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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곡 ]

10.29 참사

적어도 29일 참사가 일어나고 30일이나 그다음 날에 사과를 했어야 합니다.


유가족들이 사과를 받았던가요. 조계사에서 말한 게 사과였나요.


보상금… 뇌물인가. 얼마나 받아야 하는가요. 얼마나 받으면 없는 일이 되는 건가요.


악성 댓글들 , 이태원에 놀러 가지 그럼 공부하러 갑니까.


방금 kbs9시 뉴스에 나오신 고 이지한 군 어머님의 인터뷰 내용 중 내 마음에 비수로 꽂히는 몇 대목들이다.


나 또한 전 국민이 아는 일로 비슷한 경험, 비슷한 과정을 경험했었고 비통한 마음에 몸서리치게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었기에 인터뷰를 보다 그만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1. 진정성 있는 사과는 피해자에게 직접적으로 되도록 잘못이 벌어진 가까운 시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위정자들은 이 과정을 회피한다. 그러다가 제일 본인이 불리해진 순간이 와서야 사과하는 척을 한다. 거기에 더해 이상하게 사회는 피해자가 약자일 경우 더 강력하게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음을 다른 목적이 있어서 저런다는 식의 프레임을 씌우며 사과받기를 강요하기도 한다.


2. 피해를 보상금을 받는다고 원래대로 회복되는 것인가 냉정히 생각해 보자. 보상이라는 것은 그저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다. 그러나 나 또한 내 권리에 대한 마지막 항거의 수단으로 한 소송 제기를 더러운 돈 욕심이라 힐란하는 이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매도당해 왔기에.., 지금 유가족에 또 덧 씌우려 하는 이 못된 우리 공동체의 폐습에 분노하고 유가족이 느낄 공동체에 대한 절망감에 공감하게 된다.


3. 마땅히 피해받을만했다와 피해자 다움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이상한 도덕적 잣대 들이대기다. 사건이나 피해 사실은 그 이전의 그 어떤 행동과 이력이라는 시간의 역사와 관련이 없다. 그저 사건이 일어난 그 순간에 한정된 일일 뿐이다. 그 순간 벌어진 일만 봐야 한다. 그 안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뉜 일일 뿐인 것이다. 순수한 피해자 따위를 말하는 것은 그저 가해자의 가해를 두둔하는 방식일 뿐이다.


나 또한 피해자의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내 과거의 행적을 털어 내보이려 했던 공식적 언론매체와 선전지 같은 비 공식적 여론들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었다.


그리고 단지 사건의 피해자였다는 이유로 지금도 ‘저 갑질 피해자가 저런 행동을 하네 ’라는 식의 매 순간 진행형의 피해자 다움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기에 악성 댓글로 정신적 살해를 가하는 이들에게 당하는 유족들의 고통의 깊이에 너무나도 큰 아픔을 느낀다.


많이 흥분해서인지 말이 길었다.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오늘 유가족들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들 곁에 누구보다 견고히 서있으려 한다.


무조건적으로 지금은 이 모든 유가족들의 입장에서 이 참사를 다루어야 함이 마땅하다. 슬픔을 멈추는 것도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모두 이 유가족들의 결정이 맞는 방식이고 맞는 해법이다.


제발 꼼수와 가짜 연출로 세상을 속이고 피해 유가족 당사자들을 암흑 속에 묻으려 하지 마라.


잠깐의 위로의 순간과 화해와 용서의 순간이 오더라도 각 피해자들의 삶의 고통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모두가 반짝 주목하는 조명이 꺼진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삶이라는 무대를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


현재의 고통의 울부짐 조차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틀어막으려고만 하는 세력들에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어떤 지식도 해탈도 권력도 우위에 있지 못하다. 그저 지금은 이들 유가족만이 옳은 것이다. 이 참사를 수습하는 방식은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식과 방법으로 진행되어야 함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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