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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승무원 L.A 피습 사건과 노동환경

항공사 승무원 피습 사건과 노동환경


항공사 승무원이 미국 L.A에서 노숙자로부터 ‘묻지 마’ 범죄의 대상이 된 사건이 얼마 전 있었다. 타국에서 벌어진 이 끔찍한 사건을 접하며 사건 이면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항공 승무원의 노동환경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나 역시 이번 사건이 난 항공사에서 22년간 근무를 한 바가 있다.


1996년 처음 승무원으로 일을 하게 되면서 업무 교육을 받을 때 비공식으로 교수되는 기본 행동 덕목이 있었다. 다름 아니라 매 장거리 비행 팀장 접대 식단표 작성과 그 식단에 맞는 음식 재료 공수 및 조리 기구 구비였다. 지금과 다른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과 한식당도 변변히 없던 시절을 감안하더라도, 매 비행마다 각 비행 편에 사무장(팀장) 취향에 맞는 식사 준비하고 호텔 방 안에서 조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가 힘든 일이었다.


이런 지경이라 국제선 첫 비행을 하기 전에 남대문 시장에 가서 일제 전기쿠커(음식 조리기)를 사는 것이 신입 승무원 교육과정 중 한 코스였다. 매 비행준비 가방에는 내가 입고 쓸 용품보다 쌀이며 김치, 라면 등 각종 음식 재료와 전기 요리기가 더 큰 부피를 차지했었다. 당연한 문화라 생각하고 팀장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이것저것 요령껏 만반의 준비를 하며 전전긍긍됐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비행에서 조리 제공 한 음식에 대한 팀장의 만족도에 따라 근무 분위기가 바뀔 만큼 전제 군주 같은 시스템이라 더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렵게 들어간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절실히 체득하는 첫 경험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입사 3개월 정도에 스위스 취리히로 비행을 가서 큰 내막 하나를 알게 되었다. 스위스 체제 호텔에 도착하니 프런트 데스크 옆에 각종 샌드위치며 빵, 커피, 주스 그리고 물병을 수북이 쌓아놓고 ‘승무원’용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막 샌드위치 하나를 집으려고 하니 호텔 직원이 도끼눈을 뜨고 ‘이건 당신은 못 가져간다’라고 말하는 거였다. 알고 보니 푯말 한편에 ‘태국항공’ 승무원용이라는 글이 있었다.


항공 승무원들이 호텔에 체류하는 것을 특별한 대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은 전 세계 각 지역을 생산기지 대상으로 하는 항공업 특성상 마땅히 제공해야 할 대체 생산 시설 같은 것이 뿐이다. 그러니 마땅히 그 체류 과정에서 건강, 안전, 휴식 등을 적정한 수준에서 제공해야 하는 책임이 항공사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항공사에서는 그에 맞는 수준의 대우를 근무조건에 포함시켜 제공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위스에서 비로소 내가 처해있는 근무환경의 문제로 인해 승무원 업무 외에 식사 시중과 식사 준비 업무까지 가중되는 배경이 존재하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되지 못하는 노동조합 문제나 경영자의 가치관의 문제, 이윤 극대화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한국 노동사회의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나의 경험대로라면 그 사건이 일어난 마트에 승무원은 밤새 마실 생수나 먹거리를 미리 사놓으려고 갔을 것이다. 호텔 체제에 생수 제공이나 무료 조식 제공 같은 것이 포함되었다면 어땠을까. 대부분의 미국 중심가 지역이 해가지고 나면 위험 지역이 된다는 것을 잘 아는 승무원이 굳이 그 시간에 그런 장소에 가지 않았을지 모른다.


심지어 L.A 승무원 체류 호텔은 대한항공 계열사이다. 내부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마음이 있었다면 충분히 일어나지 않았어도 될 일은 아니었는가 물을 수밖에 없다.

* 무엇보다 해당 승무원의 건강과 쾌유를 기원합니다.

#대한항공 #승무원 피습 #노동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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