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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느리게

큰 변화

by 류하

큰 파도 하나가 왔다 갔다.


‘일-집, 일-집‘ 하기 바빴다. 친구도 가족도 집안일도 그다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효율적으로’ , ’빨리빨리‘ 를 이행함으로써 나는 잘 살고 있구나 생각했던 시간들.


나에게 찾아온 두 번째 큰 파도였지만, 첫 번째 파도보다 크기가 더 컸다.

그렇게 파도가 지난 후 나는 두 번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산책할 때면, 경보로 앞만 보고 걸어온 시간과 거리에 뿌듯해하던 사람은 벤치에 잠시 앉아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쉬어갈 줄 알게 되었다.

검은색과 짙은 회색의 어두운 분위기를 좋아하던 사람은 푸릇푸릇한 초록색, 따뜻하고 푸근한 우드톤이 반겨주는 공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한식을 질리지 않고 매일 먹을 수 있던 사람은 음식으로 세계여행을 한다. 예를 들자면 커리, 타코, 파스타, …

시간을 생산성 있는 일에만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사람은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시간 속의 냄새, 풍경, 피부에 느껴지는 감각들..

무덥고 습한 공기가 나를 덮쳤을 때, 더욱 숨을 천천히, 행동도 천천히,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며 그 시간을 무던하게 지나갈 줄 알게 되었다.


중간이 그렇게 어렵던 한 사람은 그렇게 중간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또한,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이 나를 먼저 생각해나가고 있다.


그래도 변함없이 달콤한 디저트와 한적한 카페를 좋아하며,

여전히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어리면서 어리지 않는 애매한 26살의 여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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