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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를말하는사람 Jul 15. 2021

결혼, 그 쓸쓸함의 기록 3

이런 결혼도 있다.


‘내일부터 재택에 가정보육의 시작이네..’


보고서와 가정보육의 압박을 동시에 느끼며 스트레스를 한쪽 머리에 남겨두고,

아이에게 잠자리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났는데, 남편일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왔어? 라던가, 아빠 왔다 인사하러 가자. 등의 여느 집안에서 있을법한 장면인 연출되지 않았다.


남편은 조용히 자박자박 발소리를 내며 3층 올라가더니 다락방에 들어간듯했다. 아마 옥상에서 담배도 한대 피웠겠지…

난 아이에게 아빠가 온걸 티를 내지 않고 계속 책을 읽었다.


우리 집은 아빠가 왔을 때 내가 인사를 안 하면 엄마에게 등짝을 후려 맞았다. 그 사춘기 시절, 문을 꽝꽝 닫고 들어가던 때에도 꼬박꼬박 아빠가 퇴근하시면 인사를 드렸던 것 같다.

저녁을 같이 안 먹는 것도 야단맞을 거리였다.

아침은 안 먹었지만 저녁은 꼭 집에 와서 먹으라 하셨다. 물론 대학 가서 술 먹기 시작하면서 횟수는 줄었어도 같이 먹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치는 않았다.


곰살맞은 딸은 아니라 이것저것 묻는 엄마가 귀찮고,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하는 엄마 아빠에게 짜증을 냈었던 적 빼고 대부분 식사자리에서 엄마도 아빠도 웃긴 얘기나 남이 돈 번 얘기, 오늘 일과 같은 시시콜콜한  얘길 했었던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밥을 먹기 시작하고 끝내는 시간이 같았고,

그래서 먼저 먹었다고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머님 아버님 댁에 가서 남편과 식사를 했다. 남편은 야구 중계를 보며 먹다가 본인 밥을 빨리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시점이 어렵디 어려운 그 자리에 나를 남겨두고 어디를 간 것도 모자라, 한참이 있어도 돌아오질 않아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란 황당한 기분과 시부모님과의 어색한 그 기운이 분노로 바뀌는 과정이 지금도 너무 생생하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배우자의 기분을 배려해줌직한데도 꿋꿋이 남편 본인이 지켜왔던 식사문화와 담배 타임을 지킨다는 의미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단순히 내가 불편한 줄은 몰랐을 수도 있어.라고 넘겨짚어 버렸는데 넘겨짚는 버릇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끔찍이 나쁜 습관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아이가 로봇을 가져온다며 놀이방으로 갔다. 그러면서 3층에 불이 켜져 있어 아빤가? 하며 올라가 본 것이다. 아이는 무척이나 반가워서 아빠에게 오늘 자신이 만든 걸 자랑하려고 1층으로 내려가 보라고 했다.

남편은 조금은 피곤한 듯, 본인의 혼자만의 시간을 빼앗겨 귀찮은 듯 “왜? 엄마랑 만들었어? 알았어” 와 같은 말을 하는 걸 나는 아래층에서 듣고 있었다.


언제나 아빠가 오면 인사를 하던 것이 몸에 베여 있었는지, 이런 상황은 늘 나를 죄책감 들게 한다.

‘올라가서 인사를 할까…’

‘아니 내가 안에서 애랑 책 읽고 있는 거 뻔히 알면서 인사 안 하고 올라간 사람한테 내가 먼저 인사하면 뭐해. 그런다고 우리 사이가 좋아질까..’


놀랍게도 우리 부부는 싸우지 않았다.


난 그냥 침대에서 아이가 아빠에게 인사를 다 하고 오길 기다렸다.

침대로 돌아온 아이는 아빠가 예고 없이 갑자기

나타난 게 기쁜 나머지

“엄마~아빠가 왔어, 아빠 보러 가자~”라고 말했다.

나는 “아니야 괜찮아”

라고 대답했는데 아이의 눈이 뭔가 불안한 눈빛 같아 보였다. 아니면 아빠에게도 거절당하고 엄마에게도 아이의 요구가 거절되어 실망한 눈빛이었을까.


아이의 눈빛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난 결국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이에게 책의 남은 부분을 읽어주는 내내

마음이 쓰였다.


결국 나와 남편과의 서먹함과 거리감이 아이에게 상처 이리라.

이런 관계에 대한 개념이 모여,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가족들에게 똑같이 하게 되겠지… 란 생각에 이르렀을 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 부부는 싸우지 않은 상태이다.


7년의 결혼생활에서 서로가 다름으로부터 오는 싸움들에 처음엔 남편을 이해시키려 노력했고, 그다음은 이해해보려 노력했고, 나의 이해심과 포용심을 길러서 SNS에서 행복함으로 득도한 사람들과 같이 나도 결혼 후에 내가 성장했노라, 고 믿고 싶었지만. 결국 나는 지금 둘의 관계에 무기력하고,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감으로 다음날 아침 퉁퉁 불은 얼굴로 거울 속에 나를 만난다.


모두가 결혼이란, 행복감에 또는 성장하며 동료애를 가지고 산다고 하지만, 난 단지 내 인생의 터널을 지나가는 기분일 뿐. 이 결혼의 끝을 언제나 기대하고 있는 거다.


멈출 이유들은 수도 없지 많지만, 현재 생활의 관성을 멈출 용기도 없거니와 어쩔 땐 가끔은 서로에게 힘이 되지 않나….. 라며 결혼에 한낱 희망을 아직 붙잡으며 사는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과 같은 삶도 있는 거라고. 그렇다고 잘못된 건 아니라고.


어떤 기분인지 알것 같다.

너무 속상해서 지인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어차피 자기 일이 아니라 함부로 말한다. 그런 소리 들으면서 왜 사냐. 그렇게 소중히 대해주지 않는 사람하고 어떻게 사냐. 그렇게 사랑이 없는데 어떻게 이혼하라고.


티브이에서는 아이가 있지만 멋지게 이혼을 결심해버리고, 또는 너무 좋은 짝을 만나 평생 행복감에 잘 사는 집들이 있어 내가 바보 같아 보인다는 거…


근데 이런 삶도 있다. 그런 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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