 타운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고, 밤 깊은 뉴욕 35번가 메이시 백화점 앞을 걸어 호텔까지 저벅저벅 걸어온다. 밥을 먹으러 갈 때는 택시를 이용하고, 날씨가 많이 나쁘지 않으면, 운동 삼아 산보 삼아 걸어서 호텔 가지 갈 때가 많다. 그렇게 걸어오다 브로드웨이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 비로소 그때서야 뉴욕의 향취에 젖기 시작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정말 이구나 싶은 순간이다. 화려한 뉴욕의 불빛이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노란색의 뉴욕의 택시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호텔에 들어오면 보통 새벽 일찍 잠에서 깬다. 호텔이 브로드 웨이와 센트럴 파크 사이에 있어서, 나는 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뉴욕의 거리의 유유 자작 걷고는 했다. 센트럴 파크에 들러,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고, 잠깐의 여유를 부려 보는 거다. 그때 엔나도 마치 뉴요커가 된 듯싶어 진다. 센트럴 파크의 스산한 겨울 공기 속에 짚게 배어 나오는 나무향기를 뚫고, 오번가로 걸어 나오다 보면, 티파니에서의 아침도 떠오르고,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오면, 뉴욕의 상징 중 하나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만난다. 겨울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스케이트장으로 유명 하지만, 나는 그보다 그곳에 위치한 NBC 방송의 아침 공개 방송을 보 러더 자주 그곳에 간다. 유명한 프로그램이 AMERICANMORNING이 오픈 스튜디오와 야외에서 동시 생방송이 되는 곳이라 많은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운 좋으면 내 모습이 생방송으로 미국 TV에 나갈 수도 있고, 더 운 좋은 날엔 인터뷰를 받을 수도 있고, 아님 그날 특별 출현한 연예인을 먼발치에서 나마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는 곳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각자의 가족들의 이름이나 기념할 만한 일들을 플래카드에 적어 언제 내가 카메라에 잡히나 하고 열심히 손을 흔들어 된다. 그 광경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고 색다른 경험이 되는 듯하다. 나도  운 좋게 어느 해 여름 지금은 고인이 된 휘트니 휴스턴이 새로운 싱글 앨범 YOUR LOVE IS MY LOVE이라는 앨범을 홍보하고자 그곳에 마련된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멀리서 나마 볼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한참 중학교에 입학해 영어 공부를 하면서 팝송을 많이 따라 부르며 공부했는데, 그 당시 가장 좋아했던 가수가 그녀였고, 그녀의 노래 들이었다. GREATEST LOVE OF ALL이라는 노래 가사를 지금도 참 좋아한다. 그런 그녀가 세상에 없는 건 참으로 아쉽지만, 내게 그 힘든 뉴욕까지의 비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는 남겨 준 샘이다.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시차에 지쳐 다시 호텔로 돌아오게 된다. 한국과 뉴욕의 시간 차이가 거의 밤낮이 반대니 말이다. 그러나. 아쉬운 뉴욕의 시간을 허비하기 싫어 나는 약 두 시간 정도 알람을 맞춰 놓고 잠깐의 오수를 취하고, 무슨 된장남 마냥 뉴욕의 브런치를 즐기러 나가곤 했다. 뉴욕은 세계 각국의 음식이 다양하게 있어, 참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들이 다양하다. 길거리 핫도그에서 다양한 나라의 레스토랑 또 간편하게 시간 절약하며 먹을 수 있는 샐러드바들도 많으니 말이다.


 


나름의 브런치를 즐기고 나면 주로 쇼핑을 하거나 MOMA나 메트로폴리탄 같은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쇼핑이라 해서 거창할 것은 없고, 미국을 한 번이라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옷값이 무지 저렴해서 쇼핑을 안 하고 배길수가 없는 곳이 뉴욕이다. 몇 해 전 마다해도 소위 말하는 SPA 브랜드들이 한국에는 진출을 하지 않았을 때라 더욱 쇼핑에 몰두하곤 했는 듯하다. MOMA에서는 다양한 특별 전시회가 많아서 지루할 틈 없이 시간 보내기가 좋고, 나름 콤팩트하게 세계의 유수한 명작들을 짧은 시간 알차게 볼 수 있어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발이 통통 붓게 하루를 돌아다니다 밤엔 뮤지컬을 규 경하 기도 한다. 맘마미아,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라이언킹. 오페라의 유령 등 많은 넘버들을 때로는 시차로 인해 꾸벅꾸벅 졸며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래서 뉴욕이 뉴욕 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해 내가 속한 팀은 팀워크가 무척 좋지 않았다. 그때 당시 팀장이었던 선배는 뭐라 할까, 융통성이 없었고, 자만심이 넘치는 사람이라 팀원 모두에게 맘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리더 십을 찾기 힘든 사람이 이었다.


 


  한국을 향해 출발하는 비행기, 모든 비행 준비를 마치고, 승객 탑승을 대기하며 나는 그날 부팀장 듀티를 수행하고 있어, 이 코너 미 승객들이 탑승하는 두 번째 도어에서 승객 탑승을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승객 인적 사항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직원이 뚜버뚜벅 걸어온다. 그리고는 오늘 휠체어 승객이 한분 계신데 상태를 좀 봐주셔야겠다고 한다. 그러나 미처 승객의 상태를 살필 겨를 없이 출발 시간이 다가와 승객 탑승이 시작된다. 약칠 시세 중반의 노모와 50대 초반 정도의 딸이 같이 탑승한다. 그렇게 비행기는 이들 모녀를 태우고 한국을 향해 이륙한다.


 


 이륙 후 약 50분 경과 항공기가 정상 고도에 진입하고, 서비스 시작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기내 인터폰이 울린다. 반대 방향에서는 다급한 목소리로 사무장님 듀티 사무장님이 빨리 비즈니스 클래스로 오시래요. 무슨 일인데요 하자 아까 그 노모 승객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날 모녀는 어머니는 비즈니스 클래스에 딸은 이 코너 미 클래스로 떨어져 않아 비행을 했다. 급하게 달려가 보니 노모는 각혈을 하고 있었다. 나를 호출한 여승무원에게 듀티 사무장의 찾자. 어디 가셨는지 모르겠단다. 낭패다. 우선 리넨으로 승객의 피를 닦으며, 이 코너 미에 앉아있는 딸을 찾아오라지시한다. 노모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의사 표현을 처음부터 제대로 못하는 상태였다. 지금 각혈까지 하니 어떤 증세로 아픈 건지 소통이 불가하니 동반인을 부를 수밖에 없는 상태다. 승무원이 불러온 딸에게 다급하게 묻는다. 그냥 다리만 불편하신 것만은 아닌 듯한데 어디가 어떻게 아픈 신가요?


 


그때서야 딸은 자세한 상황을 털어놓는다. 실은 노모는 약 6개월 전 미국에 있는 손주들을 돌봐 주러 딸네 집에 왔는데, 온 지 보름 만에 집 앞에서 승용차에 치어 골반이 골절되고, 양손가락 중 7개 가절단 골절되어 봉합 수술을 하고 뇌도 크게 다치셔서 약 5개월 넘게 병원에 계시다 도저히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 하여 한국으로 되돌아 가시는 길이란다. 죽음을 준비하시러 가는 길이였단 말이었다. 혹여 중환자라 하면 비행기에 태워 주지 않을까 해서 병력을 거짓으로 말하고, 그냥 다리가 불편해서 휠체어만 필요하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세히 승객의 손마디를 보니 마디마디가 접골되어 있는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던 일인데 싶어 내심  지상 근무 직원의 태만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듀티 사무장님이 나에게 묻는다. 박 사무장 어떡하면 좋지? DOCTOR PAGING을 해야 하지 않겠냐. 그리고 회사에 연락을 해 봐야 하지 않겠냐 답변한다. 계속해서 토하는 피를 유니폼에 젖는 줄도 모르고, 환자 옆에 나는 지켜서 있고, 듀티 사무장님이 의사를 호출하니 두 명의 미국인 의사와 한 명의 필리핀 국적의 미국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나타났다. 듀티  사무장님 회사와 연락을 해야겠다 하며   조종실로 이동하시고. 두 명의 의사가 승객 상태 문진에 나선다, 우선 의사들의 요구에 따라 기내 응급 의료 장비를 꺼내 온다.


 


항공기에는 혹여 발생할지 모르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다양한 장비가 구비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항공기가 이륙하고 나면 그 어느 곳에서도 외부적인 지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모든 비상사태를 대비한 최소한의 장비들을 갖추고 있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고, 수시로 국내 및 아니라 각국의 취항지 국가로부터 점검을 받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을 시에는 장기간 운항 정지에 이르기까지다 양한 제재를 받게 되어있다. 그래서, 승무원들은 승객이 탑승하기 전 비행기에 탑승 후 제일 먼저 비상 보안 장비 체크라는 것을 하게 되어있고, 승무원 업무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장비에는 우선 비상용 플래시 라이트, 산소통, 소화기, 메가폰, 응급처치 구급약통, 비상용 구급약통, 비상시 위치를 전파하는 송신기, 난동 승객을 제압하기 위한 전자총 및 포승줄이나 타이 랩, 손도끼 등 여러 가지 장비가 있다. 크게 항공기에서의 비상사태는 응급 환자 발생, 화재 발생, 기내난동 승객 및 납치 등의 안전 및 보안을 위협 행위 또 최악의 사태 및 항공기의 정상적이지 못한 착륙이 있을 경우 이를 준비하거나, 착륙 후 사태를 정리하고 해결하기 위한 상황 등으로 분류되어질 수 있다.


 


 


 


의사에게 딸에게서 전해 들은 사고 경력을 상세히 설명해 주자 언제 퇴원을 했냐 한다. 약 일주일 전이라 한다. 두 명의 의사의 의견이 엇갈린다. 한 명은 아직 수술 후 장기 내부 상처가 아물지 않아 피가 나오는 거 같다 하고, 다른 의사는 다른 질병을 갖고 있는 거 아니냐 한다. 이때 필리핀인 간호사가 우선 피를 더 이상 흘리지 않게 응급조치를 하자 한다. 이에 따라 토혈을 멈추기 위한 약물을 투여하고, 잠시 후 링거를 놓는다. 간호사도 있지만, 그녀에게 의료적 서비스를 요청할 수많은 없어, 나는 거스 처리 및 주사제 준비등 간호사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얀 셔츠는 피로 물들고, 나도 경황이 없어져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 된다. 약 2시간 후 잠시 토혈이 멈춘다. 의사들과 간호사는 약물 투여와 링거를 투여한 약 삼십 분의 시간 후엔 본인들의 자리로 돌아가고. 나머지 간호는 승무원의 몫이 된다. 이 과정에도 서비스를 진행하지 않을 수 없으니 다른 승무원들은 모두 서비스에 바쁘다. 그렇게 잠시 멈춘 듯했던 토혈이 약 3시간 경과 시점에 다시 시작된다. 이번에 다시 의사들을 호출해 도움을 구해 보지만, 그들도 더 이상 정밀한 진단은 할 수 없다 한다. 회사 응급의료 센터와의 연락에도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그들도 현장에 있지 않은한 어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다시고은 승무원들에게 넘어온다. 최종 결정을 못해 듀티 사무장님은 망설이는 게 분명해 보인다. 듀티 사무장님과 기장의 협의 과정 중 태평양 상공에 접어들면 한국으로 갈 때까지 어느 곳에서도 내릴 수가 없으니. 앵커리지 공항을 통과하기 전에 결정해 야 한다는 긴박감이 흐른다. 듀티 사무장님과 기장 및 회사 본부와의 비상 착륙 협의는 끝났으나, 이번에는 환자 가족이 결정을 망설인다. 아마도 생소한 앵커리지에서 어떻게 환자인 노모와 이 상황을 진행시켜 나갈 수 있을지 싶어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보인다. 어머님의 상태가 호전된다는 보장이 결코 없습니다. 지금 결정을 하지 않으면 태평양 상공에서 착륙할 수 있는 공항이 없어 한국까지 갈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그제 야사태를 파악한 듯 결정을 내리겠다 한다. 결국 앵커리지행이 결정된다.


 


 이에 모든 승무원이 호출되고 착륙 준비 및 개별 승객 안내등의 정보를 교환한다. 기장은 환자 승객으로 인한 착륙을 알리는 방송을 하고, 이미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기장의 방송 후 항공기 연료를 dumping 하기 시작한다. 항공기가 착륙할 때는 무게가 적정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아까운 기름을 공중에 인위적으로 살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 약 40분에 앵커리지 공항에 착륙하겠다는 기장의 방송이 나온다.


 


조금이라도 상태가 호전되길 바라는 마음도 모르는 채 노모인 환자 승객은 더욱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눈에서는 눈물이 마냥 흘러나온다. 누군가의 죽음을 고통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는 게 슬프고, 또 차라리 죽을걸 하며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하는 음성으로 계속 말을 되뇌는 그 노모의 말이 내 어머니의 말처럼 들려 더 슬퍼진다.


 다행히 항공기는 무사히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한다. 한때 연비가 좋은 비행기가 나오기 전에는 이곳 앵커리지를 거쳐 뉴욕이나 북미로 가는 비행 편들을 가지고 있었어나, 현재는 짐을 나르는 전세기 형태의 cargo 비행만이 있어, 현지에는 변변한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직원조차도 없는 상황이다. 항공기 문을 열자 다급하게 현지 검역국의 직원과 911 응급 요원들이 들이닥친다. 환자의 증세 및 감염성 여부에 대한 심문을 마치고, 노모는 들것에 실려 항공기를 빠져나간다. 이 와중에도 노모는 내 손을 잡고 나 살리느냐 수고했다 몇 번이고 정확하지도 못한 발음으로 말을 한다. 또 한 번 울컥해진다.


 


 그렇게 환자 승객과 가족을 하기 하고 나서, 기내에 있던 승객들로 인해 또 한 번 힘든 업무가 시작된다. 곳곳에서 책임자를 불러와라, 내 시간이 낭비되었는데 누가 보상할 것이냐, 가족들이 나와서 기다리기로 했으니 집으로 전화를 해달라, 심지어 배가 고프니 식사를 달라는 등의 요구가 빗발치던 이어진다. 이와 중 엎친데 덮친 격인가, 기장으로부터 황급한 연락이 온다. 현재 이곳 공항에 눈이 많이 내려 항공기 날개 표면에 있는 눈을 제거하는 작업을 실시해야 하고, 이 작업을 하려는 다른 항공기가 많아도 세시 간 후에나 이륙이 가능하겠단다. 이미 기내 승객들은 농성자로 변해가고 있고, 승무원들의 체력도 바닥이 날 지경인데 또 지연 이륙까지 해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해진다. 서둘러 일단 정신을 가다듬고, 상황 해결을 위한 순서를 생각해 본다. 일단 대기를 하게 되면, 음료 및 식사가 제공되어야 한다. 두 번째 가능하면 연락할 수 있는 무선 전화기가 필요하다. 이를 현지 직원들과 협의한다. 듀티 사무장님은 그럼 현재 앵커리지에서 조달 가능한 음료 및 스낵을 알아보기로 하고, 나는 직원을 통해 이용 가능한 핸드폰을 달라 요청한다. 비록 cargo 비행을 위해서 만 근무하는 지점 직원 들이지만, 항상 본사의 급한 용무를 위해 전화는 구비하고 있으니 우선 그 전화기를 쓰기로 한다. 일단 방송으로 연락이 필요한 승객들은 승무원에게 말해 달라 요청한다. 이에 약 30여 명의 승객의 요청이 있다.   


 


 그렇게 승무원들도 진땀을 빼고 있을 즈음 요청한 식사로 샌드위치가 공수되어 온다. 워낙 공항 내 시설이 좋지 않아 이도 처음에 100개 또 100개 식으로 세 차례에 걸쳐 공수되어 오고, 결국 모든 승객에게 하나씩 샌드위치가 돌아가서야 겨우 진성을 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벌써 비행을 시작한 지 7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승무원 그 누구도 밥 한술 입에 넣어 보지 못했고, 제대로 한번 앉아 보지 못한 상태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승객들이 건네는 고마움의 말 한마디 한마디다.  격무에 대한 칭찬과 격려의 말들이다. 이렇게 식사가 제공되는 와중에 항공기는 재 급유 및 제설 작업 이 끝나 활주로로 이동되고, 약 4시간 후 이륙 준비가 완료되어 다시 서울로 이륙한다.


 


 이제야 그렇게 아우성이던 승객들이 한두 명씩 지쳐서 인지 잠에 들고, 기내도 다소 안정감을 찾는다.  그렇게 해서 겨우 뉴욕에서 출발 후 16시간 만에 한국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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