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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를말하는사람 Jul 15. 2021

결혼, 그 쓸쓸함의 기록 2

새벽 기상의 기원


문자 수신이 울렸다.


[Web발신]

코로나 상황실에서 안내드립니다


금일 본 건물 10층 임직원(얀센 백신 접종 완료자)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10층에서 근무하는 임직원께서는 지금 퇴근하시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후 출근하시기 바랍니다.

상황실에서는 역학조사 및 검사 결과에 따라 추가 조치 예정입니다..


남자 회사 동료들은 접종을 시작했다고

이제는 거의 끝나가려나… 생각하던 차에

변이 바이러스에 접종자 확진에,

급격히 늘어나는 코로나 확진자에

급기야 정부에서는 4단계를 2주간 운영한다고 밝혔다.

회사에서 재택 비율을 50프로 이상 지키라고 방침이 내려온 것 까진 좋았지만,

내가 당장 해야 할 보고와 만들어야 할 보고 자료의 기한은 늘여주진 않는다.


더욱 최악인 것은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모두 가정보육과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고, 긴급 보육만 신청받고 있다.


저번 주 금요일 유치원 긴급 보육 공지사항을 보고 남편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냥 긴급 보육을 신청하면 될 거 같은데…….

내 마음은 그랬지만, 남편 의사를 물어봐야 했다.

그리고 키즈노트는 어머님도 보고 계신지라

어머니께서 긴급 보육이라는데 보내는 게 맞느냐, 내가 봐주면 되는데, 라며 나 혼자 한 결정에 대해 각자의 의견이 나오고, 내가 결정한 얘기를 번복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아마 코로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이가 유지원 입학 전이니 2월쯤 되었던 거 같다.

원래는 시어머니 아파트 바로 옆 아파트에 살다가 작년 조금 거리가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유치원은 입학하고 옮기는 게 좋을 거 같아 주중에 아이가 어머님 집에서 살고, 유치원 입학 전까지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수료를 하기로 하였었다.

마침 그 기간에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지금과 같이 가정보육을 권고했었는데, 사실상 맞벌이 부부였기에 긴급 보육을 맡기는 것에 문제가 없었다. 주변에 맞벌이가 아닌 가정주부들에게 물어봐도 애들을 다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했더랬다.


나는 교육상 집보다는 그래도 어린이집이 나을 것 같았고, 아이에게 친구들과 노는 게 정서적으로 좋을 것 같았고,

 또 어머니께서는 허리가 안 좋으셔서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를 보시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고 생각했기에 어린이집에 보내기를 말했다.


그런데 어머님께서는 집에서 보기를 선택하셨다. 자세한 말씀을 하신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남편은 그런 어머니 뜻이 옳다고 생각한 걸로 나는 이해했다.

남편이 ‘우리 엄마 말이 옳아.’라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언젠가 내가 다른 집은 다 어린이집에 보낸다는데…라고 우리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어떨까란 의미로 말을 꺼내자.

“걔들은 집에 있으면서도 게을러서 그렇지”

라고 대답했기 때문에 미루어짐 작했을 뿐이다.

난 그 대답을 듣고 집에 힘들게 아이 보는 엄마들 어떤 사정이 있는 줄 알고 너무 비하하는 거 아니냐. 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넘겨 버렸다.

그 상황에서 웃어넘겼는지, 대답 없이 듣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확실한 건 그냥 넘긴 내가 비겁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남편과 대립하지 않으려고, 내가 친구들을 게으른 사람으로 동조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도 나는 전혀 안위 험하다. 고 장담할 수 없는 이 상황에 꼭 긴급 보육을 보내야 한다고 이번에도 주장할 수가 없었다.

내가 주장하는 순간 재택을 할 수 있으면서도 게을러서 애보기 싫어 긴급 보육하는 사람이라 얘기할까 봐  겁이 났다.

나는 나에게도 비겁해진 것이다.


어떤 기분이 나쁜 소리를 들을 빌미를 내가 제공하지 말아야겠다. 는 건 결혼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하나의 진리라고 말하고 싶은 나의 비겁함..


그것이 내 상황과 내 가치에 전혀 맞지 않더라도 하나의 사건으로 결국 눈덩이처럼 커지는 싸움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결국 내 의견을 드러내지 않은 채 남편에게 아이 긴급 보육 신청할까?라고 물어보자 금방 답이 왔다.

“재택 하자!!!”


회사에서도 재택을 50% 이상 권고 하긴 해서 내가 재택을 하는 것은 정해져 있었으나, 재택을 한다고 해서 아이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몇 번 남편에게 얘기를 했었던 거 같다.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보고가 있다고 얘기했는데…

보고라는 게 전날 만들면 뚝딱 다음날 할 수 있는 걸로 이해한 걸까?

그는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남편과 나 둘 다 재택을 한날이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난 너무 바빴다.

부사장 보고를 위한 상무 사전 보고가 있는 날이었고,

그 보고를 위해 자료를 며칠째 만들고 있었다.

보고와 함께 개발해야 하는 제품들에 대해

사소한 서류 작업들 결제들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이건 내 일상일 뿐 그날따라 이상하게 바쁜 날은 아니었다.


상무의 일정은 물론이고, 이미 여러 부서 시간 맞추어놓은 회의들을 내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도 못했고,  나는 그 시간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당연히 아이와 많이 놀아주지 못했다.

오전에는 잠시 놀아주고 티브이를 봤고, 점심을 해서 먹이고 점심 쉬는 시간을 이용해 아이랑 놀아주고는

오후 회의에는 교육 게임을 하게 했다.

남편은 그날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나오지 않기에 나도 화가 많이 났던 거 같다. 얼핏 보기로는 방에 있으면서 일보다 게임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되려 나에게 버럭 화를 내면서

“무슨 대단한 일 한다고 하루 종일 애를 내팽개치고 일하는 꼴이 짜증이 나서 안나 가봤다” 고 소리를 지르는 거다.


말문이 턱 막히는 상황엔 대꾸할 수도 없다.

나는 되물었다.

“재택이 일을 집에서 하라는 게 재택 아니야?

  업무가 있으면 일을 할 수밖에 없잖아”

“이런 상황에 재택이라는 게 애도 같이 보라고 하는 거지 일하라고 하는 거냐?”


회사가 무슨 직원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그러겠는가.

코로나 서로 퍼뜨리지 말라고 재택 하라는 거지,

애 보라고 재택 하라고 할리가…

생각과 할 말은 많았지만 결국 화의 평행선 밖에 못 걸을 것이 뻔했다.


나는 그때부터 재택 하는 날이나 일이 많은 날은 새벽에 일어나소 일하거나 회사를 나가기 시작했다.

새벽에는 일하고 낮에는 애랑 놀아줄 수 있고,

야근할걸 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싸움의 경험과 기억들은 나의 생각이나 신념 같은걸 싹둑싹둑 자르는 낫질 같다

몇 초 상간으로 스친 기억에 내가 할 말들이 낫 아래로 움찔 움츠러들었고,

결국 나는 ‘재택이긴 한데, 다음 주 보고가 얼마 남지 않아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할거 같다.’는 말을 꺼내지는 못한 채 내 재택 일만 전달했다


“화, 수, 목 재택 하고.. 다음 주 수요일에는 보고라서… 금 월 화는 나갈 거야”


화수목 재택 하면서 다음 주 화요일까지 보고서가 완성될 리 없다.

보고 전에 사전 보고를 두 번은 해야 하고, 보고 하루 전날엔 사전 서면 보고도 해야 하기 때문에 최종 리뷰는 월요일엔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금요일까지는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요하면 미리 하면 안 되냐고?

회사에서 긴 기한을 주고 알아서 보고 하라는 경우는 못 봤다. 언제나 타이트한 기한을 줄 뿐…


남편은 그 나머지 일정에 재택을 하는 것으로 아주 평온하고 아름답게 마무리된 걸로 알았겠지만, 난 결국 또다시 새벽 4시 기상을 하기로 했다.

(지금도 5시 반 새벽 기상 중이지만.. 일을 위한 새벽 기상은 아니었다)

4시에 일어나면 아이 일어나는 7시까지 3시간은 집중해서 보고서를 만들 수 있으니까…


나의 새벽 기상이란 어느누구에게처럼 자기 계발을 하거나 명상의 아침이 아니다.


싸움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결혼 생활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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