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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 땅에서 피어난 꽃 Feb 19. 2022

글을 쓰며 생겨난 그림자

부수적인 습관과 관심사

현재의 모습과 상황과 태도에 이르기까지 무거운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가벼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무언가를 많이 하다 보면 그 행위를 하지 않을 때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생각은 물론 함께 자라나는 것이 있다. 만약 직업이라면 직업병이라고도 불리는 그림자 같은 습관과 행위에 관련된 관심사가 형성된다. 관련된 관심사의 경우 가장 흔한 것은 행위에 필요하고 쓰이는 도구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조각칼을, 글을 쓰는 나와 같은 경우는 당연히 필기구일 것이다. 사용자와 생산자, 도구의 역사가 유구한 만큼 도구의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전문적이고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면 걸맞은 값비싸고 질 좋은 도구에 대한 관심은 물론 구비하여 사용까지 하고 있겠지만, 실용적이진 않아도 예쁘거나 친근한 마음에 그만 구매해 버리는 것도 생겨나곤 한다.

순전히 예뻐서 사버리고만 볼펜

 최근에 그러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만년필도 많이 쓰지만, 나의 경우는 수정도 많고 부담 없이 슥슥 쓰는 게 좋아서, 튼튼하고 손이 아프지 않은 샤프 하나면 종이에 글 쓰기에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번에 볼펜으로 좋은 평을 받는 브랜드의 5색 마블 볼펜을 기어코 사고 말았다. 이런 도구의 경우 분명 글을 쓸 수 있는 도구이지만 몰입과 감성에는 방해가 되기 쉬워서 잘 쓰지 않게 된다. 혼자 쓰는 용으로는 확실히 그러한데, 글을 써내지 않는 다른 곳에는 간간히 잘 쓰고 있다. 보통 누군가에게 간단한 선물을 할 때는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어서 쓸모없지만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필기구 말고도 단짝인 공책도 있다. 따로 만들어둔 공책도 여러 권이고 이전에 말했던 deep 공책도 그 하나며 요즘도 잘 쓰고 있는 편이다. 근데 공책은 워낙 그 부피가 크고 묶인 종이의 양도 많은 편이라 필기구만큼 자주 사기보다는 한 번에 여러 권 사서 써간다는 차이점은 있다.


 이곳처럼 글을 쓸 수 있는 수단은 웹사이트의 공간이나 워드 프로그램도 있어서 굳이 종이와 필기구가 없더라도 지장은 없다. 하지만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공책과 필기구라는 도구가 아예 없으면 안 될 것 같다.


 오래전 들어본 연구 결과에서 타자를 치는 것보다 손으로 직접 쓸 때, 훨씬 더 창의성이 높아진다는 말을 아직까지 기억하는데, 실제로 내 경우에도 손을 쓰는 편이 과정 중에 필요하기도 한 한 편 정서적으로나 생산적으로나 훨씬 잘 맞고 좋다.

 손으로 직접 종이에 글을 쓰고 있노라면, 먼 옛날 어릴 적에 갔던 미술관이 떠오르곤 하는데, 특히 그곳에서 보았던 습작류들이 떠오른다. 주로 연습이나 편하게 작업한 것들이 습작의 형태로 전시장 한편에 전시되는 걸 보면서 역시 버릴 것은 없다는 생각과 그저 연습장 안에만 머무는 글들일 지라도 내 보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을 들게 한다.


 때문에, 손으로 글을 쓰는 데에 필요한 필기구와 공책이라는 도구들은 그림자처럼 자연스럽게  많이 쓰게 되었고, 그러면서 점점 더 닿고 점점 더 깊어져 수집에 가깝게 사서 모으는 버릇이 생겨났다. 당장 쓰지 않더라도 모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느 수집가가 그런 것처럼 경험을 통해서든 관심을 통해 흡수한 정보로 인한 것이든 쌓인 지식으로 결정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어떤 제품이 좋은지 추천을 해줄 수 있을 정도에 이르게 되었기도 하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지만 얻게 된 부수적인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글을 쓰다 보니 생겨나 재미난 그림자는 어느새 내 공간을 둘러싸는 모습이 되어서 방 안에는 필기구와 공책과 책이 한가득이고 받게 되는 선물 역시 글과 관련된 것이다. 응원의 마음 혹은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전해주는 마음이 담긴 고마운 것들. 그래서 더 글을 쓰려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따로 만들어둔 공책도 많고 글을 즐겨 쓰는 인터넷 공간도 있는 등 여러 수단에 글을 써 오고 있긴 하지만, 야근이 잦은 때는 간단한 메모 이상으로 쓰기가 힘들긴 하다.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9시에 마치고서 씻고 간단히 뭘 먹기만 해도 10시라 당장 내일을 준비하다가 하루가 끝나는 때가 많으니까.


 먹고사는 것이 급급하고, 시간이 가는 만큼 몸도 점차 골병 들어가고 있는 탓인지, 개인적인 공간엔 많이 써도, 밖으로 내 보이는 글들은 적기만 한 것은 스스로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얼마 전 브런치에서 60일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는 알림이 왔을 때 아차 싶었다. 먹고사는 것에 잠식되면서  점점 글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꼈고 그 사이의 거리가 완전히 멀어지기 전의 위험으로 인한 위기감을 경고 같은 알림으로 생생히 느꼈다.


 비록 직업으로 삼지는 못했고 빛을 못 본 것에 가까워도 다양한 형태로 계속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계속 생각하고 쓰려한다.

 누군가 글을 쓰지 않는 글이 빠져 버린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듯, 나는 글을 쓰고 글이 빠지 않은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무의식적으로 내 생활 모습과 타인의 생활 모습을 동일시하는지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볼 때마다 내 기본 바탕이 되는 생각과 실제의 차이를 실감하기도 하지만 다르다는 것에 위축이 되거나 잘 못되었다 생각하진 않는다. 이제는 그렇다. 선명하고 힘 있는 결과물을 내고 싶은 마음이니까.


그림자는 사물이 무너지고 사라지면 함께 소멸되고 만다. 그림자만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흔적이 될까.

아까워서 쓰기 싫은 마음이 컸지만, 요즘은 원 없이 눈부시게 써보자는 마음으로 더 손 때가 타게끔 거침없이 쓰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아끼다가 먼지가 덮이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 필기구를 닳게 해서 빈 공간을 채워내고 싶다, 그림자도, 그림자 끝에 이어져있는 존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래오래 굳건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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