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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으로의초대 Jul 23. 2023

두 번의 택시

배려와 무례

오늘 의도치 않게 두 번의 택시를 타게 되었다.




동생이 아이를 낳아서 백일 좀 넘은 조카를 보기 위해 전주에 2박 3일로 다녀왔다.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었고 동생 집에서 전주역으로 가는 택시를 타게 되었다.


동생네 아이가 자고 있는 시간이었고,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여

역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동생네 부부를 한사코 만류해서 택시를 불러서 탔다.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님이 "몇 시 기차예요?"라고 물으셨다.

내가 "1시간 넘게 남았어요. 4시 20분 기차입니다."라고 하니

"아직 많이 남았네요." 하신다.


근데 택시를 타는 도중, 아이가 이모에게 선물 받은 장난감 요술봉을 집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생네에서 급하게 나오다가 그만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이대로 집에 가고 이모에게 택배로 보내달라 하자"라고 했다. 아이도 못내 아쉬운 눈치였지만 일단은 내 말에 수긍했다.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 동생한테 다시 택배로 보내달라는 게 더 민폐 같아서 그래서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출발한 지 약 5분 만에) 다시 택시를 회차해서 동생네 집에서 장난감 요술봉을 다시 받아왔다.

제부가 장난감을 들고 나오자 택시 기사님이 "저기 오시네" 하신다.


동생네에서 역까지는 꽤 거리가 있어서 택시를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역에 도착했다.

근데 나랑 아이 둘 다 2박 3일 동안 노느라 피곤하고,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해서 몸도 노곤해지면서 목적지를 거의 다 와서 둘 다 잠에 들어버렸다.


그런 우리에게 기사님이 "다 왔어요. 결제는 여기서 하고 비가 오니까 저 앞에서 내려드릴게요." 하신다.

택시 하차 장소에 택시 줄이 기니까 이대로 가다간 미터기 요금은 계속 올라갈 테니 

택시비 결제 먼저 받고 비 안 맞는 장소에서 내려주신다 하신 거다. 


비가 오고 뒤에 차가 와서 헐레벌떡 아이랑 내리려는데, "천천히 내리세요."라고 해주신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역에서 우리 집까지는 마을버스로 한 번에 닿기에 마을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우산도 없는데 빗줄기가 굵다.

게다가 오늘 기차는 약 50분이 지연되어서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서울에 도착하게 되었다.


결국 역 앞에 있는 택시를 탔다.

목적지를 설명하자 아저씨가 묻는다. 

"이대 쪽에서 올라가면 되나?"

내가 말한다. "아, 이대에서 가셔도 되는데. 여기서는 아현이 더 가깝지 않나요? 아현이랑 이대 사이 골목에서 우회전해 주시면 돼요."


그리고 계속되는 아저씨의 말.

"아~ 거기 언덕 꼭대기에 있는 아파트?"

"거기 택시기사가 가장 싫어하는 곳이야. 지금이야 아파트가 많이 생겼지만 예전에는 이대에서 아주 언덕을 올라가야 되거든"

"아~ 00(우리) 아파트도 참 오래됐다~"


택시기사가 가장 싫어하는 곳이라는 말에 내가 별 대꾸를 안 하자 뭐라 뭐라 설명을 덧붙이는데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처음에 이대 쪽에서 올라가냐고 묻는 것도 외지인인지 한 번 떠보는 것 같다. 본인도 잘 모르면 일단 내비게이션이라도 치면 참 좋을 텐데 그럴 의지도 없어 보인다.



저녁에 가만히 앉아서 이 일을 곱씹는데 참 우습다.

하루에 택시를 두 번 탔는데 어쩜 이렇게 느끼는 바가 다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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