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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를말하는사람 Jul 15. 2021

결혼, 그 쓸쓸함의 기록 1

맥주 한 캔 따기가 그렇게 힘들다

언제나 그렇듯,

빨리 마칠 수 있을 것만 같던 결제를 올려야 할 일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전화를 받고,

급히 보내줘야 한다는 자료들을 보내고,

겨우 결제문서를 붙잡아서 보니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 데이터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고민하지 말고, 스피드 있게 스피드”


결제를 할 상사는 완성도보다 급하니 빨리 결제를 올리라는데, 본인보다 더 높은 상사까지 결제가 가는 일인데, 내가 틀리면 내 탓하면 되니까 말은 참 쉽게 한다.


퇴근 시간의 5시 반이 훌쩍 지나도

아직 엑셀 데이터를 돌리고 있어야 한다니.

낮시간에 시답잖은 전화를 한 사람들에게 괜히 화가 났다.


이모님은 8시 반에 가시니까

적어도 집에서 편하게 밥을 먹으려면

7시에는 회사에서 일어나서 8시엔 도착해야

편안하게 밥을 먹는데…


일요일인 어제 갑자기 보고 싶은 뮤지컬이 있어 보고 오겠다며,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 온 맥주 생각이 나서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보고 싶었던 뮤지컬이 있는데,

다음 주부터 한 달간은 남편의 취미생활인 연극 공연 연습 일정이 있어 토, 일 모두 나가게 돼서

내가 보고 싶은 뮤지컬은 남편 공연이 끝나기 전에

막을 내린다.

‘미리 말한 일정도 아니고 갑자기 간다고 하면 화내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면서도 한번 보고 싶으면 견딜 수가 없어하는 성격 탓에

“나 보고 싶은 뮤지컬이 있는데, 다음 주 주말은 자기 공연 연습으로 못 갈 거 같아서. 오늘 6시 반 공연 갔다 와도 돼?”

라고 눈치 보며 물어보았다.

남편은 으.. 응? 으.. 응 알았어. 라며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건지 아닌지 모를 동의를 했더랬다.


어제 뮤지컬이 너무 슬픈 내용이라,

펑펑 울고났더니 맥주 생각이 간절해지는 거다.


우리 아들은 9시면 잘 준비를 한다.

집에 가면 9시 반이니까 아들은 남편이 벌써 재우러 들어갔거나 자고 있겠지?

라며, 일어나지도 않은 자유의 기분을 느끼면서

4캔에 만원 하는 맥주를 종류별로 골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1층을 들어서서 손을 씻고 있는데

엄마 아니야?라고 아들이 깡충깡충 뛰어내려왔다.


아… 안 자고 있구나…

사온 맥주를 급히 냉장고에 넣었다.


몇 시간밖에 나갔다 왔다고 아들이 반가운 마음과

왜 안 자고 있지…. 란 마음이 양극에서 나를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옷을 보니 아직 씻지도 않은 모양이다.


내 마음은 남편이 아이를 씻기게 은근슬쩍 내버려 두고 맥주를 한 캔 하느냐, 아니면 아이를 내가 씻기고 재우느냐로 갈등하고 있었다.


“엄마~ 나 아빠랑 씻기로 했어~”

“에잉~~ 엄마가 같이 씻고 싶은데~”

아이는 아빠랑 있는 시간을 무척 좋아한다.

“아니야~ 아빠랑 씻기로 했단 말이야”

나랑 씻는 것보다 아빠랑 씻는 게 훨씬 좋은 아들은 엄마 기분 상할까 봐 엄마 눈치를 살피는 모양이다.


“에잉~~ 안돼 안돼 엄마가 선우랑 씻고 싶단 말이야~~”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그럼 두 사람 중에 나한테 빨리 오는 사람이 나랑 씻는 거다~”

아들이 2층으로 올라가서 우리가 시야에 안 보이게 되자,

남편과 나는 서로 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남편은 벌러덩 쓰러지는 연기를 하고

내가 올라가자 아들은 너무 아빠랑 씻고 싶은 마음에 나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결국 아빠가 이기고, 목욕은 아빠랑 하러 들어갔다.


다시 또 이때 1층으로 내려가서

감동받았던 뮤지컬을 복기하며 맥주를 마실까…

그럼 아이를 씻긴 남편은 책 읽고 재우기까지 하긴 할 텐데..


이럴 경우에 남편이 화를 냈었던가?

정확한 시기와 어떤 사건이었는지 자세히 기억이 자세히 나지는 않았지만, 싸우긴 싸웠던 것 같았다.

예전에는 싸움이 나에게 충격적이라 기억도 잘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남편이 오늘은 딱히 화난 거 같지 않았지만,

내가 주말에 나갔다 왔다는 알 수 없는 죄책감.

혹시 남편이 또 갑자기 화를 내며 사실은 오늘 일은 참았었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맥주는 깔끔히 잊어버리기로 하고

내가 잠자리 책 읽어주고 재우기로 결심했다.


퇴근길에 생각난 저 맥주는, 바로 그 맥주다.


근데 오늘도 늦게 퇴근해서 가니,

허기만 채우고 또 애 재워야지…


맥주 그거 한 캔 따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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