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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겪은 기내 폭력사건

2000년 여름 피지행 비행, 피지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원양 어선을 타셨는데, 한참 참치선이 이곳 피지 근처에서 많은 조업을 했었던 역사가 있다. 어려서부터 집에 몇 장의 엽서와 희미하게 보이는 야자수와 폭탄 머리 같은 곱습 머리를 하고 천 조각 하나를 휘 말아서 만든 스커트를 입은 피지 현지 사람들과 찍은 흑백 사진이 있었다. 어려서는 그 사진이 어디서 찍은 건지, 왜 아버지가 그곳에 계신지도 몰랐지만, 마냥 그 풍경이 신기해서 항상 보고 또 봤던 사진과 엽서들이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당시 어떤 세계 기행문을 읽게 되었는데, 그분이 오세아니아 섬나라들을 여행하며, 예전에 있었던 식인 문화나 또 오세아니아 섬 지역 주민들의 생활상을 묘사하는 글을 읽다가 그곳에 한국 선적의 원양어선이 많았다는 이야기와 그 책에 나온 사진들이 아버지가 찍은 장소들과 사람들의 전통 복장이 똑같아, 아~ 아버지가 다녀온 신 곳이 이곳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막연하게 저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고, 그 여러 나라들에 대한 상상에 잠겨 세계 여행을 언젠가 해 보겠노라 하는 꿈을 꾸게 한 것이 피지와 관련된 아버지의 엽서와 사진들 그리고 그 기행문이었으니, 어쩌면 지금 내가 승무원이 되게 된 시초의 계기가 피지라는 이 섬나라가 아니었나 싶어 내게 인연이 깊은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피지는 섬나라답게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지만 주변의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국가에 비해 아직까지 많이 낙후된 경제 상황에 있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시계를 거꾸로 돌려 내가 경험했던 70년대의 한국이나 80년대 같은 풍경들이 있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듣다.

피지에서 원양어선을 타고 왔다 정착한 한국 아저씨분이 하시는 한국 식당에 자주 가는 데 갈 때마다 풀어놓으시는 그 시절 원양어선 얘기들을 들으면 돌아가신 아버님도 그랬었겠구나 싶어, 눈도 초롱초롱 해지고, 또 괜스레 아버지 생각도 나서 상념에 젖기도 한다.


그해 여름 피지행 비행에서 겪은 일화가 또 평생 나를 피지라는 섬을 잊지 못할 장소로 만들었다. 피지가 197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할 때까지 영국 식민지이었던 역사 때문인지, 피지행 비행기에는 리조트로 휴양을 가는 한국인 가족이나 신혼 여행객과 더불어 영국에서부터 연결 편으로 연결하여 오는 승객들, 또 아직까지 낙후된 피지의 경제 상황으로 외국에서 일하다 고향을 방문하는 피지인들이 승객의 주를 이룬다. 피지인들을 묘사하자면 딱 한눈에 이 사람들은 오세아니아 섬 출신이구나 싶다. 우선 남녀를 막론하고 골격이 상당히 크다. 우람한 어깨며 팔다리 심지어 머리도 크다 싶다. 거기다 흑인들의 머리와는 다른 그 흡사 폭탄 머리라 부를만한 곱습 머리를 한 여인들은 때론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큰 체격을 자랑한다. 거기다 하나로 된 천으로 돌돌 말아 입은 전통 치마를 보면 세계 어디에서도 피지인들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다.


이륙 후 막 음료 서비스를 마치고, 식사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급히 여승무원이 나를 찾는다. 그 비행에 부사무장으로 근무를 하는 나에게 보고를 하러 온 것이다. 이코노미 좌석에 앉은 어느 피지 여성이 딸을 데리고 탑승했는데, 자기 남편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해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도무지 여승무원의 말만 들어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해당 승객을 직접 찾아갔다. 그 피지 여성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창가쪾 두 자리에 남편과 앉고 복도 옆에 어린 딸이 앉아있었다. 마침 남편은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내가 무슨 일로 남편으로부터 자신과 딸을 보호해 달라고 하는지 묻자.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말없이 남편 좌석 앞 하단의 작은 배낭을 가리킨다. 가방은 위 지퍼가 반즈음 열려 있다. 허리를 숙여 그 여인이 가리킨 가방의 지퍼를 살짝 열어 재키자, 1000 미리리터 크기의 어마하게 큰 저가 브랜드의 위스키 한 병이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제야 그 피지 여인은 본인 남편은 영국인이고 함께 남편의 고향에 다녀오는 길인데 원래 술주정이 심한 남편이 비행기 연결 편을 기다리는 동안 면세점에서 이 술을 구매했고, 탑승전부터 마신 술로 만취 상태가 되어 자신을 계속 때린다는 것이다. 그제야 상황이 더 명확해진다. 술병을 꺼내 보니 술은 거의 바닥을 보일 정도로 이미 다 마셔 버린 상태다.


당시는 미국에서 911 테러가 나기 전이라 공항 내에 액체류에 대한 반입 금지 등의 조치가 아직 시행되지 않던 시절이라, 가끔 본인 술을 가지고 탑승해서 마시는 승객들로 골치 아픈 일들이 종종 있곤 하던 시절이다.


다양한 국적의 승객들 중 술과 관련하여 불미스러운 문제들을 많이 일으키는 민족이 러시아계 사람들과 영국 국적의 승객들이 많은데, 이 분 또한 영국인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뒤에서 인기척이 있어 보니 피지 여인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거의 60대로 보이고 행색이 남루한 백인이 비틀 거리며 화장실 쪽에서 걸어오고 있다. 첫눈에도 상당히 술에 취한 것이 보인다.


원래 항공기내에서 절대 본인이 가지고 온 주류는 못 마시게 하는 것이 보통의 항공사 규정이다. 이는 지상보다 훨씬 기압이 높은 상공에서는 모든 신체 부위가 대부분 팽창하게 되어 있는데 혈관 또한 마찬가지이다 보니 알코올류가 평소 지상에서 보다 훨씬 더 빨리 몸에 퍼지고, 평소 주량으론 이상 없는 범위에서도 쉽게 만취하게 되기 때문에 유의가 필요하고, 자칫 만취 승객이 폭력 승객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있고 이는 안전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다.


이렇게 많은 양의 술을 마셨으니, 이 승객의 상태는 미루어 이미 짐작이 된다. 이 승객은 좌석 근처로 오자 마자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왜 내 술병에 손을 되냐며 잣대질이다. 그때만 해도 입사하고 막 4년 차에 접어든 나로서는 그런 만취 승객을 처음 응대하는지라 나도 흠칫 두려움 마음도 들었지만, 이 비행기에 안전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두 눈에 힘을 주고 내 두려움은 숨긴 채, 본인이 가져온 술은 기내에서 마실수 없는 것이 규정이며, 보안상의 이유로 이 술은 압수하겠다 크게 말한다.


그러자 F***등의 욕설을 하며, 비틀거리며 술병을 잡는다. 다시 한번 술을 압수하겠다며 술병을 세게 내쪽으로 끌어당기니,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균형 감각을 이미 잃은 승객은 휘청 거리고 다행히 술은 내 손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폭력적으로 팔을 휘두르며, 내 재킷을 잡고 몸싸움을 벌인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유니폼이 아니어서 남 승무원들은 재킷을 서비스 중에 입었었는데 그 재킷 카라를 잡고 어찌나 세게 잡아당기는지 찌익 하고 이미 한쪽 카라는 찢겨진다. 승객을 때릴 수도 없고, 아무리 승객이 잘못했더라도 쌍방 폭행의 연출로 이어지면, 승무원도 골치 아픈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는 일이라 우선 들고 있던 술병을 복도에 던지듯이 내려놓고, 나도 내 재킷을 있는 힘껏 말아 쥐고 놔주지 않는 그 승객의 양손을 힘껏 잡고 떼어 내려고 한다. 내 엄지 손가락을 부러트릴 듯 잡아당겨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던 중 힘에 부쳤는지 균형 감각을 잃은 백인 승객이 나를 뒤로 밀치자 나는 뒤로 넘어지고, 내 위를 그 백인 덮치는 꼴이 된다. 뒤에 서 있는 여 승무원이 으악 하고 고함을 지른다.


느닷없이 내 위에 있던 백인의 주먹이 내 얼굴과 머리를 강타한다. 이제는 방어로는 불가하다. 결국 있는 힘껏 다시 내 위에 있던 그를 뒤로 밀치고 겨우 벌어진 틈으로 다시 나는 일어난다. 다행히 만취한 자라 균형 감각이 없다. 이때다 싶어 그 백인의 두 팔을 꽉 잡고 뒤로 승객의 몸통을 돌려, 나는 뒤에서 그 승객의 뒷 팔을 어긋나게 결박한다. 우선 여승무원에게 빨리 다른 승무원을 불러오라 하고, 옆자리에 있는 한국인 남성 승객들을 향해 일어나서 승객 제압을 도와 달라 외친다.

그런데, 복도 양쪽에 앉은 그 어느 승객 하나 일어나지 않는다.

방관자의 법칙, 혹은 책임 분산의 법칙이라 했던가, 실제로 다수의 사람이 있는데 어느 한 사람이 도움을 요청을 할 경우 대부분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나 말고 누군가가 하겠지 하는 심리의 발동에서 이란다. 그러나, 그러던 사람도 두 사람만 남고 다른 한 사람이 응급 상황에 취했을 때는 대부분은 그 사람을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것이다.


이거 어쩌나 싶다. 그러던 차 건너편 복도 쪽에서 덩치가 족히 내 두배는 되어 보이는 피지 청년 한 명이 뛰어 와 나를 돕는다. 나중에 이야기해 보니 유럽에 용병으로 가서 일하다 귀국하는 피지 사람이란다. 피지인들은 낮은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각국에서 용병으로 일을 많이 한다. 그 타고난 신체적 유전자를 이용해서 , 다행히 그 승객의 군인 정신 발로로 그 승객은 제압이 된다.


승객은 우선 본인 가족들과 격리되고, 다른 승객과 격리시켜야 해서 이코너미 제일 뒤쪽으로 자리를 옮기게 하고, 어떤 폭력적 행위를 더 할 수도 있을지 모르니 포승줄로 두 손을 묶는다. 이제부터 그는 승객이 아닌 기내 난동자이자 범죄자이다. 더 이상 그에게 승무원은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보안 및 안전 요원인 셈이다.


그렇게 약 이십이 지나도록 술에 취한 이 승객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러고, 다 고소하겠다 등의 말로 끊임없는 위협을 하더니, 술 때문인지 잠에 든다. 또다시 이십 여분이 지나자 이제 조금 술에 깨었는지 화장실을 데려 달란다. 나는 줄곧 그동안 그의 옆자리에 앉아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데리고 가려니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데 여전히 여승무원들은 겁에 질려서 못하겠단다. 이인일 조로 내가 그를 화장실로 데려가는 동안 지원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그 피지인 용병의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해서 화장실까지 다녀오고 나니 이제는 배가 고프단다. 술도 깨니 허기가 느껴지는 모양이다. 손을 자유롭게 해 주기에는 아직 그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칫 포크나 나이프도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배고프다는 그 사람을 굶길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식사를 내 손으로 직접 먹여 준다. 처음 해보는 새로운 식사 서비스 방법이라고 해야 할지 참 웃을 수도 없는 기막힌 상황인 셈이다. 식사 끝나자 다시 그는 잠에 취한다. 거의 착륙하기 전까지 잔다. 아마도 술기운 때문이리라 싶었다. 그동안 나는 계속 그의 옆에서 불침번 신세다.


그렇게 해서 피지 공항에 도착한다. 사전에 난동 승객은 기장을 통해 공항에 통보가 되었고, 기다리고 있던 피지 공항 경찰에 그를 인계하고 비행은 마무리된다.


비행을 마치고 짐을 챙기려고 보니 오른쪽 엄지가 끔찍할 정도로 통증이 느껴진다. 그를 제압하는 와중에 손가락이 꺾여 인대가 늘어난 것이다.


이튿날 아침 일찎, 호텔방 전화벨이 울린다. 피지 공항 지점장이다. 어제 그 승객이 술이 취해한 실수라며 선처를 바란다고 한다. 지점장의 말에 골치 아픈 일로 만들기 싫다는 여색이 묻어 난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여 전화한 것이냐 묻자. 구속을 시키면 여러 가지 절차가 있는데, 그냥 풀어 주는 방향이 어떻겠냐는 거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감이 온다.


그렇게 그는 풀려나고, 나는 피지에서 온몸이 쑤시는 고통을 겪는다. 한국에 와서 병원을 가니 오른쪽 엄지 인대가 늘어났단다. 그렇게 또 아픈 손으로 한 달은 족히 넘게 고생을 했다.


아버지와의 추억으로 시작된 피지가 이렇게 또 다른 추억을 하나 더 추가한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내게 피지는 낭만이다. 내 아버지를 방울방울 추억에 매달아 생각나게 하는 곳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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