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 승객

그룹 회장님으로 받은 칭송


 미국 뉴욕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에 VIP 탑승한다는 정보를 메일로 받는다. 익숙한 이름이다. 000 회장님이시다.

 VIP 탑승은 항상 긴장을 요하는 일이다. 회사에서 각별히 신경 쓰는 분들이라 그렇고, 그분들의 영향력이 많은 부분에 크게 작용하니, 자칫 불만 제기 등이 있게 되면 어김없이 그 책임을 최 접선에 있는 승무원들이 지게 되고, 또 그 모두에 대한 최종 책임은 사무장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니 그렇다.

 퍼스트 클래스  자리를 두 분 내외와 비서진  분이 예약하고 탑승한다. 탑승을 기다리는데  O00회장님은 노환으로 휠체어를 타고 탑승하신다. 불현듯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났다. 익히 알려진 유명인이시라 기존에 알고 있던 모습과 다르게 거동이 불편하신 모습과 많이 야윈 모습 그리고 세월에 흔적이 남기고 간듯한 얼굴 가득한 수심 가득한  눈까지 내가 미디어로 알고 있던 그분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순간 마치 나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는듯한 착각이 잠시 스쳐갔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순조롭게 첫 번째 식사 서비스도 마쳤다.  출발 비행기라 그런지 승객들도 고단함에 하나둘씩 잠에 빠져들고 있다. 교대로 나누어서 승무원들도 쉬기로 하고, 나도 잠시 승무원 좌석에 안는다. 정리해야  서류 작업들을 한다. 입출항에 필요한 승객 탑승 자료와 숫자 등을 다시 입항 시에 입국장에 내야 하는 서류도 있고, 인수인계해야  문서들도 있다.


 서류 정리를 끝내고, 항공기에서 무슨 서류인가 의아해하실 수 있을 거다. 그러나, 항공기가 입출국하는데도 서류 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승객의 수와 명단이 나와 있는 서류가 있다.  서류를 PM (PASSENGERS 탑승객 명단과 수) CM (적재화물 리스트) GD(승무원 명단과 승객  탑 승수를 기록하는 용지) 등을   목적에 맞게 작성하고 준비해 두어야 도착해서 입국하는데 문제가 안 생긴다.  승무원 간의 인수인계를 위한 서류들이 있다. 각종 장비나 USB 같은 것도 있고, 면세품과 기내 서비스 주류를 세관에 신고해야 하는 서류도 있다. 어느 하나 허투루 해서 안 되는 일이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서류 관련 일을 정리하고 기내 순회를 하다.  VIP 승객  좌석을 뒤쪾으로 돌아서 앞으로 걸어가는데 다른 일행과 떨어진 좌석에 누워 계시던 그분이 허리를 세우고 침대형 시트 위에 앉아 계신다. 퍼스트 클래스는 (일종의 칸막이) 다.  뒤에서부터 접근하는 인기척을 느끼신 듯 힘없는 몸짓으로 고개를 나를 향해 돌리시고는 불안한 듯한 눈빛으로 칸막이 위로 나를 응시하신다.  눈빛이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간절함이 묻어 있는 듯 보인다. 워낙 고위층 vip 승객 중의 한분이라 선뜻  생각만 가지고 나서기는 주저된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본인 공간을 침해받는 것을 싫어한. 어설프게 이런저런 관여를 하는 형국이 되거나 승무원의 임의로 판단하여 행동이 앞서는 것도 그다지 선호하시지 않는 경향들이 많다. 최대한 모든 면에서 겸손하고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상태를 살피고 다가가는 것이 좋다.  승객 앞에 도달하여 고개를 숙이고 말한다. “피곤하실 텐데 안 오시는지요?” 그때 승객이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바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아래 담요가 젖은  보인다. 거동이 불편하시고 노환도 앓고 계시다 보니 실수를 하신 듯했다. 그렇다고 당장 민망하게 무슨 일 있으시냐 혹은 불 펴하신 듯하다는 뉘앙스로 말씀을 드릴 수도 없다.


나의 아버지도 오랜 노환을 앓으시다 돌아가셨다. 비록 노인이 되어, 자신의 신체적 활동을 제어하는 기능들에 장애가 생기고,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데에는 문제가 생긴 다도 해서 체면과 존엄마저 깡그리 사라지고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로  체면과 존엄성이 훼손되는 순간에는 내 아버지도 많이 마음의 상처를 받으시고 좌절하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시던 분이 어느 날부턴가 주변의 눈치만을 이리저리 살피는  보여, 항상 아버지 병문안을 다녀오고 나면 가슴이 아리고 쓰렸었던 기억도 났다. 우리 아버지도 어느 날 바지에 실례를 하신 일이 있다. 차마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으셨는지 병원 이불로 몸을 가리고 있던  앙상하게 마르고 주삿 자국으로 항상 파랗고 검붉게 멍들어 있던 이 기억났다.  이불 한 자락을 움켜쥐고 계시던 모습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후에도 한동안 눈에 아른거렸었다. 그때 병원에서 아버지를 휠체어 태우고 화장실에옷을 갈아입혀 드리며, 눈가가 촉촉해졌었던 기억도 났다.


여전히 존엄한 인간임을 인지하고 있고 , 인간 본연의 자존감이 살아있는데 이런 모습을 누구에게 내보이고 겠는가. 그날 옷을  갈아입고 다시 침대에 누우시고는 한동안 말없이 누워 계시던 모습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 생로병사의 과정 중 하나였으나, 막상 내가  모습을 직접 마주하는 순간은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애잔함도 슬픔도 느껴졌고, 묘한 공포심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잠시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순간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회장님 제가 화장실 모셔 드릴까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한쪽 팔을 부축하고 불과 5미터 거리도  안 되는 화장실까지 가는 거지만 거동이 불편하신지라  마저 힘들다. 화장실에 도착해서 “회장님 잠시 여기 계시면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나와서 퍼스트 클래스 승객용 파자마를 꺼내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축축이 젖은 바지를 벗겨 드리고 파자마로 옷을 다시 입혀 드리고 나서 오염이 안된 바로 앞자리로 좌석을 옮겨서 다시 눕혀 드린다. 당시 말씀을  못하셨는데 조금은 어눌한 발음으로 ‘고마워 고마워 ‘하며  손을  붙잡으신다.


 5분여를 두고 다시 조용히 뒤에서부터 걸어가서 승객의 동태를 지긋이 살펴본다. 두 손을 배위로 포개고 곤히 잠이 드신 듯 누워 계신다. 한참  아이 같이 잠든 얼굴을 보았다. 나의 아버지 모습이  올라  오래 바라보았던  같다. 묘하게 흐미한 불빛 아래  얼굴 속에서 아버지가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비행이 끝난 이틀 후 집에서 쉬고 있는데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통 승무원들은 미주나 유럽 등의 장거리 비행을 3박 4일 일정으로 가고, 이후 이틀 정도를 한국에서 쉬고 다음 비행을 가는 스케줄 패턴을 가지고 있다.


쉬는 날 회사로부터의 전화는 항상 반갑지가 않다. 일상적인 것이라면 보통 승무원들이 따로 보는 정보 사이트에 메일로 공지하거나, 다음 비행 일정이 있는 날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면 중간 관리자가 그 내용을 대면 전파한다. 그러나, 전화를 한다는 것은 일상적이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이고 그것은 보통 고객 불만과 관련된 경우가 대다수 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고객 불만을 담당하는 직원이다.


“박사 무장님, 00일 날 00에서 오는 00편 다녀오셨죠?”

“아 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요.”

“아니 그 보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그 비행에서 있었는지를 먼저 알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무슨 일이라니, 비행 중에는 특이할 만한 일도 없었고, 불만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상황은 제가 보고 받은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요. 근데 그날 퍼스트 클래스 승객이 00 회장님 계열사 중 하나인 00 신문사 편집장이 그 회장님 지시로 사무장님 연락처를 요청하시는군요.”

“제 연락처를요? 제가 모시고 오는 동안은 회장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씀은 없습니다. 어떤 연유로 그러시는지 전혀 언급은 안 하시던가요.”

“그게 여러 부처를 건너서 우리 부서까지 연락이 온 거라 저도 그런 내용은 모르겠네요. 일단 그래서 우선 확인을 하고, 사무장님이 동의하신다면 연락처를 그 쪽에 제공해도 될지 물어보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렇군요. 일단 무슨 내용인지 제가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연락처를 드리시죠. 제가 통화해 보고 어떤 내용인지 들어보고, 특이사항이 있으면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동의하셨으니 연락처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조바심이 난다.  회장님 일행과 관련하여 기내에서 발생한 불만이 없었는데 무슨 일인가 해서이다.

 

승무원으로 특히 한국에서 항공기 승무원으로 근무하다 보면 정말로 많은 불만을 직간접적으로 접하게 된다. 서비스라는 상품의 생산과 소비의 개념이 처음부터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일본 등의 국가에서 수용된 개념이 많다 보니, 손님이 왕이다 등의 고객 만족 지향만을 표면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서 더욱 그렇다. ‘갑질’이 허용되는 곳으로 서비스를 인식하는 고객도 그래서 많다.


당연히 따라야  규정이나 절차들에 대한 의무는 소홀히 하면서  권리만을 강조하는 승객의 수가 많아 사소한 감정적이 내용에서 조차 쉽게 불만을 제기하고, 이것을 해결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내부 통제의 수단 마냥 징계나 처벌 등을 통한 공포 관리 형태로 운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승무원의 입장에서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게 된다. 불만 제기 자체가 인사평가나 징계 이어지다 보니 승무원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으로 크고, 불만 제기로 받는 불이익도 크다.


이러다 보니 큰소리치면  된다는 말이 서비스 현장에서 통하게 되기 쉬운 상황이 된다. 가령 승무원이 잘못한 일이 아니고 규정과 절차에 맞게  일이라고 해도 일단 고객의 불만이 제기되면 해당 승무원은 자신의 과오가 없음을 입증을 해야 하고 자칫  와중에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여 말 한마디까지 분석을  적용하다 보니 자칫 한순간에 발을 헛디디면  성과자로 떨어지고 마는 절체절명의 순간의 위기까지 맞게 되니,  불만 서신 제도는 여러모로 행동의 제약을 가져오고 결국 승객의 손에 승무원의 행동반경이 좁혀지는 결과를 빚기 십상이다.


이런 사정으로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리는데 마침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 00 일보 편집장 000입니다.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님 이신지요.?”

“네 그렇습니다. 회사로부터 연락을 미리 받아서, 전화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저희가 번거롭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름 아니라 며칠 전 저희 회장님 내외분을 모시고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00편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저희 회장님이 몸이 불편하신 와중에도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 사무장님께 고마움의 편지와 답례품을 전해 드리라고 하셨어요.”

“네? 제게요?”

“네 사무장님이 기내에서 친 아들처럼 잘해주셔서 고마웠다고 하시면서, 고마움의 서신과 답례의 의미로 작은 선물을 댁으로 보내라고 하십니다. 괜찮으시면 집 주소를 알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

“아 고맙습니다. 제가 딱히 한일이 없는데 그런 고마운 말씀을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근데 편지는 받을 수 있겠지만, 선물까지는 받기가 그렇습니다. “

“아닙니다. 꼭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혼납니다. 주소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희 회사 방침에 고객으로부터 사적인 선물을 받지 말라는 규정이 있어서 제가 회사 관계자에게 이번 건을 보고하고, 다시 연락드려도 될는지요.?”

불만이 아니라 칭송이라니 마음은 놓인다. 그리고, 한편 뭐 한 것도 없는데 이런 고마움의 답을 받아도 되나 싶기도 하다.


3일 후 집으로 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이 배달되어 왔다. 회장님 본인이 쓴 것은 아니나 00 일보 편집장의 대필로 비행기에서 정성으로 마음을 다 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시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마음을 나누는 따뜻함을 느낀다. 아무리 큰 권력의 한가운데 있고,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분이라고 한들 그분도 마음속에는 사람의 따뜻함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생각나고 내가 다 못한 불효가 생각나서 그저 진심으로 한 행동이었는데 그것이 그분에게는 따스함으로 느껴지신 듯했다.

오히려 감사 편지 한 통으로 내가 더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졌다.

이런 진심을 알아주는 마음의 울림 하나로 그동안의 마음에 생겨났던 생채기들이 다 씻겨 나가기도 한다. 서비스 노동자라는 직업이 때로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지만 반대로 또 이렇게 사람에게서 위로받는다.

작가의 이전글 승무원과 와인 오프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